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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 지기 친구 찬영의 결혼식 사회를 맡게 된 건, 그가 보내온 전화 한 통 덕분이었다.

"너 글 잘 쓰니까, 사회도 잘 볼 거야. 내 결혼식 사회 좀 봐줘라."

당황스러운 제안이었지만, 나를 '글 쓰는 사람'으로 정의해 준 친구 마음이 고마워서 거절할 수 없었다. 누군가가 이름을 불러줄 때 비로소 꽃이 됐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나는 그에 걸맞은 빛깔과 향기로 특별한 결혼식을 만들어주고 싶어, 두 사람만을 위한 대본을 쓰기로 했다.

예식 관습에 묻힌 사람들의 진심을 끌어내다

 신랑이 신부 손에 반지를 끼우고 있다.
신랑이 신부 손에 반지를 끼우고 있다. ⓒ 스튜디오 엠피노트

우선 기존의 결혼식 대본들을 참고했는데, 놀라운 점이 있었다. 바로 박수를 요청하는 횟수가 스무 번이 넘는다는 것. 결혼식에 자주 참석하면서도 이렇게나 박수를 많이 친다는 걸 의식하지 못했다. 이는 다른 하객들의 입장도 마찬가지일 터, 어쩌면 우리는 사회자 구호에 맞춰 '영혼없는 박수'를 보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하객들의 진심 어린 박수를 이끌어내고 싶었다.

"오늘 결혼식에서 보내주실 박수는 신랑 신부뿐만 아니라, 여기 모인 모든 분이 함께 화합하는 뜻깊은 마음이 되기를 바랍니다. 결혼식이 무사히 진행될 수 있도록 '진심을 담은 큰 박수'로 응원해주시길 바랍니다."

결혼식은 보통 양가 어머니의 '화촉 점화'로 시작되는데, 이는 형식적인 순서로 거의 굳어 졌다 봐도 무방할 테다. 하지만 사회자 자리에서 결혼식 전경을 바라보는 순간, 그 의미가 새롭게 다가왔다.

결혼식 참석자의 절반은 또래 친구와 동료들이지만, 나머지 반은 인생의 선배들이다. 그들은 젊었을 적 자신의 결혼식을 떠올리기도 하고, 자식을 위해 긴 여정을 걸어온 어머니의 모습을 보며 누구보다 깊은 공감과 축하를 보냈다.

 양가 어머니가 화촉에 불을 밝히고 있다.
양가 어머니가 화촉에 불을 밝히고 있다. ⓒ 스튜디오 엠피노트

결혼은 서로의 얼굴보다 등을 바라보는 것

"우리가 흔히 듣는 말 중에 '부부 일심동체'란 말이 있는데 난 그 말이 틀렸다고 생각해. '부부 일심동체'라고 하니까 내 마음과 같지 않으면 실망하게 되고, 소유하려 들기 때문에 더 큰 외로움 속에 빠지지. 부부는 '이심이체'여야 해. 반쪽들이 합쳐져서 한 마음이 되는 게 아니라 선대칭도형처럼 각자 독립적인 상태로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사는 거야." - 김재용, <엄마의 주례사>, 21쪽.

결혼식에서 인상 깊은 장면 중 하나는 신랑 신부가 부부로서 첫인사를 건네는 '맞절'일 것이다. 나는 이 소중한 순간을 모두의 기억에 남기고 싶어 알맞은 대사를 생각해봤다.

아직 미혼인 나로서는, 결혼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 부모님의 모습을 떠올려야 했다. 우리 집은 아버지가 편찮으신 이후 어머니가 생계를 책임졌다. 그렇게 아버지는 어머니의 출근하는 뒷모습을, 어머니는 아버지의 살림하는 뒷모습을 보게 됐다. 이에 결혼이란 것은 연애할 때 보지 못했던, 서로 어깨에 매인 짐을 보게 되는 과정인 듯했다.

"결혼 생활에서는 배우자의 얼굴보다 등을 볼 일이 많아질 겁니다. 이때, 서로의 등을 본다고 외롭다거나 슬퍼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등을 본다는 것은 같은 방향을 향해 나아가는 희망이며, 배우자 어깨에 지어진 짐이 훗날의 나를 성숙하게 하는 선물이 될 것입니다."

