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비밀투표가 민주선거의 기본인데… 그래도 심판은 시작됐습니다."
서울시립대 대강당에서 부재자투표를 마친 강아무개(23, 서울시립대)씨는 지지정당을 묻는 질문에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었다. 지난해 10·26 보궐 선거에서 "한나라당 나경원 후보를 지지했다"는 강씨는 "지난 대선에서 반값등록금을 약속한 MB는 4년 동안 말이 없지만 원순씨(박원순 서울시장)는 1년도 되기 전에 반값등록금 공약을 실천했다"는 말로 답을 대신했다.
전국 29개 대학에 설치된 부재자 투표소에서 4·11 국회의원 총선거 부재자 투표가 시작됐다. 서울지역에서는 서울시립대와 경희대, 고려대, 연세대, 그리고 동덕여대 등 5개 대학에 부재자 투표소가 설치됐다. 전국 29개 대학에 설치된 부재자 투표소는 지난 2008년 18대 총선 당시 3곳에 비해 확연하게 증가했다. 경희대에서 부재자 투표소 설치운동을 진행한 이윤호 후마니타스 칼리지 시민교육분과장은 이번 총선에서 부재자 투표소 설치가 확대된 것에 대해 "대학생들이 지난해 10·26 재보궐 선거에서 정치참여에 따른 효용성을 몸으로 체험했기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부재자 투표 첫날인 5일 오전, 투표소가 설치된 서울시립대 대강당은 다소 한산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점심시간 무렵인 낮 12시부터 두세 명씩 짝을 지은 학생들은 부재자 투표 용지를 손에 들고 투표장으로 몰려들었다. 갑자기 유권자가 몰리면서 기표소가 설치된 입구 계단에서 부터 투표를 기다리는 학생들의 긴 줄이 이어졌다. 몰린 유권자들 때문에 덩달아 바빠진 투표관리관들은 신분증을 확인하고 투표용지에 확인도장을 찍는 등 분주한 모습이었다. 부재자 투표용지를 지참하지 않은 채 투표장을 찾은 탓에 되돌아가는 유권자가 더러 눈에 띄었지만 투표는 무리 없이 진행됐다.
부재자 투표를 마친 서울시립대학생 다수는 야권을 지지했다고 밝혔다. 1시간 동안 투표를 마친 약 20여 명의 학생을 만나는 과정에서 여당을 지지했다는 학생은 찾아보기가 어려웠다. 이들은 야당 지지의 주된 이유로 현 집권여당에 대한 반감과 야권단일후보들의 반값 등록금 공약을 꼽았다.
"일자리와 등록금 정책이 대학생 투표 기준될 것"
"야당에 투표했어요. 제가 살고 있는 지역에서는 새누리당이 너무 오래 국회의원을 독식했거든요. 그렇지만 무엇 하나 가시적으로 변화된 것이 없어요 바꿔보자는 분위기가 강해요."
부산에서 올라온 김다솜(서울시립대 4)씨는 이번 총선에서 투표의 주요 기준으로 기존 정치권력에 대한 심판을 들었다. 아울러 박원순 서울시장의 반값등록금 정책을 높이 평가하며 "일자리와 등록금 정책이 대학생들의 주요 투표기준이 되지 않을까"라는 전망을 내놨다.
송파을 지역이 선거구인 차아무개(서울시립대 3)씨는 "한미FTA 비준에 앞장선 여당이 싫어서 야권단일 후보를 지지했다"면서도 "야당이 마음에 쏙 들어서 지지한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김규리(서울시립대 3)씨 역시 "현 정부에 대한 불만이 야권후보에게 투표한 주된 이유"라며 반값 등록금 문제 등 청년들의 문제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현 정부와 여권에 대한 불만을 나타냈다.
인근의 경희대 학생들은 서울시립대 보다는 다소 다양한 입장이었다. 경희대 청운관에 설치된 부재자 투표소에 만난 서아무개(경희대 2)씨는 "제주해군기지 건설문제를 이번 총선의 주된 투표기준으로 삼았다"고 말했다. 경남 거제가 선거구인 서씨는 "해군기지 건설의 필요성에 동감하며 지역구와 비례대표 모두 해군기지 건설에 찬성하는 여당에 투표했다"고 밝혔다. 18대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을 지지했다"는 박준연(경희대 4)씨는 이번에도 "반값 등록금 정책을 지지하고 친서민적 이미지가 마음에 들어서 통합진보당을 지지했다"고 말했다.
부재자 투표소 설치운동 관계자들과 투표에 참여한 대다수의 학생들은 투표의 편리함과 대학생들의 투표참여를 높일 수 있는 점을 부재자 투표소 설치의 장점으로 꼽았다.
"부재자투표, 설치기준 낮추고 행정편의주의 고쳐야"
한편 여전히 미흡한 부분에 대한 지적도 있었다. 부재자 투표소 설치 운동 관계자들은 선관위가 제시하는 부재자 투표소 설치의 까다로운 기준과 행정편의주의적 태도에 불만을 쏟아냈다.
김경원 서울시립대 총학생회장은 "정원이 7000~8000명 정도 되는 학교에서 2000명 이상 부재자 신청을 받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라며 "부재자 투표소 설치의 가장 중요한 원칙은 대학생들의 투표참여의지를 수용해 내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고려대에서 부재자 투표소 설치운동을 담당한 차오름 총학생회 정책국장 역시 "주말까지 7일을 꼬박 부재자 신청을 받아서 2100명의 신청을 채웠다"며 "(부재자 투표소) 설치기준이 현실적으로 완화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또한 차씨는 부재자 투표소 설치 신청 관련 서류를 해당 주민 센터에서 처리하는 과정에서 "세대주 정도가 기입되지 않았다고 하여 일일이 문제제기 하는 것은 너무 행정편의주의적"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취재과정에서 부재자 투표소 설치와 관련해 선관위와의 석연치 않은 통화 내용이 있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서울시립대 총학생회 관계자는 대학 내 부재자 투표소 설치과정에서 있었던 황당한 상황을 설명했다.
"부재자 투표소 설치에 관한 협의를 하기 위해 3월에 지역 선관위와 통화한 적이 있다. 그 과정에서 관계자가 대학생들이 특정 정치세력에 대한 지지성향이 있기 때문에 상대 정치 진영에서 고소고발 우려가 있다는 이야기를 하더라.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고 말다툼을 한 적도 있다."
이와 관련해 해당 선관위에 문의했지만 부재자 투표소 설치 관계자는 "담당 직원들 중 누구도 그런 발언을 한 일이 없다"고 부인했다.
오늘부터 6일까지 이어지는 부재자 투표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진행된다. 부재자 신고를 마친 대학생 유권자는 선관위 홈페이지에서 대학 내 부재자 투표소 설치 장소를 확인한 뒤 해당 대학 총학생회실에서 부재자 투표 용지를 수령하면 투표가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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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어난 투표소, 긴 줄....이게 다 원순씨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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