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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급 1만 30원. 내년도 최저임금이 허망하게 1.7% 인상에 그쳤 다. 코로나19로 인해 가장 낮은 인상률을 기록한 2021년 1.5% 인상을 제외하면 가장 낮은 수치이다. 이번 최저임금위원회 논의 과정 및 결정액수는 최저임금 제도의 여러 쟁점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물가 인상률에도 못 미치는 인상률 결정은 최저임금이 곧 최고임금으로 작용하는 많은 노동자를 절망하게 만든다. 최저임금 제도가 입법 취지인 "임금의 최저수준을 보장하여 근로자의 생활안정과 노동력의 질적 향상"을 꾀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어떤 문제들이 개선되어야 하는지 몇 가지 쟁점을 살펴보고자 한다.

인상률 결정 방식

최저임금법에는 "근로자의 생계비, 유사 근로자의 임금, 노동생산성 및 소득분배율 등을 고려"하여 최저임금을 정하도록 하고 있다. 최저임금위원회 산하에 '생계비전문위원회', '임금수준전문위원회'가 있어서 생계비와 임금 실태에 대한 분석 결과를 전원회의에 보고하게 되어 있기도 하다. 이를 참조하지만, 매년 최저임금은 실질적으로 공익위원이 결정한다.

공익위원들은 최근 몇 년간 '국민경제 생산성 상승률 전망치'(경제 성장률+소비자 물가 상승률-취업자 증가율)라는 계산식을 활용하여 최저임금액 결정에 활용하고 있는데, 왜 이러한 계산식을 사용하는지는 불명확하다. 2022년도 최저임금 심의와 2023년도 최저임금 심의 당시 표결을 통과한 단일한 안은 공익위원이 제시한 앞서의 계산식으로 정했다. 내년 최저임금을 정하기 위한 '심의 촉진 구간' 상한액도 해당 계산식을 적용했다.

공익위원 계산식도 매년 똑같은 방식으로 활용하는 것은 아니다. 노사위원의 최저임금안이 근접하지 못하면 공익위원이 심의 촉진 구간(중재안)을 제시하고, 이 구간 내에서 임금 안을 제시할 것을 노사 위원들에게 요청한다. 노사 모두 구간 내에서 인상안을 제시하면 두 금액을 대상으로 표결에 들어가고, 노사 중 한쪽만 구간 내 인상안을 제시하면 그 금액을 놓고 표결에 들어간다. 노사 모두 구간 외 인상안을 제시하면 촉진 구간 중 특정 금액을 단일한 안으로 공익위원이 제시하고 표결을 진행한다. 물론, 단일한 안이 막무가내 금액은 아니다. 해당 금액이 도출된 근거를 소위 '공익위원 계산식'이라는 표현을 붙여서 설명한다. 결국, 단일한 안으로 특정 금액이 정해지면 그 금액을 설명하기 위해 계산식을 사용하는 것이다. 풀이 과정을 거쳐서 수학 문제 답을 도출하는 것이 아니라 답을 도출해 놓고 답에 맞춰서 풀이 과정을 만든다고 할 수 있다.

이렇듯 최저임금액을 결정하는 논의 과정에서 두 가지 문제점을 지적할 수 있다. 첫째, 최저임금액을 결정하는 최소한의 기준선이 없이 임의로 산식을 적용한다는 점이다. 법률에 명시되어 있는 생계비, 노동생산성, 소득분배율을 토대로 기준선을 정하고, 여기에 추가로 위원회 논의를 거쳐서 미세조정하는 방식이 되어야 할 것이다. 둘째, 현재의 논의구조에서는 공익위원이 실질적인 칼자루를 쥐고 있는데, 공익위원 9명은 고용노동부 장관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한다. '공익'이라는 명칭을 달고 있지만 결국 정부 입맛에 맞는 사람들로 채워지게 마련이다. 이는 어느 정부든 동일한 현상이다. 최소한의 공익적 기능을 하기 위해서는 공익위원 선출방식을 바꿔야 한다. 노사 추천제 또는 입법부와 사법부의 제청 참여가 최소한의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소모적이며 위험한 차등 적용 주장

사용자위원들은 매년 업종별 최저임금 차등 적용을 주장해 왔다. 일부 업종에 대해 최저임금보다 낮게 임금 기준을 정하자는 것이고, 올해에도 '2023년 최저임금 미만율 분석' 보고서를 발표했다. 매년 그렇듯 최저임금 미만율이 높은 업종에 대해 최저임금을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니 차등 적용을 해야 한다는 식의 주장으로 이어진다. 2023년에도 최저임금 미만율이 높은 업종으로 농림어업(43.1%), 숙박·음식점업(37.3%)을 제시하고 있고, 5인 미만 사업체(49.4%)도 높다는 것을 강조한다. 올해 최저임금위원회에서도 사용자위원들은 택시업, 편의점, 음식·숙박업에 대해 최저임금보다 낮은 임금을 적용할 것을 주장했다.

