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법궤를 찾아가다

[내가 만난 아프리카 17] 모세의 법궤를 보관하고 있다는 시온의 성 메리 교회

등록 2007.02.21 17:16수정 2007.07.09 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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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도 출입할 수 있도록 새로 지은 시온의 성 메리 신교회. ⓒ 김성호

모세의 법궤를 보관하고 있다는 시온의 성 메리 교회

시바의 여왕의 왕궁터라는 둔구르 유적지를 떠나 악숨 박물관 근처의 '시온의 성 메리 교회(St Mary of Zion Church)'를 찾았다. 교회에 도착하자 장례식에 따라갔던 문상객들이 장례절차를 마쳤는지 산에서 내려와 좌우로 흩어지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에티오피아인들이 가장 성스러운 곳으로 생각하는 시온의 성 메리 교회. 바로 십계명을 새긴 법궤가 보관되어 있다는 전설이 내려오는 곳이다. 시온의 성 메리 교회는 두 개가 있는데, 원래 교회인 옛 교회와 똑같은 이름으로 바로 옆에 새로 지은 신교회가 있다. 제일 먼저 간 곳은 옛 교회의 뒤쪽에 붙어 있는 작은 박물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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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교회 박물관의 야외 간이 전시실에 있는 왕관과 십자가. ⓒ 김성호

그쳤던 비가 다시 내리기 시작해 우산을 쓰고 박물관으로 갔다. 나와 에티오피아 여대생 2명이 박물관 입구 쪽으로 가자 이미 유럽에서 온 남녀 5명의 여행팀이 박물관 철제 대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박물관인데도 교회에 부설된 시설이라는 이유로 여성들에게는 개방되지 않아 철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잠시 후 성직자가 박물관에서 가져온 다양한 모양의 철제 십자가를 철문까지 가져와 보여줬다. 박물관이 여성 금지구역이어서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박물관 철문을 통해 봐야만 했다. 철문 옆에는 조그만 전시실이 마련되어 있었는데, 역시 철제 창문으로 만들어진 공간 안에 놓여 있는 책상 위에 역대 왕들의 왕관이 전시되어 있었다. 박물관에 들어가지 못하는 여성 여행객을 위한 간이 전시실 같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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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예루살렘에서 법궤를 가져오는 메넬리크 1세 황제의 그림. ⓒ 김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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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교회 안에 있는 양가죽으로 만든 오래된 성경책. ⓒ 김성호

여성도 출입할 수 있는 새로운 '시온의 성 메리 신교회'

@BRI@옛 교회 박물관에 이어 발길을 돌린 곳은 새로 지은 둥근 돔형의 신교회였다. 이 교회는 마지막 황제인 하일레 셀라시에가 지난 1965년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가 참석한 가운데 세운 시온의 성 메리 신교회이다. 옛 교회가 여성 출입을 막아 불편하자 남녀 모두 출입할 수 있는 같은 이름의 새로운 교회를 바로 옆에 지은 것이다.

신발을 벗고 신교회 안으로 들어가자 첫 번째 눈에 띄는 것은 솔로몬 왕과 시바의 여왕 사이의 아들이라고 알려진 메넬리크 1세 황제가 법궤를 가져오는 그림이었다. 메넬리크 1세가 1만2000명의 에티오피아 유대인이라는 팔라샤와 함께 이스라엘 예루살렘에서 에티오피아로 법궤를 가져오는 장면이다.

신하 한 명이 법궤를 두 손으로 머리 위로 들어올려 정중하게 옮기고 그 뒤로 메넬리크 1세와 팔라샤들이 따라 가고 있었다. 그림의 배경에는 강이 그려져 있는데,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요르단 강을 건널 때 법궤를 앞세워 행진했다는 성경 속의 이야기를 그린 것으로 보인다.

그림에 수행원으로 그려진 사람들은 솔로몬 왕이 이스라엘 12지족에서 1천명씩 모두 1만2000명을 골라 예루살렘을 방문했다가 돌아가는 아들 메넬리크 1세에 딸려 보냈다는 전설에 따른 것. 에티오피아 전설에는 메넬리크 1세가 어른이 되어 예루살렘으로 아버지 솔로몬 왕을 찾아갔다가 돌아올 때 모세가 시나이 산에서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10가지의 계명을 새긴 두 개의 돌판을 보관한 법궤를 에티오피아로 가져왔다는 또 다른 이야기가 내려오고 있다. 이 그림 속에는 바로 이런 에티오피아 전설들을 모두 담고 있었다.

