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과 통하였느냐

[인터뷰] <미래로부터의 반란> 펴낸 교육운동가 김진경씨

등록 2005.03.09 18:27수정 2005.03.12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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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에세이 <미래로부터의 반란>을 펴낸 김진경씨. ⓒ 오마이뉴스 남소연

명호와 명수, 두 형제가 있다. 명호는 누군가에게 배운 적이 없는데도 컴퓨터를 아주 잘 다룬다. 부모가 컴퓨터를 다룰 줄 몰라 도와줄 수 없어서 혼자 수차례의 시행착오를 겪어가며 필요한 것들을 찾아 익힌 까닭이다.

동생 명수는 컴퓨터로 게임을 하다 모르는 게 생기면 일일이 형 명호에게 물어본다. 명호는 그때마다 친절하게 일러주었는데, 기간이 꽤 많이 지난 뒤에도 명수는 계속해서 명호에게 묻곤 한다.

이 두 아이의 모습을 지금의 우리 교육 현실에 비유해보면, 아이들의 모습은 명호이고, 학교의 모습은 명수다.

명호와 명수의 차이만큼 아이들과 학교교육이 겉돌고 있는 이 현실, 어떻게 해야 할까?

때마침 전교조 창립에 깊숙이 관여한 교육운동가 김진경(52)이 이 문제에 대해 함께 고민해보는 교육에세이 <미래로부터의 반란>(푸른숲)을 펴냈다. 그를 만나 그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보자.

아이들을 교육 담론의 중심에 놓다

"지난 10년 동안 교육 담론에서 정작 아이들은 배제돼 왔습니다. 전교조 창립 당시에는 아이들이 중심에 있었지만 1990년대 들어서면서부터 전교조 합법화 문제 등에 매진하다보니 교육 담론에서 정작 아이들이 실종됐죠.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이제 아이들을 중심에 놓고 교육 담론을 고민해보자고 제안하는 것이어서, 10년 묵은 빚을 갚았다는 느낌이 듭니다."

책을 낸 소감을 묻자 이같이 답하는 김진경의 진술은 자못 자기성찰적이었다.

<민중교육>지 사건으로 옥고를 치르고, 전교조 초대 정책실장을 지내는 등 전교조의 담론생산자 역할을 맡아온 교육운동가라는 그의 이력을 배경으로 깔고 보니 그의 소감이 주는 무게감은 더 커진다.

"고민입니다. 명호처럼 하면 될 것 같지만 그게 생각만큼 쉽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계속 명수로 머물 수도 없고…."

수능 부정 사건에서 보듯 범죄를 저지르게 만드는(?) 교육 현실은 계속해서 명수만 길러낼 뿐 명호 같은 아이에게는 관심조차 갖지 않는다. 그런 환경이 못내 아쉽다고 김진경은 안타까워한다.

그는 아이들이 변했다고 말했다. 예전의 아이들이 분명히 아니라고 했다.

"'아이들과의 소통' 문제입니다. 요즘 아이들은 명호처럼 마니아입니다. 자기가 관심을 가지는 것에는 굉장히 열심일 뿐 아니라 놀랄 만한 능력을 보입니다. 이 마니아 속성은 요즘 아이들의 삶에 대한 열의와 땀을 이끌어낼 수 있는 성감대와 같습니다."

그래서 그는 요즘 아이들의 이 마니아적 요구와 능력을 우리 미래 사회의 동력으로 건강하게 키워내는 길은, 진로 교육 개념을 교육의 원리로 학교교육에 전면화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몸은 곧 자기 정체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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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마이뉴스 남소연

김진경은 누구인가?
전교조 창립에 견인차 역할 한 교육운동가

<미래로부터의 반란> 지은이 김진경은 1953년 충남 당진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교사여서 여러 곳을 전전했는데 주로 서산에서 컸다. 대전고 3학년 때 아버지의 사망으로 대학 진학을 포기했다가 막판에 서울대 국어교육과에 진학했다.

대학에서 주로 문학 서클에서 활동했던 그는 대학 3학년 때인 1974년 <한국문학>에 '보리피리' 등 시가 시부문 신인상에 당선되어 문단의 말석에 명함을 내밀었다.

당선하던 그 해 작고한 소설가 이문구의 권유로 자유실천문인선언에 이름만 넣었던 그는 1976년 첫 교단에 선다. 군 제대한 후 맞은 5·18에 큰 충격을 받은 그는 5월시 동인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1985년 <민중교육>지 사건으로 1년2개월을 감옥에서 보낸 그는 이때 교육운동에 뛰어들어 전교조 창립에 깊숙이 관여, 초대 정책실장을 지냈다.

국가보안법 위반 관계로 끝까지 복직하지 못했던 그는 교과활동과 참교육실천위원회 운동을 열심히 하다 2000년 15년만에 복직했다가 2003년 그만뒀다. 그는 지금 우리 신화와 한자문화를 테마로 한 집필에 매달려 있다.

지은 책으로는 <갈문리의 아이들> <광화문을 지나며> <우리 시대의 예수> <별빛 속에서 잠자다> <슬픔의 힘>(이상 시집), <이리>(소설), <거울 전쟁> <고양이 학교> <한울이 도깨비 이야기>(이상 어린이 책) 등과 교육에세이 <스스로를 비둘기라고 믿는 까치에게>가 있다.
요즘 아이들은 또 몸을 매우 중요시한다고 그는 말했다.

"요즘 아이들의 의식구조에서 몸의 지위가 매우 높아졌습니다. 우리 세대처럼 몸의 욕구를 천하다고 생각하지 않고, 몸이 이성에 의해 무조건 통제되어야 한다고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같은 변화는 몸이 자기정체성의 근거가 된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이런 저런 브랜드의 운동화와 옷, 장식품을 소비하고, 그런 브랜드를 소비하는 문화를 가진 집단에 속해 있어야죠."

