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가장 쉬웠고, 김훈 제일 어려웠다"

[인터뷰] 심리평전 <사람 vs 사람> 펴낸 정신과 의사 정혜신씨

등록 2005.02.21 18:07수정 2005.02.23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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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평전' <사람 vs 사람>을 낸 정신과 의사 정혜신씨. ⓒ 조성일

'무식해서 용감한 지뢰밭 건너기였는지도 모른다'는 겸사가 '자신보다 더 자신을 잘 설명했다'는 상찬으로 치환되면서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책 <남자 vs 남자>(2001년·개마고원)를 기억할 것이다.

'심리평전'이란 문패를 달고 김영삼 전 대통령과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를 쌍으로 삼은 것을 비롯 '이건희 vs 조영남' 등 대한민국의 내로라하는 대표남성들 11쌍(22명)을 도마 위에 올려놓고 심층 심리 분석을 통해 그들의 인격과 개성을 설명해냈던 인물탐구서 말이다.

바로 그 책의 후속작이랄 수 있는 책 <사람 vs 사람>(개마고원)이 나왔다. '정몽준 vs 이창동'을 비롯 '이인화 vs 김근태' '이명박 vs 박찬욱' '심은하 vs 김민기' '박근혜 vs 문성근' '나훈아 vs 김중배' '김수현 vs 손석희' '김대중 vs 김훈' 등 8쌍(16명)이 등장한다.

전작보다 탐구 인물의 수는 적지만 내용은 더 깊이 들어간 느낌이다. 전작의 감동을 간직하고 있는 독자라면 이번에 나온 두 번째 책 역시 기대해도 좋다. 지은이 정혜신(42)의 내공은 독자들의 기대치를 배반하지 않는다.

자, 그럼, 스스로를 '겁대가리 없는 여자'라고 말하는, 이 책을 쓴 정혜신을 만나보자.

"실명이어서 약간은 조심스럽습니다"

"원고를 끝냈을 땐 잠시 짐을 벗어놓은 느낌이지만 책이 나오고 나서는 다시 긴장됩니다. 사람에 관한 책인데다, 특히 실명이어서 약간은 조심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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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vs 사람> 표지 이미지. ⓒ 개마고원

지난 2월 16일 기독교방송(CBS) '김어준의 저공비행' 출연에 앞서 기독교방송 1층에 자리한 커피숍에서 장시간 인터뷰에 응한 정혜신은 '약간' 조심스럽다고 했다. 열이면 아홉은 '조심스럽다'는 말 앞에 '무척'이란 부사를 썼을 텐데, 그녀는 '약간'이라고 했다. 자신의 분석에 대해 그만큼 자신 있다는 의미일 터이다.

그러나 정혜신은 자신의 분석에 대해 '확신'이나 '완벽' 따위의 낱말로 설명하는 것을 부담스러워한다. 자신의 방법은 단지 남들과 다른 관점에서 새롭게 시도하려 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의 작업을 '정혜신 plays ○○○'로 이해해달라고 했다.

그러면서 정혜신은 "질렸다"고 했다. 한 사람의 글을 쓰기 위해 그녀가 섭렵하는 자료의 양이 상상을 초월한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 그녀의 질렸다는 표현이 엄살이 아님을 인정해야 한다.

그녀가 섭렵하는 자료의 범위는 펴낸 저서는 물론이고 인터넷 홈페이지나 관련 홈페이지의 게시판 글까지, 찾을 수 있는 자료는 거의 모든 것을 샅샅이 뒤져 깡그리 읽어대는 것이다.

그녀가 무한한 존경을 보내는 "단독자의 열린 '고립'"자인, 본인보다 더 자료가 많고 잘 정리됐다는 강준만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어떤 면에서는 더 무모한(?) 것 같기도 하다.

"정신과 의사로서 해야 할 진료가 끝나면 거의 모든 시간을 투자했습니다. 밤새 수천 건의 자료를 읽다보면 새벽녘 구토가 날 지경이 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세 번째 책은 언제쯤 낼 것이냐는 질문조차 꺼내지 못하게 했다. 지금으로서는 아무 것도 할 것 같지 않다고 했다.

"언론권력보다 자본권력이 더 무섭다"

사실 정혜신은 이 책을 포기하기로 했었다. 출판사와 책을 내기로 계약하고 차일피일하며 1년 이상을 미루어오다 끝내는 못쓰겠다고 출판사에 통보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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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책에 사인을 하는 정혜신씨. ⓒ 조성일

앞의 "질렸다"는 그녀의 표현에 공감한다면 출판을 포기했던 이유도 짐작하고 남으리라.

