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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제마을 전경
ⓒ 김준

▲ 이주대책회의를 알리는 현수막
ⓒ 김준
새만금 지역 마을의 어민들을 만나면서 제일 조심스럽고 부담스러운 곳이 군산시 하제마을이다. 벌써 네 번째 둘러만 보고 왔다.

포구의 양지바른 곳에 앉아서 한담을 나누고 있는 너댓 명의 어민들이 있지만 그저 주변만 몇 번 맴돌았다. 다른 마을 같으면 벌써 다가가서 요즘 뭐가 잡히느냐, 얼마나 잡느냐는 등 넉살을 떨었을 테지만 하제에서 그렇게 할 수 없었다.

군산비행장을 끼고 돌아 옥구반도 서남단으로 접어들면 비행장의 철조망과 경계를 이루는 곳에 중제, 하제 마을이 인접해 있다. 마을 입구에는 ‘6개 마을 이주대책회의’ 플래카드가 먼저 손님을 반긴다.

밭갈이로 잡은 조개는 ‘장물’인가

군산에서 어업을 생업으로 하는 곳은 금강 하류 연안의 남포와 웅포, 내초도, 오식도, 고군산군도(선유도, 신시도, 무녀도, 말도, 관리도) 그리고 하제 등이다. 군산은 수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크다.

이들 중 금강하류는 군산시의 발달로 포구의 기능이 거의 상실되었고, 내초도는 군산임해공단이 1991년 육지와 연결되면서 공단으로 변하고 있다. 일부 남은 어장마저 새만금사업으로 상실되었으며 그동안 운영되던 몇 개의 횟집마저 문을 닫았다.

오식도는 1993년 군산임해공단에서 군장국가공단으로 연결되는 방파제의 축조와 함께 육지와 연결되어 일부 공단에 편입되었다. 이번 새만금공사로 모두 이주하고 마을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2004년 봄까지 가건물을 짓고 횟집을 운영하던 주민들도 뿔뿔이 흩어졌다.

이제 군산에서 어촌으로 마지막 남은 마을은 하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실 그동안 군산은 비응도를 중심으로 활어 위판, 군산 내항의 해망동을 중심으로 선어 위판, 그리고 하제를 중심으로 어패류 위판으로 삼박자가 잘 갖춰진 항구였다.

수산물이 대규모로 유통되지는 않았지만 골고루 갖추고 있어 항구의 기능을 제대로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어디에서도 제대로 된 싱싱한 수산물을 접하기는 어려워지고 있다.

▲ 어민 몇 사람이 동죽을 추리고 있다
ⓒ 김준
새만금 공사가 시작되면서 어민들이 잡은 어패류들은 직접 판매하거나 수집상을 통해서 유통되고 있다. 과거에는 수협을 통해서 위판(위탁판매)을 했지만 지금은 위판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그 이유는 어민들이 잡은 어패류가 ‘불법획득물’이라는 이유 때문이다.

오래 전에는 이곳에서도 그레를 이용해서 조개류를 잡았지만 새만금 사업이 시작되기 전에는 형망이라는 어법을 이용해서 어패류를 잡았다. 형망은 갯벌을 파는 어구를 선박의 이물에 부착해 갯벌을 긁어서 어패류를 채포하는 어법이다.

형망어업은 새만금사업에 따른 어업권 보상으로 하제지역에서는 소멸된 어업이다. 따라서 꽃게잡이 허가를 얻는 선박이 동죽 등 어패류를 잡는 경우 불법에 해당되는 것이다.

하제갯벌과 바다에 인접해서 난산, 하제, 중제, 신난산 등 4개의 마을에 500세대가 살고 있으며 이중 300여 세대가 하제어촌계에 가입해 있다. 선박은 모두 170여척으로 100여척이 어패류잡이에 나서고 있는 방배들로 갯벌을 긁어서 패류를 잡고 있지만 수협에서는 이들이 잡은 어패류를 위판하지 않고 있다.

