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는 Planet B(제2의 지구)가 없기에, Plan B(플랜 B)또한 없다." 기후위기와 관련된 유명한 표어 중 하나입니다. 끊임없이 생산하고 끊임없이 성장할 것을 강요하는 사회 속에서 우리는 어떤 플랜 A를 선택해야 할까요? 유일하고 유한한 지구를 함께 살아가는 행성으로 만들기 위한 지구를 위한 플랜 A를 제안합니다.[기자말] |
오늘 14:00 폭염경보. 야외 활동을 자제하세요.
9월 18일 추석 연휴, 재난 문자가 왔다. 하루에도 몇 번씩 재난 문자가 도착하는 세상이 되어버려 모두가 재난 문자에 덜 반응하지만, 9월 중순을 넘겨 도착한 폭염 경보는 상황이 좀 달랐다. 그건 그냥 넘겨버리기에는 피부에 당장 와닿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9월 말로 넘어서는 지금도 에어컨을 켜고 자야 할 때도 있다. 9월 열대야 일수가 최고치를 찍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폭염으로 온열질환자도 늘어났다. 그린피스의 조사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도시별 평균 폭염일수는 51.08일로, 20년 전(2004~2013)의 20.96일보다 2배 이상 증가했다. 폭염이 한풀 꺾인다는 뉴스와 함께 '가을장마'가 시작된다는 소식이 보도되었다. 이건 정말로 재난이 아닐 수 없는 일이다.
폭염 경보를 보는데, 얼마 전 지인과 이야기를 나눈 것이 생각났다. 에어컨이 지구 온난화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아는 지인은 올해가 오기 전까지는 잘 때 에어컨을 틀고 자지 않았다. 그러나 올해 날씨가 견딜 수 없이 더워졌기에 어느 날부터 신념을 꺾고 에어컨을 틀고 잘 수밖에 없었다. 처음으로 자기 전에 에어컨을 틀며, 지인은 슬펐다고 답했다.
슬픔. 이 감정은 아마 많은 사람들이 기후위기라는 도무지 해결할 수 없을 것 같은 거대한 현실을 마주할 때 느끼는 감정일 것이다. 지구라는 한 공간에 사는 모든 사람은 기후위기라는 문제 앞에서 피해자가 될 수밖에 없고, 피해자가 됨과 동시에 가해자가 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였다.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하지만, 생각보다 최선을 다해 환경을 보호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 남들보다 시간적으로나 물질적으로 여유가 없으면 더 그렇다. 우리가 모두 피해자이자 가해자인 한 그렇다.
플라스틱을 사용하지 않으려고 해도,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은 작은 부분까지 조각조각 모두 플라스틱으로 되어있고, 사람을 죽이는 더운 날씨는 선풍기만으로 견디기 어려워졌다. 동물의 권리와 육식으로 인한 탄소배출을 고민하며 채식을 선택한 사람은 아주 자주, 아무것도 먹을 것이 없는 메뉴판을 식당에서 받아보게 된다.
살아간다는 것은 쓰레기를 만드는 과정에 불과한 것은 아닌지, 매일 호흡하고, 무엇인가 먹고, 어디에선가 자고, 이동하고, 즐긴다는 것은 죄를 짓는 과정이 아닐지 때때로 의심스럽다. 기후위기에 대한 많은 대화가 "인간이 미안해"와 같은 자조 섞인 대사로 끝나는 이유도 같다. 우리는 모두 일정 부분에서 기후위기라는 문제를 바라볼 때 슬픔을 느낀다.
피해자이기에 가해자가 되었다
어떻게 하면 "인간이 미안해"라는 말보다 좀 더 나은 대화를 나눌 수 있을까. 다시 피해자이기에 가해자가 되었다는 표현으로 돌아가 보자. 이 이야기는 사실 기후위기 문제에서 처음 나온 말은 아니다.
1968년, 미국 엔터프라이즈호 앞에서 반전 운동가 오다 마코토는 베트남 전쟁에 파병된 미군들에게 탈영을 종용하는 방송을 하고, 탈영을 돕겠다는 현수막을 펼쳤다. 1년 전 그는 실제 4명의 미군 탈영병의 여권을 위조해 망명을 돕는 데 성공하기도 했다.
먼 훗날 그는 책에 자신의 경험담과 함께 이런 말을 썼다. 참전군인들은 피해자가 되었기에 가해자가 되었다고. 그래서 가해자가 되지 않는 방법은 피해자가 되지 않는 것이라고. 피해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 해야 할 것은 간단하다. 전쟁에 끌려가지 않으면 된다. 전쟁에 끌려가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전쟁을 일으키는 사회를 바꾸면 된다. 기후위기도 똑같다.