그럼에도 어른들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이성에 의한 몸의 통제'라는 기존 교육 틀 속에 아이들을 우겨넣으려 애쓴다.

"우리 세대에겐 맞던 학교 교육이 요즘의 아이들에겐 엄청난 억압으로 작용합니다. 아이들의 변화된 직업관과 요구, 학습관이 북돋워지기는커녕 학교의 지식 전수 활동으로부터 억압당하다 쫓겨날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김진경은 심각한 사회문제가 된 왕따 현상도 학교의 문제점에서 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왕따 현상은 급격히 변화하는 아이들과 변화하지 않는 학교 체제의 충돌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아이들을 옛날로 되돌릴 수 없다면 학교 체제를 아이들에게 맞도록 변화시켜야 하지 않겠습니까?"

어렵게 복직했던 그가 학교를 그만둔 것도 어찌 보면 소통문제 때문이 아닌가 싶다.

"중학교에 복직했는데, 아이들이 저를 할아버지 취급합디다. 그래서 아무리 제가 아이들을 이해하려고 해도 쉽지 않았습니다. 아이들도 저도 모두 피해자일 수 있죠. 몸으로 부딪히기가 솔직히 버겁기도 했고, 때마침 정리할 작업들이 있어 그만두었습니다."

체념하는 교사들...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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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마이뉴스 남소연

교사는 근대적인 교육체계에 익숙한 반면 아이들은 전혀 그렇지 않다. 그래서 충돌이 일어나게 마련이다. 그럼에도 교육계에는 이 문제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없다. 그걸 어떻게 조정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안한다. 그게 문제다. 또 각 교사들의 개별 경험들이 공유되지 않은 것도 이 문제를 더욱 심화시키는 원인이 된다.

"사실 뭔가 해보려고 하다보면 왜 튀려고 하느냐는 주변의 따가운 시선이 부담스러워지고, 그러면 결국 체념하게 됩니다."

가령 수업시간에 아이들이 떠들면 처음에는 약간의 체벌까지 동원해가며 조용히 시키려고 하지만 어느 순간이 되면 아이들이 떠들든 말든 혼자 수업만 하고 나가는 식이 된다.

국민이 자녀의 교육을 국가에 위임했다는 전제 아래 공교육은 시작되는데, 이젠 그 공공성의 근거가 어려울 만큼 변화가 왔다. 그래서 김진경은 학교교육의 공공성의 근거 찾기부터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아이들은 마니아적 속성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전히 모든 학생이 똑같다는 전제 아래 교육을 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관심과 재능을 살리는 쪽으로 공교육의 근거를 찾아야 한다고 봅니다."

그러면서 그는 학교가 안바뀌는 이유는 우리 교육계의 지식권력구조가 바뀌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특히 교육부가 더 심하다고 생각합니다. 서구 근대교육이 우리나라에 들어와 정착한 이래 한번도 바뀌지 않았습니다. 그동안 연구자, 관료 등이 외국 이론을 들여와 제도로 정착시켰는데, 이 층이 계속 대물림하면서 두텁게 형성되어 있어서 바뀌기가 힘듭니다."

김진경은 이 지식권력구조의 변화를 만들어내기 위해, 이런 걸 해보니 이런 점에서 좋더라 하는 구체적인 프로그램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이젠 교육운동 방식도 구호가 아니라 구체적인 실천으로 방향을 틀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책을 읽은 많은 전교조 지회나 지부 교사들이 만나자고 하여 여러 건 예약이 되어 있습니다. 이들과 만나 문제 해결 방법을 구체적으로 적극적으로 찾아볼 작정입니다."

그래도 희망은 있다

지금의 학벌 사회 또한 한국 근대 교육 체계가 혼신의 힘을 다해 만들어낸 결과물이라고 그는 주장한다. 우리나라에서 '출신학교'는 '문화자본'의 성격을 갖는다기보다 '신체자본'의 성격을 갖는다는 게 그의 설명. 그 신체자본은 그 사람의 심신에 새겨진 채 평생을 따라다니며, 그 사람이 맺는 인간관계의 수준과 성격, 사회 평가에 절대적 영향을 준다.

일류대학 신입생일수록 과외비를 많이 쓴다는 통계에서 보듯 결국 중산층 이상의 자녀들이 일류대학에 진학하기 쉬운 게 현실이고, 또 남들과 똑같이 받은 학교 교육으로는 신분 추락에 대한 불안을 잠재울 수 없어 사교육에 매달리는 게 현실이다.

하지만 사교육은 오직 점수만 높이는데 목적이 있기 때문에 진정한 의미의 교육은 아니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중산층은 입으로야 어떻게 말하든 지금 학교 교육의 기본 틀이 바뀌는 걸 결코 바라지 않습니다. 점수에 따라 학교가 서열화 되어 있는 지금의 학교 교육 체계는 추락의 불안감에 시달리는 중산층에게는 가장 유력한 자기 방어 수단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김진경은 수능 부정 사건으로 감옥 가는 아이들의 십자가 지고 가는 모습이 참혹하지만, 역설적으로 '이제 드디어 끝에 이르렀구나. 이제 전환이 시작되겠구나'하는 희망을 갖게 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그는 결론적으로 이런 말을 하면서 인터뷰를 갈무리했다.

"<지킬박사와 하이드씨>에 나오는 이 하이드씨의 역할은 아이들이 원하는 것도 아니고 아이들에게 맞는 것도 아닙니다. 이제는 우리 기성세대가 고정관념을 버리고 마음을 바꾸어야 할 때가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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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마이뉴스 남소연

미래로부터의 반란 - 김진경 교육 에세이

김진경 지음,
푸른숲,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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