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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지하철 ⓒ chuttersnap on Unsplash

재작년 수학여행을 서울로 갔을 때의 일이다. 모둠별로 주제를 정해 방문할 곳과 일정 등을 계획한, 나름 파격적인 프로젝트였다. 여행사에 위탁하지 않고 모든 걸 아이들과 교사들이 협업한 여행이었다. 시행착오를 겪는 등 과정은 힘들었을지만 결과와 평가는 꽤 만족스러웠다.

베이스캠프로서 숙소는 동일했지만, 모둠별로 일과는 천차만별이었다. 모두가 '뚜벅이' 차림으로 사흘 동안 대중교통을 이용해 곳곳을 걸어 돌아다녔다. 목적지뿐만 아니라 그곳을 찾아가는 길 자체도 볼거리였고 즐길 거리였다. 수학여행 내내 아이들의 눈은 휘둥그레 빛이 났다.

"이렇게나 많은 지하철 노선이 거미줄처럼 펼쳐져 있는데, 왜 시내 도로마다 자동차로 꽉 막혀 있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되네요."

아이들을 동반하며 걷다가 그들로부터 가장 많이 받았던 질문이다. 지하철 노선이 하나뿐인 지방 도시에서 나고 자란 탓인지, 깨알 같은 역명이 적힌 형형색색의 노선도를 무척이나 신기해했다. 한 아이는 노선의 숫자에 놀라 서울 땅 아래에 '지하 도시'가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서울을 여행하는 데는 지하철 하나면 충분했다. 18개 모둠 중에 도중 버스를 이용했다는 경우가 단 두 모둠에 불과할 정도였다. 찾아가기 쉬웠고, 빨랐고, 편리했고, 쾌적했다며 침이 마르도록 지하철 자랑을 늘어놓았다. 교통 체증이 일상인 도로와 너무나 대비됐다고 덧붙였다.

"도로를 넓힐 게 아니라 지하철과 버스 등 대중교통을 늘리는 게 맞지 않나요?"

도로 확장 공사 중인 곳을 지날 때마다 아이들은 이구동성 이렇게 말했다. 아파트 단지와 공영 주차장은 물론, 도로변마다 통행에 방해가 될 만큼 빼곡하게 주차된 차들을 보면서 한마디씩 얹었다. 출퇴근 때만 쓰고 종일 가만 세워둘 차가 왜 필요한지 고개를 갸웃거리기도 했다.

도로의 주인은 자동차?

아이들은 서울로 떠난 수학여행에서 우리나라의 '이상한' 교통 대책을 직접 눈으로 보고 깨달았다. 교통 체증을 해소하기 위해 차를 줄이기보다 도로를 넓히는 방식으로 대응하는 게 맞는지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했다. 필요 이상으로 차가 많다는 것에 토를 다는 경우는 없었다.

한강과 지류의 천변을 제외하면 도로 위에 자전거가 한 대도 보이지 않았다는 점도 놀라워했다. 사는 아파트가 강을 끼고 있지 않으면 애초 자전거를 이용할 수가 없는 것 같다며, 서울을 '자동차 친화형 도시'로 규정했다. 자전거는 운동 도구일 뿐 교통수단일 수 없다는 뜻이다.

"등하굣길 뻔히 막히는 줄 알면서도 죄다 부모님의 차를 타고 등교하는 게 이해가 안 돼요. 그래 놓고선 담임선생님께는 길이 막혀 지각했다고 핑계 대는 게 황당해요."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걸어서 등교하는 아이들은 차가 막혀 지각했다는 친구들의 하소연을 이렇게 무질렀다. 얼토당토않은 변명이라는 거다. 학교에서 채 1km도 떨어지지 않은 가까운 데 살면서도 부모님의 차로 등하교하는 경우가 많다며 친구들의 게으름을 탓하기도 했다.

그런데, 학부모들의 생각은 달랐다. 특히 비나 눈이 오는 날이면 등하굣길이 주차장을 방불케 한다며 지방자치단체는 물론, 애꿎은 학교에까지 민원을 제기한다. 서둘러 실효적인 대책을 마련해 달라는 거다. 실상 그들의 요구는 왕복 2차선인 도로를 넓혀 달라는 것으로 수렴된다.

