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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장마의 시대가 끝났다고 말한다. "여름철 여러 날 계속해서 비가 내리는 현상", 장마의 양상이 매년 바뀌고 있다. 지난 6월 중순의 폭염은 75년 만에 최고라고 한다. 폭우가 내렸다가 다음 날 폭염이 온 땅을 덮고, 그다음 날에 또 폭우가 내리는 일이 며칠째 이어지고 있다. 폭염과 폭우 모두 사나울 폭(暴) 자를 쓴다. 사나운 날씨 속에서 우리는 살아간다.

폭우가 내리는 날 건설노동자는 무얼 할까? 비가 그치기만을 기다리며 일을 하지 못한다. 일을 못 하니 돈을 못 번다. 2020년에 40일 넘게 장마가 이어져, 온라인에 "이 비의 이름은 장마가 아니라 기후위기입니다"라는 해시태그가 번졌다. 많은 사상자를 내고 엄청난 재산 손실이 일어났다. 그 40여 일의 장마 동안 건설노동자는 거의 일하지 못하여 생계의 위험에 놓인 채 하루하루 버텨야만 했다.

다행히도 비가 그치면 현장에 출근한다. 이른 새벽에 출근해서 거푸집을 나르고 철근을 결속하며 망치질을 하다보면 아침부터 땀이 솟는다. 후속공정을 제외하고 대부분 건설노동자는 옥외에서 일한다. 완공되고서 우리에게 그늘이 되는 건설물을 만드는 현장에는 그늘이 없다. 머리에 해를 이고 일하기 마련이다.

건설노동자를 덥게 만드는 것은 뜨거운 햇볕만이 아니다. 건설현장은 온통 쇳덩이투성이다. 건설기계와 같은 장비뿐 아니라 현장에서 쓰이는 거푸집, 철근, 망치 모두 내리쬐는 햇볕에 벌겋게 달아오른다. 쇳덩이 가운데서 쇳덩이를 만지며 일을 하니 그 복사열을 그대로 받는다. 해를 가릴 지붕이 없는 건설현장에서, 그늘 하나 없이 우뚝 솟은 전신주 위에서, 굳으면서 열을 내는 타설된 콘크리트 속에서 건설노동자는 온몸으로 폭염을 느낀다.

그럼에도 현장이 얼마나 더운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고용노동부도 사업주도 건설노동자가 느끼는 체감온도를 측정하지 않는다. 그래서 건설노동자가 직접 측정했다. 작년 31개 현장에서 222건의 온습도를 측정하고, 현장과 가까운 기상관측소의 당시 체감온도와 비교했다. 평균 6.2도 높았다.

노동부는 33도, 35도, 38도로 구분하여 폭염 지침을 정하는데, 6.2도 차이면 아예 작업을 멈춰야 하는 수준을 넘어선다. 실내 작업장에는 온습도계 설치 지침을 내린 고용노동부가 정말 더워서 사람이 죽고 있는 옥외 건설현장은 왜 방치하나. 마땅히 사업주가 현장 곳곳에서 측정하여 온습도를 관리하게끔 강제해야 한다.

매년 여름 고용노동부는 물, 그늘, 휴식이라는 3대 원칙을 잘 지키면 폭염에 문제없다고 한다. 실제로도 잘 지켜지고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현장 건설노동자들의 말은 다르다. 정말 문제가 없다면 왜 건설노동자가 폭염에 죽겠는가.

사나운 날씨, 건설현장 노동자들의 안전을 위해
 
 폭우가 오는데, 빗물이 흘러드는 공사 현장 가림막 뒤에서 용접하는 건설노동자.
 폭우가 오는데, 빗물이 흘러드는 공사 현장 가림막 뒤에서 용접하는 건설노동자.
ⓒ 윤성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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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기 건설현장의 문제를 바꿔낼 수 있는 요구를 세 가지만 꼽을 수 있다. 먼저 사업주가 나서서 작업 중지를 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산업안전보건법에 노동자도 작업 중지할 수 있다고 하지만, 현실에서는 노동자가 작업중지권을 사용하기 어렵다. 사업주가 현장 곳곳에서 온습도 측정해서 바로바로 쉬게 해야 한다. 그렇게 더위를 좀 식혀야 다시 나가서 뙤약볕에서 일할 거 아닌가.

그냥 작업을 멈추는 것만으로는 '죽음의 속도전'을 치르는 건설현장에서 지켜지기 어렵다. 실질적인 작업 중지를 위해 폭염기에 공사기간을 연장하고 그에 따른 임금 보전 조치가 절실히 필요하다.

두 번째로 제대로 된 휴게시설 설치다. 쉬는 시간에는 망치 놓고 옆에 있는 합판에 누워서 쉬곤 한다. 10층에 일하는 건설노동자에게 1층의 휴게실은 없는 것과 다름없다. 인삼천이라도 씌워서 얼기설기 그늘이라도 생기면 다행이다. 세워진 벽체 옆에 좁은 그늘에서 선풍기조차 없이 쉬어서는 더위가 가시지 않는다. 가깝고 시원한 휴게실에서, 쉴 때만이라도 제대로 쉬고 싶다.

마지막으로 세척·세탁 시설이 필요하다. 건설노동자는 퇴근할 때 버스나 지하철을 못 탄다. 온몸에 절은 땀에 먼지에, 도저히 시민들의 눈총이 두려워 탈 수가 없다. 현장마다 여건은 다르지만, 샤워실이 아예 없는 데도 있고 시설만 있을 뿐 물이 안 나오는 곳도 많으며 관리가 안 되어 도저히 씻을 수 없을 만큼 더러운 곳도 있다.

제대로 씻을 수 있는 세척시설이 현장에 있어야 한다. 나아가 현장에서 작업복을 마련하고 매일매일 세탁해서 노동자에게 지급해야 한다. 건설노동자도 깨끗이 씻고 옷 갈아입고서, 남들 눈치 안 보고 대중교통으로 퇴근하고 싶다.

현장의 여건이 만만치 않다. 건설경기 침체로 현장의 수가 줄어들고 있다. 또 노동조합이 폭력배라며 탄압이 끊이지 않는다. 사나운 날씨, 기후재난 시대에 폭염과 폭우에도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할 수 있는 건설현장을 만들어야 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박세중 님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선전위원으로 건설노조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이 글은 한노보연 월간지 일터 2024. 8월호에도 실립니다.


#더위#폭염#건설노동자#작업중지권#세척시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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