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데뷔 35주년이라고. 한국 포크 밴드 중에선 대단한 유명세를 가진 여행스케치 얘기다. 들으면 대번에 아는 명곡을 수두룩하게 가진 밴드라지만, 개중에 유달리 좋아하는 곡이 꼭 하나가 있다. '별이 진다네'.
오래 전 아버지 친구의 아들에게 몇 달인가 과외를 받던 시절에 나는 이 곡을 처음 접했다. 선생으로 오던 형이 한동안 기타를 매고 다니더니, 이 곡을 연습하고 있다고 하였던 것이다. 그가 간단히 몇 소절 불러준 것이 나와 이 곡의 첫 만남이었다. 그 형의 적잖이 부족한 솜씨에도, 나는 이 곡이 더없이 아름답다 여겼다.
'어제는 별이 졌다네 / 나의 가슴이 무너졌네' 하고 시작하는 그 가사는 시작부터 처연하다. 하고많은 별 가운데 하나가 졌을 뿐인데, 나의 가슴은 무너지고 만다. 곁에선 이들이 '별은 그저 별일 뿐'이라고 말하지만 무너진 가슴이 일어나진 않는 것이다. 그 별은 '그저 별'이 아닌 '나의 별'이기 때문이다.
기억 속 저 멀리 밀어두었던 이 곡 이야기를 꺼내는 건 며칠 전 우연히 여행스케치 인터뷰 기사를 보아서다. 기사 제목은 '여행스케치 "'별이 진다네', 한 번도 맘 편하게 부른 적 없어"'다. 모든 것이 변한다는 얘기를 노래하면서도 저의 초심만큼은 지켜내려 분투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담은 기사. 덕분에 나는 이 곡을 오랜만에 다시 들었던 것이다.
곡은 여전히 아름답다. 슬프고 아련하다. '나의 별이 사라지고 / 어둠만이 짙어가는데' 하고 끝을 맺는 이 곡이 어째서 그리도 아름다울까. 그건 사라진 별이 아직도 나의 별이며, 그것이 짙어가는 어둠을 밝힌 때가 있었음을 기억하는 탓이 아닐까.
얼마 전 알고 지내는 편집자로부터 책 몇 권을 받았다. 때가 되어 한 번 보기로 하였으나 몸이 좋지 못하다며 취소통보를 받은 뒤였다. 그 가운데 '벌써, 안녕, 나의······'란 문장이 반복해 쓰여진 표지를 가진 알 수 없는 책이 한 권 있었다. 살펴보니 출판공동체 편않이 꾸준히 발간하고 있는 잡지 <편집자는 편집을 하지 않는다>의 10번째 권, 호수로는
9호 잡지란다(잡지 보기 링크).
이 잡지는 앞서 몇 차례 본 적이 있었으나 딱히 기억에 남지는 않는 터였다. 우선은 이것부터 끝내자는 마음으로 장을 열었다.
wrm이라는 곳이 있었다 했다. 잡지 가운데는 이것을 만든 이가 다른 누구에게 wrm이 무언지를 설명하는 대목이 묘사돼 있다. 책을 다 읽고 난 나도 그가 상담한 누구와 얼마 다르지 않아 이 글을 읽는 독자에게 wrm이 무언지를 명확히 설명할 수가 없다. 'what really matters', 그러니까 '젤로 중요한 것'이란 뜻이라는데 '마포 디자인·출판지원센터'의 브랜드명이라고도 하고 홍대 앞에서 운영되던 곳이라고도 한다.
뭔가 여러 전시를 하였던 것도 같고, 많은 이들이 아무 때고 찾아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복합문화공간이랄까, 그런 장소가 아니었나 싶다.
존재조차 알지 못했던 어느 공간의 이야기
<편집자는 편집을 하지 않는다> 9호, 0호부터 시작했으니 10번째 권인 이 잡지가 주로 다루는 주제가 바로 wrm의 영업종료에 대한 것이다. 잡지 가운데 이 공간을 기억하고 추억하며 그 종료를 애도하는 여러 사람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글 한 편씩을 써 보내었다. 나는 만들어진지도, 또 사라진지도 알지 못했던 wrm을 그 애도로써 만나게 된 셈이다.
낯선 이의 장례식에 초대된 불청객의 마음으로 나는 이 잡지를 읽어나간다. 내가 한 달 에도 몇 번씩 방문해 시간을 보내는 서울 마포구 홍대입구라 불리는 너른 터전에 그 존재조차 알지 못했던 공간이고 브랜드였던 무엇이 있었음을 뒤늦게 아는 과정이 민망하다. 내가 사는 서울시 양천구에서 매일 죽는 사람들이 수두룩할 텐데, 그들에게 하나하나 사연과 열망과 분노하는 화젯거리가 있었을 것이란 걸 나는 의식하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다. 꼭 그와 같은 기분으로, 누구에게는 적잖이 따스하고 탁월하며 친근했던 공간이 어떠한 모양이었을지를 나는 더듬어나간다.
wrm으로부터 활동지원금을 받아 작품을 내놓았던 이들이 있다. 그로부터 7년의 시간이 흐른 뒤 그들 중 하나는 제가 제법 성장했음을 문득 인식한다. 또 다른 이는 결과물이 나오지 않는 상황에서도 독촉 한 번 하지 않은 wrm 운영진으로부터 다른 무엇을 존중하는 태도를 배웠다고 떠올린다.
