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 사람들도 내복을 입는다?

[탄생에서 소멸까지 ⑨ - 내복] 미니스커트용도 있어요

등록 2006.01.02 12:26수정 2006.01.02 12:25
0
원고료로 응원
일상에서 쉽게 만나고 소비하는 것들일수록 그것의 원재료가 무언지, 어떤 과정을 거쳐 완제품이 되는지에 관해서는 무심히 넘어가는 경우가 흔하다. 반면 공정에 대한 궁금증을 가진 이들도 적지 않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루에도 몇 번씩 마주하는 친숙한 제품의 탄생에서 소멸까지를 직접 제품의 입장이 되어 1인칭 화법으로 서술해보았다. 기획 아홉 번째 기사는 올해 부쩍 매출량이 늘어난 내복이다. <편집자주>
a

ⓒ 쌍방울·BYC 제공

나 부러워 할 남자들 많겠다. H대학 '몸짱'으로 불리며 인문대 남학생들의 시선을 독점해온 민지는 오늘 나를 사 입었다.

예쁜 다리를 더욱 돋보이게 해주는 패션 아이템이라 민지는 겨울에도 미니스커트를 자주 입는다. 하지만, 두꺼운 옷과 머플러로 얼굴과 몸을 꽁꽁 싸매고 다녀도 덜덜 떨리는 요즘 날씨에 짧은치마를 입고 허벅지를 찬바람 앞에 드러낸다는 건 고통에 가까운 일이다.

해서 민지는 맵시도 나면서 덜 춥게 짧은치마를 입을 방법은 없을까라는 고민을 여러 날 했고, 그 고민의 끝에서 '3부 내복' 혹은 힙워머(Hip Warmer)로 불리는 나를 구입해 빨간 체크무늬 미니스커트 속에 입은 것이다. 내가 주는 따뜻함이 주인을 행복하게 해주고있으니 나 역시 기분이 나쁘지 않다.

나를 비롯한 내 친구들 즉, 내복의 판매가 올해 부쩍 늘었다. 예년에 비해 일찍 찾아온 한파와 아직 회복이 덜 된 경기 탓에 난방비를 절약하려는 회사와 가정이 늘었기 때문이란다. 하긴 나를 입었을 경우 체감기온이 3도 가량 올라간다니, 날 착용해 보일러 설정온도를 2~3도 낮추는 것도 에너지 낭비를 막는 지혜가 될 수 있겠다.

최근엔 시민단체는 물론 정부 차원에서도 나를 입자는 캠페인이 벌어지고 있으니, 반가운 일이다. 어떤 물건이든 사용해주는 사람이 있어야 그 역할을 해낼 수 있는 법. 경제상황과 날씨, 거기에 캠페인까지 결합했으니 내가 잘 팔려나가는 건 당연지사.

나와 내 친구들을 만드는 주요업체인 쌍방울과 BYC는 지난해 대비 매출이 20~25%나 늘었다며 행복한 비명을 지르고 있다. 2005년 12월 첫 주만을 놓고 보자면 예년에 비해 123%나 매출이 신장했다고 쌍방울은 설명한다. 특히, 지난해 겨울부터는 여성내복의 판매성장 곡선이 가팔랐다.

기능향상을 위한 지속적인 노력과 디자인의 세련화로 아동이나 노인들만이 아니라, 젊은 여성과 20대 청년들에게도 사랑 받고 있는 나와 내 친구들. 나에 대한 좀 더 시시콜콜히 얘기해볼 테니 들어보시겠나?

첫 월급 타면 부모님께 빨간 내복을 사주는 이유는...

먼저 내가 만들어지는 과정이다. 대충 짐작들 하겠지만 내복만이 아니라 모든 옷의 재료가 되는 원단을 만들기 위해서는 실이 필요하다. 요새는 100% 면이나 폴리에스테르 섞인 실이 원단의 재료가 되지만, 1960~70년대에는 나일론과 아크릴이 주로 사용됐다.

그때는 '두꺼운 내복=좋은 내복'이란 등식이 일반적이었기에 착용감이나 디자인에 대한 고려는 거의 없었다. 색깔도 천편일률적이었는데 여성용은 빨간색, 남성용은 회색이 대부분이었다. 지금 보면 촌스럽기 그지없는 색깔과 모양이다.

원사(실)가 준비되면 나의 재료가 되는 천을 짜는데 이를 편직공정이라 부른다. 누구나 한번쯤은 TV나 신문, 잡지를 통해 보았을 작업복 입은 천 짜는 처녀들의 모습. 그들의 지난한 노동이 오늘날 한국이 이룩한 경제발전의 한 축이었음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a

ⓒ 쌍방울 제공

여기서 평소 당신들의 궁금증도 풀어줄 겸 잠시 쉬어가자.

