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 빚은 걸작 '카파도키아 바위유적'

<세계문화유산답사> 터키 괴레메 국립공원과 카파도키아 바위유적

등록 2003.04.18 02:13수정 2003.04.18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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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이 만들어내는 경이로움의 한계는 어디까지인가. 스스로 그러한 자연이 연출해내는 광경은 언제나 바라보는 이로 하여금 경탄을 금치못하게 한다. 터키의 수도 앙카라에서 남쪽으로 300km가량 무작정 달리다보면 절로 입이 벌어지는 대자연의 경이로움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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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파도키아의 기암괴석 ⓒ 홍경선

터키 중부에 위치한 아나톨리아 고원의 비경 지대 카파도키아(Cappadocia).

'친절하고 사랑스런 땅'이라는 뜻을 지닌 이곳은 수백만년전 활화산이었던 예르지예스산에서 분출된 용암으로 인해 형성되어 오랜 세월을 걸쳐 풍화, 침식작용을 일으켜 응회암지대로 바뀌게 되었다. 오랜 시간동안 자연이 만들어낸 경이로움은 마치 동화 속에서나 봄직한 갖가지 모양의 기암괴석에서 드러난다. 원뿔모양의 버섯처럼 생긴 바위들이 주변을 온통 둘러싸고 있는 이곳은 깊은 곳으로 들어갈수록 한없는 매력이 넘쳐흐른다.

깎아지른듯한 절벽 아래로 무수히 많은 교회들이 과거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고, 곳곳에 펼쳐진 기기묘묘한 바위들의 행렬이 장관을 이루고 있다. 신의 손이 빚어낸듯한 이곳의 자연경관은 얼핏 영화속에 묘사되는 외계행성의 모습과 흡사해 보인다. 비록 터키 곳곳에 들어선 화려한 모스크들은 눈에 띄지 않지만 오직 자연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진한 매력이 잔뜩 녹아있기에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후회없는 달콤함을 선사한다.

하얀 솜의 성 '파묵까레'를 떠나온 버스는 꼬박 11시간을 달리고 나서야 어둠이 내려앉은 이름모를 도로 위에 멈춰섰다. 어둠 속에 살짝 비치는 손목시계의 조명은 새벽 4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주위는 온통 칠흙같은 어둠뿐이었고 간간히 코란의 글귀를 읽는 듯한 방송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아마도 주변에 사원이 있나보다. 내리기 전 분명히 '카파도키아'임을 확인했지만 텅빈 도로위의 광경은 황량하기만 할 뿐 관광지다운 모습과는 거리가 멀어보였다.

마침 같이 내린 터키인이 있어 카파도키아를 찾으니 택시를 타고 '괴레메(Goreme)'로 가야한다고 일러주었다. '카파도키아'라는 명칭은 괴뢰메, 젤베, 위르굽, 오타히사르 등의 도시와 마을로 이루어진 지역을 일컫는 지명이란다. 또 한번 버스기사에게 낭패를 당했다는 것에 분한 마음을 느낄 틈도 없이 서둘러 택시를 잡아탔다.

반쯤 열린 창틈으로 차가운 새벽공기가 들어왔다. 상쾌한 기분에 피곤함마저 사라질때쯤 간간히 비치는 헤드라이트에 의해 도로 주변의 경치가 모습을 드러냈다. 커다란 고깔 모양의 황토빗 언덕위로 버섯처럼 솟구친 바위들이 사방으로 펼쳐져 있었다. 마치 헛것을 본 모양으로 다시 한 번 두 눈을 크게 뜬채 바라보았지만 여전히 주변은 기괴한 모양의 바위산으로 가득 차있었다. 그렇게 일렬로 늘어선 바위산들이 끝나갈 지점에서 멈춘 택시는 어느새 '괴레메'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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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뜰무렵 괴레메 입구에서 ⓒ 홍경선

이곳 '괴레메'는 카파도키아의 중심도시로 카파도키아의 관문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가장 먼저 발을 들여놓는 명소이다. 카파도키아 투어의 대부분이 이곳에서 시작되기 때문인지 주변은 온통 여행사와 호텔 뿐이었다. 무거운 배낭을 잠시 내려놓은 채 주변을 둘러보았다. 해가 조금씩 고개를 내밀기 시작하자 어둠을 한껏 머금고 있던 석회암 언덕들이 그 하얀 모습을 드러내었다. 어느덧 이스탄불과 앙카라 등지에서 출발한 카파도키아 투어 버스들이 하나둘 도착하기 시작하였고, 주변의 여행사들도 문을 열고 손님들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새벽의 고요함은 온데간데 없이 어둠 걷힌 이곳은 이미 많은 관광객들로 북적거렸다.

