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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에 음양이 있듯이 역사에는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이 항상 동전의 양면처럼 존재한다. 어두운 면을 감추고 밝은 면만 드러낸다고 해서 역사의 어두운 면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 없어질 수도 없다. 일본은 일제강점기 조선인 위안부 문제 등 어두운 과거사를 부인하거나 숨기려고만 한다. 반면 독일은 과거 홀로코스트 같은 어두운 역사를 감추지 않고 피해자들에게 머리 숙여 사과한다. 그리고 그런 어두운 역사를 미래 세대를 위해 남기고 드러내며 교육한다.

'기지촌여성인권연대'(아래 '연대') 공동대표 안김정애 박사는 우리가 일본처럼 어두운 역사를 감추거나 부인하지 말고 독일처럼 드러내고 남기며 피해자들에게는 머리 숙여 사죄해야 한다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어두운 역사라고 해서 우리가 그 어두운 역사를 무시하거나 감추면 그 어두운 역사는 언젠가는 다시 반복된다. 그래서 '동두천시는 동두천 옛 성병관리소 철거 시도를 당장 중단하라!'는 캠페인을 벌이는 안김정애 박사에게 지금 왜 이런 캠페인을 벌이고 있는지 그 사연을 들어봤다. 다음은 지난 21일 그와 나눈 대화를 정리한 것이다.

[관련기사] 잊혀진 기억... 동두천 '성병관리소'를 아십니까 https://omn.kr/28ohf)

대법원 판결 무시하는 정부와 국회

- 먼저 독자들을 위해 '연대'가 어떤 단체인지 소개하면?

"지난 2012년 8월 31일에 발족했다. 현장 단체인 두레방, 햇살사회복지회 등이 주축이 되고 민변 미군문제연구위원회, 정대협(현 정의연), 인권평화단체 활동가, 학자 등으로 구성되었다. 기지촌 미군 '위안부'들의 인권 회복을 주목적으로 하며, 미군 주둔으로 인한 성매매와 성폭력을 포함해 여성에 대한 모든 형태의 폭력에 반대하며, 폭력이 재생산되는 구조에 반대한다. 구체적인 행동으로 ▲ 한국과 미국 정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청구 ▲ 미군 '위안부' 인권침해 사건 진상규명 및 지원 등을 위한 특별법·조례 제정 ▲ 피해 생존자의 생애사 수집·정리·출간 ▲ 대국민 홍보·교육 ▲ 미군기지 피해 지역과의 국제연대 도모 등이 있다."

- 어떻게, 어떤 사연으로 '연대'에 합류하게 된 것인지?

"지난 2004년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렸던 '군사주의에 반대하는 여성평화 네트워크(International Women's Network Against Militarism)' 회의에서 한국, 일본 오키나와, 괌, 하와이, 푸에르토리코 등 전 세계 미군기지로 인한 여성 인권 피해 지역 여성들의 모임에서 두레방, 햇살사회복지회 활동가들로부터 주한미군기지에서의 여성 인권침해 피해사례를 처음 접하고 귀국 후 합류하게 되었다."

- '연대'는 피해 여성 원고인단과 함께 8년여의 노력 끝에 지난 2022년 대법원이 국가가 기지촌 미군 위안부의 인권을 침해했다는 사실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이 판결문의 주요 내용은 무엇인지?