지금도 그런지 모르겠지만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사회생활을 시작해 첫 월급을 탄 자식이 부모에게 주는 선물 1호는 내 할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빨간 내복'이었다. 그렇다면, 그런 관습(?)은 언제부터 생긴 것일까?

쌍방울에서 내복 MD로 일하고 있는 한의수 과장에 따르면 70년대부터라고. 빨간색이 상징하는 정열과 젊음을 부모에게 준다는 의미가 크고, 또한 빨강은 예로부터 액을 쫓고 복을 부르는 색깔로 지칭되던 터라 이를 의식했을 가능성도 높다고 한다.

게다가 앞서 말했듯 70년대만 하더라도 염색기술이 낙후돼 다양한 색깔의 내복이 없었던 것도 한 이유가 될 수 있다. 여기에 한 과장이 웃으며 덧붙인다. "그때는 세탁기도 보편화되지 않았잖아요. 빨간색은 때가 잘 안탑니다."

자, 궁금증 해소되셨는가? 이번엔 가장 비싼 내 친구와 가장 싼 내 친구 이야기다.

쌍방울에서 만든 최고가의 내 친구는 2004년 출시됐던 13만원짜리 순모 제품. 지난해 최고가를 기록한 친구는 '노블마인'. 6개월 이상의 개발기간을 통해 만들어진 이 친구는 최고급 원사를 사용한 것은 물론, 광택가공까지 거쳤다. 가격은 6만8000원. BYC가 생산하는 것들 중에서도 순모 제품이 최고가다. 14만4000원.

그렇다면 가장 싼 내 친구는 얼마나 할까? BYC가 생산하는 최저가 상품은 메가폴이란 이름의 남성용내복으로 9800원이다. 쌍방울은 중국에서 OEM 방식으로 생산된 내 친구들을 할인점에 공급하고 있는데 가격은 8000원.

중동으로 수출되는 내복엔 뭔가 특별한 게 있다

다시 내가 만들어졌던 당시의 이야기로 돌아오자. 원단이 완성되면 거기에 염색을 하는 공정이 기다린다. 이때 염색만이 아니라 각종 기능을 추가하는데 요새 내 친구들에게는 녹차와 인삼 추출물은 물론, 고추까지 함유시키는 경우가 있다. 인삼과 녹차의 효능이야 이미 많은 독자들이 알고있을 테니 생략하자.

하지만, 고추는 왜 넣는 걸까? 다 이유가 있다. 고추의 성분 중 하나인 캅사이신은 발열제의 기능도 한다. 말 그대로 내복 자체가 열을 낸다는 것이다. "고추내복 한 벌이면 화끈하게 겨울을 날 수 있다"는 게 업계의 이어지는 부연.

염색과 기능추가의 과정을 거치면 재단공정이 이어진다. 옷의 모양으로 원단을 자르는 것이다. 다음 단계가 봉제 즉, 쪼가리로 된 천을 꿰매는 공정이란 건 누구나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완성된 나와 친구들은 예쁘게 포장돼 시장으로, 백화점으로, 할인점으로 나가 주인을 기다렸던 것이다.

a

ⓒ 쌍방울 제공


a

ⓒ 쌍방울 제공

도서대여점 아르바이트를 마친 민지가 거리로 나선다. 나를 입지 않았을 때보다 훨씬 밝은 얼굴이다. 역시 겨울엔 따뜻한 게 최고다. "입으면 폼이 안 난다"며 내 친구들을 홀대해온 민지의 남동생도 따스함이 주는 안정감과 편안함을 깨달아야할텐데.

이제 내 누나와 여동생 얘기를 좀 하자. 내 누나는 팬티와 러닝셔츠를 통칭하는 내의다. 내 여동생은 브래지어와 슬립, 거들 등 여성용품을 지칭하는 란제리. 나와 누이, 동생을 모두 합하면 그 시장규모가 1조2000억원. 어마어마하지 않은가. 쌍방울과 BYC가 한해동안 생산하는 나와 친구들은 각각 500만 벌과 300만 벌.

이제 나에 얽힌 에피소드를 들려줄 시간이다. 기온이 섭씨 40도를 오르내리는 열사의 나라 사우디와 쿠웨이트 사람들도 내복을 입는다. 영상 10도 정도로 기온이 떨어지면 얼어죽는(?) 사람이 생기는 이 나라 사람들이니 나와 내 친구의 인기는 거기서도 높다.

그런데, 중동국가로 수출하는 나의 포장케이스는 좀 특별하다. 보통의 것들처럼 근사한 몸매의 모델이 내복, 팬티 혹은, 란제리를 착용한 사진이 프린팅 되는 것이 아니라, 기능과 효과 정도만이 아랍어로 씌어지는 것. 이는 여체 드러내는 걸 금기시하는 그 나라들의 종교적 율법을 존중해주는 차원의 조처다.

