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에 처음 내려와 보는겨."
충청도 사투리가 친근했다. 세종보 농성장 위쪽 둔치에서 그라운드 골프를 치던 어머니 두 분이 천막농성장 쪽으로 다가오길래 어떻게 오셨냐고 여쭈었더니 한 말이다. 두 분은 강변 쪽 자갈밭으로 가서 오손도손 이야기를 나눴다. 세종보가 세워져 있다면 오지 못했을 곳이다. 시원한 강바람이 두 분의 더위를 잠시라도 잘 식혀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오전에는 가마우지 떼가 흐르는 금강 물결을 따라 어디론가 떠나간다. 사냥의 시간이다. 이들이 다시 강물을 역행하며 돌아오는 모습을 보면 어느새 하루가 다 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기계나 디지털 장치가 아니라 새들의 움직임을 바라보며 시간을 재는 것도 농성장에서의 신기한 경험이다. 사람처럼 자연의 시공간에도 반복되는 일상이 존재한다는 것을 다시금 느낀다.
매일매일 이 도시에서 일상을 보내는 가마우지를 우리가 모른 척할 수 있을까? 금강 어딘가에서 자기 삶을 살아가는 흰수마자와 흰목물떼새를 쫓아내면서 어디든 쫓겨가서 잘 살겠지라고 생각하는 건 무책임하다. 이 도시의 기반인 땅과 강과 모든 것들은 원래부터 있던 곳이고 그곳을 기반으로 살아간 수많은 생명들의 기반이기도 하다. 우리는 공존하는 것이 마땅하다.
녹조 피해 갈 수 없는 금강… 갇힌 강의 현재
금강에도 산 강과 죽은 강이 교차한다. 세종보처럼 수문을 연 곳은 살아있고, 하굿둑으로 막혀있는 곳은 여전히 죽은 강이다. 장마가 그치고 오랜만에 찾은 금강의 하굿둑. 웅포대교 일대는 녹조가 그득했다. 그 녹조 밭에서 바나나 보트를 타면서 환호성을 질렀다. 강경포구 앞 수상레저장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녹조 밭에서 고무보트와 수상스키를 타고 질주했다. 구명조끼를 입은 관광객들이 녹조 물에 빠지면 잠시 멈춰서서 건져올린 뒤에 또 다시 질주했다.
녹조가 품고 있는 마이크로시스틴이라는 독은 에어로졸 형태로도 확산된다. 호흡기를 통해 인체에 들어와서 간과 신경계 등에 치명적인 손상을 줄 수 있다. 심한 것은 청산가리 6천배의 독성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는 학자도 있다. 상황이 이런데도 아찔한 질주를 수수방관하고 있는 게 우리나라의 환경부이다. 올해 낙동강은 사상 최악의 녹조가 번지고 있다고 한다. 낙동강은 1300만 영남인의 식수원이다. 4대강 보의 수문만 열면 어느 정도 해결될 수 있는 녹조인데, 환경부는 수문을 꽉 틀어막은 채 버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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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녹조 위를 지나는 수륙양용버스 수륙양용버스가 녹조 강을 가로지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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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병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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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 구드레나루에서 찍힌 수륙양용버스가 녹색 물보라를 일으키며 녹조 강을 가르고 있었다. 이게 세종보 수문이 닫힌다면 세종시민들이 보게 될 모습이다. 흐르는 강을 막아서 수륙양용차를 띄우겠다는 최민호 세종시장의 '비단강금빛프로젝트'는 비단강인 금강을 죽음의 녹색강으로 만드는 '비단강녹색프로젝트'라고 생각한다. 녹조 낀 강 보려고 돈 내고 이 차를 타는 사람이 과연 전국에서 벌떼 같이 달려올까? 우리는 어떤 강을 지킬 것인가. 이 영상을 보고 나면 결론은 하나다. 지금 눈 앞에 흐르는 이 강을 지켜야 한다(관련 영상 :
청산가리 6천배 독성물질 풀어놓은 강에서).
강을 지키는 강모래… 문을 열어 모래를 흐르게
고운 모래와 자갈로 단단해진 농성장 터는 큰비가 지나간 강의 모습을 보여준다. 물이 몰고 온 고운 모래가 위에서 아래로 자리를 잡아가면서 강도 모래의 덕을 보게 된다. 영주댐 하류 무섬마을에는 내성천을 따라 모래사장이 만들어져 있다. 공주보 수문을 열고 큰비가 쓸려나갔던 공주 고마나루는 넓게 형성된 모래사장으로 본 모습의 일부를 보여주기도 했다.
모래는 자연의 필터이다. 오염된 물이 모래의 작은 알갱이 사이의 공극을 통과하면서 깨끗한 물로 다시 살아난다. 쉼 없이 모래 속으로 자맥질을 하면서 맑아진 물은 물살이와 새들이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는 원천이다. 그곳은 사람들 또한 누릴 수 있는 강이다. 고마나루 모래사장 근처 강에도 항상 사람들이 내려와 있었고 물가에 발을 담그며 강을 가까이했었다.
얼마 전 다녀온 영주댐은 거대한 녹조 공장이었다. 모래강인 내성천 중류를 막아선 거대한 콘크리트 댐. 수온을 재니 상온보다 1도나 높은 36도였다. 이 물을 흘려보내 낙동강 물을 맑게 하겠다는 게 이명박의 당초 구상이었다. 그 말이 사기라는 것을 영주댐에 가서 다시 한 번 확인을 했다. 영주댐으로 모래가 막히고, 낙동강으로 모래가 쓸려내려간 무섬마을은 망가져 있었다.
막아둔 강, 막아둔 댐이 결국 사람에게 돌아온다는 것을 이제는 깨달아야 한다. 수문을 열고 댐을 헐어 물을 흐르게 하고 모래가 제 갈 길을 만들며 자리를 잡으면 다시 우리가 어떻게 수질을 회복하고 어떤 것을 바꿔야 할지가 보일 것이다.
"장마에도 저 풀은 다 살아남았네요."
오랜만에 농성장을 찾은 이들이 주변에 번성한 달뿌리풀을 보며 말한다. 솟대가 있던 자리에 자리 잡은 달뿌리풀은 큰 비에도 질기게 남아 더 무성한 숲을 이루고 있다. 바람의 움직임에 맞게 솨아아~ 춤추며 우리와 함께 100여일의 농성을 함께 하고 있다. 큰 비에도 버티며 말이다. 우리도 저 들풀처럼 잘 버텨야겠다.
얼가니새(이경호 대전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가 솟대를 세우겠다고 지난 장맛비에 상류에서 쓸려 온 나무를 골라두었는데 잘 말라가고 있다. 곧 솟대를 새로 만들어 세워야겠다. 끈질기게 살아남은 달뿌리풀이 외롭지 않도록 친구를 세워주고, 우리도 함께 달뿌리풀과 함께 금강을 지키는 단단한 솟대가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