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여기 서울 한복판에서 '공동육아'라는 이름으로, 서로 돌봄하는 어린이집 협동조합이 있습니다. 바로 서울 마포구 성산동에 있는 참나무 어린이집입니다. 참나무 어린이집에서 아이를 키운 부모들이 공동육아의 살이와 공동체의 복원을 이야기 하려 합니다. 이 글은 참나무어린이집의 부모 조합원, 총총이가 쓴 글입니다. 총총이(김세희)는 7세방 엄마입니다. [기자말] |
"망했어. 우리 이제 어떡해."
아이가 돌을 넘겼을 즈음, 나는 남편을 붙잡고 흐느꼈다. 아이는 야생동물로 빙의한 듯 깨어 있는 시간 내내 걷고 뛰어다녔고, 엄마인 내가 그 뒤를 쫓아다니는 일은 믿을 수 없을 만큼 힘들었다.
남편도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말했다.
"이건 종신형이야. 종신육아형..."
결혼 뒤 아이는 생각지 못하게 빨리 찾아왔다. 마음의 준비도 되어 있지 않았고, 일도 바빠지던 시기여서 여유가 없었다. 게다가 양가 부모님들은 모두 멀리 사신다. 프리랜서인 내가 평일에 아이를 돌보고, 주말이면 남편에게 넘겼다.
아이를 데리고 놀이터나 공원에서 멍하니 죽치고 있다 보면, 내가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힘들었다.
입시 준비하던 고등학생 때부터 당연한 듯 올라타서 달려만 왔던 트레드밀에서 강제로 튕겨져 나온 기분이었다. 누구보다 성실히 달려왔건만 갑자기 공원에서 하루종일 죽치는 신세가 된 것이다. 자괴감, 상실감에 시달렸다.
나는 집에서 일을 했기 때문에 주말이면 남편에게 아이를 데리고 나가라고 했다. 어린 아이를 데리고 마땅히 시간 보낼 곳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내 사정이 급했고 평일에 일 못한 게 억울했다. 점점 날선 대화가 오갔다. 어떻게 해야 하지. 답을 알 수 없었다.
주말에도 따로 만나는 어린이집이 있다고?
공동육아어린이집 등원 설명회에 참석했을 때, 그곳에 아이를 보내고 있는 한 아빠가 말했다.
"여기 오시면 주말에 심심할 일은 없을 겁니다. 행사가 많아요."
옆에서도 거들었다.
"일정 없는 주말이 없을 걸요. 킥킥."
우리에겐 참 반가운 말이었다. 남편은 특히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좋아한다. '이제 주말에 갈 곳이 없다고 하진 않겠군.'
이때만 해도 나는 꿩먹고 알먹고, 뭐 그럴 줄 알았다. '트레드밀로 복귀할 수 있겠어!' 그렇게 아이가 세 살이 되던 봄에 우리는 협동조합 어린이집이라는 곳에 발을 들여놓았다.
이때만 해도 나는 공동육아어린이집을 '외주'의 개념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나 자신은 아무것도 변하지 않고, 아무것도 뺏기지 않고, 좋은 점만 누릴 줄 알았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물에 젖지 않고 강을 건너려 했던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밤늦은 시간까지 회의가 이어졌고, 이런저런 조합원 교육에도 참석해야 했다. 설상가상으로 코로나가 심해지면서 밤마다 조를 짜서 교구 소독까지 했다. 나는 내심 생각했다.
'혹을 떼려다 더 붙였나 봐, 흑흑.'
좋은 점들은 더 은근했다. 하지만 정확히 내가 필요로 하던 것들이었다. 다른 부모들이 아이들 키우는 모습을 옆에서 관찰하는 것은 큰 배움이 되었다. 발달상 궁금한 점들은 윗방 아마들에게 물어볼 수 있었다.
나보다 더 단단한 시선으로 아이를 바라보는 선생님들의 존재란 또 얼마나 든든한지. 불안, 걱정에 걸려 넘어지지 않으니 아이를 편하게 대할 수 있었다. 다양한 관점을 가진 어른들의 존재는 양육자뿐 아니라 아이에게도 꼭 필요한 일이라는 걸 절감했다.