우리는 너무 많은 시간 동안 우리의 가해자성에 대해 이야기해왔다. 오늘도 플라스틱을 써버린 나, 최장기간 길어진 폭염 앞에 결국 에어컨을 틀어버린 나, 지각할 위기에 놓여 대중교통이 아닌 택시를 타버린 나, 채식 메뉴가 하나도 없는 식당에 가버려서 고기를 먹어버린 나. 이런 사실을 지적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나의 행동이 기후위기를 어떻게 부추기는지 깨닫는 것은 많은 변화를 불러오는 까닭이다. 원래 작은 것에서부터 세상을 보는 시야는 바뀌기 마련이다.
그러나 그것으로만 끝난다면 지금의 기후위기를 막을 수 없다. 우리는 모두 사회에 살고 있고, 사회는 수많은 시스템의 집합이며, 그 시스템은 우리가 어떤 것을 선택하고 어떤 것을 선택하지 않는지를 결정하는데 아주 큰 영향을 미친다. 이제 우리는 우리 내면의 가해자성을 인정하는 것을 넘어, 어떻게 애초에 피해자가 되지 않을지 고민해야 한다.
왜 세상은 점점 뜨거워지고 있는가? 왜 모든 것은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지고 있는가? 왜 필요하지 않은 것들이 만들어지고, 또 버려지는가? 우리는 왜 빠르고 많은 것을 파괴하는 사회를 느리지만 모두가 행복한 사회보다 중요한 것으로 여기고 있나? 피해자가 되지 않는 길을 찾은 여정은 이런 질문을 던지는 여정이다.
GDP 부작용 청구서
9월 19일, 폭염 경보가 울린 다음 날이자 추석 연휴가 지난 다음 날, 그린피스는 신촌역에 대형 LED 스크린을 설치했다. 스크린 속에는 불타오르는 지구가 재생되고 있었다. 그 앞에는 5m 길이의 긴 영수증이 펼쳐졌다. "GDP 부작용 청구서", 영수증의 제목이었다.
GDP는 '국내총생산'이라는 사전적 의미를 넘어, 경제의 질이 아닌 양만을 측정하는 대표적인 지표라는 상징을 가진다. 그래서 기후위기 대응이나 사회 구성원의 행복, 평등과 같은 다른 가치를 충분히 주목하지 못한다. 영수증의 내역 부분에는 경제의 질을 도외시하는 사회에서 나타난 부작용들이 적혔다. 이를테면 "폭염으로 인한 전기 요금 부담 폭증"와 같은 것들이다.
불타오르는 지구가 지금의 세상을 반영한다면, 영수증에 적힌 문구는 우리가 어떤 피해를 보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청구서를 제출하는 퍼포먼스는 피해자가 되지 않기 위해 어떤 것을 해야 할지 고민하는 과정이라고도 볼 수 있다. 환경 단체인 그린피스가 경제라는 이질적인 것들 끌고 와서 퍼포먼스까지 하는 이유가 의아할 수 있지만, 우리가 어떤 피해를 보고 있고,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보는 과정에서 경제라는 키워드는 필수적인 고려 사항이 되어야 한다. 경제의 양이 끊임없이 팽창해야 한다는 믿음은 기후위기라는 부작용을 낳았고, 그 속에 사는 사람들을 소진되게 했다.
가장 긴 시간 동안 지속되는 폭염 앞에서 그린피스는 경제의 팽창이 아닌 좋은 삶과 기후위기 대응에 투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이미 뉴질랜드 등 여러 나라에서 '웰빙 예산제'라는 이름으로 시행하고 있는 제도로 나타나고 있기도 하다. 우리의 삶을 구원하는 길이 지구를 구원하는 길이 될 수도 있다는 메시지는 슬픔과 비관을 넘어설 수 있는 또 하나의 희망적 방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원래 거대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그래도 세상은 느리지만 바뀔 것'이라는 낙관도 필요한 까닭이다.
우리가 기후위기 시대의 피해자이자 가해자라는 사실을 정확하게 짚는 과정도 이러한 과정의 부분이다. 기후위기가 보통 좌절감과 슬픔의 곁에 서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더라도, 우리의 삶이 나아지는 길이 지구를 구하는 일임을 깨닫게 되면 그 과정이 마냥 슬프기만 한 것으로 남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 모두 지구와 우리 스스로에게 가해자가 되지 말자. 그러기 위해 우리 모두 피해자가 되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