"'연대' 출범 직후부터 정부를 상대로 국가배상소송 준비를 했다. 정부 측의 공소시효 소멸 제기 등 우려가 없지 않았지만 지난 2014년 소송을 제기했다. 당시 122명의 생존 피해 여성들의 열의와 변호인단의 끈질긴 노력으로 8년여 만인 지난 2022년 9월 29일에 승소 판결을 받아 냈다. 판결 내용은 국가가 미군 기지촌에서 성매매를 정당화하고 조장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그 자체가 위법하며, 또한 여성들에게 법적 근거 없이 조직적·폭력적 성병 관리를 한 것 역시 위법하므로 인권 침해를 당한 여성들에게 국가가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판결에서 대법원은 정부가 미군 기지촌에서 미군의 사기 진작이나 달러 벌이를 위해 기지촌을 조성하고 관리 및 운영 등 성매매를 조장하고 권유했을 뿐만 아니라 강제적 성병 관리의 위법 행위를 자행했음을 확인했다. 8년 3개월을 끌었던 소송 중 병마에 시달려 11명이 세상을 떠나셨다. 그들의 마지막 소원은 남은 피해 생존자들이 반드시 한국과 미국 정부에 대해 책임을 물어 달라는 것이었다. 최초로 우리 사법부가 국가의 책임, 즉 기지촌 미군 위안부에 대한 국가 폭력과 인권 침해 사실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판결이라는 역사적인 의미가 있다."

 소요산 입구에 방치된 동두천 옛 성병관리소 건물
소요산 입구에 방치된 동두천 옛 성병관리소 건물 ⓒ 임성용

- 이 판결 후 정부가 피해 여성들에게 사과와 배상을 했나?

"안 했다. 국가가 사과하라는 공식 요청에도 청와대나 법무부는 아무런 답변이 없다. 지난 2020년 통과된 경기도 조례, '경기도 기지촌여성 지원조례'에 따라 현재 기초생활수급 대상자를 제외한 소수가 월 10만 원의 생활지원금을 경기도로부터 받는 게 전부다. 국회는 19대 때부터 '연대'가 제시한 법안을 상정하고 있으나 심의조차 이루어지고 않고 회기 만료로 연속 폐기된 상태다."

- 지난해 3월 동두천 박형덕 시장에게 '동두천 성병관리소 건물 보존요청 건'에 대한 공문을 '연대'가 보냈는데 그 후 시장으로부터 답장을 받았나? 그 후 이 문제와 관련해 현재까지 진전이 있었나?

"경기북부평화시민행동과 '연대'는 함께 지난해 2월 건물 부지 매입과 철거 소식이 알려진 후 대책위를 꾸려 면담과 시민 공론화 등을 제안했으나 계속 '구체적인 철거계획 없음', '아직 정해진 게 하나도 없음'이라는 말만 반복적으로 들었다. 그 후 동두천시청 앞에서 시민행동 회원들의 1인 시위가 계속되자 드디어 담당과장이 대화를 제의해 왔으나 그 제안은 1인 시위를 중단하게 하려는 꼼수임이 드러났다. 동두천시는 추진 중인 '소요산 관광지 확대 개발사업'과 연계해 해당 부지를 개발하기로 하고, '소요산 관광지 확대 개발사업 발전방안 및 기본계획 수립용역'을 통해 활용방안을 모색할 예정이라면서 해당 건물을 철거하려고 계획 중이다. 동두천시는 최근에 시의회에 철거 비용 2억 원을 요청했다.

그래서 이달 12일 전국 단위의 총 60개 시민평화인권단체들로 확대 구성된 '동두천 옛 성병관리소 철거저 지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를 꾸려 대대적인 철거 저지 운동을 벌이고 있다. 공동대표단에는 이만열 교수, 이나영 교수, 한정숙 교수, 박래군 인권활동가, 한충목 대표 등 총 8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분들과 경기도지사 면담, 국가유산청 직권 조사 추진, 경기도의회 소관 상임위 성병관리소 방문 추진, 여성 국회의원 성병관리소 방문 추진, UN인권법무관에게 사안 알리기, 언론에 알리기, 대국민 홍보 동영상·카드뉴스 제작, 국제사회 연대 등을 추진하고 있다."

"여성 생명에 치명적 위협 가한 악명 높은 수용소"

- 지난 1973년 설립돼 1996년에 폐쇄되기까지 수많은 미군 위안부 여성들이 동두천 성병관리소를 거쳐 갔다. 생존 여성들이 동두천 성병관리소에서 겪었던 일들 중 끔찍했던 사연 몇 가지를 소개하면?

