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점점 전통적 식문화에서 멀어지고 초가공식품 등 몸에 좋지 않은 음식과 가까워졌으며 그 부작용이 사회 전반에서 나타나고 있다. 특히 청년 세대는 성인병의 위험 속에 김치 못 담는 세대, 조리기능 상실의 세대라고 불릴 정도로 전통적 식문화에서 멀어졌다. 그 가운데 발효 먹거리는 대표적인 바른 먹거리로 건강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특히, 노화방지 및 건강이 중요한 트렌드로 자리 잡으면서 쌀누룩(코지) 중심의 ‘누룩소금’이나 ‘쌀누룩 요거트’의 레시피가 유행처럼 번졌다. 발효와 청정농산물로 유명한 일본 홋카이도는 가파른 인구소멸의 위기 속에서 기성세대의 전통적인 발효기반을 바탕으로 새로운 도약에 성공적인 사례들이 있다. 인구 3천명 규모의 지자체에서 성장한 목장, 와이너리, 양조장 등 지방소멸의 위기 속에서 발효를 기반으로 지역만의 특색을 살려 경제적 성과를 창출을 하고 있는 사례가 있다. 이를 살펴보고 함양군이 보유한 훌륭한 발효기반을 조명하여 발효가 함양군만의 독자적인 매력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살펴본다.[기자말] |
[글 싣는 순서]
1. 일본 홋카이도 소도시의 발효기업1 (우케가와팜덴엔, 카미카와다이세츠슈조)
2. 일본 홋카이도 소도시의 발효기업2 (오호츠크팜우시오, 보스어그리 와이너리)
3. 일본 홋카이도 소도시의 발효기업3 (노스플레인팜, BSB양조장)
4. 바른 먹거리, 발효음식의 중요성, 온생명평생교육원 김인술 원장
5. 쌀누룩 발효와 발효문화의 성장 가능성, 한일국제발효치유협회 오상희 회장
6. 함양의 발효기업1 장 (인산가, 허점순 토속된장할매, 별빛담은마을)
7. 함양의 발효기업2 초 목장발효(채연가, 삼민목장)
8. 함양의 발효기업3 주 (하미앙, 옛술도가, 명가원)
1. 아사히카와 <㈜우케가와팜덴엔>
함양은 농업 중심의 지방자치단체로 전체 예산의 20%가 넘는 금액이 농업지원에 쓰이고 있을 정도다. 농업은 발효에 필요한 원물을 생산하는 과정으로 발효의 첫 단추일 수밖에 없다. 일본 홋카이도 아사히카와에 위치한 우케가와팜은 100년 동안 5대째 연결된 농장으로 쌀을 중심으로 연 매출 11억을 달성하고 있다. 농장 쌀을 활용한 카레 식당과 발효를 활용한 베이커리를 함께 운영하며 지역의 공항에 입점할 만큼 지역 활성화의 성공적인 사례로 자리 잡았다. ㈜우케가와팜덴엔의 대표이사 우케가와 미키야스씨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100년 전통의 쌀 농장 농사 너머를 시도하다
우케가와 농장은 다이쇼 시대(1912~1926)에 처음 설립되어, 창립 100주년을 맞이한 지금도 가족 경영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 농장은 처음에는 그저 쌀농사를 짓는 농장이었으나 11년 전 지금의 대표이사 미키야스씨가 38세의 나이로 경영 이양받고서 ㈜우케가와팜덴엔을 설립하고 대표이사에 취임했다. 총 경작면적은 70ha(약 21만 평)으로 이를 바탕으로 농업과 요식업으로 수익을 내고 있다.
농업의 경우 40ha(약 12만 평)은 쌀을 경작하고 30ha(약 9만 평)은 콩과 보리, 메밀 등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작물을 선택해 연작으로 재배한다. 쌀은 기본적으로 농업협동조합에서 수매한다. 일본의 경우 현미 60kg를 출하했을 때 우리나라 돈 13만 원 정도 소득을 만들 수 있다. 소비자에게 직접 쌀을 판매했을 때는 같은 무게에 20만 원에서 23만 원까지 받는다. 리스크를 분산하기 위해 소비자에게 제공하는 양과 수매, 납품, 직접 도매 등 다양한 경로로 쌀을 판매하고 있다.