여러 여행사를 물색하던중 하루면 대충 카파도키아 주변을 둘러볼 수 있다는 말에 일일투어를 신청하였다. 마침 부산에서 온 신혼부부와 아테네로 가던 배안에서 만난 학생들도 그곳에 와있기에 한국인끼리 단합하여 적당한 가격을 제시할 수 있었다. 인근 식당에서 간단히 아침을 해결한 후 본격적인 카파도키아 투어에 나섰다.

평온한 아침의 공기를 듬쁙 담고 출발한 버스는 창밖으로 난생 처음보는 천연의 조각품들을 펼쳐보이고 있었다. 그 기묘한 형상은 화산 폭발로 분출된 부드러운 화산재가 모진 세월의 풍파속에 씻기고 다듬어져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사람의 손으로는 몇 대가 지나도 만들 수 없는 것임에 틀림없다.

이러한 생각은 곧 현실로 다가왔다. 괴레메에서 3Km정도 떨어진 '바위덩이의 마천루'라 불리우는 우치사르(Uchisar)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먼발치에서 바라본 그곳은 매혹적인 모습으로 다가왔다. 벌집모양의 바위산은 두 개의 거대한 바위가 주변의 더 작은 바위들에 둘러쌓여 천연의 요새로써의 진용을 갖추고 있었다.

1300m에 이르는 고지대에 위치한 '우치사르'는 황량하고 기괴한 주변풍경이 어딘가 매우 묘해 보이는 곳이다. 그 이유는 기기묘묘한 바위들에 수 없이 뚫려있는 비둘기 집 때문이다. 한때 비둘기들이 거주했던 이곳에 기독교인들이 들어오면서부터 그들과 공생의 관계를 맺게 되었다. 기독교인들이 성화를 그리기 위해 비둘기 알을 이용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비둘기 알에서 염료를 얻어 석굴 예배당의 성화를 채색했다고 한다. 그 대가로 비둘기들은 사람들이 주는 먹이를 받아 먹었다. 왠지 불합리해 보이는 이러한 공생의 관계는 결국 스스로 그러했던 자연에 인위적인 힘을 가함으로써 점차 인간의 흔적을 남겨 놓았다.

'우치사르'의 서쪽 계곡은 화산재가 굳어진 응회암이 오랜 풍화작용으로 인해 진기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하얀 바위들이 마치 낙타의 등처럼 울퉁불퉁 솟아나 있어 이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감탄을 연발할 수밖에 없다. 파스텔톤의 옅은 하늘을 살짝 가리운 구름처럼 하얀 석회암들이 햇빛을 듬쁙 머금고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해질 무렵 이곳에서 바라보는 일몰은 환상 그 자체라고 한다. 매끄러운 표면 아래로 시선이 미끄러지자 군데군데 조그맣게 뚫린 구멍들이 보였다. 11세기의 프레스코화가 있는 교회가 남아있는 터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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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치사르' 서쪽 계곡의 절경 ⓒ 홍경선

한참을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우치사르'의 절경에 취해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댄 다음에야 버스에 올랐다. 창밖으로 펼쳐지는 중부 아나톨리아 지방의 한적한 평원이 아름다웠다. 녹색과 황색의 절묘한 조화속에 한참동안 고즈넉한 시골마을을 연상시키는 장면이 여러 차례 지나갈때쯤 역사적인 지하도시 '데린구유'에 도착했다.

'깊은 우물'이라는 뜻의 데린구유(Derinkuyu)는 최대 4만명을 수용할 수 있는 대규모 지하도시다. 카파도키아에는 오랜 세월동안 침략과 박해를 피해 터키 곳곳에서 도망쳐온 기독교 신자들과 수도승들이 모여 대피소로 이용해온 지하동굴들이 수십개나 연결되어 있다고 한다. 마치 미로처럼 얽히고 설킨 이 지하 도시들을 처음 건설한 사람들은 히타이트인이라고 전해지는데 후에 기독교인들이 동굴 위에 집을 짓고 피신처로 이용했다고 한다.

이 곳 '데린구유' 역시 적의 공격을 피해 마치 개미굴처럼 땅속을 파고 만든 지하도시였다. 총 깊이가 55m에 달하는 8층 구조인 이곳의 입구는 매우 작았다. 이는 갑작스런 위험에 직면할때 대피하기 위한 것이란다. 미로처럼 얽힌 지하통로는 녹색과 빨강의 화살표를 따라 이동하게 되어있다. 노란 조명이 있긴 하지만 전체적으로 어두운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지하의 서늘한 공기가 피부에 닿으며 이곳의 처절했던 생존투쟁이 떠오르자 왠지모를 음습함이 덮쳐왔다.

