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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제보센터' 발족 호텔 카운터, 테스트 드라이버, 퇴직교육강사, 교통사고조사원 등 4대보험 대신 사업소득세를 내며 근로기준법 없이 일하는 노동자들이 5일 오전 서울 중구 민주노총에서 열린 '3.3 제보센터 개막 및 근로기준법 사회연대운동 제안 기자회견'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 "3.3 제보센터" 발족 호텔 카운터, 테스트 드라이버, 퇴직교육강사, 교통사고조사원 등 4대보험 대신 사업소득세를 내며 근로기준법 없이 일하는 노동자들이 5일 오전 서울 중구 민주노총에서 열린 '3.3 제보센터 개막 및 근로기준법 사회연대운동 제안 기자회견'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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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경기도 성남에 있는 호텔에서 카운터 직원으로 일했던 김수찬(55)씨는 취업한 지 6개월이 지나서야 근로계약서를 작성했다. 하루 종일 근무하고 다음날 쉬는 격일제 24시간 근무를 총 1년 넘게 했다. 그러다 동료로부터 '근로계약서 작성 후 1년이 지나면 퇴직금이 나오기 때문에 그 전에 해고될지도 모른다'는 말을 들었다. 불안해진 김씨는 호텔 사장에게 퇴직금을 받을 수 있는지 물어봤다. 아니나 다를까, 사장은 퇴직금을 줄 수 없다며 김씨를 해고하겠다고 통보했다.

#2. 기아자동차 협력 업체에서 8개월간 신차의 성능을 시험하는 '테스트 드라이버'로 일한 전우성(39)씨도 근로계약서를 쓰지 않았다. 회사는 전씨가 '프리랜서'라고 했다. 말은 '프리랜서'였지만 회사는 전씨에게 늘 업무지시를 했고, 심지어 휴일에도 인원이 없으면 출근하라고 강요했다. 일주일에 무려 70시간 넘게 일했는데 일하는 동안 쉬는 시간조차 제대로 보장되지 않았다. 회사가 차에 부착된 GPS 위치추적장치로 휴게 시간까지 감시하고 통제했기 때문이다. 주행 중 30분 이상 휴식을 취하면 어김없이 회사에서 왜 이렇게 오래 쉬냐는 연락이 왔다.

#3. 삼성화재애니카 교통사고조사원으로 19년째 일하고 있는 김인식(57)씨가 회사와 쓴 계약서도 근로계약서가 아니다. 일명 '대행계약서'다. 김씨는 회사로부터 교통사고가 났다는 출동 지령을 받으면 언제라도 즉시 현장에 나가 사고를 조사하고, 부상자가 있으면 119도 부른다. 차량 견인 신청도 돕는다. 늘상 차도에서 일을 하기 때문에 다칠 위험도 크지만, 산재보험 적용을 받지 못해 부상을 입으면 자비로 치료해야 한다. 근로계약서를 쓴 '근로자'가 아니어서 산재보험 대상에서 제외되기 때문이다.

나의 최저임금은 어떻게 보장되는 걸까? 휴게시간은? 연차 휴가는? 퇴직금은? 일하다 다쳤을 때 받을 수 있는 산재보험, 실직했을 때 받을 수 있는 고용보험은? 또, 내가 언제든 아무렇게나 해고될 수는 없다는 믿음은 어떻게 보장될까?

근로기준법 때문이다. 그런데 사실상 기존의 근로자와 다르지 않음에도 근로기준법의 울타리 바깥으로 내몰리는 노동자들이 늘고 있다. 근로자와는 달리 언제든 해고할 수 있고, 최저임금과 퇴직금을 안 줘도 되고, 휴가와 산재·고용보험을 들지 않아도 되는 '개인사업자'들이 불어나고 있는 것이다. 각종 노동 규제를 피하려는 기업들의 꼼수 때문이다. 2022년 기준 최근 통계에 따르면, 사업소득세 3.3%를 내는 '인적 용역사업자'는 847만 명에 달한다.

