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위를 하루 지난 18일 저녁 6시 팔현습지 하식애 앞으로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대구 동구 방촌동 강촌마을 쪽과 달리 금호강 건너 이곳 수성구 팔현마을 쪽 팔현습지는 인공의 조명 하나 없는 곳, 즉 어둠이 지배하는 영역이다. 다른 말로 야생의 영역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조명 하나 없는 어두운 이곳에 땅거미가 질 무렵 사람들은 왜 모인 것일까? 이날 이곳에는 다양한 곳의 시민 여덟 명이 모였다. 이들 중에는 팔현습지 앞 강촌마을 주민도 있었고, 멀리 남구과 수성구에서 온 주민 그리고 전직 교수, 현역 의사와 환경단체 활동가까지 있었다.
수리부엉이를 기다리는 사람들
이들은 보름달이 뜬 이곳에서 마치 추석 선물처럼 돌아온 수리부엉이(관련 기사 :
추석선물처럼 수리부엉이 부부 '팔이'와 '현이'가 돌아왔어요!)를 만나러 온 사람들이다.
필자가 제안한 이른바 '한가위 보름달과 함께 수리부엉이 만나기' 행사에 호응해 자발적으로 찾아온 이들이다. 야생의 존재들은 어둠과 함께 기지개를 켜고 활동을 시작하기 때문에 그 시간에 맞춰 팔현습지에 다시 돌아왔다는 수리부엉이 부부를 만나보러 온 것이다.
이날은 절기상 입추가 훨씬 지난 한가위 바로 다음날로, 가을이 와도 벌써 왔어야 하는 날이지만 너무 무더웠다. 땀이 줄줄 흐르는 한여름 날씨에 바람마저 한 점 없었다.
오후 6시가 조금 지나자 사위는 점점 어두워져 갔다. 구름도 제법 낀 날이라 해는 벌써 구름에 담겼는지 넘어갔는지 알 수 없었고, 그 덕분에 어둠은 벌써 찾아왔다. 땅거미가 내리는 시간. 이 시간이 바로 수리부엉이가 활동을 시작할 시간이다.
이들은 이 시간 마치 기도하는 이들처럼 조용히 서서 귀를 쫑긋 세우고 있었다. 왜냐하면 지난 15일처럼 녀석들이 하식애에서도 시야가 확 트인 바위틈에 머무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날 앉은 그곳엔 수리부엉이 부부는 없었고 주변을 찾아봤지만 이들의 모습은 보이질 않았다. 따라서 이날은 무성한 수풀 사이에 자리를 잡고 잠을 청한 것으로 보였기 때문에 하식애 수목 사이에서 들려오는 녀석들의 울음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수리부엉이는 오랜 습성상 덩치가 큰 암수가 각각 다른 곳에서 잠을 자고 일몰과 함께 잠에서 깨어나 사냥을 나갈 준비를 하게 되는데 그 준비를 위해서 우선 하는 일이 목청을 가다듬고 울음을 우는 것이다. 먼저 수컷이 '우우~~' 울면 그다음 암컷이 따라 운다.
그들의 행동은 운다기 보다는 마치 사랑의 세레나데를 부르는 것처럼 보였다.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고 곧 사냥을 나갈 것을 서로에서 확인하는 것인 동시에 사랑을 확인하는 그 오래된 세레나데.
팔현습지 하식애는 팔이와 현이의 집... 그 앞에로 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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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팔현습지 수리부엉이 부부의 사랑 이야기 금호강 팔현습지의 깃대종이자 명물인 수리부엉이 부부 '팔이'와 '현이'의 지극한 사랑 이야기가 화제다. 우선 그들의 사랑의 하모니 세레나데를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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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동강 수근수근TV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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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리부엉이 모습이 보이지 않더라도 그들이 내는 사랑의 세레나데를 통해 그들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기에 이날 이곳에 모인 이들은 귀를 쫑긋 세우고 그들의 소리에 집중했다. 날이 너무 무더워 기다리기 조금 지쳐갈 무렵 마치 시간 설정이라도 해둔 것처럼 녀석들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묵직한 베이스로 수컷 '팔이'가 먼저 노래를 시작하면 약간 하이톤의 메조소프라노로 암컷 '현이'가 화답한다. 부창부수(夫唱婦隨)라는 사자성어는 딱 이런 모습을 이르는 말일 것이다. 녀석들은 한참을 울다가 '팔이'가 먼저 훨훨 날아갔다. '현이'는 홀로 남아 잠시 더 울다가 역시 '팔이'가 날아간 방향으로 날아갔다. 역시 부창부수(夫唱婦隨).