1층과 2층에는 양이나 기타 가축이 기거하던 마굿간과 포도주 압착기, 돌로 만든 두개의 긴 탁자가 놓여져 있는 식당 혹은 교실이 위치하고 있고, 3·4층에는 거주지와 교회, 병기고, 터널이 있다. 십자가 모양의 교회, 지하감옥 및 묘지는 지하층에 위치해 있다. 모든 통로와 비밀의 방들은 미로처럼 되어 있으며 적의 침입에 대비한 비상통로는 물론 비상 계단이 만들어져 있었다. 특히 미로처럼 얽힌 이들 통로들은 외부에서 침입한 자가 길을 잃게 하기 위해 여러 갈래로 나눈 것이라 한다.

또한 어떤 곳에는 밖에서는 열 수 없는 미닫이 바위문이 놓여 있었다. 이 문은 둥근 바퀴모양이었는데 성인 남자 대여섯명이 힘을 합쳐야 간신히 움직일 정도였다. 또한 각 문의 중앙에는 조그만 구멍이 나 있는데 이는 창을 집어넣어 밖에 있는 적을 찌르기 위함이란다. 이처럼 지하 도시전체가 하나의 요새처럼 꾸며져 있었다. 이는 오늘날 이라크 대통령 후세인의 지하벙커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치밀하게 만들어져 있었다.

또한 각 층마다 환풍을 위한 수직갱들이 만들어져있어 아무리 지하 깊숙이 내려가도 숨쉬기에는 전혀 불편함이 없었다. 오히려 땅속의 서늘한 공기에 점차 추위를 느낄뿐이다. 이처럼 지하도시 '데린구유'는 과학적인 환기 시설과 비밀통로, 갖가지 함정들로 완벽한 지하요새로써의 면모를 유감없이 선보이고 있었다.

하지만 왠지모를 애처로움이 지하 도시 곳곳에서 묻어나왔다. 생존을 위한 투쟁이 너무나 처절했기 때문이다. 만물의 영장인 인간으로 태어나서 단지 종교적인 이유로 개미처럼 땅굴을 파서 살아야 했던 당시의 기독교인들. 과연 신앙이 무엇이란 말인가. 무엇이 이들을 처절한 삶의 구덩이로 몰아넣었는가. 물론 이들 초기 기독교인들의 오랜 투쟁과 성령에 대한 변치않는 믿음이 있었기에 오늘날의 기독교가 그 맥을 잇고 있다는 것은 주목할 만한 사실이다.

하지만 이들이 온갖 박해와 탄압을 피해 깊은 땅 속으로 숨어들어와 치열한 생존투쟁을 벌일동안 이들이 그렇게나 믿었던 신은 과연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이들이 온전히 땅을 파서 탄압을 피할수 있도록 시간과 공간을 선사한 것인가? 그들이 믿는 신을 위해 이곳까지 숨어들어 처절하게 살다 죽음으로써 과연 그들은 구원을 받았을까. 영생을 얻었을까.

또 하나의 거대한 도시를 지하 깊숙한 곳에 만들어놓은 그들의 신앙 앞에 경의를 표한체 밖으로 나왔다. 오랜시간 어두운 땅 속에만 있다보니 햇살이 유난히 눈부셨다. 찌는듯한 중부 아나톨리아의 더위는 어느새 이마에 땀방울을 맺히게 만들었다. 입구 앞에 있는 기념품 가게에서 시원한 물을 사서 마셨다. 시원한 물줄기가 목구멍을 적시자 문득 데린구유의 과거모습이 스쳐지나갔다.

지하도시의 기독교인들. 그들은 신앙에 앞서 자신의 삶을 한번쯤 돌아볼 여유는 없었는지 다시한번 묻고 싶다. 자신들의 선택에 의해 도망자가 되어 이곳에서 죽어간 부모들이야 뭐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들의 자식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부모의 믿음에 의해 이곳에서 고생하다 죽어간 어린 자식들은 무슨 죄가 있단 말인가. 의지가 결여된 믿음이 과연 신앙이란 이름 앞에 용서받을 수 있는건지. 시원한 물줄기는 여전히 목구멍을 타고 넘어갔다. 하지만 머릿속은 여전히 풀지못할 갈증에 목마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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