▲ 하제갯벌의 모습
ⓒ 김준
이곳 주민들은 방배를 이용해서 어패류를 채포하는 일을 ‘밭갈이’라고 한다. 선박을 이용한 밭갈이는 ‘형망’만이 가능하다. 하지만 새만금 이후에 형망허가를 내주지 않고 있기 때문에 밭갈이로 취득한 어패류는 불법이고 이를 위판할 경우 ‘장물’ 거래에 해당되는 것이다.

문제는 밭갈이를 하지 않고는 이곳 어민들이 살 방법이 없다는 점이다. ‘뽐뿌배’를 이용해 어패류를 잡는 다른 마을과 서로 ‘니들이 더 한다’(어장을 더 심하게 망치고 있다)고 하지만 모두 갯벌을 망치는 것은 틀림없다.

하제 주민들은 방배의 그물코를 크게 해서 나름대로 갯벌관리도 시도해 보았다. 가격이 떨어지면서 작업조를 두 조로 나누어 노랑깃발과 파란깃발을 달고 번갈아가면서 조업을 해 공급량을 조절하기도 했었다.

새만금 사업 초기까지만 해도 어민들 스스로 자율적인 규제를 해보려는 노력을 했던 것이다. 그렇지만 4공구가 막히면서 상황은 급격하게 반전되었다.

4공구 막히면서 갯벌은 '사형 선고'

하제 어민들의 상황이 그만큼 심각하다는 것이다. 새만금 방조제 4공구가 막히면서 하제갯벌은 선고를 기다리는 ‘사형수’마냥 마지막 숨을 몰아쉬고 있고, 여기에 주민들은 대대로 살아온 고향을 미군의 탄약고 부지로 내주고 떠나야할 상황에 직면해 있다.

2001년 6월 하제마을 주민들은 국민고충처리위원회와 국방부는 민원을 제기했고, 같은 7월 국방부는 지역주민의 의견을 수렴하여 연차적으로 이주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 후 2004년 말까지 신하제를 비롯한 100여 가구가 이주하였다. 해당 지역은 난산, 신난산, 하제, 신하제, 중제, 신오산촌 등 6개 마을의 총 42만여평 500여 세대로 희망자에 한해서 우선적으로 보상금을 지급하고 있다.

▲ 한참 어패류를 배에서 위판장으로 퍼날라야 할 지게들이 한가롭다.
ⓒ 김준
주민들을 통해서 확인한 바에 따르면, 이주한 주민들은 건물, 토지, 이주비, 영업보상 등을 보상금으로 받은 것으로 확인되었다. 건물과 토지 등은 감정가에 따라 지급되고, 이주비는 ‘이사비’의 다른 이름으로 가족 수에 따라 보통 2명이면 200만원, 4명이면 500만원 지급되고 있다.

영업보상은 3개월 생업활동 보상을 해주는 것으로 이사비까지 포함해서 1000여만원에 불과하다. 이미 이주한 사람들은 이곳에 생활근거지가 없거나 돈이 급한 사람들이고 나머지 주민들은 ‘생활권보상’을 놓고서 국방부와 논의 중이며, 내부에서도 ‘집단이주’를 할 것인가 개별이주를 할 것인가를 이견이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현재 군사비행장에 미군이 사용하고 있는 부지는 50만여평으로 국방부는 2008년까지 주민들이 이주한 부지를 포함해 48만여평을 추가로 제공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참소리> 2003년 9월 18일자 보도).

이미 하제마을 어민들은 새만금 사업으로 조상대대로 기대어 살아온 바다를 잃었다. 보상금은 이미 그들 손에서 사라진 지 오래이며 이제 쌓이는 ‘죽뻘(죽은 갯벌)’만 쳐다보고 있다. 출어하는 날도 갈수록 줄어들고, 바다에 나간 본들 인건비도 건지기 힘들어지고 있다.

하제마을은 새만금 지역의 다른 어민들과 달리 배를 이용해 어패류를 채취해 왔다. 그레나 깔쿠리를 이곳에서는 보기 어렵다. 그만큼 조업비용이 많이 든다. 따라서 더 많이 벌어야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백합을 구경하기 어렵고 동죽도 올라오는 양이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다.