일본은 특별재배 쌀 인증제도를 통해 농약과 화학비료의 사용량을 절반 이하로 줄인 쌀을 구분하고 있다. 우케가와 농장의 쌀은 특별재배로 짓고 있으며 앞으로 유기농 비중을 늘려가며 전량 유기농 쌀을 재배할 계획을 갖고 있다. 쌀 품종은 일본에서 제일 아름다운 쌀이라는 '유메피리카', 테스트에서 고시히카리를 뛰어넘는 평가를 받은 '오보로츠키', 담백한 스타일의 '나나츠보시'를 재배한다. 그 외에 사케용으로 쓰이는 '스이세이' 등을 재배한다.
쌀을 소비자에게 직접 판매하는 게 경제적으로 이득이지만 이는 안정적이지 못하다. 요식업은 그래서 시작했다. 쌀을 판매하려면 손님에게 먹여야 한다는 게 미키야스씨의 철학이다. 2019년 카레가게 노카야는 그렇게 시작됐다.
"농사 전문가를 얻는 건 어렵지만 요식업 전문가를 구하는 건 비교적 쉽습니다. 농사 전문가는 이미 있어서 쉽게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노카야는 시즌에 상관없이 안정적인 매출을 내고 있다. 뿐만 아니라 쌀을 중심으로 한 발효빵 베이커리 '코무기야' 역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으며 순항 중이다.
㈜우케가와팜덴엔을 설립한 미키야스씨의 이야기
미키야스씨는 아버지 곁을 떠났다가 27살에 귀농을 하게 됐다.
"제가 어렸을 적 아버지는 늘 바빴고 주변에는 자연 밖에 없으니 항상 고향을 떠나고 싶었어요. 고등학교 졸업 후 나가서 음식점, 트럭 운전사, 부동산 등 여러 일을 경험하다가 27살이 되는 해에 인생을 제대로 살아봐야겠다는 다짐을 했어요. 마침 그 때 아버지가 농장을 확장하고 싶어했기에 고향으로 돌아오게 됐습니다. 농가의 아들은 부모의 노예라고 하죠. 10년을 버티고 38세에 5대째로 경영을 이양 받았습니다."
지방에서 청년유출은 굉장히 심각한 문제다. 미키야스씨는 "다시 들어오면 된다"며 청년의 유출을 막는 게 아니라 나갔다 들어온 청년이 잘 적응할 수 있는 환경을 어떻게 만들지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을 밝혔다.
"나갔다가 돌아오면 처음에는 보이지 않던 시골의 장점이 많이 보일 거예요. 도시는 하루 이틀 잠깐 나가서 놀다오는 그런 곳이에요."
미키야스씨는 선대의 유산을 바탕으로 새로운 시도를 거듭하며 안정적으로 경영하고 있지만 어려움이 없는 것은 아니다. 홋카이도가 점점 더워지고 있다.
"홋카이도의 여름은 선선해서 피서지로 유명한데 작년 여름만 해도 36도까지 올라가는 등 기후가 바뀌고 있습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작물에 영향을 줍니다. 작년 쌀 생산량이 전년도에 비해 20%나 줄었어요. 우선 여러 가지 농법을 시도해보고 있지만 이런 현상이 반복되면 추위를 잘 견디는 홋카이도 쌀 품종이 아니라 본토에서 경작하는 그런 품종을 써야 하는 상황이 찾아옵니다. 그렇게 되면 그 품종 생산 체계를 잡는 건 10년이 걸려요. 일단 품종을 바꾸는 건 최후의 선택으로 두고 현 품종을 유지하면서 다른 방법들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2. 카미카와, <카미카와다이세츠슈조>
함양군은 대한민국 육지 내 가장 높은 산, 지리산 자락에 위치해 좋은 자연환경을 가지고 있다. 일본의 카미카와 역시 함양군처럼 높은 산 자락에 위치해 좋은 자연환경을 갖고 있다. 홋카이도의 지붕이라 불리는 다이세츠잔(大雪山)은 깨끗한 자연이 광활한 면적에 보존되어 있는 국립공원이다.
