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에 제사상을 찾아보는 것이 예전만큼 쉽지는 않은 일이다. 전통 방식을 고수하던 세대가 서서히 교체되며 제사를 간소화하거나 아예 없애는 가정도 많아졌기 때문이다. 또한 다양한 종교가 자리 잡으며 지금은 제사 대신 추도식 등으로 대체하는 집도 꽤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제사를 지내는 나의 외할머니는 어느덧 25년 넘게 전통을 이어왔다. 외할머니의 시댁은 원래 기독교 집안이었기 때문에 나름 제사를 늦게 시작한 편이라고 할 수 있다.
시댁이 기독교 집안인 것은 참으로 다행인 일이었다. 안 그래도 고된 시집살이를 한 탓에 손가락이 다 굵어졌는데, 제사상을 차리지 않아도 된다는 건 그나마 수고로움을 덜 수 있었기 때문이다(다만 추도식은 지냈기에 제사상만 아닐 뿐 상을 차려야 하는 건 같았다).
외할머니가 제사를 지내기 시작한 것은 시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였다. 시어머니는 연세가 많아 교회에 발길을 끊은 지 오래되었고, 당신의 아들인 남편(나에게는 외할아버지) 역시 무교인 상태였다.
그러므로 추도식을 지내기 어려운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래서 외할머니는 제사를 시작했고 시어머니가 돌아가신 이후 일 년에 네 번, 빼먹지 않고 제사상을 차렸다.
지금 외할머니의 나이는 만 여든둘. 이젠 아프지 않은 곳을 찾는 게 어려울 정도로 힘들어진 몸이다. 그래서 나는 늘 제사를 만류하고 싶었다. 그 정도 했으면 이제는 조상님들도 이해해 주시지 않겠냐고 말했다.
더군다나 외할머니는 지금까지도 제사상 준비를 직접 하시기 때문에 한 번 상을 차리고 나면 온몸이 쑤셔 잠들기도 어렵다고 하신다. 그런 할머니에게 어찌 제사를 계속 지내자고 말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나는 외손자이기 때문에 제사에 관여할 명분이 없다. 물론 여태까지 제사에 참석한 적도 없다. 그러니 그저 할머니, 할아버지가 당신들 말씀으로 직접 제사를 그만 지내자고 말하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중, 올 추석은 제사를 쉬어간다는 이야기가 들렸다. 나는 할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무슨 일이 있는 것인지 여쭤보았다.
"올해는 제사를 못 지내겠어. 할아버지도 컨디션이 안 좋으시고, 삼촌도 디스크 때문에 움직이지를 못해. 나도 손가락이 아파서 뭘 하기가 힘드네."
할머니가 20년 넘게 지켜온 가문의 연례행사가 처음으로 멈추게 되었다. 가족들의 건강 상태가 좋지 않아서 제사를 지내기 어렵다고 말씀하셨다. 할아버지도 이번엔 쉬자고 하셨단다.
"그래요. 다들 힘든데 쉬셔야지. 그럼, 이제 제사는 안 지내는 거죠?"
할아버지는 만 87세, 할머니는 만 82세. 이제는 제사상 없이, 우리의 마음만으로 추모하여도 충분하지 않겠냐는 것이 내 생각이었다. 하지만 할머니는 그게 아니었다.
"이번에만 쉬고.... 다음엔 해야지. 계속하던 걸 그만두기도 그렇고. 할아버지도 계시니까. 그래도 일 년에 네 번 하던 거 이제는 세 번만 한다 야(웃음)."
할머니는 지금 지내는 제사가 전에 비해 많이 간소화된 거라며 옅은 웃음소리를 내었다. 힘들지만 지금까지 해오던 걸 그만둘 수는 없다고도 했다. 그래도 우리의 조상이고 어른이니까.
내가 이해하기 힘든 어른의 세계가 있는 것이라고 느꼈다. 요즘 젊은 새댁은 시댁에서 제사를 지내자고 하면 이혼 이야기를 꺼낸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모두 옛 문화를 놓아주지 못해 생긴 갈등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나의 방식으로 돌아가신 어른을 기억하고 싶은 것처럼, 할머니도 할머니의 방식으로 그리운 어른에게 안부를 여쭙는 것이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 갈등은 조율하는 것이지, 어느 한쪽이 포기하는 것이 아니다. 수십 년을 한결같이 살아온 어른들에게 포기를 강요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게 어른들의 방식이고 문화이니 말이다.
나는 지금까지 그랬듯 앞으로도 제사를 지낼 생각은 없다. 다만 충분히 기억하고 기도하는 시간은 가지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이제 나의 방식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할머니와는 다른, 하지만 마음만은 같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