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세종시 장남들보전시민모임은 지난 10일 장남들에서 ‘금개구리학교 2교시’를 열었다.
세종시 장남들보전시민모임은 지난 10일 장남들에서 ‘금개구리학교 2교시’를 열었다. ⓒ 김병기
 
"찌르르~ 찌르르~" "뚜루르~ 뚜루르~"

석양이 붉게 물들인 들판은 풀벌레 소리로 가득했다. 폭염 경보가 핸드폰을 마구 뒤흔들던 한낮의 땡볕, 날이 저물기 시작하자 논둑과 흙길을 식히던 뜨거운 바람도 잦아들었다. 이제 막 세상에 얼굴을 내민 벼이삭도 어둠 속에 숨을 죽였다. 세종시 도심 한가운데 있는 캄캄한 야생의 공간, 장남들판의 침묵을 깬 건 엄마 손을 잡고 밤마실을 나온 아이들의 재잘거림이었다.

"얘들아! 엄마 옷에 붙어있는 곤충부터 관찰해라~"
"엄마, 여기 귀뚜라미도 있어요... 이건 방아깨비인가?"
"선생님, 얘는 누구예요? 너무 귀여워요!"

[장남들 밤마실] 도심 속 야생의 공간, 금개구리학교 2교시
 
 세종시 장남들보전시민모임은 지난 10일 장남들에서 ‘금개구리학교 2교시’를 열었다.
세종시 장남들보전시민모임은 지난 10일 장남들에서 ‘금개구리학교 2교시’를 열었다. ⓒ 김병기
   
▲ [환경새뜸] “얘는 누구예요? 너무 귀엽다”... 세종시 장남들판에서 밤마실 행사
ⓒ 김병기

관련영상보기

 
지난 10일 토요일 밤, 세종시의 중앙녹지공간인 장남들판에서 아주 특별한 학교가 열렸다. 장남들보전시민모임(시민모임)이 주최한 '금개구리 학교 2교시'. 시민모임은 이날 멸종위기 2급 금개구리 서식지인 이곳에서 세종 시민 등 20여 가족이 참석한 가운데 '여름 저녁 장남들판 밤 마실' 행사를 열었다.

지난 6월 1일 모내기로 진행한 금개구리학교 1교시에 이은 이날 행사에는 충남대학교 농업생명과학대 응용생물학과와 함께했으며, 전문지식을 가진 연구자 그룹(연구자 최수빈, 배종민, 장근호)이 '미개척생물분류군 전문 인력 양성사업'의 일환으로 참석해 그간 연구해 온 곤충분류학 지식을 시민들과 공유했다.

이날 시민과 아이들이 장남들판에 발을 디딘 건 오후 7시30분경이었다. 낮의 더위가 식지 않아서 무더위가 이어졌지만, 아이들은 엄마 손을 잡고 풀이 발목까지 잠기는 논둑길을 걷거나 뛰어 다니면서 즐거워했다. 조성희 시민모임 사무국장은 들 한복판에 있는 비닐하우스 안에 모인 참가자들을 향해서 다음과 같이 장남들을 소개했다.

"예전에는 나성동과 어진동뿐만 아니라 공주까지 아주 넓은 평야였는데, 지금은 논이 다 사라지고 이곳만 남았습니다. 평야라고 보기에는 너무 작아서 '장남들'이라고 부르는 데요, 이렇게 논이 남겨진 이유는 멸종위기종인 금개구리가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금개구리가 많았던 곳은 호수공원과 국립수목원이었습니다. 그곳이 개발되면서 장남들로 2만 5000마리를 포획해서 강제 이주시켰죠. 좁은 공간이기에 개체수는 줄었을텐데요, 금개구리들에게는 안정적인 서식처입니다. 시민모임은 이곳이 더 이상 훼손되지 않고 사람과 자연이 공존하는 공간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생태 모니터링을 하면서 모내기와 추수 등 여러 가지 행사를 하고 있습니다."

[충남대 곤충조사] "도심 속에 이런 생태 공간, 믿기지 않는다"
 
 세종시 장남들보전시민모임은 지난 10일 장남들에서 ‘금개구리학교 2교시’를 열었다.
세종시 장남들보전시민모임은 지난 10일 장남들에서 ‘금개구리학교 2교시’를 열었다. ⓒ 김병기
 

조 국장이 설명한 장남들은 세종시 이응다리 앞쪽 96번 임시도로를 사이에 두고 금강과 마주한 배후습지이다. 예전에는 전월산과 원수산 등의 육지생태계와 연결된 드넓은 들판이었지만 세종 행정중심복합도시가 건설된 뒤 도로와 건물 등으로 단절됐고, 규모도 10분의 1로 줄었다. 지금은 금개구리 덕분에 2만여 평의 보존지구 안에서 논농사를 이어가고 있는 셈이다.

충남대 대학원생들은 이날 본격적인 밤마실 행사에 앞서서 낮부터 곤충채집을 하면서 조사를 벌였다. 논바닥에는 우렁이가 긴 더듬이를 앞뒤로 흔들며 기어갔다. 자세히 보면 민물새우, 다슬기도 있다. 지난 6월 모내기 행사 때 보였던 멸종위기2급 대모잠자리는 자취를 감췄지만, 대신 고추잠자리와 왕잠자리가 날아다니다가 짱짱하게 자란 벼 끝자락에 앉아 바람을 탔다.