그런데 그녀의 포기선언을 접한 출판사 개마고원의 장의덕 사장은 책을 내야 하는 이유가 담긴 장문의 편지를 그녀에게 보내는데, 그 편지를 읽은 그녀는 결국 마음을 바꾼다.

"사실 그때 장 사장의 편지를 읽어보니까, 장 사장께서 매우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는 점을 암시하는 듯한 우울증을 겪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이때가 아마 지금 생각해보면 얼마 전에 언론에 대대적으로 기사가 실렸던 <인물과 사상> 종간 결정을 할 때가 아닌가 싶어요."

그녀가 이 작업을 시작한 것은 <신동아>에서 '중년 남성'에 대해 글을 써달라는 원고청탁을 받고서부터다. 남자보다 더 남자를 잘 안다는 '남성 전문가'인 그녀는 당시 최인호와 이문열을 소재로, 이들이 40대를 어떻게 보냈는지, 또 40대 이후의 삶이 어떠했는지에 대해 글을 썼는데, 그 글을 보고 <신동아> 측에서 아예 인터뷰 코너를 진행하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해왔다.

그러나 그녀는 사람을 직접 만나고 나서 글을 쓴다는 게, 취재한 '팩트'에만 집중해야 해 오히려 제한적일 것 같고, 또 정신과 의사가 할 일이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인터뷰이에 대한 예의도 아닌 것 같아 자료를 통해 글을 쓰면 어떻겠느냐고 역제의해 결국 연재를 하게 된다.

또 그녀는 당시 실명비판의 새 장을 열고 있던 강준만 교수의 작업 방식에도 적극 동의하여 깊은 영향을 받았던 데서 용기를 얻기도 했다.

"사실 연재를 하다보니 매 꼭지마다 지뢰밭을 걷는 기분이었습니다. 혹시 전문가랍시고 사람들을 집고 까부는 것은 아닌지, 또 무의식을 읽을 수 있는 나의 기술을 남용하는 것은 아닌지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글을 쓸 때마다 고통스러웠습니다."

그러던 그녀가 <신동아> 연재를 그만둔 것은 '나훈아 vs 김중배' 꼭지 때문이었다. 그녀가 넘긴 원고의 김중배에 관한 글 중, 김중배가 <동아일보>를 그만둘 때 "'자본의 언론통제'를 강하게 비판"했다는 대목에 대해 <신동아>쪽에서 수정을 요구했는데, 그걸 받아들이지 못해 연재를 끝냈다고 한다.

"그때까지 한번도 원고에 대한 간섭이 없었는데, 한두 줄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을 보고 많은 것을 느꼈습니다. 언론권력보다 더 중요한 게 자본권력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자기'가 강한 사람을 분석 대상으로 삼다

정혜신은 작업할 때 분석 대상의 인물 사진을 컴퓨터 모니터에 붙여놓는다고 했다. 그리고 글을 쓰면서 끊임없이 그 사진에게 되묻는다고 했다. 자신이 쓰는 이 글을 받아들일 수 있는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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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도중 차를 마시고 있는 정혜신씨. ⓒ 조성일

"혹시나 내 마음 속에 분석 대상의 인물에 대해 갖고 있을 수도 있는 부정적인 감정이나 선입관을 배제하기 위해 꼭 사진을 붙여놓고 물어보면서 작업했습니다. 가령 이명박 서울시장 같은 경우 좀 부정적으로 묘사됐는데, 혹시나 하는 노파심에서 이명박 시장에 대해 긍정적 생각을 할 수 있는 아주 잘 나온, 천진난만한 사진을 붙여놓았었습니다."

이번 책에서 다룬 인물 중 가장 다루기 쉬운 인물은 박근혜이고, 가장 다루기 어려운 인물을 김훈이라고 그녀는 말했다.

박근혜는 분석심리학에서 말하는 '부성 콤플렉스'의 교과서 같은 인물이고, 김훈은 극과 극, 즉 물과 기름이 공존하는 인물이어서란다.

그래서 박근혜에 관한 글은 시작하자마자 막힘없이 단번에 쓸 수 있었던 데 반해 김훈은 쓰다가 다시 쓰고, 다시 쓴 것을 고치고 고치길 반복하다 두 달이나 걸렸단다.

그녀가 분석 대상 인물을 고르는 것은 정신과 의사로서 끌리는 사람이라고 한다. 대단히 주관적인 기준이지만 굳이 상투적인 가이드라인으로 요약하면, 어떤 영역이든, 색깔이든, 태도든 '자기'가 강한 사람이다.

