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 장관이 국회 상임위에 출석했다가 야당 의원들의 요구로 퇴장당하는 매우 이례적인 일이 발생했습니다. 회의장에서 쫓겨난 장관은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이었습니다.
김 장관은 9일 임명 후 처음으로 열린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아래 환노위) 전체회의에 출석했습니다. 이날 김 장관은 환노위에 올라온 노동부 소관 법안 설명을 할 예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시작도 하기 전에 환노위 야당 간사인 더불어민주당 김주영 의원이 "김문수 장관 후보자가 국민들에게 진심으로 사과해야 한다"면서 "후보자는 잘못된 국가관, 역사관, 가치관을 바로잡겠다는 약속이 필요하고, 정치적인 중립을 철저히 견제하겠다는 각오 또한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청문보고서 채택조차 되지 않은 김문수 후보자를 고용노동부 장관으로 인정할 수 없다"면서 "위원장께서는 노동부 장관의 사과 표명을 받아달라. 만약 사과를 거부한다면 장관을 회의장에서 퇴장시켜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더불어민주당 소속인 안호영 환노위원장은 "갈등을 야기할 수 있는 발언들은 조심해서, 충분히 영향을 고려해서 발언하는 것이 공직자의 바른 태도"라며 "퇴장을 하셔서 본인의 그간의 발언에 대해서 다시 한번 진지하게 성찰해 보시기를 권고한다"며 김 장관에게 퇴장을 명령했습니다.
김문수, 우리 선조는 일본 국적 발언 사과 요구에 "더 공부하겠다"
야당 간사가 김 장관의 사과 표명을 요구하고 환노위원장이 퇴장을 명령한 까닭은 지난달 열린 김문수 고용노동부장관 인사청문회에서 나온 "일제시대 선조들의 국적은 일본"이라는 발언 때문입니다.
당시 김 후보자는 더불어민주당 박홍배 의원이 "과거에 1919년은 일제 식민지 시대인데 무슨 나라가 있냐? 라고 말했었는데, 아직도 그렇게 생각하냐?"라고 묻자 "1919년에 일제 식민지였는데 무슨 나라가 있냐? 나라가 없으니까 독립운동을 했지"라고 답했습니다.
박 의원이 "그럼 일제시대에 살았던 우리 선조들의 국적은 모두 일본이었느냐?"라고 재차 묻자 김 후보자는 "일본이지, 그걸 모르냐? 아무리 인사청문회지만 일제시대 때 무슨 한국이 국적이 있었습니까? 나라가 망했는데 무슨 국적이 있어요?"라며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당시 인사청문회에 참석했던 강득구 의원은 "진보와 보수를 떠나서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이 어떻게 국무위원이 될 수 있느냐"라고 했고, 홍준표 대구시장도 자신의 페이스북에 "을사늑약은 원천무효이고 이것을 인정하면 상해 임시정부를 부정하는 것이다. 임정 수립 이전 한국인은 대한제국 국민이었고 수립 이후는 대한민국 국민이다"라는 글을 올렸습니다.
청문보고서 채택 없이 윤석열 대통령에게 임명장을 받고 9일 첫 상임위에 참석한 김 장관은 사과와 퇴장 요구에 대해서 "(국적) 이 부분은 학계에서도 많은 논란이 있고 또 국민들 속에서도 역사 기억이 많이 일치하는 부분도 있지만 다른 부분도 있다"면서 "제 판단에는 제가 혹시 무슨 문제가 있는지 이런 부분을 더 공부해서 말씀을 드리도록 하겠다"고 말했습니다.
한편, 국민의힘 의원들은 김 장관의 퇴장 요구에 반발하며 함께 회의장을 떠났고, 남은 야당 의원들은 204건의 법안을 소위로 각각 회부했습니다.
퇴장은 처음? 경사노위 위원장 때도 퇴장 당한 김문수 장관
김문수 장관의 국회 퇴장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습니다. 김 장관이 경제사회노동위원장으로 있던 지난 2022년 국정감사에서도 퇴장을 당했습니다.
당시 환노위 국감에서 더불어민주당 전용기 의원이 과거 김 위원장이 했던 "윤건영 의원이 종북 본성을 드러내고 있다. 주사파 운동권 출신 윤건영은 반미·반일 민족의 수령님께 충성하고 있다"라는 발언에 대한 입장을 물었습니다.
김 위원장은 "여러 가지 도를 넘는 표현이 있었다면 널리 이해해 달라"고 한 발 물러섰지만, 이어진 윤건영 의원의 "제가 생각과 말과 행동으로 수령님께 충성하고 있다는 생각엔 변함이 없느냐"라는 질문에는 "그런 측면이 있다고 생각한다"며 정정도 사과도 하지 않고 버텼습니다.
야당 의원들은 김 위원장의 발언과 태도에 일제히 사과를 요구했고, 윤 의원은 "애초에 질문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답변을 듣고 나니 피가 거꾸로 솟는 느낌"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날 김 위원장은 "문재인 전 대통령이 신영복 선생을 가장 존경하는 사상가라고 한다면 확실하게 김일성주의자"라고 발언하는 등 극우 보수 성향을 강하게 드러냈습니다. 결국, 민주당 소속 전해철 환노위원장은 김 위원장이 국회를 모욕했다면서 퇴장을 명령했고, 경사노위 국정감사 중지를 선포했습니다.
김 장관은 경사노위원장에 이어 고용노동부 장관에 지명됐지만 국회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막말과 역사관이 문제가 됐습니다. 야당은 지명 철회를 요구했지만 윤 대통령은 강행했고, 국회 인사청문경과보고서 채택 없이 임명된 27번째 장관급 인사가 됐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독립언론 '아이엠피터뉴스'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