스승의 날 앞두고 어린이집 꾸미기, 방모임 끝나고 마시는 맥주, 이런저런 소소한 행사들. 그러다 보니 마음에 맞는 사람들, 닮고 싶은 사람들이 생겼다.
물에 젖지 않고 강을 건너려 기를 쓰던 나는, 그들과 하루 이틀 관계를 쌓아가며 점차 어린이집 생활에 젖어들었다. 그러다 본격적으로 강물에 빠지는 일이 생겼다.
흠뻑 젖었다... 어린이집 왔다가 마을도서관 지킴이 된 썰
현재 우리 가족이 속해 있는 협동조합 어린이집은 역사가 20년이다. 그들은 참 대단한 사람들이었던 듯하다.
어린이집에 이어 초등방과후 과정도 만들었고(현재 마포구 우리동네키움센터 1호점으로 운영중이다), 그것도 모자라 마을 주민들과 힘을 합쳐 '와글와글작은도서관'이라는 비영리 민간도서관도 만들었다.
이 작은도서관이 2021년 폐관 위기에 처했다. 그 소식을 들은 어린이집 엄마들 몇 명이 직접 운영을 맡겠다고 나섰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수지가 맞지 않았다. 게다가 책임이 너무 무거웠다. 도서관은 협동조합과 관련이 없는 독자적 기관이었다. 지나가던 사람 누구나 올 수 있는 곳. 동시에 재정관리는 철저하게 해야 했고, 무엇보다 날마다 꼬박꼬박 문을 열고 공간을 지켜야 했다.
운영은 자원활동으로 꾸린다 해도, 임대료와 전기세 등을 내기 위한 최소한의 수익은 꼭 발생시켜야 했다. 환경도 좋지 않았다. 10년 전에 비해 동네에 아이들 수가 절대적으로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이용자도 적고 수익도 적고, 곧 문을 닫을 형편임은 빤했다. 그럼에도 나는 어느 날 밤, 운영진 회의에 앉아 있는 나를 발견했다. 이 대책없이 용감하고 뜨거운 사람들을 모른 체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와글와글작은도서관'은 결론적으로 2023년 문을 닫았다. 하지만 문 닫기 전 그 2년간, 나는 일주일에 한번 도서관에 출근해 아이들을 맞았다. 신간도서를 주문하고 관리했고, 독서지도사 선생님, 운동 선생님을 섭외해서 수업을 했다. 동네를 오갈 때 반가운 얼굴로 인사하는 아이들이 늘어났다.
마지막 해, 와글와글작은도서관은 조용한 날이 많았다. 그런 오후에 빈 도서관을 지키고 있을 때 벽에 새겨진 아이들의 이름을 가만히 들여다 봤다.
이곳이 어디인가, 나는 어쩌다 이 시간에 이곳에 있을까, 불시착한 기분을 느꼈다. '공동육아어린이집 왔다가 마을도서관 지킴이 된 썰' 같은 제목을 떠올리며 혼자 웃기도 했다.
이런 나의 경험이 사회에 전달될 수 있을까. 어떤 맥락으로 전달될 수 있을까. 나는 비장한 뜻을 품고 도서관 운영에 참여한 게 아니었고, 많은 기여를 하지도 않았다. 비상업적인 공공장소, 마을공동체를 지키려는 발버둥이라고 하기엔 뜨뜻미지근했다. 그러면서도 계속 도서관에 나가 아이들을 맞았다.
나는 원래 말이 안 되는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다. 하지만 어쩌겠나. 생각해보면 어린이야말로 '다른 논리'로 움직이는 존재다. 어느새 그 논리에 익숙해져버린 것인지도 모른다.
트레드밀에 복귀하기는커녕, 완전히 튕겨져 나가서 불시착한 것만 같은 날들. 커리어가 될 수 없는 시간, 뭐라고 의미화하기 미묘한 시간. 그러나 성인이 된 이후 어느 때보다도 많은 신체적 감각과 우정이 교차했던 날들이었다.
그저 달리는 것 말고 더 중요한 것, 내게는 '이웃'이었다
세 살에 공동육아어린이집에 입소한 아이는 어느덧 일곱 살이 되었다. 어느덧 내년에 다닐 초등학교를 궁금해 한다. 최근에는 혼자서 샤워할 수 있게 되었고, 이치에 맞는 말도 곧잘 하게 되었다.