"낙검자 수용소로 불리는 동두천 성병관리소의 반인권적·폭력적인 실태는 국가배상소송에서도 중요한 쟁점이었다. 특히 지자체 중 한국전쟁 발발 이후 가장 많은 미군 기지촌이 있는 경기도의 경우 총 6개 지역에 낙검자 수용소를 운영했는데, 그 중에서도 동두천 옛 성병관리소(낙검자 수용소)는 과거 미군 위안부 불법 강제 감금, 페니실린 과다 투약 등으로 사망자가 발생하는 등 미군 위안부 여성들의 생명에 치명적 위협을 가한 수용소로 악명이 높았다.

피해 생존 여성들의 증언에 따르면, 그 곳에 감금되면 미군이 제공한 페니실린 606호를 과도하게 맞아야 했고 그 과정에서 팔다리를 부르르 떨며 쇼크사 하는 동료를 지켜보기도 했다. 1주일 후 재검진해서 퇴원 여부를 결정했는데, 검진 결과가 안 좋으면 다시 무기한 감금되어 페니실린 606호를 맞아야 했는데, 당시 담당 의사도 '치사량이 될 수도 있었는데 피검진 여성들에게 일반 투약의 10배 이상을 투약하도록 위에서 지시했다'는 증언을 법정에서 한 바 있다."

- 동두천 성병관리소가 당시에 '몽키 하우스'로 불렸는데 그 이유는?

"오리엔탈리즘이 아닌가 생각한다. 서양인 관점에서 동양인을 원숭이 취급하던 시각에서 성병관리소 철창에 여성들이 매달려 있는 장면을 보고 동물원의 원숭이 우리를 연상한 건 아닐까? 어떤 여성들은 특정 미군과 접촉하지도 않았는데, 증거도 없이 그 미군이 지목만 하면(소위 '손가락 총') 무조건 '몽키 하우스'로 끌려 들어가야 했다."

 경기도 동두천시 보산동 외국인관광특구에서 미2사단 장병과 카투사가 텅빈 거리를 지나가고 있다. 2014.11.5
경기도 동두천시 보산동 외국인관광특구에서 미2사단 장병과 카투사가 텅빈 거리를 지나가고 있다. 2014.11.5 ⓒ 연합뉴스

- '연대'가 동두천 옛 성병관리소를 역사 현장으로 보존해 달라고 동두천시와 정부에 요구하는 이유는?

"대한민국은 소위 안보를 위해 우리 여성의 몸을 대상화 하고 미군의 '위안부'로 전락시켰다. 표면적으로는 '민간 외교관,' 애국자'라고 치켜세우고 '여러분들이 고생해서 달러를 벌어들여 우리가 이만큼 부강해졌으니 앞으로 여러분들을 보호해 주겠다'던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약속도, 또 미군이 철수하면 땅의 일부를 우리에게 분배해 주겠다는 미군의 약속도 모두 거짓이었다.

미군 폭행 발생 시 경찰과 미 헌병에 신고하면 여성은 오히려 피의자 취급을 받으며 폭행을 당하기도 했고, 한국 경찰과 보건소, 시청, 미 헌병이 합작해 소위 '토벌'을 나와 정당한 절차도 없이 불시에 검진증 검사를 하면서 검진증을 소지하지 않은 사람을 무조건 몽키 하우스로 불리던 동두천 성병관리소로 끌고 갔다. 그래서 다시는 동일한 사례가 발생하지 않도록 이런 국가폭력과 인권 침해의 현장은 교훈 삼는 증거물과 장소로서 그리고 미래세대 인권 평화 교육을 위해 반드시 그 자리에 있어야 한다. 근현대 문화유산으로서 지정되어야 한다."