2022년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프랜차이즈 사업체 수는 약 28만 6000개로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그중 편의점(18.8%), 한식 음식점 (15.9%), 커피 및 기타 비알코올 음료점(10.3%), 치킨전문점(10.3%) 등이 절반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높다. 사용자위원이 이야기하는 지급 능력의 어려움을 겪는 업종이 대부분 여기에 해당한다. 이들을 포함한 소상공인의 어려움을 단순화하면 인건비, 재료비(원자재), 임차료, 수수료 등이 있다. 이 중 그나마 직접 통제가 가능한 영역은 인건비이고, 그 외는 정책적 차원에 기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최저임금 시기만 되면 오직 인건비 부분만을 강조하고 지급 능력을 이야기하면서 차등 적용 필요성에 대해 사용자위원과 재계는 주장해오고 있다.

올해 차등 적용 주장은 엉뚱한 방향인 돌봄 부문에서 불거졌다. 최저임금 심의에 들어가기도 전에 대통령, 서울시장, 한국은행 등이 돌봄 노동에 대한 최저임금 차등 적용을 주장하고 나온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4월 4일 민생토론회에서 외국인 유학생·결혼이민자 가족을 가사·돌봄 노동자로 활용하고 최저임금보다 낮은 임금을 주자고 제안했고, 한국은행은 3월에 보고서를 내기도 했다.

대통령과 서울시장의 립서비스식 발언은 제쳐두고 나름의 근거를 제시하고자 한 한국은행 보고서의 논리를 잠깐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돌봄 영역의 인력난 해소를 위해 값싼 이주 노동자를 수입해야 하는데, 국내법(근로기준법, 외국인고용법)과 국제법(ILO 제11호 차별 금지협약)에 따라 내국인 노동자에게 적용하는 최저임금을 이주 노동자에게도 동일하게 적용해야 하니, 임금 차별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돌봄 서비스 부문 자체에 최저임금을 차등 적용하자는 것이다. 최저임금 차등 적용은 법 개정이 아닌 최저임금위원회에서 의결하면 되기 때문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주장이다.

 6월 20일 프란치스코회관에서 플랫폼노동희망찾기 주최로 진행한 ‘이럴 거면 차라리 최저임금 위원회 폐지하자’ 기자회견
 6월 20일 프란치스코회관에서 플랫폼노동희망찾기 주최로 진행한 ‘이럴 거면 차라리 최저임금 위원회 폐지하자’ 기자회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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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행의 이러한 주장은 돌봄 노동에 대한 매우 왜곡된 시각을 배경으로 한다. "타 산업에 비해 돌봄 서비스 부문의 생산성이 매우 낮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이를 반영한 최저임금 차등 적용은 중장기적으로 가격 왜곡을 줄이고 경제 전체의 효율성을 높이는 등 긍정적인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라는 보고서의 표현은 돌봄 노동자의 생산성이 낮아서 최저임금을 주는 것도 아깝다는 뜻이다. 자신들의 주장이 "민간 보험회사 등이 관련 산업에 진출하여 서비스의 질을 높이는 데도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서술한 부분에서 알 수 있듯이 한국은행의 주장은 결국 자본의 이익 실현을 위해 돌봄의 공공성을 파괴하자는 주장에 불과하다.

사용자위원들이 매년 주장하는 최저임금 차등 적용은 인상률을 억제하려는 원래 목적의 '바람잡이' 역할에 불과하고, 따라서 소모적이다. 국회입법조사처도 일부 업종에 대해 최저임금보다 낮은 임금을 주는 '하향식' 차등 적용에 대해 "타당성을 가지기 힘들 것으로 전망된다"라는 보고서를 지난 6월에 발표하기도 했다. 최저임금 차등 적용은 최저임금제가 처음 시행된 1988년 단 한 차례 적용되었다. 당시 최저임금이 적용되는 28개 업종을 두 그룹으로 나눴는데 최저임금이 높은 철강과 기계 등 2그룹 임금이 식료품과 섬유 등 1그룹보다 5% 많았다. 하지만 차등 적용이 불분명하고 실효성이 없다는 이유로 1년 만에 폐지된 이후 지금까지 적용된 적이 없다. 매년 되풀이되는 소모적인 논란을 제거하기 위해 법 개정을 통해 제4조 제2항 '사업 종류별 구분 적용'을 삭제해야 한다.