아이가 자라는 사이, 내 곁에는 가까운 사람들이 많이 생겼다. 가끔 이 사람들을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다. 친구나 지인들에게 '우리 어린이집 엄마아빠'라고 칭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 그러나 가족만큼이나 많은 시간과 경험을 공유하는 사람들.
자주 보면서도 내면의 안부가 궁금한 사람들. 이 글을 쓰는 지금, 어쩌면 오래전 실종된 '이웃'이라는 호칭이 우리 관계를 칭하기에 가장 어울리는 듯하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이들과 주말에 공원에 간다. 이제는 즐거운 마음으로.
청소년기부터 타고 있던 트레드밀, 그런데 나는 이걸 왜 타고 있는지 의심해본 적이 없다. 더 열심히, 더 잘타고 싶었을 뿐이다. 지금도 그런 마음은 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그 속도와 방향에 조금은 의문을 품게 됐다.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을 손실로 느끼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그 점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 같다. 정부의 정책에서도 아이가 부모에게 손실이라고 보는 입장이 읽힌다. 단적으로, 교육부가 야심차게 빌어붙인 '늘봄교실'은 부모가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을 주지 않는다.
그저 아이 돌보는 '손실'을 줄여주겠다는, 트레드밀 위를 달리는 데 육아가 '방해'가 되지는 않게 만들어주겠다는 취지의 정책이다. 하지만 함께 하는 시간이 기쁨이 아니라면 우리는 왜 아이를 낳고 키워야 할까. 이런 사회 분위기 속에서 점점 아이를 낳지 않는 건 당연한 일이다.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이 감옥이 아니라 인생의 한 시기에 누리는 선물이 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나의 경우에는 '이웃'이었다.
전문적이고 헌신적인 교사들, 뜻을 같이하는 양육공동체. 이런 숲과 같은 생태계 안에서 육아는 뜻밖의 감각과 장소로 나를 이끌어주는 경험이 된다.
정부가 시야를 넓혀 이런 생태계를 조성하는 일에 관심을 가질 수는 없을까. 이는 양육자들만을 위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하구의 다양성을 걱정할 때 나는 나 자신의 다양성을, 나의 가장 선하고 활기 있는 부분이 무자비한 사용의 논리에 뒤덮여버리는 상황을 걱정하는 것이다. 새에 대해 걱정할 때는 나의 모든 자아가 멸종될까 봐 걱정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아무도 이 탁한 강물의 가치를 알아봐주지 않을까 봐 걱정할 때는 언젠가 나의 쓸모없는 부분과 내가 가진 미스터리, 나의 깊이를 빼앗길까 봐 걱정하는 것이기도 하다."
-제니 오델, <아무것도 하지 않는 법>, 필로우, 2021.
아이들은 우리에게 상기시킨다. 우리는 모두 생의 첫 몇 년간 압도적으로 취약한 존재였다는 걸. 터무니없이 약하고 느리며 돌봄이 필요한 존재였다는 것을.
그러니 아이가 사라질까봐 걱정하는 것은 한국 사회에서 경제적 논리가 힘을 쓰지 못하는 부분, 즉 취약하고 느리고 비이성적인 부분이 완전히 없어질까봐 걱정하는 것이기도 하다. 가치를 매길 수 없는 부분은 사라지고 매끈한 아스팔트로 뒤덮인 빌딩숲만 남을까봐 걱정하는 것이다.
우리 사회가 규정하는 인간이란 실제 인간의 아주 작은 부분일 뿐이며, 생산성과 효율성이라는 트레드밀의 방향과 속도 말고 더 중요한 것이 존재한다는 것, 그것이 이웃과 친밀함을 나누는 행복한 삶이라는 것.
나는 이 사실을 공동육아어린이집에서 배웠다.
['와글와글 공동육아' 연재 읽기]
①아버지와 다르게 살려고 여길 선택했습니다 https://omn.kr/2aaoc
②아이들 안 반기는 세상, 근데 여기는 좀 다르네요 https://omn.kr/2abm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