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지것들 좋으라고 섬 가꿔서야 쓰나

[섬이야기 58] 설 명절에 다시 생각하는 '섬'

등록 2007.02.20 10:29수정 2007.07.09 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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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의 가장 큰 의미는 가족들이 함께 만난다는 것이다. 서너 시간이면 족할 이동시간이 예닐곱 시간까지 걸려도 환한 얼굴로 고향 길을 향한다. 이쯤이면 '대이동'이다.

그러나 섬사람들의 명절은 예서 그치지 않는다. 진정한 명절은 고향 가는 배를 타야 한다. 철부선이 쉴 새 없이 포구를 오가지만 가고 싶은 사람과 차량을 모두 실을 수 없는 노릇이다.

그래도 지금은 나은 편이라나. 칠팔순의 섬 노인들은 예전에 큰 배들을 직접 섬에 접안할 수 없어 여객선은 바다에 떠있고 작은 종선이나 나룻배로 실어날라야 했다. 이렇다 보니 바람이 심술이라도 부릴라 치면 영락없이 뭍에 머물러야 했고, 고향땅을 밟아 보지 못하고 되돌아가야 했다. 섬에 도착해 가족들을 만난 사람도 돌아갈 일을 생각하며 내내 날씨에 신경을 써야 했다.

설을 전후해 텅 비는 섬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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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도 고금도와 약산도 섬 출신 출향인들의 차들이 강진 마량항에서 줄지어 철부선을 기다리고 있다(2003년 추석모습). 마량과 고금도 간 연륙사업은 최근 마무리되어 조만간 개통될 예정이다. ⓒ 김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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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 섬 마을 떡방아간이 분주하다(추석 명절 완도 약산도의 떡방아간, 2003)) ⓒ 김준

뱃길이 있어 사람이 오갈 수 있는 섬은 양반이다. 뱃길이 열리지 않는 작은 섬에 가려면 사선을 이용해야 한다. 배라도 있으면 다행이지만 서너 가구가 사는 섬이라면 주민들은 틀림없이 몸을 겨우 지탱하는 노인들이다. 고기잡이배가 있을 리 없다.

요즘에는 농촌 살림살이도 도시 못지않아 도시로 나간 자식들이 명절에 머무르는데 큰 어려움이 없다. 집집마다 기름보일러는 물론 목욕시설이 갖춰져 있고, 크고 작은 방들을 명절에 머무를 자식들을 위해서 수리하기도 한다.

군 중심지역에는 목욕탕은 물론 도회지에 있는 어지간한 편의시설들은 갖추고 있어 웬만한 농촌에서도 이용할 수 있다.

하지만 작은 섬은 말할 것도 없고 큰 섬에도 목욕탕 등 편의시설을 찾기는 쉽지 않다. 도시에 사는 아이들이야 '그러면 찜질방으로 가면 되지'라고 할지 모르지만 목욕탕이 없는 섬에 찜질방이 있을 리 없지 않는가.

그래서일까. 겨울철은 말할 것도 없고, 설을 전후해 섬 마을은 텅 비기 마련이다. 추석에는 해조류 양식 준비 등 갯일이 수월치 않아 섬을 지키며 명절을 맞지만, 설에는 이렇다 할 바다 일이 없다. 그래서 섬사람들은 명절에 날씨·교통 등으로 자식들 고생시킨다며 자식들을 찾아 도회지로 나간다.

얼마 전에 찾았던 여수의 추도는 네 가구가 사는 작은 섬이었다. 명절을 이틀 앞두고 이 곳을 다시 찾았다. 지난 태풍으로 무너졌던 포구가 말끔히 정비되어 있다.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다며 주민들의 불만을 소개한 적이 있었는데(기사 탓에 복구한 것은 아니겠지만) 기분이 좋았다.

문어통발을 하던 조씨는 여수로 설을 쇠기 위해 떠났고, 딸이 보고 싶다는 다른 조씨의 사립문도 열쇠가 채워져 있었다. 오직 '추도 대통령'이라는 이씨 부부만 섬을 지키고 있었다. 이들 부부는 "명절에 누가 찾지 않아 우리 두 노인네만 섬을 지킬 것"이라고 한다.

두 노인은 갑작스레 섬을 찾은 뭍사람들이 반가운지 자꾸 방안으로 들어오라 한다. 마당엔 며칠 전 갯가에서 뜯은 김과 파래가 널려 있고, 빨래줄엔 미역 몇 가닥이 널려 있다. 바닷가에 널린 층암을 주워쌓은 돌담이 잘 어울린다. 교통편이 불편해 자식들을 오지 못하게 했다지만 방안으로 끌어 들이는 두 노인네의 얼굴에 반가움과 서운함이 교차한다.

