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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 초반의 여자 환자가 초등학생 딸과 함께 진료실로 들어왔다. 지방간과 고지혈증 상담을 받기 위해 왔다. "운동이 필요한데요." "직장도 다니고, 둘째도 있고, 시간이 안 나요." "딸이 도와줘야 하겠구나." "남편이 도와줘야 하죠!" 어떤 운동이 제일 하고 싶은지 묻는 질문에 그녀는 뜸도 들이지 않고 '달리기'와 '필라테스'라고 했다.

당뇨조절이 잘 안 되고, 약을 끊으면 고지혈증이 재발해왔던 53세 독거 남자 환자의 경우, 여섯 번째 진료 후에야 그가 나름 먹는 것에는 애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운동을 못 하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금형 제작일을 하고 있는데, 평일엔 저녁 7시 30분에 퇴근하고 토요일도 오후 5시까지 일하느라..."

실은 필자도 지난해 3월 심근경색이 불쑥 찾아온 후에야 운동을 일상적으로 하기 시작했고.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달리기모임 '한노보런~'에 가입하기 전까지는 헬스장 런닝머신만 열심히 타던 초급 러너에 불과했다. 그러나 요즘에는 3평 남짓, 3분 남짓한 진료실 환경에서 약물 처방 중심, 무심한 지시적 교육에서 조금은 벗어나 약간이라도 더 시간 내어서 운동에 대해 얘기 나누려 하고 있다.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달리기모임 한노보런과 함께 달리기대회에 나갔다. 맨 뒷줄 노란모자가 필자.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달리기모임 한노보런과 함께 달리기대회에 나갔다. 맨 뒷줄 노란모자가 필자.
ⓒ 한노보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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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 못 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운동이 필요한 이들이 운동에 나서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국제학술지 'BMC 여성 건강'에 실린 한 연구에서는 규칙적인 운동을 하고자 하는 중년의 여성(40세~62세)에게 부정적 영향을 끼치는 운동방해요인에 대해 알아보았는데, 시간 부족(가정과 직장에서 여성이 지닌 여러 가지 책임과 역할에 기인하는), 야외 운동에 대한 안전문제, 날씨, 여성이 일상생활에 운동을 조직할 수 있는 능력과 성향, 함께 운동할 가족이나 친구의 여부, 운동 경험에서 스스로의 동기부여(즐거움, 성취감 등의 만족감), 육아에서의 사회적 지원 등의 사회환경적 요인을 꼽았다.

규칙적 운동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에 관한 국내의 조사로는 2023년 국민체육생활조사가 있는데, 규칙적인 운동 참여를 위해 우선해야 할 조건으로 64.6%에서 운동 가능시간 증가를 꼽았고, 체육시설 접근성 확대(54.5%), 운동 지출비용의 여유(34.6%) 등의 순이었다. 규칙적 운동을 중단한 이유에 있어서도 운동 가능시간 부족이 가장 많았고, 체육시설 접근성이 낮은 것이 그 다음이었다.

중년여성에서 운동환경과 사회적 지지가 운동행위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지를 연구한 2008년의 어떤 한 연구에서도, '주변에 걸을 수 있는 길, 운동센터'가 있는지, 함께 운동하는 파트너가 있는지, 그리고 운동에 대한 조언, 계획 수립, 경험나누기, 긍정 평가를 해주는 사회적 지지가 있는지가 영향을 주고 있었고, 육아나 가사일과 관련된 지지는 충분히 받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운동할 시간이 없음'을 개인의 핑곗거리로 바라보는 인식, 돌봄 문제를 공동체의 책임으로 이야기하는 것, 기후위기가 운동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도, 걷고 달리기에 안전한 길이 사는 곳에 충분히 확보되어 있는지 묻게 된다.