지난 새만금 보상에서 어장만 보상하고 생활보상은 제외하듯 이번 이주문제를 둘러싸고도 국방부에서는 건물, 토지, 이사비용만 논의될 뿐 생활권 보상은 전혀 언급되지 않고 있다. 겨우 3개월간의 생업권 정도를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이미 떠난 집들에는 낙서하듯 ‘철거’라고 낙인되어 있다.

▲ 이주한 주민의 집의 '철거' 낙인이 선명하다.
ⓒ 김준

"정치인들 왔다 가면 그만인데 누가 책임져"

하제마을 주민들은 1/10 정도만 농사를 지을 뿐 대부분의 어민들은 바다에 의지해 살고 있다. 나머지 90%는 땅 한 평 갖지 않고 자식들 가르치며 대대손손 살아왔는데 어업보상만 해주었지 생활대책은 세워주지 않고 있다고 반발하고 있다.

처음에는 농지를 조성해 해당지역 주민들에게 분양을 해준다고 말들이 무성했지만 이제 주민들 중에 새만금 사업이 완공하더라도 ‘농지’를 조성할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한편 간척지 활용방안에 대해서 농림부와 농업기반공사는 간척의 용도를 ‘농지조성’에서 ‘복합산업단지’ 등 다른 용도로 전용하기 위한 수순을 밟고 있다는 의구심을 갖게 하고 있다.

전라북도에서는 한발 더 나아가 ‘농지’로 활용하는 것을 반대하고 새만금 간척지를 산업단지로 개발하는 방안, 생산·물류단지 등으로 개발하는 방안, 대규모 골프장을 건설하는 방안 등을 주장하거나 건의하고 있다.

간척지의 활용 용도에 따라서 환경영향평가의 기준이 달라지기 때문에 이들 기관들은 표면적으로는 환경오염에 대한 우려가 적은 ‘농지’ 조성을 주장하고 있다.

▲ 선창의 모습
ⓒ 김준

하제어촌계 사무실에서 만난 중제마을 정일순 이장도 ‘농지’ 조성이라는 애초의 의도에 강한 의심을 갖고 있다.

“현재 농지목적이 상실된 이후 전라북도는 대안이 관광 밖에 없는데. 결국에는 새만금 바깥에 야미도, 신시도 등을 개발하려고 갯벌을 죽인다는 것 밖에 안 된다고요. 그쪽을 개발하려고 이쪽을 죽인다고 이해할 수밖에 없지요.”

“여기 물막이를 한 이후 어떻게 할 것인가 마스터플랜이 없어요.”

“막고 나서 매립지를 조성하는 것도 어마어마한 예산이 들어가야 하는데 누가 책임을 지냐구요. 정치를 하는 사람은 임기 채우고 가는 철새처럼 왔다 가면 그만이라고.”

새만금 사업이 시작되기 전 하제갯벌의 일년 어패류가 50여억원을 넘어섰다. 공사가 진행되면서 갈수록 물 흐름이 바뀌고 작업공간이 작아지고 있다.

경제도 어려워지고 새로운 직장을 얻기도 쉽지 않는 어민들은 고향 갯벌에서는 다들 내로라 하는 전문가들이다. 그래서 그들은 고향을 떠나더라도 인근 어은마을이나 오봉마을 혹은 심포마을 등에 자리 잡기를 원하고 있다.

물론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새만금 갯벌에 해수유통이 이루어지고 갯벌이 다시 숨을 쉬어야만 한다. 완도에서 1982년 김공장을 하기 위해 하제에 정착했다는 서춘길씨는 관광개발 이야기에 목소리가 높아진다.

“골프장은 허무맹랑한 소리고, 어떻게 그런 대안이 나오냐는 말이지. 철부지도 아니고, 정신적 치료를 요하는 사람이 아닌가 싶어. 정말로 관광을 이루고 싶다면 막는 것이 아니라 그리고 현재 우리가 공사를 봐도 그렇고 부분적으로만 전라북도가 쓸 만큼 매립을 한다든가. 무조건 물길을 다 막아놓고.”