누구 하나 자녀를 자가용으로 등교시키지 않겠다고 말하지 않는다. 자가용 등교를 '고정 상수'로 여기다 보니, 도로를 넓히는 것 외에는 다른 대안이 있을 수 없다. 심지어 버스의 배차 간격을 좁히는 등의 대중교통 확충 대책은 교통 체증을 더욱 가중시킨다며 반대할 정도다.

도로에 차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 보니, 급기야 학교에선 아이들이 자전거를 타고 등하교하는 걸 금지하고 있다. 인도와 차도 사이에 자전거 전용 도로가 그어져 있긴 하지만, 등하굣길엔 있으나 마나다. 자칫 넘어지기라도 할라치면, 차에 부딪히거나 사람을 다치게 할 수 있다.

도로의 주인은 자동차고, 굳이 서열을 매긴다면 자전거는 맨 꼴찌다. 지방의 도시에서조차 자전거는 교통수단으로 활용되기 어려운 처지다. 도시 내에 자동차 정비소나 용품점, 타이어 판매점 등은 곳곳에 있지만, 자전거 수리점을 찾는 건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려운 일이 됐다.

'이상한' 교통 대책의 악순환

서울 도심의 모습
서울 도심의 모습 ⓒ annhwa on Unsplash

기후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화석 연료 사용을 억제해야 한다는 공감대는 이미 형성되어 있다. 나라마다 수소 차량과 전기 차량을 적극 보급하고, 내연기관 차량의 생산을 중단하는 등의 노력이 잇따르고 있다. 그러나 더 근본적인 대책은 도로 위 자동차 대수를 줄이는 것이다.

그런데도 정부의 교통 대책은 한결같다. 교통 체증에 도로를 넓히고 새 도로를 뚫는 걸로 대응한다. 넓힌 도로가 또 막히면, 더 넓히거나 다시 새 도로를 뚫는 식이다. 전국에 거미줄처럼 고속도로가 놓였고, 심심산골까지 아스팔트가 깔렸다. 이제 전국에 차로 못 가는 곳은 없다.

아이들도 잘못됐다고 지적하는데, '이상한' 교통 대책의 악순환이 계속되는 건 기성세대의 부박한 인식 탓이다. 당장 나 혼자 차를 안 탄다고 해결될 리 만무하다는 생각이 팽배해있다. 심지어 나만 불편함을 감수할 수 없다는 이기심에 근본적인 대책은 아예 꿈꿀 수조차 없다.

"그러잖아도 숨 막히는 서울에 아파트를 더 지을 게 아니라 인구를 지방으로 분산시키기 위한 대책이 먼저 나와야 하지 않을까요?"

공공 주택 건설을 위해 그린벨트 지정을 해제한다는 뉴스를 들었다는 한 아이의 질문이다. 언젠가 자가용 운전자들을 더 불편하게 만들어야 교통 체증이 해결될 거라는 역발상의 주장을 펼쳤던 그다. 당시 그는 인도와 자전거 도로를 넓히고 차도를 좁혀야 한다고 목청을 돋웠다.

교통 체증과 인구의 수도권 과밀에 대한 대책이 맥락상 똑같다며 정부의 타성을 나무랐다. 현 정부 들어 '지방분권'이라는 말은 거의 들어 보질 못 했다며, 대증요법으론 문제의 해결이 요원하다고 말했다. 서울의 그린벨트 지정 해제는 지방 소멸을 부추기는 꼴이라며 꼬집기도 했다.

그의 주장을 듣자니까, 재작년 수학여행을 다녀와 남긴 평가서에 한 아이가 남긴 글귀가 새삼 떠올랐다. 모둠 친구들과 사흘 동안 너무나 즐겁고 행복했다면서도, 딱 하나 아쉬운 점이 있었다고 했다. 그는 사흘 동안 단 한 번도 흙을 밟지 않아 되레 신기했다며 이렇게 적었다.

"초록 숲이 거의 없어 종일 콘크리트와 아스팔트만 쳐다보려니 눈이 다 아팠습니다."

#교통대책#자전거도로#그린벨트해제#공공주택건설#지방분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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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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