그래도 잘 운동하려면

그래도 개인적으로 운동 방법을 아는 것 또한 중요하다. "매일 1시간씩 걷는데 살이 안 빠져요"라고 탄식하는 환자들을 흔히 본다. 빠지지 않는 뱃살에는 복합적 요인이 있지만, 대부분 '1~2시간 산보하듯이 천천히 걷는다는 것'이 문제였다. 소파에서 지내는 것보다는 낫지만, 체중감량과 체력향상의 효과를 얻으려면 어느 정도의 운동 강도는 가져야 가야 한다. '운동 강도'는 다치거나 쓰러지는 일 없이 운동하기 위해서, 그리고 효과적, 효율적으로 운동하기 위해서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운동의 강도는 무엇으로 알 수 있을까? 최대산소섭취량이나 젖산염과 같은 과학적인 방법도 있지만, 일상의 운동에서는 흔히 객관적 지표인 '심박수'와 주관적 지표인 운동할 때 느끼는 감정인 '운동자각도'를 사용한다. 가령, 운동의 목표심박수=[(최대심박수-휴식심박수)*0.6] + 휴식심박수로 계산한다. 만 55세인 나의 최대심박수는 (220-나이)인 165회. 충분한 수면 후 침대에서 잰 휴식심박수는 60회, 목표 운동강도를 최대치의 60%~70%로 잡는다면, 나의 목표심박수는 (165-60)*0.6~0.7+60으로 123회~134회인 것이다.

 지난해 심근경색으로 스텐트를 넣은 뒤, 달리기에 빠져 하프 달리기 대회까지 나갔다.
 지난해 심근경색으로 스텐트를 넣은 뒤, 달리기에 빠져 하프 달리기 대회까지 나갔다.
ⓒ 송홍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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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중 심박수', '최대 심박수', '휴식 심박수' 각각은 운동의 강도, 개인의 체력수준, 심장근육의 건강을 반영하므로 운동강도를 설정하는 데 유용하다. 운동자각도는 운동할 때 느끼는 편안함, 힘듦의 정도를 가지고 판단하며, 아무런 장비가 필요 없으면서도 신뢰성 높은 방법이다. 이 방법은 운동하면서 얼마나 편안하고 기분이 좋은지, 아니면 얼마나 힘들어하고 있는지 내 몸과 마음과 숨소리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해준다. 나도 지난해 봄 심근경색으로 스텐트시술을 받고 3개월간의 심장재활과정에서 운동 강도를 정할 때 기준으로 삼았던 것이 '심박수'와 '운동자각도'였다. 그리고 '걷기'를 조깅의 시작(warm up)과 끝(cool down)에 배치하여 심장의 급격한 변화로 인한 사고를 막도록 하였다.

달리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이들에게, 적절한 체중유지와 체력과 심폐지구력을 키우는 것이 목적인 이들에게 '중저강도' 운동을 권장한다. Slow Jogging, 수중에어로빅, 복식 테니스, 시속 16km의 싸이클, 빠르게 걷기 등의 운동이 해당한다. Slow Jogging은 부상의 위험도 적고 크게 힘들다는 느낌이 없어 30분 이상 길게 달릴 수 있다. 최대심박수의 60%~70% 수준인데, 숨이 조금 차지만, 통화하며 운동할 수 있고 친구와 함께 운동하며 대화할 수 있는 정도다. 즐거운 기분으로 운동을 마칠 수 있고, 운동 후 곧바로 집안일을 하는 데 무리가 없어 운동-가사일 양립이 가능하다는 장점도 있다. 지방을 주에너지원으로 사용하므로 체지방감소, 다이어트에 최적인 운동강도이며, 심폐지구력의 기본이 되는 건강증진과 체력향상에 딱 좋은 운동 강도이다. 1회에 30분 이상, 일주일에 최소 2시간 30분 이상 권장하고, 주 5시간까지도 좋다. 심폐지구력을 더욱 향상시키길 원한다면 최대 심박수의 70%~80% 수준인 '중강도' 운동을 권한다. 대화는 가능하지만 힘들어지는 수준이다.

오늘도 나의 진료실 '운동팔이'는 계속된다. 그냥 걷기보다는 빨리 걷기를, 천천히 달리기를, 주 2회 근력운동하기를 권하면서. 간장약과 고지혈증약 대신 Easy running!을 처방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월간 일터 9월호에도 실립니다.이 글을 쓴 송홍석 님은 한노보연 회원으로 내과의사입니다.


#달리기#심혈관질환#심근경색#마라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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