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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셀 중대재해 참사(이하 아리셀 참사)가 발생한 지 70일이 넘었다. 참사 발생 50여일이 지난, 8월 13일 고용노동부는 65건의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사실을 담은 아리셀 특별근로감독 결과와 정작 이주노동자 안전대책이라고 하기에는 터무니없이 부족한 내용을 발표했다.

뒤이어 8월 23일 경찰과 고용노동부의 수사 결과가 발표됐다. 경찰 수사에서는 아리셀이 군납배터리 납기일을 맞추기 위해 ▲불량률 급증 및 신규 불량 유형에 대한 미조치 ▲발열전지 선별 중단 및 양품화 등 안전조치를 깡그리 무시한 채 이주노동자를 대거 투입하고, ▲시료 바꿔치기 등의 범죄를 국방부를 상대로 저지른 사실이 밝혀졌다.

고용노동부의 수사에서는 아리셀의 불법파견 의혹의 실체가 일부 확인됐다. 이로써 참사의 진상이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아리셀 대책위는 참사의 진상규명과 재발방지 대책 마련을 촉구하며 싸움을 해 나가고 있다.

 김종민 경기남부경찰청 아리셀 화재 사고 수사본부장이 23일 오전 경기도 화성시 남양읍 화성서부경찰서에서 23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아리셀 공장 화재 사고 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2024.8.23
 김종민 경기남부경찰청 아리셀 화재 사고 수사본부장이 23일 오전 경기도 화성시 남양읍 화성서부경찰서에서 23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아리셀 공장 화재 사고 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2024.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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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운경 고용노동부 경기지청장이 23일 오전 경기도 화성시 남양읍 화성서부경찰서에서 23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아리셀 공장 화재 사고 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2024.8.23
 강운경 고용노동부 경기지청장이 23일 오전 경기도 화성시 남양읍 화성서부경찰서에서 23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아리셀 공장 화재 사고 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2024.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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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 언급한 사실만을 보더라도 아리셀 참사는 '예견된 참사'가 현실화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8월 23일 경찰과 고용노동부의 수사 결과 공표에 앞서, 참사 직후부터 아리셀 참사와 관련한 각종 언론 보도와 국회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아리셀 안전보건관리 실태만을 살펴보더라도, 사실상 아리셀은 '무법 천지'의 상태였다. 경찰과 고용노동부의 수사결과는 아리셀 참사의 직접적인 도화선이 된 사실관계를 확인한 것으로, 이것이 없었더라도 아리셀 참사는 발생했을지 모른다.

아리셀은 법·제도의 빈 구석을 교묘히 활용해 회사를 운영해 왔고, 법이 있더라도 지키지 않았으며, 관계당국의 각종 경고도 없는 것처럼 무시했다. 한마디로 무법천지 상태로 아리셀을 운영하다가 참사가 발생했다. 이 글에서는 아리셀의 안전 보건 관리 체계 실태를 중심으로 이를 살펴보고자 한다.

소방당국의 경고를 무시한 결과

아리셀은 화재·폭발 대비의 취약성 문제에 대한 소방당국의 경고를 철저히 무시했다. 참사 발생 석 달 전인 24년 3월 5일 화성 소방서 남양119안전센터장 등이 아리셀 공장을 방문해 화재 예방 컨설팅을 진행했다. 이때 물질의 특성과 비상 대응 방법을 설명하고 리튬 저장 시설을 점검했다.

당시 남양 119안전센터장은 아리셀에 ▲위험물 취급에 따른 안전 수칙 준수를 철저히 할 것 ▲자체 소방 훈련을 실시할 것 ▲상황 발생 시 위험물 특성을 안내할 것 등을 지도했다. 덧붙여 화재 시 "주 출입구 이용 신속 대피가 필요하다"라는 내용을 참여한 사측 관계자들에게 주지시켰다.

이후 3월 28일 작성된 '화성소방서 남양 119안전센터의 소방활동 자료 조사서'에는 아리셀 공장 3동에 대해 ▲다수 인명 피해 발생 우려 지역 ▲3동 제품 생산 라인 급격한 연소로 인한 인명 피해 우려 ▲연소 확대 요인이 11개 동 건물에 위치해 상황 발생 시 급격한 연소로 인한 연소 확대 우려 등이 적시되어 있다.

