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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월 3일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서 외국인이 막걸리를 고르고 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의 농식품수출정보(KATI)에 따르면 지난해 막걸리 수출량은 1만5천396t(톤)으로 지난 2020년 1만2천556t과 비교해 22.6% 증가했다.
 10월 3일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서 외국인이 막걸리를 고르고 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의 농식품수출정보(KATI)에 따르면 지난해 막걸리 수출량은 1만5천396t(톤)으로 지난 2020년 1만2천556t과 비교해 22.6% 증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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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2024년 세법개정안에서 탁주의 첨가원료로 인공적인 향료, 색소를 허용할 방침임을 밝혔다. 이 개정안이 통과되면 오미자를 넣지 않은 오미자'향' 막걸리, 유자를 넣지 않은 유자'향' 막걸리가 가능해진다. 

지금도 쌀, 물, 누룩 이외에 부가적인 재료를 쓰는 막걸리는 존재한다(인공감미료의 사용은 또 다른 이야기이고, 이 글에서 다루고자 하는 논점을 흐릴 우려가 있으니 논외로 한다). 하지만 그것들은 모두, 천연 재료다. 

진짜 오미자를 쓰지 않는 '오미자향 막걸리'는 현행 제도 아래에선 '막걸리'라는 이름을 붙일 수 없다. 주세법상 분류가 '막걸리'라는 이름을 쓸 수 있는 '탁주'가 아니라 '기타주류'가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물론 이럴 경우, 우리의 전통주로 보호해야 하는 탁주의 범주를 벗어나게 되기 때문에 세율도 올라간다. 왜 인공 향료와 색소를 넣은 술이 꾸역꾸역 '막걸리'의 범주 안으로 들어오려고 애를 쓰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것 때문에 우리술 업계는 물론, 우리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커뮤니티 전체가 벌통을 건드린 것처럼 시끄럽다. 하지만, 그렇지 않아도 더운 여름에 이렇게 이글거리는 불덩이를 던져 넣은 소수의 사람들은 입을 닫고 말이 없다. 이번 정부 들어와서 몇 번이나 목격하게 되는 낯익은 풍경이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쪽으로 일을 처리해 놓고, 당연히 이어지는 반발에 책임있는 사람들은 입을 닫는다. '너희들이 아무리 떠들어도 세상은 우리가 정하는 대로 흘러간다'는 식이다. 하지만 무릇 자신이 술꾼이라는 자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같은 시도에 대해 가만히 있을 수 없다. 



막걸리의 범주가 늘어나면 벌어질 일 

혹자는 말한다. 막걸리에 색소와 인공향료를 허용하면 그만큼 젊은 층이 선호하는 제품을 만들 수 있어 매출이 증대되고, 외국 소비자들을 유인하기도 쉬워진다고. 그리고 어차피 향을 안 넣어서 선택을 못 받을 술이라면 그 자체가 맛이 없거나 경쟁력이 떨어지는 것 아니겠냐고. 향을 넣은 것과 안 넣은 것을 소비자들 손에 쥐어 주고, 그들로 하여금 선택하게 해야 한다고. 

그야말로 한 치 앞을 보지 못하는 단견이다. 설렁탕으로 예를 들어 보자. 어떤 이유로 우리 민족이 설렁탕을 한동안 잊고 살았는데, 여러 사람들의 노력으로 진한 국물을 우려내는 방법이 차츰 복원되었다고 치자. 이제 막 설렁탕 전문점들이 늘어 가고 있고, 사람들이 설렁탕의 맛을 알게 되려는 참이다. 그러다 보니, 기술적 발전도 이루어져 만두를 넣은 설렁탕, 마늘 양념을 넣은 매콤한 설렁탕 등 다양한 시도도 계속되고 있다. 

그런데 갑자기 정부에서, '곰탕라면'도 '설렁탕'이라는 이름으로 판매할 수 있게 해주겠다고 나선다. 그렇게 되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당연히 원가가 싸게 드는 라면스프가 들어간 곰탕라면을 가지고 설렁탕이라며 파는 업체들이 늘어날 것이고, 조금이라도 더 좋은 고기, 좋은 뼈와 센불을 써서 육수의 맛을 깊게 하는 쪽으로 연구를 거듭하던 사람들은 허탈함을 느끼는 것을 넘어 비즈니스의 존폐를 걱정하게 될 것이다. 

설렁탕은 좋고, 곰탕라면은 나쁘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설렁탕은 설렁탕으로, 곰탕라면은 곰탕라면으로 존재하면 된다. 다만 그 벽을 허물어서, 어느 것이 어느 것인지 모르게 뒤섞어서 짬뽕을 만들어 버리면 상대적으로 더 손이 많이 가고 돈이 많이 드는 쪽이 위축될 수밖에 없다. 설령 극소수의 설렁탕집이 살아남는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이미 일반 서민이 꿈도 꿀 수 없는 가격을 받아야 하는, 전혀 다른 성격의 비즈니스로 변해 버릴 것이다.


