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주 시인이 세상을 떠난 지 올해로 딱 30년이 되었다.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이라고 노래한 시인의 바람대로, 우리는 손을 잡고 함께 걸어 온 것일까. 30년이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김남주 정신이 필요하다면 어떤 이유에서일까. 지금 여기에서 김남주가 다시 살아 서 있는 모습을 그려 본다. 24인의 문학인들과 활동가들이 2024년의 한국 사회를 짚어 보며, "지금 이곳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고자 한다.[편집자말] |
몇 달 전, 25년 전 시작된 어떤 활동의 기억을 나누자고 열 명 남짓한 사람들이 모였다. 지금은 중단되었지만 저마다의 삶으로 이어지는 활동이었다. 옛 사진을 돌려보며 서로 가진 기억을 맞추다가 '죽창가' 얘기가 나왔다. 누군가 죽창가를 잘 부른 사람으로 나를 기억하고 있었다.
이 두메는 날라와 더불어... 녹두꽃이 되자 하네... 다시 한 번 이 고을은 반란이 되자 하네... 청송녹죽 가슴에 꽂히는 죽창이 되자 하네...
김남주의 시에 곡을 붙인, 원래 제목도 '노래'인 노래였다. 청-송-녹-죽의 푸름을 끝까지 벼려 죽창이 되겠다는 듯 마음으로 부른, 내가 좋아하던 노래였다. 그걸 기억해 준다니 고마운 마음까지 들었다.
그런데 동시에 꺼림칙한 기분이 들었다. 죽창가의 연관검색어는 김남주보다 조국이고, 어떤 세대와 진영을 떠올리게 하는 노래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죽창가를 좋아했던 오래 전의 내가 그리 반갑지 않았다. 이 글의 청탁 연락을 받았을 때 반가웠던 건, 그래서 좀 모순적이었다.
"나는 소위 사회주의자인데"
나는 김남주를 대학 동아리방의 노래책에서 노래들로 먼저 알았다. 한 선배가 책을 선물하겠다며 책방에 데려갔을 때, 그해 출간된 유고시집 <나와 함께 모든 노래가 사라진다면>을 집어 들었다.
그의 시는 대체로 서늘했다. 역사와 현실에 격분할 때도 그는 화를 내기보다 차라리 심장을 멈춰 세울 듯 냉정했다. 과녁을 겨누듯, 한가운데를 뚫고야 말겠다는 의지를 읽었다. 옥중에서 쓴 시들은 내게 주어진 시간이 내가 모르는 어떤 이들의 고난에 기대고 있음을 일깨웠고, 그가 스스로 몰아세우는 날카로운 질문과 후회들은 내 것처럼 갖고 싶었다.
김남주가 자신을 시인이 아니라 전사라 말했던 것처럼, 나는 그의 시보다 스스로를 혁명가로 부르는 어떤 사람을 동경했다. 김남주의 30주기를 새겨보자는 연재에 글 자리를 제안받았을 때 나는 내 안에 담아둔 혁명의 꿈을 들킨 느낌이었다. 하지만 설레는 마음과는 조금 달랐다.
그 시절 '혁명'은 이미 철 지난 것으로 찾아왔다. '두메'와 같이 사라지는 말들, '반란'과 같이 사라질 수 없는 말들 사이를 진동하는 것이었다. 소비에트연방이 해체되었다거나 김영삼이 대통령이 되었다는 사실이 더 이상 '혁명'은 유효한 목표가 될 수 없다는 근거로 제시되었다.
'혁명'은 내가 가져보지도 못하고 잃어버린 것이었다. 한편으로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말하는 이들도 있었다. 하던 대로 하면 될 것처럼, 앞선 이들이 가던 길로 가면 될 것처럼. 그런 말에 고개가 끄덕여지지는 않았다.
"나는 더 이상 글을 쓰지 않을 생각이오. 나는 소위 사회주의자인데, 이제까지 내가 말해온 사회주의는 어디 하늘의 뜬구름 속이나 몽상가들의 잠꼬대 속에 들어 있는 것이 아니라 예컨대 소련, 예컨대 동독, 이런 것들이었소." (김남주, <나와 함께 모든 노래가 사라진다면> 초판, 226쪽)
유고시집 발문을 쓴 김형수가 전한 이야기다. 나는 김남주에게서 이 시절을 통과하는 정직함을 배웠다. 서럽고 남루하고 부끄러운 것에서 새로운 시대가 태어나기를 바라며.
미래를 열어놓는 일
산은 무너지고 이제 오를 산이 없다 한다
깃발은 내려지고 이제 우러러볼 별이 없다 한다
동상은 파괴되고 이제 부를 이름이 없다 한다
- '노동의 대지에 뿌리를 내리고' 중
"기고만장해서 환호하는 자본가의 검은 손들"과 "그 손을 맞잡고 승리의 샴페인을 터뜨리는 패자들의 의기양양한 얼굴들"을 지나 "기가 죽었는지 어처구니가 없었는지 / 노동과 투쟁의 어제를 입술에 깨물고 우두커니 서 있는 낯익은 사람들"을 응시하며 시인은 "애증의 협곡에서 가슴을 펴고 눈을 부릅떴다".
이 시는 1992년 창간한 <이론>의 축시였고 특집 주제는 "마르크스주의의 '위기'와 현재성"이었다. 자신이 말해온 것들을 더이상 말할 수 없게 됐더라도, 미래를 봉쇄할 권한이 자신에게 없음을 그는 알았을 것이다.