이번에 나온 책에 대해서는 아직 당사자들의 반응이 접수되지 않아 모르지만, 첫 번째 책의 경우 분석 대상이 된 인물에게서 항의를 해오지 않았다고 한다. 비판적으로 묘사된 인물 두서너 명이 오히려 고맙다고 한 적이 있단다.

<조선일보>에는 글 쓰지 않는다

정치에는 관심이 없다고 말하는 그녀는 가끔 정치적 발언도 한다. 그곳에 사람이 있으니까, 사람들의 관계 속에 있는 역동성에 관심이 있으니까, 현실적인 문제에도 관심을 갖게 된다고 그녀는 말한다.

그녀는 <한겨레>에 3주에 한 번씩 칼럼을 집필한다. 그녀는 글을 쓸 때마다 적어도 스무 번은 읽고 퇴고를 거듭한 끝에 자신이 읽어 만족해야 비로소 원고를 넘긴다.

지난 해 온 나라를 뜨겁게 달구었던 탄핵정국 때 <한겨레>에 '당신들은 미쳤다'는 제목의 칼럼을 썼었는데, '노빠' 아니냐는 비난이 쏟아지더란다.

"노무현을 지지해서가 아니라 국민의 의사와 상관없이 자기들 이익에 따라 국민이 뽑은 대통령을 탄핵한 사실에 분노한 것입니다. 그건 정당한 분노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상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녀는 한때 <조선일보>에 글을 쓰기도 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쓰지 않는다. 특별하게 <조선일보>에 글을 쓰지 않는다고 이름 석자를 걸어 대외적으로 천명하지는 않았지만 수구언론들의 행태에 문제가 있다는 생각에서 그냥 슬며시 안 쓰게 되었다고 그녀는 말했다.

진보의 끝은 인간의 개별화이다

흔히 여자들이 선호하는 산부인과나 소아과 같은 것을 굳이 마다하고 이게 아니면 아무것도 안한다는 식으로 선택해 정신과 의사가 된 그녀는 어머니를 일찍 여의고, 우울증에 시달리던 홀아버지 밑에서 자라면서 자연히 아버지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 그게 남성 문제에로의 관심으로까지 확대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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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의 끝은 개별화라고 말하는 정혜신씨. ⓒ 조성일

그래서 지금은 남성 전문가로 통하는 그녀에게 남성은 도대체 어떤 인간인가 물어봤다.

"여자한테는 흥미롭고 도움이 되고 필요한 존재라고 봅니다. 남자들이 불쌍하다거나 가엽다거나 하는 얘기를 공개적으로 하는 것은 오히려 남자들의 힘을 빼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가장으로서 열심히 일하고, 자기감정을 절제하며, 가족 부양하는 것에 자부심을 갖지만 내 마음 속에 깊은 곳에 있는 울고 싶고, 털어놓고 싶고, 쉬고 싶은, 남자이기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 갖는 개별적 욕망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드러내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그녀는 지금 정신과 병원을 그만둔 지 1년이 되었다고 한다. 마침 책도 냈고 해서 이제 새로운 일에 도전할 준비를 하고 있다. 오피니언 리더나 최고의사결정권자의 정신 건강이 조직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진단과 처방을 내리는 '심리 서비스'이다. 현재 심리학자 등 전문가 다섯 명이 모여 준비를 하고 있다.

"사실 사람들은 육체적인 건강에 대해서는 건강 검진을 하며 열심히 체크를 합니다. 반면 고도의 정신노동을 하면서도 정신 건강에 대해서는 아무도 체크를 하지 않습니다. 그동안 40, 50대 남성 연구를 해오면서 경험했던 것들을 살려볼 참입니다."

시골에 사는 게 꿈이어서 경기도 양평에 산다는 정혜신. 모든 사람은 대단하고, 동시에 대단하지 않다고 말하는 그녀는 진보의 끝은 개별화라고 말하면서 인터뷰를 끝냈다.

"모든 사람이 개별적 존재로 인정될 때 비로소 진보가 완성된다고 봅니다. 사람을 흔히 그럴 것이라는 통속적 잣대로 재단하는 것은 폭력입니다. 농부는 농부, 노동자는 노동자, 학자는 학자가 되는 것, 즉 자기가 자기가 되는 것이 중요한 진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 VS 사람 - 정혜신의 심리평전 2

정혜신 지음,
개마고원,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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