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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막농성장 옆에 놀러온 무자치
 천막농성장 옆에 놀러온 무자치
ⓒ 임도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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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자치가 생각보다 작구나!"

물뱀인 무자치가 세종보 천막농성장 근처를 어슬렁거리는 것을 발견했다. 지리산 활동가가 꼬리를 살짝 잡아 올렸는데 생각보다 크기 않아서 의외였다. 매끈한 몸을 스르륵 움직이는데 제법 우아하다. 작아도 움직임은 민첩하고 예민했다. 한참 동안 농성장 주변을 서성이다 어디론가 사라졌다.

백로 한 마리가 얼마 전부터 천막 앞 웅덩이를 계속 왔다 갔다 한다. 가끔 농성장 쪽으로 사람이 없으면 넘어와서 이쪽 웅덩이도 바라보다가 우리가 뭔가 하고 계속 쳐다보면 부담스러워서 그런지 어기적 거리며 걸어서 강 너머로 날아가 버린다. 목을 길게 뺐다가 웅크렸다가 느린 스트레칭을 하며 먹이활동을 하는 모습이 점잖은 선비같다.

 농성장 주변 웅덩이를 오가는 백로친구
 농성장 주변 웅덩이를 오가는 백로친구
ⓒ 임도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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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천막이 없었다면 이런 모습을 볼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세종보가 닫히고, 금강이 제 속도를 잃고 정체됐다면 지금 이곳도 금강 하구에서 창궐하는 녹조밭일 것이다. 새들도, 고라니도 악취가 나는 죽은 강 주변을 서성일 리 만무하다. 물을 채우면 당장 지역경제에 대단한 보탬이라도 될 듯이 떠들어대지만 실상은 생명이 없는 강에서 경제가 살아날리 없다.

눈앞에 보이는 녹조의 위협… 강을 흐르게 하면 될 일

 낙동강 녹조를 채취하고 있는 모습
 낙동강 녹조를 채취하고 있는 모습
ⓒ 임도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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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을 흐르게 하면 해결될 일이다."

지난 14일 열린 포럼 <녹조위기와 기로에 선 우리 강> 참가자들이 입을 모아 했던 말이다. 낙동강의 대형 보가 있는 지점에 곤죽이 된 녹조가 발견되고 있다. 멀리서 봐도 진한 초록빛으로 물이 제 빛을 잃은 것이 명확히 보인다. 충청권 400만의 식수원인 대청호도 잔뜩 달궈진 수온에 녹조가 심해지고 있다. 녹조의 계절이라 해도 어색하지 않은 지금이다.

지난 6월, 환경부는 녹조가 극심한 여름철, 낙동강을 제외한 채 녹조가 피지도 않은 지점에서 채수해 녹조독소가 없다고 주장했다. 녹조곤죽을 없애겠다고 큰소리치는 수자원공사는 SNS를 통해 녹조제거선을 돌리고 조류차단막을 설치하는 등 가용자원을 최대한 활용하겠다고 밝혔다. 댐마저 녹조밭인데, 녹조 제거에 탄력적으로 댐을 활용하겠단다.

 신규댐 건설추진 규탄 기자회견 모습
 신규댐 건설추진 규탄 기자회견 모습
ⓒ 보철거시민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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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물길을 트면 녹조는 사라지는데, 이 쉬운 방법은 외면한 채 엉뚱한 곳에서 대안을 찾겠다고 나서고 있다. 전국 곳곳에서 창궐하는 녹조밭을 외면한 채 환경부는 14개 신규댐을 건설해야 한다면서 지역 설명회를 진행하고 열겠다고 한다. 보의 수문을 열지도 못하고 수수방관하는 환경부가 댐을 만들어 또 물을 가두고 지역의 자연유산을 수몰할 계획을 하러 다닌다는 게 개탄스럽다. 이 정도면 환경부는 해체해야 마땅하다.

"환경부, 국민들 녹조 위험에 빠트리고 있어"

 지난 14일, 환경부 앞에서 녹조대책을 요구하며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지난 14일, 환경부 앞에서 녹조대책을 요구하며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 이경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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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환경부 앞에서 열린 보철거를위한금강낙동강영산강시민행동의 2차 규탄대회의 마무리 퍼포먼스에서는 낙동강에서 퍼온 실제 녹조물이 등장했다. 윤석열 대통령, 김완섭 환경부장관, 최민호 세종시장의 얼굴이 찍힌 현수막 위에 녹조물을 붓는 행동이었다. 대회가 끝나자마자 공무원들이 서둘러 취한 행동은 바닥에 흘러내린 녹조물을 씻는 것이었다. 그 모습을 보며 수차를 동원해 녹조를 분산시키던 이들이 중첩됐다. 환경부는 기준치 이하의 녹조이기에 괜찮다고 하는데 뭘 그렇게 열심히 치울까.

이날 규탄대회에 이어 열린 포럼에서, 강찬수 환경신데믹연구소장은 "매년 여름, 한국은 조류 번성으로 인해 수생생물이 죽고 물공급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특히 낙동강은 4대강사업으로 인해 인공호수로 변했고 남세균 유해 녹조의 발생이 심각해졌다"라고 강조했다. 국립환경과학원의 2024년 7월 논문을 공개하면서 "국립환경과학원 또한 환경부 산하 기관인 '환경부 공무원' 이기에 녹조가 왜 피는지를 모두 알고 있다"라며 "국민들을 녹조위험에 빠트리고 있다"라고 성토했다.

강 소장의 말처럼 환경부는 녹조가 위험한 것도 알고 어떻게 해야 해결될지도 너무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정략적 이념을 강에 덧칠하면서, 강을 희생 제물로 바치는 이들을 후대의 사람들은 어떻게 평가할까. 대체 이 길고 긴 반동의 터널에서 언제쯤 빠져나올 수 있는걸까.

 금강을 찾은 시민들의 모습
 금강을 찾은 시민들의 모습
ⓒ 임도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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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아, 불어라!"

요즘 농성장의 희비는 바람이 부느냐, 아니냐로 갈린다. 바람이 불면 그저 행복하고, 잠잠하면 가만히 부채질하면서 내 자신을 들여다본다. 가만히 흐르는 강을 들여다 보고 생각을 비우면 더위를 잊는다. 이렇게 에어컨 없이 더위를 나는 방법을 하나씩 터득해 가고 있다. 이제 익숙해질 때면 가을이 오겠지.

얼가니새(이경호 대전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가 웅덩이에 꽂아둔 나뭇가지에 할미새가 자주 와서 앉는다. 사진을 잘 찍으려고 쳐둔 나뭇가지인데 새들이 좋아하는 구조인 모양이다. 얼가니새 카메라에 포착되는 새들이 꽤 다양하다. 이제 저어새가 올 때가 되었다고도 말하는데 여기서 볼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강가에 리코더 소리가 울려퍼진다. 가을을 부르는 소리인 듯 청량하다.

#금강#세종보#낙동강#녹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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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운동가, 글쓰는 사람. 남편 포함 아들 셋 키우느라 목소리가 매우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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