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람의 40대 행적을 띠엄띄엄 살펴보자.
이 시기 그는 한글운동 뿐만 아니라 문화·학계의 중견으로서 폭넓게 활동하였다.
1933년,
1월 '조선문흥회' 창립회에서 간사 맡음.
7월 '조선어철자법 통일안' 검토.
7월 최현배·이희승 등과 휘문고보생 인솔 부여 수학여행,
11월 어머니 별세.
1934년,
5월 '진단학회' 발기인총회 참석.
10월 휘문고보생들 인솔 개성수학여행.
1935년,
1월 조선어표준어 사정위원으로 선임, 소월 김정식추도회에서 추도사.
2월 조선어학회 임시충회에서 박승빈의 한글반대운동에 대한 반박토의.
10월 한글날 기념회 참석.
1936년,
10월 <진단학보> 편집회의 참석, 한글기념회에서 〈훈민정음서〉 낭독.
1937년,
조선총독부에서 관장한 '조선교화단체연합회 조선문예협회' 참석 요청 거절.
6월 조윤제의 <조선시가사감>과 최현배의 <우리말본>출판회 참석.
9월 연희전문에 출장 '조선문학사' 강의.
10월 휘문고보생 인솔 금강산 수학여행, 방송에 출연하여 〈작품에 나타난 송강(松江)의 예술〉, 〈애국문학 시가〉등 강의.
1938년,
3월 휘문고보 교사 사임(조선어 과목이 없어졌기 때문).
4월 최현배 추천으로 연희전문 문과에 출강(주 6시간)
1939년,
2월 문장사 발행 <문장>지의 시조 신인작품 심사위원.
6월 김상용시집 <망향> 출판기념회 축사.
7월 문일평 유저 <호암사화집> 출판기념회 참석.
가람은 49세이던 1939년 8월 그동안 틈틈이 써온 시조를 모아 문장사에서 <가람시조집>을 간행했다. 그리고 9월 출판기념회를 갖고 동료들과 자축하였다. 반응이 좋아서 10월에 2차 출판기념회를 열었다. 그의 첫 저서에 속한다.
<가람시조집>에는 오랫동안 많은 국민이 애송한, 우리 말과 글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시조 <별>이 실렸다.
별
바람이 서늘도 하여 뜰 앞에 나섰더니
서산 머리에 하늘은 구름을 벗어나고
산듯한 초사흘 달이 별과 함께 나왔드라
달은 넘어 가고 별만 서로 반짝인다
저 별은 뉘별이며 내 별 또한 어느 게오
잠자코 호올로 서서 별을 헤어 보노라.
이 책은 300부 한정판으로 감행되고, 1971년 이희승·정인승·김상기·백철·신석정·정병욱·이태극·강한영·신동문·최승범·박재남·고은을 편집위원으로 하여 신구문화사에서 펴낸 <가람문선>에 대부분 실렸다. 또한 그의 제자인 최승범 교수가 1973년 9월 정음사에서 출간한 <가람시조선>에도 실렸다.
<가람시조집>의 발(跋)에는 다음의 대목이 눈길을 끈다.
"시조는 사적(史的)으로 추구한 이, 이론으로 분석한 이, 비평에 기준을 세운 정정한 주석가요, 계몽적으로 보급시킨 이가 바로 가람이다. 시조학이 설 수가 있는 것이고 보면 가람으로서부터 비로소다." 라고 하여, 당시 그의 시조와 지은이의 위상을 보여준다.
<가람시조집>에 실린 시조 중 대표작으로 뽑히는 작품이 <난초>이다. (1)과 (2)를 앞에서 소개하였기에 여기서는 (3)과 (4)를 살펴본다.
난초(3)
오늘도 온종일 두고 비는 줄줄 내린다
꽃이 지던 다시 한 대 피어나며
고적한 나의 마음을 적이 위로하여라
나도 저를 못 잊거니 저도 나를 따르는지
외로 돌아 앉아 책을 앞에 놓아 두고
장장이 넘길 때마다 향을 또한 일어라.
난초(4)
빼어난 가는 잎새 굳은 듯 보드랍고
자주빛 굵은 대공 하얀한 꽃이 벌고
이슬은 구슬이 되어 마디마디 달렸다
본래 그 마음은 깨끗함을 즐겨하여
정한 모래 틈에 뿌리를 서려 두고
미진도 가까이 않고 우로 받아 사느니라. (주석 1)
언제부터인지, 문인 사회에서는, 일석 이희승의 말과 같이 "시조! 하면 가람을 연상하게 되고, 가람! 하면 시조가 앞서게 되는 현상이 나타났다. 실로 가람의 한 생이란 우리 민족의 6, 7백년 언어·생활의 결정인 시조문학의 부흥과 참신한 창작을 위한 일이었다고 말하여도 결코 지나친 일이 아닐 것이다." (주석 2)
가람은 3, 40대에 척박한 총독정치의 폭압 속에서 많은 문인·지식인들이 움츠릴 때에 굽히지 않고 우리 고전문학과 시조를 연구하면서 '난초'의 고고함을 따르고 이를 지켰다. 그가 <가람시조집>의 간행에 앞서 최남선의 <백팔번뇌>(1926), 이은상의 <노산시조집>(1933)이 간행되었다.
우리 시조문학사의 새로운 길을 개척한 가람은 당시의 시조시단에 혁신적인 새바람을 불러 일으켰다. 이 시기에 쓴 <박연폭포>이다.
박연폭포
이제 산에 드니 산에 정이 드는구나
오르고 내리는 길 괴로움을 다 모르고
저절로 산인이 되어 비도 맞아 가노라
이 골 저 골 물을 건너고 또 건너니
발밑에 우는 폭포 백이요 천이로다
박연을 이르고 보니 하나밖에 없어라
봉머리 일던 구름 바람에 다 날리고
바위에 새긴 글발 메이고 이지러지고
다만, 이 흐르는 물이 궂지 아니하도다. (주석 3)
주석
1> <가람문선>, 21쪽.
2> 최승범, <가람시조선>, <가람과 시조>, 165쪽, 정음사, 1973.
3> <가람시선>, 17쪽.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인물열전 - 시조문학의 큰별 가람 이병기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