일본에서 가장 추운 지역 중 하나이며, 여름에도 눈을 볼 수 있는 곳으로 그 위상이 상당하다. 카미카와는 인구 3천 명을 조금 넘긴 도시다. 이곳에 있는 카미카와다이세츠슈조(이하 다이세츠슈조) 사케 양조장은 전통 발효문화를 지역 경제 활성화와 결합하여 지방 소멸 위기를 극복하는 성공 사례로 주목받고 있다. 이 양조장은 발효를 중심으로 농업, 지역사회, 관광 산업을 유기적으로 연계하며 지역 주민들과 함께 성장하고 있으며, 2017년 이전 설립 이래 지속적인 발전을 이루고 있다. 지방소멸 위기 극복의 일본 개념인 '지방창생'을 홈페이지 대문에 걸 정도로 진심인 이 양조장은 지역을 위하고 생산자를 존중하는 방식으로 지역 경제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자세한 이야기를 다이세츠슈조 카와바타 신지 부사장에게 들어봤다.
사케 제조를 통한 지방 경제 활성화
다이세츠슈조는 현재 카미카와, 오비히로, 하코다테 총 세 곳의 사케 양조장을 보유하고 있다. 720ml 기준으로 각각 12만, 22만, 10만 병을 생산한다. 대부분 직영점을 통해서 판매가 이루어지고 편의점과 슈퍼에도 납품을 일부 진행한다. 생산되는 양의 70% 이상이 홋카이도 내에서 소비되고 있다.
생산량 기준으로 보면 다이세츠슈조는 많은 양을 생산하는 회사가 아니다.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서는 공장을 증축해야 하는데 다이세츠슈조는 증축이 아니라 신축을 선택한다. 공장을 새로 지으면 설비를 새롭게 들여야 하니까 당연히 효율이 나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지역마다 공장을 새롭게 짓는 걸 고집하는 이유는 그래야만 그 지역에 활력이 생기기 때문이다.
양조를 중단한 미에현의 주조회사를 인수해 카미카와라는 작은 지역으로 이사를 오게 된 다이세츠슈조 이야기가 입소문을 타면서 다양한 곳에서 카미카와 공장에 견학을 오게 됐다. 새롭게 지은 오비히로와 하코다테의 공장은 견학을 왔던 오비히로 축산대학과 하코다테의 파트너 기업의 제안으로 신축하게 됐다. 견학을 온 곳에서 '우리 지역에도 만들어주세요' 요청한 셈이다.
다이세츠슈조는 지방창생을 목표로 하는 만큼 지역에 많은 기여를 하려고 노력한다. 카미카와 공장에 들어가는 입구에 위치한 세븐일레븐 카미카와점. 이곳 편의점에서 판매되는 양이 카미카와 공장 생산량 전체의 1%에 육박할 정도로 판매가 활발하다. 지역에서 생산된 것을 지역에서 소비하는 모델을 안정적으로 구축한 셈이다.
"물론 인터넷으로도 주문할 수 있죠. 하지만 사람들이 이곳에 방문해서 사가게 하는 목적까지 만들었습니다. 카미카와점에 가면 맛있는 사케를 판다는 인식을 만들었어요. 세븐일레븐은 어느 지역에나 있는 건데 사케를 위해 여기까지 방문해서 사간다는 것 자체가 미비하게나마 지역소생의 효과를 내는 거죠."