- 당시 담당 의사도 "페니실린이 치사량이 될 수도 있었는데 여성들에게 일반투약의 10배 이상을 투약하도록 위에서 지시했다"는 증언을 법정에서 했다. 왜 정부는 생명을 잃을 수도 있고 실제로 생명을 잃은 여성들도 있는데 '여성들에게 일반 투약의 10배 이상을 투약하도록' 무리한 지시를 했다고 보나?

"빠른 시일 내에 여성들을 성매매 현장에 돌려보내기 위해서다. 당시 포주들의 요구가 컸고 국가는 여성의 몸과 건강에 대한 우려보다 미군을 위한 깨끗한 기지촌 여성 제공이 목적이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기억 공간으로 남아야"

- 동두천 시민 중에서는 폐허로 방치된 옛 성병관리소 건물을 철거해야 한다는 의견도 적지 않은데 그 분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나?

"피해 생존자들의 피 맺힌 절규에 귀 기울여 달라. '국가가 포주였다', '국가는 우리를 개 취급했다', '페니실린 606호 주사를 맞고 쇼크사하는 것을 보았다', '미군 군의관이 성병관리소에서 페니실린 606 주사를 놓았다.' 인신매매를 당해 기지촌 이곳저곳으로 팔려 다니기도 하고, 포주에 의해 10대의 나이를 속이고 성년 여성으로 가짜 주민등록증을 만들어 성매매 현장에 동원되기도 한 피해 생존자들이다. 한미 연합군사훈련인 팀 스피릿이 있던 해에는 포주가 주선해 담요를 들고 미군 참호를 전전하기도 한 피해 생존자들의 목소리를 들어 달라.

이들은 그렇게 참담한 기억을 갖고 있는데도 다시는 국가 폭력이 없는 나라, 우리 미래세대에게 교훈과 교육의 장으로서 성병관리소가 남아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역시 철거 위기를 앞두고 있는 의정부 두레방 피해 생존자들은 지난여름 땡볕에서 매주 의정부시청을 향해 '우리의 아픈 역사 현장을 그대로 보존하라!'를 외치며 시위에 나섰다. 동두천 옛 성병관리소 건물은 성병관리소로서는 미군 기지가 존재하는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원형 그대로 보존된 낙검자 수용소다. 아직도 생존 피해자가 또렷이 기억하고 있는 장소, 국가로부터 인권 침해와 폭력을 겪었던, 아프지만 반드시 보존해야 할 엄연한 역사적인 장소다. 다시는 이러한 일이 재발되지 않도록, 그리고 우리 후대가 기억해야 할 공간으로 남겨져야 한다.

대법원 판결에도 불구하고 국가는 아무런 사과도 하지 않고 있다. 정부와 지자체는 국가가 우리 기지촌 미군 위안부에게 가했던 성폭력의 재발 방지를 위한 기억·기림의 공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한데도 보존은커녕 개발이라는 명분으로 건물을 철거하는 데만 혈안이 되어 있다. 피해 생존 여성들은 외친다. '우리는 동두천 옛 성병관리소, 즉 우리 아픈 역사를 있는 그대로 보존함으로써 미래 세대에게 인권과 평화교육의장으로 활용되기를 간절히 원한다.'"

 시위 중인 안김정애 박사(가운데)
시위 중인 안김정애 박사(가운데) ⓒ 안김정애

* 안김정애 박사는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 조사2과장, 1기 진실화해위원회 조사팀장, 대통령소속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 조사1과장, 육사·인하대·한양대 사회과학·정치외교학과 강사를 지냈다. 석·박사 학위 논문으로 <좌우합작운동에 관한 연구>, <주한미군사고문단에 관한 연구>가 있다. 현 평화를만드는여성회 상임대표이다.




#동두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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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영국통신원, <반헌법열전 편찬위원회> 조사위원, [폭력의 역사], [김성수의 영국 이야기], [조작된 간첩들], [함석헌평전], [함석헌: 자유만큼 사랑한 평화] 저자. 퀘이커교도. <씨알의 소리> 편집위원. 한국투명성기구 사무총장, 진실화해위원회, 대통령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투명사회협약실천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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