약간의 짜증 섞인 글을 쓰는 이가 있고, 든든한 아지트를 잃었다며 아쉬워하는 사람, 가만히 그리워하며 옛 모습을 떠올리는 이가 있다. 그들의 글로부터 나는 내가 가본 적 없는 wrm을 그려본다. 내 곁엔 그와 같이 소중한 무엇이 있는가도.
세상 모든 게 사라진다지만 어느 사라짐은 유독 마음에 남는다. 그저 별이 나의 별이 되었을 때, 세상 흔한 공간이 내가 아끼는 공간이 되었을 때, 영희철수가 내 벗이 되었을 때가 그렇다. wrm을 애도하는 잡지의 표지에 '벌써, 안녕, 나의······'란 말을 반복해 적은 건 그 이별이 너무나 빨랐기 때문이요, 그럼에도 떠난 것과 남은 이를 위하는 마음이 남았기 때문이며, 내 안에 상실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무엇의 진짜 가치가 난 자리에 남는 것이라면, wrm은 충분히 가치 있는 것이었으리라고 나는 여기는 것이다.
말하자면 세상엔 좋은 무엇이 흔하게 사라진다. 그리는 이 많은 wrm은 왜 없어져야 했을까. 아쉬움과 그리움과 상실을 남기면서까지. 나는 어찌할 수 없이 푸르른 검색창을 열고 wrm의 사연을 살피기 시작한다.
젊은 예술인을 지원하는 곳이라고 wrm의 정체성을 정의한 기사는 서울시와의 계약 종료로 폐관이 결정됐다 적고 있다. 2017년 개소 이후 서울시와 두어 차례 위탁 계약을 연장해 가며 운영해 왔는데, 지난해 계약연장 의사가 없다는 사실을 통보했다는 것이다. '윗선에서 결정됐다'는 서울시 관계자의 말이 들은 전부였다는 센터장의 말 뒤로, wrm뿐 아니라 서울시 내 출판인이며 예술인을 지원하는 여러 공간과 단체가 비슷한 운명을 맞고 있다는 사실이 언급된다.
서울시의 가장 윗사람은 시장일테니, wrm의 폐업은 오세훈 시장의 결정인 걸까. 뭐, 그 탓이 없다고 할 수는 없으리라. 박원순으로부터 오세훈으로 서울시의 권력이 이동한 뒤 수많은 예산이 삭감되고 정책이 폐지된 건 사실이니까. 또 어떤 정책은 새로 일어나니 그것이 민주주의의 작동방식이라고, 나는 우측 페달이 엑셀인지 브레이크인지 헷갈리는 무능한 운전자가 된 기분으로 책장을 넘길 뿐이다.
저널리즘의 가능성을 탐색하는 이들
<편집자는 편집을 하지 않는다> 9호엔 근 1년 간 이어온 저널리즘 독서토론, '저멀리즘 세미나'에 대한 기록도 실렸다. 2023년 6월 <저널리즘 선언>을 시작으로, <저널리즘 기본원칙> <지연된 정의> <언더그라운드> <디지털 저널리즘의 원칙> <노마드랜드> <독보적인 저널리즘> <미디어의 이해> <뉴스의 사회학> <미디어와 시대정신> <빈곤 과정> <사유 속의 영화> 등 미디어와 저널리즘, 시사문제를 다룬 여러 책을 다룬 학술적 독서토론모임이다.
나는 과거 6년에 걸친 기자생활 동안 저널리즘을 고민하는 기자는 얼마 남지 않았다고 여겼는데, 고민하는 이라 하여도 현실에선 비겁하기만 할 뿐이라고 포기하고 말았는데, 여전히 어딘가는 저널리즘과 언론과 나의 선택을 고민하는 이가 있는 것이라고 담긴 글이 질책하고 선 것이다.
기자와 편집자, 아예 저널리즘과는 동떨어진 삶을 사는 보통의 시민까지, 이 모임이 제게 남긴 생각들을 짚어간다. 이 논의가 이로울 독자가 이 세상에 아주 없지는 않으리라고, 나는 아직 알지 못하는 이가 많을 이 잡지에 대한 글을 쓰기로 한 것이다.
<편집자는 편집을 하지 않는다>는 기성 출판계의 퇴행적 관행에 저항하는 이들이 설립한 '출판공동체 편않'이 발간하는 잡지다. 이들은 한편으로 언론인과 출판인의 에세이 시리즈 '우리의 자리' 또한 꾸준히 내어놓고 있는데, 벌써 여덟 권째를 준비하고 있다고.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어쩌면 언론도 출판도 아직 완전히 희망을 잃어버리지는 않았는지도 모를 일이라고. 별은 지고 어둠이 짙어져도 희망은 남았으리라고. 누군가 쓰고 누군가가 읽는 한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