근로기준법사회연대운동 준비모임은 5일 기자회견을 열고 "(2022년 인적 용역사업자 수치는) 전년 대비 59만 명이 늘어난 추세였다"면서 "올해 이 숫자는 1000만을 넘어설지도 모른다"고 했다. 전체 취업자수가 2880만 명인 점을 감안하면, 무려 3분의 1에 달하는 노동자들이 전통적인 근로기준법의 보호에서 벗어나 있다는 것이다.

근로기준법 보호 바깥 '개인사업자' 847만 시대

'3.3 제보센터' 발족 호텔 카운터, 테스트 드라이버, 퇴직교육강사, 교통사고조사원 등 4대보험 대신 사업소득세를 내며 근로기준법 없이 일하는 노동자들을 위한 '3.3 제보센터'가 5일 오전 서울 중구 민주노총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발족식을 하고 있다.
▲ "3.3 제보센터" 발족 호텔 카운터, 테스트 드라이버, 퇴직교육강사, 교통사고조사원 등 4대보험 대신 사업소득세를 내며 근로기준법 없이 일하는 노동자들을 위한 '3.3 제보센터'가 5일 오전 서울 중구 민주노총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발족식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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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사회에서 이를 바로잡기 위한 움직임이 시작되고 있다. 근로기준법사회연대운동 준비모임과 권리찾기유니온은 이날 서울 중구에서 '3.3 제보센터' 개막식을 열었다. 이들은 "'가짜 3.3' 800만 시대를 끝내야 한다"라며 "위장 고용을 적발하는 3.3 제보센터를 개설한다"고 밝혔다. '가짜 3.3'이란 사실상 근로자임에도 불구하고 '사업소득자'로 오분류돼 사업소득세율 3.3%를 원천 징수당하는 이들을 이른다. 제보센터의 온라인 주소는 bit.ly/삼쩜삼제보센터 다.

성남의 한 호텔 카운터 직원으로 일했던 김수찬씨는 "가짜 3.3 노동자로 일했던 동안 계약서 상의 8시간 휴게시간도 지켜지지 않은 채 24시간 동안 혼자 새벽에도 손님을 받고, 청소도 했다"라며 "그런데도 사장은 임금도 제대로 지급하지 않고 체불하는 등 해도 해도 너무 한 일들의 연속이었다"고 했다. 김씨는 "저처럼 숙박시설에서 일하는 가짜 3.3 노동자들이 부디 부당한 해고를 당하면 싸울 수 있고, 임금체불이 있으면 신고할 수 있다는 걸 알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기아자동차 협력업체에서 테스트 드라이버로 일했던 전우성씨는 "매일 같이 회사가 지정해준 코스로 운행을 해야 했고, 휴일에도 가족 모임이 있었는데 일하라고 해서 결국 모임을 취소하고 일하러 나가야 했다"라며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았다"고 말했다. 삼성화재애니카 교통사고조사원인 김인식씨는 "최근 8월 삼성화재애니카에서 고장 출동을 받고 나간 노동자가 심근경색으로 사망하는 일이 있었다"라며 "그 역시 가짜 3.3 노동자로 산재보험 하나 적용 받지 못한 채 돌아가셨다"고 했다.

현행 근로기준법을 고쳐 이같은 노동자 오분류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노동위원회 부위원장인 이종훈 변호사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의 정의 규정에 '타인에게 노무를 제공하는 사람'을 근로자로 추정하고 근로자가 아닐 경우 사용자가 입증 책임을 지도록 하는 법 개정이 이뤄진다면 사용자의 편법적 위장고용을 막을 수 있다"고 했다. 지난 21대 국회에서는 강은미 전 정의당 의원이 해당 법안을 발의했지만 폐기됐고, 현 22대 국회에선 아직 관련 법안이 발의되지 않은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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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분류#위장고용#개인사업자#근로기준법#4대보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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