4공구를 트는 일이 우선이다

하제마을 사람들이 지금 당장 원하는 것은 ‘4공구’를 트는 일이다. 4공구는 2003년 6월 9일 공사 주체인 농업기반공사가 ‘신구상기획단’의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 기습적으로 물막이 공사를 마무리하였다. 당시 지역 주민들과 환경단체 그리고 새만금사업추진위원회 등이 4공구 물막이공사에서 심한 몸싸움을 벌여 부상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하제마을에 경기가 좋을 때는 대부분 외지에서 선원들을 고용해서 작업을 했지만 지금은 50% 이상이 부부가 배를 타고 있다. 인건비를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외지 선원을 고용하는 경우에도 월급제가 아니라 보합제로 급여를 지급하고 있다. 보합제란 소득에서 기름값과 식구미(식비 등 선박운영비)를 제하고 선원과 선주의 몫을 나눈 방법으로 보통 4:6제나 5:5로 나누고 있다.

▲ 주민들이 볕이 잘 드는 어촌계 사무실 앞에 삼삼오오 모여서 한담을 나누고 있다.
ⓒ 김준
4공구가 막히면서 가장 큰 변화를 보이고 있는 갯벌은 내초도 갯벌과 하제갯벌 그리고 심포갯벌이다. 이미 내초도 갯벌은 공사 초반부터 죽뻘이 쌓여 바지락이 폐사하고 백합이 사라졌으며 변화된 환경에 적응하는 모시조개 등 일부 갯벌생물만 서식할 뿐이었다.

갯벌이 기능을 상실하면서 어민들은 인근 공장에서 막노동하는 일꾼으로 전락하거나 고향을 등지고 있다. 하제갯벌의 경우에는 4공구와 직선거리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물막이 공사가 마무리되기 전까지 방배를 이용해 꼬막(‘동죽’을 말함)을 채취해 생계를 이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4공구가 막히면서 만경강에서 내려온 강물은 갈 길을 잃고 죽뻘이 하루가 다르게 쌓이고 있다. 그 결과 작업할 공간이 자꾸만 줄어들어 이제 출어를 하더라도 인건비는 고사하고 기름값도 나오지 않기 때문에 선박들을 포구에 묶어두고 4공구만 바라보고 있는 실정이다.

중제의 이장 정씨는 어촌계 사무실 밖에 너부러진 배들을 바라보며 말을 이어갔다.

“배들이 묶어져 있지요. 단속을 떠나서 안 잡히니까. 백합 생산지인데 해방조개, 노랑조개, 동죽, 소라, 개우렁. 백합이 거의 안 나오고 있으니까. 경비 빼고 안 되니까 안가지요.”

“배가 움직이면 못해도 150-200은 했는데 지금은 50이나 하나, 아무리 못해도 면세유 3드럼 때면 30여만원 이상 때는데, 거기다 이런 저런 식구미 제하면 60-70만원 해야 현상유지이지. 부부가 하니까 인건비는 제하더라도.”

하제갯벌에 기대어 사는 어민들은 다른 새만금 어민들과 달리 두 개의 무거운 과제를 해결해야 한다. 하나는 4공구로 해수가 유통되는 일이고 다른 하나는 최소한 고향 인근에 이주해 어민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이 두 가지 희망 중 어민들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래서 더 무기력하다. 최소한 기대할 수 있는 것이 ‘생활권 보상’이라도 충분히 받는 일이다.

중제마을 이장 정씨는 이번 재판부의 새만금 사업에 대한 권고안이 받아들여지고 최소한 개발과 4공구 해수유통 그리고 가까운 어은마을 등지로 집단이주하는 것이 개인적으로 최고의 선택일 것이라고 희망을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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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 년 동안 섬과 갯벌을 기웃거리다 바다의 시간에 빠졌다. 그는 매일 바다로 가는 꿈을 꾼다. 해양문화 전문가이자 그들의 삶을 기록하는 사진작가이기도 한 그는 갯사람들의 삶을 통해 ‘오래된 미래’와 대안을 찾고 있다. 현재 전남발전연구원 해양관광팀 연구위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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