"노동의 대지에 뿌리를 내린 투쟁과 승리의 깃발이 나부끼게 하자" 김남주는 미래를 남기고 떠났다. 충분한 언어를 남기지는 않았다. 그의 시에 흐르는 땅과 흙의 냄새, 노동하는 몸의 불뚝거리는 근육 같은 것을 나는 좋아했지만, 그의 시에 담긴 근육은 언제나 남성의 것이었다. 그가 늘 가까이 두었던 가난의 풍경에서도 여성은 '몸을 팔아야 하는' 부조리의 증거로만 등장했다.
어느새 그와 꽤나 멀어졌음을 오래전 시집을 다시 읽으며 깨달았다. 그러나 그에게서 배워야 할 것이 무엇인지는 더욱 분명해졌다. 말할 수 없음과 말해야 함 사이에서 흔들리며 그가 보낸 시간은 '혁명'이 모두의 것이 될 수 있도록, 미래가 더 열린 시간이 될 수 있도록 만들려는 또 다른 투쟁이었다.
노동을, 힘을, 움직임을, 여성의, 장애인의, 이주민의 것으로 읽어낼수록 노동의 대지는 얼마나 넓어질지, 우리가 결국 땅과 물에 기대 잠시 머무르는 존재임을 잊지 않는다면 그 뿌리는 얼마나 깊게 내릴 수 있을지, 서로 엮으며 바람의 방향을 맞출수록 깃발은 얼마나 크게 펄럭일지, 더 많은 미래를 열어놓는 일. 혁명은 그렇게 이어지는 역사일 것이다.
가자, 체제전환
올해 초 전태일재단과 <조선일보>가 협업한 기획연재가 논란이 됐다. 여러 문제 중 가장 심각한 것은 전태일 정신을 '낮은 곳을 향한 나눔과 실천'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전태일은 약자를 보호하는 강자를 자처한 적이 없다. 전태일은 우리가 모두 동등한 사람임을 일깨우며 평평한 땅을 만들려고 했다.
오늘 하루 일 못 나가면 일터에서 쫓겨나고
다음날부터는 삼시 세때가 걱정인 사람들
이들이 물불 가리지 않고 산을 기어오름은
...
여차하면 아예 통째로 산을 무너뜨려
울뚝불뚝 솟은 데를 깎아내려 골짜기를 메우고
평지를 이루고자 함일지도 모르리라 층하 없이
- '마의 산' 중
전태일 정신을 <조선일보>가 말할 수 있게 된 상황은 전태일재단만 만든 것이 아니다. 민주노조운동에서 전태일 정신이 그만큼 희미해졌기 때문이기도 하며, 전태일 정신이 노동운동의 것이기만 한 것처럼 여기는 분절화된 운동의 결과이기도 하다.
체제전환운동 조직위원회는 11월 9일 전국노동자대회 사전집회로 '전태일 정신 평등을 향해, 가자! 체제전환' 집회를 연다.
누군가 앞장서고 누군가 가진 것을 내려놓는 것이 아니라 불평등을 함께 넘어서려고 할 때 해방의 약속이 시작된다. 전태일 정신은 평등 정신이다. 지금 전태일 정신은 고용허가제 폐지를, 딥페이크 강력 처벌을, 차별금지법 제정을, 팔레스타인 해방을 요구하는 목소리와 만난다. 이런 운동들이 서로의 미래가 되어주려 할 때, 모두의 미래가 더욱 크게 열릴 것이다.
체제전환운동을 함께 하자고 하면 돌아오는 반응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사회주의로 가자는 거냐 물으며 고개 젓거나, 사회주의를 말하지 않다니 이미 글렀다고 훈수 놓는다. 목적지에 이름 붙이는 일보다 길 내는 일이 운동이다. 윤석열 퇴진 요구에 갇힐 수 없는, 우리 스스로의 해방을 위한 요구들이 더욱 크게 터져 나올 때 세상을 바꿀 수 있다.
노래는, 역사는
2019년 어느 날 죽창가가 느닷없이 불려 나왔을 때 싫은 마음이 들었던 것은 죽창가를 부른 이들의 문제가 아니었다. 죽창가에 담긴 동학의 역사는 외세뿐만 아니라 조선의 지배계급에도 맞서는 항거였다. 만민이 평등하다는 신념으로 새 세상을 일구려는 봉기였다. 집권 세력이 된 이들이 반식민주의를 지우며 부를 '반일' 노래는 아니었다. 그러나 입을 비죽거린들 역사가 달리 흐를 리 없다. 동학의 역사도, 80년대 운동의 역사도, 죽창가를 따라 내주어야 할 것처럼 여긴 내가 문제였다.
그들이 못다 부른 노래를 우리의 입으로 부르며 / 그들이 남기고 간 무기를 우리의 손으로 들고서 - '역사에 부치는 노래' 중
노래는, 역사는, 내가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듯 저들도 가질 수 없는 것이다. 산을 기어오르길 멈추지 않는 이들을 따라 흐를 뿐이다. 노래도, 무기도, 남긴 이들이 아니라 발견하는 이들의 것이다. 빼앗기지 않으려면 단단하게 쥐어야 한다. 어쩌면 김남주의 시에서 가장 단단한 근육을 가진 것은 나무일지도 모르겠다.
한파가 한차례 밀어닥칠 것이라는
이 겨울에
나는 서고 싶다 한 그루의 나무로
...
밤에는 하늘가에
그믐달 같은 낫 하나 시퍼렇게 걸어놓고
한파와 맞서고 싶다
- '이 겨울에' 중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 미류입니다. 체제전환운동 조직위원회 공동조직위원장을 맡고 있습니다.
공동주최 : 김남주기념사업회·한국작가회의·익천문화재단 길동무
후원 : 더숲문화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