재밌는 이야기 하나 더. 최근엔 서울 강남의 부촌(富村)에서 내복을 많이 구입한다고 한다. 한겨울에도 반팔 셔츠를 입고 지낼 만큼 빵빵하게 난방을 하고, 뜨거운 히터바람 쏟아지는 대형세단을 타고 다니는 그들에게 왜 내복이 필요할까? 업계 관계자들은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그들이 입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식들에게 보내기 위해 구입한다. 강남 부자의 자식들은 열에 여덟, 아홉이 외국에서 공부를 하는데 유럽이나 미국에서는 겨울에 우리처럼 난방을 하지 않는다. 여기서 따뜻하게만 지내던 아이들이 비교적 썰렁한 그쪽 난방시스템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을 테고 그래서 앞다퉈 내복을 보내는 걸로 알고 있다."

내복 MD와 디자이너...찜통더위에 내복 입고 지내야하는 고달픔

혹한과 그로 인한 떨림을 상당부분 막아주는 나와 내 친구들. 입는 사람들에겐 행복이지만, 그 행복을 위해서 날 만드는 사람들은 적지 않은 고생을 한다.

"보통 그해 내복의 아이템 선정과 기획을 3월에 시작합니다. 서너 달의 회의를 거쳐 시제품이 만들어지면 나는 물론, 디자이너들도 그걸 입고 있어야 합니다. 착용감 등을 직접 테스트하는 거죠. 오뉴월 찜통 같은 더위에 겨울 내복을 입고 있다고 생각해보세요. 그 생각만으로도 땀띠가 날 것 같지 않아요."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한의수 과장은 웃는 낯이다. 사람들이 더욱 따뜻한 겨울을 보내는데 일조하고 있다는 보람과 긍지에서 나온 웃음이리라.

게다가 쌍방울은 2005년부터 '북녘동포에서 내복 보내기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이들은 나를 포함해 내의와 란제리 14억원어치를 북한에 보냄으로써 남북 사이에 깔려있는 냉기를 걷어내는데 기여했다. 따뜻한 내복을 만드는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이 아닐 수 없다.

집에 돌아오는 민지의 손에 내복 두 벌이 들려있다. 아르바이트 한 가게에서 받은 돈으로 부모님께 드릴 선물을 산 모양이다. 얼굴보다 마음이 더 예쁜 그녀와 올 겨울을 보낼 수 있게 된 나는 행운아 중에 행운아다.

인간만이 아니라 내복도 진화해왔다
'엑스란'에서 '웰빙 내복'까지

ⓒ쌍방울 제공

한국에서 내복이 최초로 생산된 해는 광복 후 정부가 수립되던 1948년. 60년대부터 70년대 초중반까지는 인조견이 주소재로 사용됐다. 디자인과 칼라의 다양성은 찾아볼 수 없었고, 엑스란이라 불리던 여성용 빨간 내복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피부에 좋지 않은 인조견이 내복업계에서 퇴출된 것은 1970년대 중반. 그때부터 면이 주요소재로 등장했다. '보온메리'라 이름 붙인 두꺼운 내복이 시장의 주류를 이루었고, 백양(BYC)과 쌍방울의 시장 주도권 다툼이 치열했다. 이때까지도 색상과 디자인은 다양화되지 못했다.

'내복도 패션'이라는 인식의 전환이 사람들 사이에 퍼진 80년대 후반부터는 칼라와 디자인이 다채로워졌다. 이즈음 여성용 내복에 레이스 장식이 등장했다. 90년대 후반엔 염색기술과 나염기술의 괄목할만한 성장으로 다양한 무늬의 내복들이 선보인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는 기능성 강화쪽으로 내복시장의 주된 흐름이 바뀐다. 콩섬유와 우유섬유 등의 천연섬유가 사용되고, 제균 효과와 함께 미생물 증식을 억제해주는 기능성 내복이 등장한다. 따스하면서도 예쁘고, 여기에 기능까지 추가된 각종 내복들. 그것들은 소비자들의 높아진 요구에 따라 오늘도 진화하고 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아버지꽃> <한국문학을 인터뷰하다> <내겐 너무 이쁜 그녀> <처음 흔들렸다> <안철수냐 문재인이냐>(공저) <서라벌 꽃비 내리던 날> <신라 여자> <아름다운 서약 풍류도와 화랑> <천년왕국 신라 서라벌의 보물들>등의 저자. 경북매일 특집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금반지 찾아준 사람이 뽑힐 줄이야, 500분의 1 기적
  2. 2 검찰의 돌변... 특수활동비가 아킬레스건인 이유
  3. 3 '윤석열 안방' 무너지나... 박근혜보다 안 좋은 징후
  4. 4 '조중동 논리' 읊어대던 민주당 의원들, 왜 반성 안 하나
  5. 5 "미국·일본에게 '호구' 된 윤 정부... 3년 진짜 길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