 
 지난 5월 10일 오후 서울 서초구 aT센터에서 2024 대한민국 막걸리 엑스포(MAXPO)가 열리고 있다.
 지난 5월 10일 오후 서울 서초구 aT센터에서 2024 대한민국 막걸리 엑스포(MAXPO)가 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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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 향료와 색소를 허용하는 순간, 동일한 일이 우리술 업계에도 일어날 것이다. 우리술의 가장 기초적인 토대를 담당하는 탁주산업에 인공적인 향과 색소가 자리를 잡게 되는 것은, 증류식 소주가 기본이던 우리 술문화에 주정과 감미료로 만든 희석식 소주가 이식되던 역사를 반복하는 일이 될 것이다. 술을 만들 때, 자연이 허락한 천연의 산물만을 가지고 만드는 것이 '당연한' 사실임을 역행시켜, 자극적인 향과 알록달록한 색을 지닌 술이 시장을 점령하게 만들 것이다. 

당연히 한동안은 사람들의 입맛도 거기에 길들여질 것이고, 우리술을 처음 접하는 젊은 세대와 외국인들에게 무엇이 진짜인지, 어떤 것이 우리가 오랜 식민지 시대와 먹고사니즘 절대 우선의 세월 속에서도 지켜왔던 술인지 설명하는데 긴 시간과 노력을 허비해야 할 것이다. 

한때의 유행에 지나지 않을 것이라고? 그 한때의 유행이 지나가고 나면, 인공향, 인공색소 막걸리가 망쳐놓은 산업의 폐허 위에서, 우리술의 방향성과 이미지를 복원하기 위해 또 오랜 세월을 허비해야 할 것이다. 과거 '카바이드 막걸리'의 괴담에서 출발해, 외국산 튀긴 쌀로 만들고 감미료를 때려 넣은 막걸리가 초래한 '머리 아픈 술', '저급한 술'의 이미지를 벗기 위해 대체 얼마간의 시간이 필요했는지 다들 잊기라도 한 것일까?



중요한 건, '진본성'을 지키는 일이다 

지금도 진짜 오미자가 들어간 오미자 막걸리, 진짜 바질이 들어간 바질 막걸리는 막걸리의 이름을 달고 각광받으며 판매되고 있다. 문제는 오미자는 약간 들어가고 인공적인 오미자 향을 때려 넣은 술, 바질은 건조 바질 뿌리는 시늉만 하고 인공향으로 나머지를 채운 제품들이다. 이런 제품들이 이제 막 우리술의 세계에 입문하려는 소비자들을 만날 때, 가짜가 진짜를 위축시키는 일이 벌어진다. 

현행 제도 아래서도 바나나 향을 넣은 막걸리, 밤 향을 넣은 막걸리 등은 존재한다. 인공적인 향료의 또렷하고 강렬한 향을 원하는 소비자들은 그런 제품을 소비하면 된다. 다만 '기타주류' 카테고리에 들어가다 보니, 병당 세금이 많이 붙는다. '그들'은 그게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다. 세금을 조금 더 내는 것이 싫어서, '설렁탕'과 '곰탕라면'의 벽을, 우리 민족이 술을 마셔온 이래 지켜져 왔던, 천연성분만 넣은 '막걸리'의 외피를 깨려는 것이다.

바야흐로 '오덴티시티'(authenticity 진본성)가 각광받는 시대다. 진본성을 지키고 있으면 세상에서 알아서 대접해 주고, 찾아와서 소비해 준다. 프랑스의 와인이 그렇고, 스코틀랜드의 위스키가 그렇고, 일본의 니혼슈가 그렇다. 술은 식품이면서 강력한 문화상품이다. 그렇기에 그 진본성을 담은 스토리텔링을 유지,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 결국 가치를 높이는 길이 되고, 고가 제품의 탄생과 국제적 소비로 이어진다. 외국에서 수입할 것이 뻔한 '식용색소 적색 제 00호', '오미자향 제00호'를 넣어서 만드는 술이, 과연 '국주'(國酒) 막걸리의 마케팅에 도움이 될까?

외국에 왜 '목초액을 넣어서 우디(Woody)함을 강조한 위스키', '색소를 넣어서 비비드한 레드 컬러를 완성시킨 레드와인'이 없는지 조금만 생각해 보시고 개정안을 만드셔도 만드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아니면 그럴 시간에 지금 멀쩡하게 잘 팔리고 있는, 인공향료가 안 들어간 막걸리라도 드시던가.
 

#막걸리#우리술#세법개정안#인공향료#주세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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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술 익스프레스>저자, 여행 저널리스트 탁PD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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