'가고싶은 섬' 말고 '살고싶은 섬'을 만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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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을 떠난 섬집은 농촌의 빈집보다 쓸쓸하다. ⓒ 김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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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네 가구가 사는 여수 작은 섬 추도에는 설 명절을 쇠기 위해 세 가구가 뭍으로 나가고, 추도대통령이라는 별명이 있는 팔순의 이씨 부부만 섬을 지키고 있다(이씨의 부인이 자연산 톳과 김을 뜯어 말리고 있다). ⓒ 김준

최근 정부에서는 '가고 싶은 섬 만들기' '어촌체험마을 만들기' 등 몇 가지 어촌정책을 내놓고 있다. 섬이 많이 있는 지자체에서는 섬과 어촌개발정책을 만들고 있다.

하지만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공통점이 발견된다. 그곳에 사는 주민들은 없고, 육지 것들이 어떻게 하면 쉽고 편리하게 섬을 찾고 머물다 갈 수 있을까하는 생각들이다. 도심의 각종 시설 못지않은 숙박시설에 차량들이 불편함 없이 섬을 배회할 수 있는 해안도로를 마련한다.

이렇다 보니 외부자본이 투자되어 섬 경관을 무너뜨리는 것은 물론 만들어 놓은 각종 시설이나 프로그램은 주민들의 생각과 동떨어진 것인 경우가 많다. 주민참여라는 구호는 계획서에만 있고, 그것들은 정부와 지자체가 지원해주는 동안에만 전문가와 용역회사에 의해 운영된다.

최근 해양수산부에서는 '무인도서의 보전 및 관리에 관한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관리 방안'을 마련해 발표했다. 관련부처가 모두 7개(재정경제부·해양수산부·건설교통부· 문화재청·환경부·행정자치부·외교통상부)고, 관련 내용도 개발부터 보전까지, 주민들의 어업활동부터 국경문제까지 다양하다. 핵심 내용은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관리를 위해 10년마다 실태조사를 하겠다는 것이다.

이쯤에서 몇 가구 거주하지 않는 작은 섬, 곧 무인도가 될지 모를 섬에 사는 사람들을 생각한다.

이들에 대한 실태조사 자료는 갖고 있을까. 없다면 계획이라도 수립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개발이나 관리비용 차원에서 몇 가구 되지 않는 주민들이 빨리 섬에서 나가주길 바라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정부나 지자체가 주민들의 삶엔 관심이 없고, 육지를 파헤치듯 '섬개발'에만 시선을 보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걱정된다.

그런 면에서 최근 산업자원부와 에너지관리공단의 지원을 받아 10가구 미만의 작은 섬 몇 곳이 태양력발전을 이용한 전기를 사용하게 되었다는 소식은 환영할 만 하다.

완도군이 신청한 '도서낙도 태양광 발전이용시설'이 해당부처의 지원을 받게 되어 금일읍 원도·장도·섭도, 노화읍 죽굴도·대제원도·대장구도, 군외면 양도, 신지면 모항도 등 외딴섬 8곳이 태양광 발전시설을 이용하게 되었다.

섬에 섬사람이 살게 하라

육지 것들이 섬과 바다를 찾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그것은 육지와 '다름' 때문일 것이다. 이 '다름'의 소중한 자원을 각종 정책과 개발로 육지와 '같음'으로 만들려고 안달을 하는 것을 보면 안타깝다.

바다와 섬은 그대로 주민들의 삶의 공간이었다. 지금까지 파괴되지 않고 유지 될 수 있었던 것도 그곳에 '섬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섬사람들이 그들의 생활을 지속할 수 있도록 지원해 주는 것 이상의 '섬 가꾸기' 방법은 없다. 섬을 관광자원화 할 때 먼저 고려해야 할 것도 마찬가지다. 자꾸 섬에서 주민들을 내쫓고 다른 삶을 강요하는 것이 '가꾸기'라는 다른 이름의 개발로 포장되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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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 관광은 여름철에 해수욕장에 집중되어 있다(지난해 여름 해수욕객을 실어 나르는 전남 신안지역의 한 여객선). ⓒ 김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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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가구가 거주하는 작은 섬 여수 추도(왼쪽)와 무인도 장사도, 시루섬(오른쪽에서 두번째 섬), 중도와 사도다. 사도는 20여 가구가 거주하고 있으며, 추도 함께 공룡발자국이 발견된 곳이다. ⓒ 김준

#완도 #섬가꾸기 #개발 #파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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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 년 동안 섬과 갯벌을 기웃거리다 바다의 시간에 빠졌다. 그는 매일 바다로 가는 꿈을 꾼다. 해양문화 전문가이자 그들의 삶을 기록하는 사진작가이기도 한 그는 갯사람들의 삶을 통해 ‘오래된 미래’와 대안을 찾고 있다. 현재 전남발전연구원 해양관광팀 연구위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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