최수빈씨(곤충 전공 대학원생)는 "너무 뜨거우면 곤충들도 쉬기 때문에 많이 나돌아다니지는 않는데, 메뚜기 목이나 노린재 목을 주로 조사했고, 20여 종의 곤충을 확인했다"면서 "도심 속에서 이렇게 다양한 생태계를 발견할 수 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들과 함께 조사를 한 명인영 시민모임의 모니터링 단장도 "도심 한복판에 농약을 치지 않고 벼농사를 하는 곳은 이곳이 국내에서 유일할 것"이라면서 "그런 만큼 논 습지의 생태계가 잘 유지되기에 곤충류를 먹는 파충류와 양서류, 그걸 먹는 조류 등의 먹이사슬이 잘 유지되고 있다"고 말했다.

명 단장은 이어 "시민모임은 2주에 한 번씩 모니터링을 하고 있는데, 2시간 동안 조사를 하면 맹꽁이이와 겨울철새인 큰고니, 큰기러기, 흑두루미 등 멸종위기종을 포함해서 70종에서 100종 정도의 종을 확인할 수 있을 정도"라며 "이번에 충남대 대학원생들과 함께 이곳의 곤충 표본작업을 해서 이곳에 못 오는 사람들에게 장남들의 보존 가치를 알리겠다"고 말했다.

[라이트트랩] 수만 마리 곤충... 방충망 뒤집어 쓴 아이들 "귀엽다" 감탄사
 
 세종시 장남들보전시민모임은 지난 10일 장남들에서 ‘금개구리학교 2교시’를 열었다.
세종시 장남들보전시민모임은 지난 10일 장남들에서 ‘금개구리학교 2교시’를 열었다. ⓒ 김병기
 
 
 세종시 장남들보전시민모임은 지난 10일 장남들에서 ‘금개구리학교 2교시’를 열었다.
세종시 장남들보전시민모임은 지난 10일 장남들에서 ‘금개구리학교 2교시’를 열었다. ⓒ 김병기
 
이날 오후 8시경, 날이 어둑해지자 여름 습지 곤충들이 곤충채집장치(라이트트랩)의 녹색 불빛에 이끌려 모여들기 시작했다. 노린재, 메뚜기, 귀뚜라미, 땅강아지, 애매미, 참매미, 물땡땡이, 특히 벌새로 자주 오인되는 줄박각시나방까지... 순식간에 수천, 수만 마리의 곤충들이 흰색 천으로 만든 라이트트랩 장막에 달라붙었다. 시민들의 옷과 모자도 예외는 아니었다.

부채질을 하면서 얼굴로 달려드는 곤충을 쫓아내는 어른들도 있었지만, 머리에 방충망을 뒤집어 쓴 아이들은 적극적이었다. 장막에 가까이 다가가서 대학원생에게 곤충의 이름을 묻거나, 자기가 가져온 채집통에 곤충을 집어넣고 이곳에서 친해진 친구들과 함께 보면서 "귀엽다" "와~ 이게 뭐야" 등의 감탄사를 연발했다.

시민모임 모니터링단에서도 활동한다는 한선영(나성동)씨는 "평소에 할 수 없는 체험이었기에 즐거웠고, 장남들에 이렇게 많은 곤충들이 산다는 것이 놀라웠다"고 말했다. 초등학교 3학년인 그의 딸 이하린 학생은 "너무 덥고 몸속에 벌레가 들어와서 힘들었는데, (곤충들이) 귀엽긴 했다"고 말하며 웃었다.
 
 세종시 장남들보전시민모임은 지난 10일 장남들에서 ‘금개구리학교 2교시’를 열었다.
세종시 장남들보전시민모임은 지난 10일 장남들에서 ‘금개구리학교 2교시’를 열었다. ⓒ 김병기
 

 
 세종시 장남들보전시민모임은 지난 10일 장남들에서 ‘금개구리학교 2교시’를 열었다.
세종시 장남들보전시민모임은 지난 10일 장남들에서 ‘금개구리학교 2교시’를 열었다. ⓒ 김병기
 
김지훈 시민모임 대표는 '시민들과 아이들이 금개구리학교에서 무엇을 배웠으면 하냐'는 질문에 "곤충에 대한 생태학적 지식도 좋지만, 흙을 만지고 벌레들을 가까이 하면서 생태적인 감수성을 높이는 기회가 됐으면 좋겠다"면서 "계획도시인 세종시가 건설되기 전의 DNA를 간직한 이곳에 와서 많은 사람들이 자연을 느껴봤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날 밤마실 행사는 밤 9시가 넘어서 끝이 났다. 하늘에 뜬 초승달은 노랗게 빛났다. 멀리 장남들 서쪽으로 아파트 불빛이 휘황찬란했다. 남쪽으로 금강을 가로지르는 이응대교의 가로등 불빛도 반짝였다. 도심의 불빛 한 가운데 놓여있는 캄캄한 야생의 공간. 조성희 국장은 다음과 같이 마무리 말을 했다.

"오늘은 장남들을 둘러싼 인공적인 조명보다는 자연의 별빛과 달빛, 강에 뜬 달을 보고 느낄 수 있는 시간이 되었기를 바랍니다. 흙길이지만, 약간의 조명만 비추고 어둠에 눈을 적응시키면서 안전하게 귀가하시기 바랍니다."

아이들은 풀벌레 소리 가득한 들판에서 두런두런 이야기를 하며 걷거나 조명도 없이 논둑길을 달려나갔다.

#장남들#생태#환경#장남들보전시민모임#세종시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00,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환경과 사람에 관심이 많은 오마이뉴스 기자입니다. 10만인클럽에 가입해서 응원해주세요^^ http://omn.kr/acj7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