참사가 발생한 이후 경찰 수사에서는 21년에 2건, 22년 1건, 참사 2일 전인 6월 22일 1건 등 총 4건의 리튬 배터리 화재가 발생했던 전력이 밝혀졌다. 이와 같이 아리셀은 지속적으로 리튬 배터리 화재·폭발이 발생했는데도 이를 은폐했고, 소방당국의 경고 또한 무시했다.

형식적인 위험성 평가

아리셀은 21년 2월부터 24년 2월까지 3년간, 3차례 산업안전보건공단의 위험성 평가 우수사업장으로 선정돼 580만 원가량의 산재보험료 감면 혜택을 받았다. 위험성평가 심사 결과에는 사업주와 담당자가 교육을 잘 이수하고 현장에 잘 적용하고 있다며, 근로자의 안전보건 관리, 향상 유지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평가했다.

위험성평가는 '사업주가 업무 중 근로자에게 노출된 것이 확인되었거나 노출될 것이 합리적으로 예견 가능한 모든 유해·위험요인에 대해 해당 작업장의 노동자가 참여'하여 실시(산업안전보건법 제36조)하는 것이다.

이미 아리셀 근무자들이 리튬 배터리에서 "불이 날 수 있다"는 말을 동료나 직원들에게 종종 들어왔고, 그간 지속적으로 화재가 발생했던 전력이 있다면, 당연히 리튬 배터리의 화재·폭발이 위험성 평가에 포함됐어야 한다. 만약, 정기 위험성평가 항목에서 이를 놓쳤더라도, 화재가 발생했을 때(기존에 평가 대상에 포함하지 않았더라도 위험이 현실화된 것이므로 평가 대상이 되어야 함), 수시 위험성평가를 실시하여 화재·폭발의 취약성에 대해 대비했어야 한다.

안전보건공단의 21년 평가 보고서에 "위험기계 기구별 유해 위험을 체크리스트 식으로 작성, 화학물질에 대한 위험성평가 작성"만으로 기술되어 있는 것을 보았을 때, 아리셀의 가장 큰 위험 요인 리튬 배터리의 화재·폭발은 아예 평가 대상에서 제외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덧붙여 사업장에서 실시한 위험성평가 체크리스트를 바탕으로 안전보건공단이 인정 심사를 하는 이러한 관행이 위험성평가의 실시율을 높이는 것에는 효과가 있지만, 실질적인 산재예방 및 감소에 영향을 미치기에는 한계가 있음을 아리셀 참사에서 확인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2024년 6월 25일 경기도 화성시 서신면 리튬전지 공장 화재 현장에서 경찰과 소방,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국토안전연구원, 고용노동부, 산업안전관리공단 등 관계자들이 합동감식을 위해 이동하고 있다. 전날인 24일 오전 10시 31분 화성시 서신면 전곡리 소재 일차전지 업체인 아리셀 공장에서 화재가 발생해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2024년 6월 25일 경기도 화성시 서신면 리튬전지 공장 화재 현장에서 경찰과 소방,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국토안전연구원, 고용노동부, 산업안전관리공단 등 관계자들이 합동감식을 위해 이동하고 있다. 전날인 24일 오전 10시 31분 화성시 서신면 전곡리 소재 일차전지 업체인 아리셀 공장에서 화재가 발생해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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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시근로자 수 축소와 산업안전보건법 회피 의혹

아리셀이 받은 안전보건공단의 위험성 평가 우수사업장 혜택은 50인 미만 사업장을 대상으로 하고, 근로복지공단의 산재예방요율제와 연동하여 선정된다. 그러나 참사 당시인 6월 아리셀에는 50인을 훨씬 넘는, 100명 이상의 상시 근무자가 있었다. 또한 과거부터 물량에 따라 업무에 투입되는 인력이 급격히 늘어났다는 언론 인터뷰 등에 비춰보았을 때, 그동안 실제 50인 상의 사업장이면서도 50 미만 사업장으로서 위험성평가 우수사업장 인증을 통해 산재보험료 감면 혜택을 받았을 가능성이 의심된다.

또한 50인 이상 사업장에게 적용되는 안전보건관리책임자, 안전관리자, 보건관리자 선임 및 산업안전보건위원회 설치와 같은 산안법의 주요 규율을 비켜난 것은 아닌지 의문 또한 제기되고 있다.

안전보건관리체계 컨설팅 과정에서 나타난 문제

아리셀은 지난 3월 말 안전보건공단으로 위탁받은 기관을 통해 1차 안전보건관리체계 컨설팅을 받았다. 해당 컨설팅 결과 보고서에는 임원진과 담당자의 의지가 높고, 근로자 안내 게시판이 잘 되어있으며, 특히 "원료 및 제품 보관을 위한 보관창고 별도 관리 중"이라고 적시했다.