바로 이것이 18일 저녁 6시 45분에서 7시 사이 금호강 팔현습지 하식애에서 일어난 일이다. 이것은 지난해 6월부터 이들이 목격된 이후 계속해서 그곳에서 목격되고 있는 일이다. 이 때문에 이곳 팔현습지 하식애는 이들 수리부엉이 부부 '팔이'와 '현이'의 주 서식처 즉 이들 부부의 집이라 볼 수밖에 없다는 견해다.
지난해 팔현습지를 다녀간 바 있는 꾸룩새연구소(수리부엉이의 다른 애칭) 임봉희 부소장은 잠시 자리를 비운 수리부엉이 부부의 안부를 걱정하는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수리부엉이의 습성을 이야기하면서 녀석들이 반드시 돌아올 것이라 확인해주었다.
"파주 꾸룩새연구소 뒷산에서도 왕왕 목격한 바이지만 수리부엉이는 그들의 서식처를 잠시 비우기도 한다. 잠시 떠났다가 다시 그곳으로 돌아온다. 지금 녀석들이 팔현습지를 잠시 떠났더라도 팔현습지로 반드시 돌아올 것이다. 이들이 돌아오면 이곳 팔현습지는 그들의 주 서식처임이 분명하다."
그런데 환경부(낙동강유역환경청)는 이렇게 확실한 수리부엉이 부부의 집인 팔현습지 하식애 절벽 바로 아래로 높이 8미터에 1.5킬로미터 길이의 교량형 탐방로 공사를 강행하려 한다. "아니 환경부가 왜?" 하는 질문이 터져나오는 이유다.
'금호강 난개발 저지 대구경북공동대책위원회' 박호석 대표는 "도대체 이들이 환경부가 맞나? 환경부가 도대체 왜 이런 사업을 한다는 것인가? 환경부의 탈을 쓴 국토파괴부 즉 국토부의 이중대라 해야 하는 거 아닌가"라면서 환경부를 정면 비판한다.
비슷한 주장은 이날 수리부엉이 탐조 행사에 온 이들 사이에서도 이구동성 터져나왔다. 이날 함께한 현역 의사 신분인 박세형 선생도 이곳에서 벌이는 탐방로 공사를 다음과 같이 비판했다.
"이번에 수리부엉이가 반년 정도 떠났다가 돌아왔다. 지난겨울부터 봄까지 새 사진을 찍는 사람들 열 분 정도 매일 상주하면서 너무 소란을 피우니 그 스트레스를 못 이기고 녀석들이 피신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떠났다가 이제야 겨우 돌아왔는데 이 앞으로 환경부가 8미터 높이의 도로를 내버리면 (탐방객들로 인해) 더 소란스러운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그것은 수리부엉이 부부를 내쫓는 것과 다름없다. 이번에 증명이 되지 않았나. 그러니 환경부가 이곳에 탐방로를 건설해선 절대 안 된다."
한가위 보름달과 함께 수리부엉이 날다
이날 역시 함께 참가한 <한국식물생태보감>의 저자인 생태학자 김종원 전 계명대 교수 또한 다음과 같이 팔현습지 탐방로 공사를 강하게 비판했다.
"이 앞으로 탐방로가 지나가면 문제점이 뭐냐면 이 넓은 서식처에 안방에 길을 내게 된다는 거다. 그러면 부부생활이 불가능하다. 안방에 길을 내지 않고 안방 앞에 길을 내도 불안해서 새끼를 못 만든다. 그런데 스트레스 받는 저런 한가운데로 보도교를 낸다는 것은 이 서식처를 그냥 망치는 것이고 특히 핵심 구간을 통과하게 하는 것은 '생태 테러'라고 해도 그 표현이 부족하다."
이날 모인 이들은 수리부엉이가 날아가고 그 자리서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팔현습지를 돌아 나왔다. 그 방향이 마침 수리부엉이가 날아간 쪽이다. 강촌햇살교를 건너오자 저 멀리서 붉은빛이 돌더니 희멀건한 물체가 아파트 빌딩 너머로 올라왔다.
한가위 보름달이었다. 비록 한가위가 하루 지나긴 했지만 역시 보름달은 그 형체 그대로였다. 그 너머로 수리부엉이가 날아갔다.
덧붙이는 글 | 기자는 대구환경운동연합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