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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서초구 대법원 청사.
 서울 서초구 대법원 청사.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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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7월 일본 정부의 경제 보복 조처에 맞서 서울 소재 일본 전쟁범죄기업 계열사 사무실을 항의 방문했던 대학생단체 회원들에게 법원이 벌금형을 확정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대학생진보연합 소속 서울·광주 소재 대학 학생 등 20여 명은 강제동원 관련 전범기업 배상 책임을 확정한 한국 대법원의 잇단 판결에 일본이 불만을 품고 반도체 소재 부품 수출 규제 등 보복에 나섰다는 소식을 접하고, 피해자에 대한 사죄 촉구를 위한 방문이었다고 재판 과정에서 줄곧 주장했다.

하지만 법원은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집회나 시위는 보장될 수 없다며 사건 발생 약 5년 만에 이들의 유죄를 확정했다.

9일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과 법조계에 따르면, 지난 6월 27일 대법원 2부(주심 신숙희 대법관)는 업무방해 등 혐의로 기소된 대학생 이아무개(25)씨 등 20명의 상고를 기각하고 각각 벌금 100만 원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원심(2심)은 이 사건 공소사실을 유죄로 판단했다. 원심 판단에는 논리와 경험 법칙을 위반해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나거나 정당행위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양형 부당을 주장한 데 대해서도 형사소송법을 근거로 제시하며 적법한 상고 사유가 되지 못한다고 기각했다.

이씨 등 26명은 지난 2019년 7월 9일 오후 1시 10분부터 3시 10분까지 약 2시간 동안 서울 중구 소재 미쓰비시중공업 계열사 사무실 앞 복도에서 "경제보복 중단하라" "식민지배 철저히 배상하라" 등 문구가 적힌 인쇄물을 손에 들고 "미쓰비시 사과하라" "경제보복 중단하라"고 구호를 외쳤다.
 
 한국대학생진보연합 소속 대학생 20여명이 9일 오후 1시경 서울 중구 명동역 인근 빌딩에 입주해 있는 일본 ‘미쓰비시 그룹’ 계열사 사무실 앞에서 면담을 요청하며 시위하고 있다. 2019.7.9
 한국대학생진보연합 소속 대학생 20여명이 9일 오후 1시경 서울 중구 명동역 인근 빌딩에 입주해 있는 일본 ‘미쓰비시 그룹’ 계열사 사무실 앞에서 면담을 요청하며 시위하고 있다. 2019.7.9
ⓒ 최윤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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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은 이씨 등이 구호를 큰소리로 반복 제창하는 등 소란을 피워 그곳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대표이사 등 5명의 업무가 방해됐다며 업무방해 혐의를 적용해 재판에 넘겼다. 이 회사의 컴프레서 시스템과 관련 기기 서비스 업무를 방해했다는 것이다. 이씨 등 20명을 제외한 나머지는 다른 사건과 병합돼 재판을 받고 앞서 유죄 판결을 받았다.

또한 검찰은 항의 방문 과정에서 이씨 등이 전범기업 측으로부터 건물에서 나가달라는 요청을 3차례 받았는데도, 경찰에 강제연행될 때까지 응하지 않았다며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위반(공동퇴거불응) 혐의도 적용했다.

1심 공판 과정에서 이씨 등은 무죄를 주장했다. 업무방해죄에서 요구하는 '위력'의 정도에 이르지 않아 죄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주장이었다.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한 행위가 아니라 일제 강점기 강제징용 관련 주제로 면담을 위한 방문이었으며, 헌법과 주권을 수호하기 위한 정당한 목적을 가진 행위로 사회 상규에 위반되지 않아 위법하지도 않다고도 했다.

재판부는 "업무방해죄는 업무방해 결과가 실제로 발생함을 요하지 않고 업무방해의 결과를 초래할 위험이 발생하는 것이면 족하다"며 피고인들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정당행위로 위법성이 없다는 주장에는 "피고인들에게 목적이나 동기의 정당성이 일부 인정될 여지가 있으나,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집회 시위는 보장될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씨 등 피고인들에게 각각 200~300만 원의 벌금을 선고했다.