그러나 리튬 배터리 제품 보관창고와 작업장 사이에 있던 벽을 불법으로 구조 변경하여 철거한 사실이 드러났다. 리튬 배터리 화재·폭발이 발생한 포장·검수 작업에 3만 5천 개가량의 출고를 앞둔 제품이 적재되어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위의 컨설팅 결과 보고서에 적시된 '제품 보관창고 별도 관리'라는 내용이 사실과 다름을 확인할 수 있다. 서류를 기초로 현장 실태 점검 없이 컨설팅 결과가 도출된 것이 아닌지 의심된다.

사실상 전무했던 안전교육

아리셀 박순관 대표이사는 희생자들은 대다수가 파견업체 직원이라며 아리셀과의 고용 관계를 부정했다. 그러나 파견업체 메이셀은 이에 반발하며 '얼굴도 모른 채 전화로 인력을 공급했다'며 사실 관계를 부정했다. 어느 누구도 사용자가 아닌 이 상황에서 희생자들은 안전교육도 화재 대피훈련도 받지 못했다. 참사 당일을 기록한 CCTV에 담긴 작업자들의 대응 모습이 이를 증명한다. 리튬 배터리 화재·폭발의 위력에 대해 최소한의 인지만 시켰더라도, 희생자들은 서둘러 대피했을지 모른다. 고용노동부 특별근로감독 결과에도 안전교육 미실시가 적발 대상에 포함됐다.

 8월 17일 열린 ‘죽음과 차별을 멈추는 아리셀 희망버스’ 행진에서 참가자들이 진상규명과 책임자처벌을 요구하는 현수막을 들고 있다.
 8월 17일 열린 ‘죽음과 차별을 멈추는 아리셀 희망버스’ 행진에서 참가자들이 진상규명과 책임자처벌을 요구하는 현수막을 들고 있다.
ⓒ 백승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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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튬 배터리 제조과정의 유해·위험성 방치

리튬은 산안법의 제3류 위험물 '물 반응성 물질 및 인화성 고체'에 해당한다. 리튬 취급 사업장인 아리셀은 폭발·화재 및 위험물 누출에 의한 위험 방지 규정에 따라 ▲출입구 이외에 1개 이상의 비상구 설치 ▲폭발·화재 및 누출 방지를 위한 조치 ▲폭발위험장소의 구분도 작성과 그에 따른 관리 조치 ▲화재 예방을 위한 적절한 배치 구조 등의 조치를 해야 했다. 산안법에서 규율하고 있는 최소한의 조치만이라도 했다면 대형 참사는 발생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또한 아리셀에서는 리튬 배터리 제조공정에서 사고 대비물질인 '염화티오닐'을 포함한 유해화학물질을 다수 사용했다. 그러나 특별근로감독 결과에서 밝혀진 것처럼 노동자들은 건강검진도 물질안전보건교육도 받지 못했다. 인화성 액체 발생에 따른 가스 검지 및 경보장치 미설치, 폭발 위험 장소로 미 설정, 국소배기장치 제어 풍속 기준 미준수 등에서 확인되듯이 아리셀은 유해·위험한 현장에 노동자들을 방치했다.

이외에도 아리셀 참사에서 리튬 배터리 화재·폭발을 대비한 소방·방재대책의 부재, 불법 구조변경 등 건축법 위반, 화학물질관리법에 따른 검사나 안전사고 예방대책 수립 미실시 등의 문제가 확인되고 있다.

이처럼 일하는 사람의 안전과 건강은 도외시한 채 무법천지로 회사를 운영해 온 아리셀과 이러한 고위험 사업장을 행정 여력을 핑계로 사실상 방치해 온 관계당국의 위험 관리 관행이 아리셀 참사를 불러왔다.

8월 23일 경찰과 고용노동부의 수사 결과는 이러한 아리셀의 범죄 행위를 드러낸 결과의 일부일 뿐이다. 진상 규명을 통해 아리셀 참사를 불러온 갖가지 문제들이 진단되고, 이를 기초로 재발 방지 대책이 수립되어야 한다. 그것이 지금 우리 사회가 아리셀 참사 희생자들 앞에 약속해야 할 최소한의 도리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월간 일터 9월호에도 실립니다.이 글을 쓴 손진우 님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 아리셀중대재해참사대책위원회 진상규명팀장입니다.


#아리셀#중대재해#산업재해#참사#진상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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