맛좋은 사케와 생산자 존중이 성공의 비결
맛있는 사케의 비밀은 홋카이도의 청정 자연과 다이세츠잔의 물, 홋카이도 산 쌀이다. 다이세츠잔 국립공원 인근의 카미카와. 이름이 대설산일 정도로 눈이 많은 곳이다. 만년설이 가득한 다이세츠잔 자락의 천연수를 바탕으로 사케를 만들며 이 물은 현장에서 시음도 가능하다. 눈 녹은 물은 연수로 분류되며 연수로 사케를 만들면 굉장히 부드러운 매력을 띄게 된다.
쌀 역시 홋카이도에서 공급받고 있다. 다이세츠슈조는 사케용 쌀 생산자의 80% 이상을 다 알고 있으며 겨울이 되면 홋카이도 전역에 흩어져있는 생산자와 사케 업계 관계자, 농업협동조합 관계자 등 다양한 사람들을 모아서 워크샵을 진행한다. 하루종일 사케와 함께 사케 산업의 미래를 고민하는 자리, 정보교환의 장이 만들어진다. 지역끼리 교류를 하기도 하고 누군가에게는 영업의 기회가 되기도 한다. 다이세츠슈조가 사케를 매개로 하나의 커뮤니티를 지속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통해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고, 지역과 지역을 연결하는 방식으로 활력을 만들고 있다.
다이세츠슈조는 특히 생산자를 존중하는 방식으로 운영한다. 쌀을 보낸 지역마다 사케를 따로 만들며 그렇게 만들어진 사케는 기본적으로 그 지역에 납품이 된다. 생산자는 쌀 판매에 따른 경제적인 소득 뿐만 아니라 내 지역에 유통되는 다이세츠슈조의 사케를 보며 성취감을 느끼게 된다. 다이세츠슈조가 생산자의 쌀을 존중하는 방식이다.
고령화와 지방소멸의 위기 다이세츠슈조의 노력
다이세츠슈조는 단순히 사케 생산에 그치지 않고, 지방 창생을 목표로 다양한 방식으로 지역 사회에 기여하고 있다. 다이세츠슈조가 운영하는 호텔과 치즈 공방은 원래 일반 호텔과 빵 공장이었다. 카미카와 지역의 인구가 계속 줄어들어 호텔과 빵 공장이 폐업 위기에 처하자 이 지역이 찾은 건 다이세츠슈조였다. 다이세츠슈조는 고령화가 심한 카미카와 지역의 산업을 유지하는 역할을 해내고 있다.
"이 지역의 산업을 위해 노력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경영을 결정하게 됐습니다. 인구가 줄어들어서 매장이 문을 닫으면 지역은 점점 쇠퇴하게 되기 때문에 산업을 어떻게 유지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다이세츠슈조가 고민하는 다음 목표는 교육이다. 인구가 줄어들면서 교육 역시 위태롭기 때문이다. 오타루 상과대학과 협의를 거쳐 2030년에는 교육 프로그램을 개설하는 게 목표다.
"온라인 수업의 형태일 수도 있고 교육 가능한 교수가 이 지역에 파견될 수도 있어요. 많은 학교가 폐교되고 있는데 유휴시설을 활용해서 새로운 교육의 장을 만드는 게 목표예요."
왜 이렇게 지역을 위해서 노력하냐는 질문에 신지 부사장은 "TV나 신문에 우리 양조장이 많이 소개되다보니 우리 직원들이 슈퍼에 장을 보러 가도 지역민들이 아는 채 해주신다. 다이세츠슈조를 두고 '우리 사케'라는 표현을 해주실 정도"라며 "그냥 지역의 회사로 보는 게 아니라 이웃으로 받아들여주고 온 마을이 응원해주기에 더 신나게 일할 수 있다"고 말했다.
"코로나로 다른 사케 양조장은 판매량이 줄었겠지만 저희는 판매량이 늘었습니다. 왜냐하면 지역민들이 응원으로 지지해주기 때문이죠. 도쿄에 사케양조장을 내는 것보다 이 지역에 내는 게 더 큰 보람이고 더 큰 만족입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함양뉴스 (최학수PD)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