노동 지형 변화에 따른 확대 적용 필요성

고용형태 다변화로 인해 플랫폼, 프리랜서 등 특수고용 형태 노동자 규모가 매우 커지고 있다. 최근 언론 보도에서는 2022년 인적용역 사업소득 원천징수 대상 인원은 847만 명이고, 해마다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이 중 상당수가 플랫폼 노동, 프리랜서 노동으로 추정된 다.

헌법 제32조에는 "사회적·경제적 방법으로 근로자의 고용의 증진과 적정임금의 보장에 노력"해야 할 국가의 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적정 임금 보장은 임금 수준의 상승과 함께 최저임금 제도의 확대 적용을 통해서 가능하다. 헌법에서 언급한 '근로자'는 근로기준법이나 노동조합법상 근로자 정의보다 더 넓게 해석되어야 한다. 노동자의 생활 안정과 노동력의 질적 향상을 목적으로 하는 최저임금 제도도 노동지형의 변화에 조응하는 방식으로 운영되어야 한다. 지난 3~4년이 특수고용 노동자에게 사회보험을 확대 적용한 시기였다면, 이제는 최저임금을 확대 적용하는 것으로 이어져야 한다.

최저임금법 제5조(최저임금액) 제3항에는 "임금이 통상적으로 도급제나 그 밖에 이와 비슷한 형태로 정하여져 있는 경우로서 제1항에 따라 최저임금액을 정하는 것이 적당하지 아니하다고 인정되면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최저임금액을 따로 정할 수 있다"라고 되어 있다. 2007년 대법원판결(2004다48836)은 철도역 구내매점에서 도급제로 일하는 노동자에게 최저임금법 제5조 제3항에 따라 최저임금을 정하도록 판시하기도 했다. 판결에서는 성과급 영업인으로 근무하는 자의 도급제 최저임금 결정과 관련해 생산고 또는 업적의 일정 단위에 의해 최저임금액을 정하는 경우의 고려 사항에 대해서도 제시하고 있다.

최저임금 확대 적용을 위한 근거 법률도 있고, 판례를 통해 도급제의 경우 최저임금 결정 시 고려 사항에 대해서도 제시하고 있으며, 노동 지형 변화에 따라 노동법적 보호 범위를 확대하고 있는 세계적 흐름도 뚜렷하게 확인되고 있는 현재 시점에서 최저임금 적용 범위 확대에 대해 최저임금위원회가 머뭇거릴 이유가 하등 없다. 특히 올해 최저임금 심의 과정에서 최저임금위원회가 도급제 최저임금 기준을 정할 수 있다는 고용노동부의 유권해석도 있었다. 올해는 아쉽게 넘어갔지만 내년에는 도급제 노동자에게 최저임금을 확대 적용해야 한다.

제도 개선을 위한 상시적 논의 필요

앞서 얘기한 쟁점들은 올해 최저임금위원회 논의 과정에서 어떤 식으로든 논쟁이 된 사안들인데, 아직 제대로 논의되지 않고 있는 최저임금 산입범위 문제가 있다. 2018년 5월, 현재의 여당과 야당 등이 합의를 통해 최저임금 산입범위를 확대하는 내용(상여금과 복리 후생비를 최저임금에 산입)으로 최저임금법을 개정한 것이다. 산입범위 확대로 인해 기존의 기본급, 각종 수당으로 구성된 임금항목이 이제는 의미가 없어지고 있고, 모든 노동자의 임금을 '하향 평준화'시키고 있다. 이러한 문제는 법률 개정 사안이므로 최저임금위원회에서 다룰 수 없고, 국회가 해야 할 과제이다. 따라서 최저임금 제도 개선 노력은 특정 시기가 아니라 연중 이뤄져야 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격월간 <비정규노동>에도 실립니다. 글쓴이는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정책국입니다. 이 글은 한국비정규노동센터에서 발행하는 격월간 <비정규노동> 168호 9, 10월호 '특집[최저임금제도]' 꼭지에도 실렸습니다.


#최저임금#최저임금위원회#플랫폼노동자#사각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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