"당시 방문은 미쓰비시에 항의 요구한 것, 후회 안해"
 
 지난 9일 서울 퇴계로에 위치한 전범기업 미쓰비시 자회사 MHI Compressor Korea 사무실 앞에서 '일제 강제징용 사과와 배상', '경제보복'에 항의시위를 벌이던 여학생이 경찰에 연행되고 있다. 2019.07.09
 지난 9일 서울 퇴계로에 위치한 전범기업 미쓰비시 자회사 MHI Compressor Korea 사무실 앞에서 '일제 강제징용 사과와 배상', '경제보복'에 항의시위를 벌이던 여학생이 경찰에 연행되고 있다. 2019.07.09
ⓒ 최윤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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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씨 등은 항소심 과정에서 사건 당시 경찰의 인권 침해적 연행 방식을 지적하고, 피해자에 대한 사과 촉구를 위한 항의 방문이 피고인들이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고 주장했으나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다만 재판부는 이씨 등이 사적 이해관계가 아닌 일본의 경제보복 중단 요구 등을 위한 면담 요청 과정에서 이 사건 범행이 이뤄진 점, 피고인들 대부분이 나이 어린 학생으로 범죄 전력이 없는 점, 피해자 측이 처벌을 원치 않는 점을 고려해 원심을 파기하고 벌금을 낮췄다.

대법원은 이씨 등이 사실 및 법리 오해와 양형 부당을 이유로 제기한 상고를 모두 기각하고 각각 100만 원의 벌금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법원의 최종 판단에 대해 대학생 이씨는 <오마이뉴스>에 "(2018년) 한국 대법원 판결에 따라 미쓰비시는 강제동원 피해자들에게 배상하고 사죄해야 하는데, 도리어 일본 정부가 이듬해 경제 보복에 나선 게 아니냐"며 "당시 항의 방문은 미쓰비시에 사과를 요구하기 위한 것으로, 그때의 행동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양금덕 위자료 배상 6년째 거부' 미쓰비시 자산매각 선고 '감감'

한편 대법원은 2019년 7월 미쓰비시중공업 계열사 업무방해 혐의로 기소된 대학생들에게 유죄를 확정한 것과 달리,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미쓰비시중공업 등 전범기업 2곳을 상대로 제기한 특별현금화명령 재항고 사건에 대한 선고는 수년째 미루고 있다.

양금덕(93·광주광역시) 할머니 등 강제동원 피해자들은 미쓰비시중공업 등 전범기업 배상책임을 인정한 2018년 한국 대법원 판결에도 손해배상금(위자료)을 지급하지 않자 해당 기업 상표권 등을 강제매각하는 소를 제기해 1, 2심에서 잇따라 승소했다. 미쓰비시 측은 이에 불복, 2022년 5월 대법원에 재항고했고 대법원은 2년이 넘도록 선고를 미루고 있다.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양금덕 할머니가 2022년 9월 1일 광주광역시 자택에서 박진 외교부 장관에게 편지를 쓰고 있다. 할머니는 편지에서 "나는 일본에서 사죄 받기 전에는 죽어도 죽지 못하겠습니다. 대법원에서 승소했다는 소리를 듣고 너무도 기뻤습니다. 그런데도 몇 년째입니까? 우리 정부 무슨 말 한마디 못하고 있지요. 왜, 무엇이 무서워서 말 한 자리 못합니까? 미쓰비시가 사죄하고 돈도 내놓으세요. 다른 사람이 대신 주면 나는 무엇이 될까요? 일본에서는 양금덕을 얼마나 무시할까요? 만약에 다른 사람들이 준다면 절대로 받지 못하겠습니다. 우리나라 대통령에게 양금덕 말을 꼭 부탁, 부탁한다고 부탁합니다"라고 썼다.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양금덕 할머니가 2022년 9월 1일 광주광역시 자택에서 박진 외교부 장관에게 편지를 쓰고 있다. 할머니는 편지에서 "나는 일본에서 사죄 받기 전에는 죽어도 죽지 못하겠습니다. 대법원에서 승소했다는 소리를 듣고 너무도 기뻤습니다. 그런데도 몇 년째입니까? 우리 정부 무슨 말 한마디 못하고 있지요. 왜, 무엇이 무서워서 말 한 자리 못합니까? 미쓰비시가 사죄하고 돈도 내놓으세요. 다른 사람이 대신 주면 나는 무엇이 될까요? 일본에서는 양금덕을 얼마나 무시할까요? 만약에 다른 사람들이 준다면 절대로 받지 못하겠습니다. 우리나라 대통령에게 양금덕 말을 꼭 부탁, 부탁한다고 부탁합니다"라고 썼다.
ⓒ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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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동원#징용#미쓰비시#업무방해#대진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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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전라본부 상근기자. 제보 및 기사에 대한 의견은 ssal1981@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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