 신부의 아버지가 딸의 입장을 맞이하고 있다.
신부의 아버지가 딸의 입장을 맞이하고 있다. ⓒ 스튜디오 엠피노트

변화하는 결혼의 가치와 그에 따른 사회자의 역할

지난달 통계청의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전국 30대 미혼율이 처음으로 절반을 넘었다. 이 현상은 지역으로 좁혀서 보면 더욱 두드러진다. 지난 7월 제주도의회 연구단체인 <청년이 행복한 제주>가 발표한 '청년 세대의 결혼 출산에 대한 인식변화와 지원정책 만족도 조사'에서도, 제주에 사는 2030 여성의 73.4%가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사는 것'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고, 남성 역시 45.1%가 동의했다.

실제로 결혼식에 온 동창들과 이야기해봐도 결혼에 관한 생각이 제각각이었다. 누군가는 결혼에 기대감이 차 있는 반면, 누군가는 일찌감치 비혼을 선택하기도 했다. 다만, 이들의 비혼 선택이 과연 자발적이라 할 수 있을지는 또 다른 문제다.

대개 경제적 요인으로 인해 비혼을 선택한다고 하지만, 결혼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거나 결혼에 따른 복잡한 절차를 피하려는 등 '가치적 요인' 문제도 크다. 위의 만족도 조사에서도 '현재 결혼하지 않는 주된 이유'에 대해 32.4%가 '결혼할 필요를 못 느껴서'라고 답했다.

이에 사회를 맡으면서 깨달은 점이 있다. 결혼식이란 단지 한 쌍의 결혼을 축하하는 자리가 아니라, 참석한 모두에게 결혼의 의미를 재조명하는 기회라는 것. 사회자가 단순히 결혼식을 진행하는 걸 넘어, 하객들에게 결혼의 본질을 떠올리게 하고, 그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공유한다면 다수의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을 테다.

사랑의 모양은 항상 변하는 것

이제 결혼식의 마지막 순서인 행진만을 남겨두고 있다. 결혼식 며칠 전, 친구는 행진곡의 전주가 20초 정도 된다며 그에 맞춘 '감동적인' 멘트를 부탁했다. 그 순간 떠오른 것은 사랑의 변치 않는 본질이 아닌, 사랑이 가지는 '끊임없는 변화'의 속성이었다.

"두 사람에게 전합니다. 전 '사랑의 모양이 항상 변하는 것'이라 생각하는데요. 사랑의 시작은 설렘이지만, 그것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책임감이 더 커지기 마련입니다. 두 사람은 내딛는 첫발의 설렘을 기억하시고, 마지막 걸음에는 이 자리를 빛내준 하객들을 위해, 또 두 사람의 앞날을 위해, 책임을 갖고 걸어가길 바랍니다."

결혼식은 막을 내리고, 식장은 박수와 환호로 가득 찼다. 나는 안도의 숨을 내쉬며, 앞에 두 사람뿐만이 아니라 여기 있는 모두가 결혼의 의미를 되새겨보기를 바랐다.

혹, 누가 아는가? 사회자의 말 한 마디에 기혼주의자든, 비혼주의자든 인생에서 '단 하나의 필연'을 찾을 기회가 올 수도 있음을. 어느 과학자는 결혼에서 필연을 찾지 않았든가.

"나하고 유전자를 거의 공유하고 있지 않으면서도 나보다 나를 더 사랑하는 아내야말로 '우연'으로 점철된 우주에 존재하는 단 하나의 '필연'이 아닐까." - 김상욱, <김상욱의 과학공부> 중

 무대에서 본 결혼식 전경이다. 신랑 신부의 지인인 조은혜, 강경돈 씨의 축가로 결혼식이 풍성해졌다.
무대에서 본 결혼식 전경이다. 신랑 신부의 지인인 조은혜, 강경돈 씨의 축가로 결혼식이 풍성해졌다. ⓒ 저작권자 엠피노트

#제주#제주도#결혼#비혼주의#결혼식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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