법궤 전설 역시 역사적 사실과는 충돌되는 이야기이다. 모세의 법궤는 B.C. 13세기에 제작되어 솔로몬 왕 당시 예루살렘 성전에 보관되다 B.C.587년 바빌로니아왕국에 의해 예루살렘이 파괴될 때 사라졌다는 것이 정설인데, 에티오피아 전설에 따르면 B.C.10세기 솔로몬 왕 때 이미 메넬리크 1세에 의해 에티오피아로 옮겨졌다는 것. 에티오피아에는 시바의 여왕의 전설뿐 아니라 유대교 및 기독교, 구약성경 및 신약성경과 관련한 수많은 전설들이 내려오고 있다.

신교회 안에는 에티오피아의 유명한 성인들이 그려져 있었고, 안내하는 성직자들은 여행객에게 양과 염소가죽으로 만든 오래된 성경책을 보여주었다. 예수와 기독교의 성인들을 그린 성화와 암하릭어로 쓰인 오래된 성경은 양가죽 또는 염소가죽에 달걀 노른자위와 황소의 피로 쓴 글이라고 한다.

성직자는 "성경책의 정확한 제작연대는 알 수 없지만, 700년 이상 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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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출입이 금지되어 있는 시온의 성 메리 옛 교회. ⓒ 김성호

종교적 여성 차별주의가 남긴 여성에 대한 교회 출입금지

에티오피아 여대생 2명은 신교회에서 더 구경을 하고, 나는 옆에 있는 오래된 시온의 성 메리 옛 교회로 갔다. 이곳은 여성이 출입할 수 없는 장소여서 안내자를 데리고 나 혼자 가야 했다. 바하르다르의 타나 호수 위에 있는 여성 출입금지 수도원에 이어 에티오피아에서 가장 성스럽게 생각한다는 육지의 교회마저 여성 출입을 금지하는 것을 보면서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일레 셀라시에 황제가 여성들을 위해서 지었다는 신교회에 대해서도 남녀평등을 위한 배려로 찬사를 보내야할지, 남녀차별의 고착화로 애통해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여성 출입을 금지하고 있는 옛 교회의 잘못된 관행을 고쳐 여성에게도 출입을 허용하면 간단히 해결될 일을 가지고, 바로 옆에 똑같은 이름의 교회를 굳이 새로 지을 필요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전통적 남성중심주의와 종교적 여성차별 교리의 잘못된 만남이 빚어낸 시대착오적 현상인 여성 출입금지 관행이 얼마나 에티오피아에 뿌리 깊은 지를 보여주는 사례이다. 타나 호수 위에 있는 케브란 가브리엘 수도원을 비롯한 적지 않은 수도원들이 여자들의 출입을 금지하는 것 역시 남자 수도자들의 수행에 방해된다는 측면보다는 전통적인 여성혐오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에티오피아와 에리트레아에서는 지금도 적지 않은 수도원과 교회에서 아예 여성들의 출입을 금지하고 있는데, 여성들이 신성한 곳에 출입하면 '부정 탄다'는 종교적 금기사항의 전통에 따른 것이다.

에티오피아의 일부 근본주의적인 성직자들은 여성뿐 아니라 암탉이나 암염소, 암탕나귀 등 모든 암컷 동물들까지도 교회 안에 들여놓아서는 안 된다고 믿는다. 이 정도면 아예 여성혐오가 아니라 '암컷혐오'라고 해야 할 듯.

옛날 어디나 있던 남성 중심주의 전통이 종교적 교리와 합쳐지면서 아예 교조적 관행으로 굳어진 것이다. 여성에 대한 종교적 혐오는 고대 부족시대부터 여성에게 한 달에 한번 찾아오는 월경을 부정한 것으로 생각해 월경 중의 여자는 종교의식에 참가하지 못하도록 한 풍속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외과의사이며 인류고고학자인 레너드 쉴레인은 <자연의 선택, 지나 사피엔스>와 <알파벳과 여신>이라는 자신의 책에서 여성혐오로 나타나는 성차별이 월경과 출산이라는 여성의 고유역할에 의한 생물학적 불리함과 함께 종교의 탄생에서 발생한 것이라는 흥미 있는 분석을 내놓았다.

그리스 로마와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인도, 중국 등 고대 4대 문명의 시기만 해도 여신이 최고의 자리를 차지하는 여성 신격의 시대였으나, 서양에서 발생한 3대 유일신 종교인 유대교와 기독교, 이슬람교가 일어나면서 세상에 오직 단 하나의 신격만 존재한다는 유일신은 바로 남성이었고, 그 결과 여신은 사라지면서 종교적으로 차별의 정당성을 부여하게 됐다는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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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교회 천장에 그려진 에덴 동산에 있는 아담과 이브의 그림. ⓒ 김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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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궤를 보관하고 있는 지성소 입구. ⓒ 김성호

법궤를 보관한 지성소를 문틈으로 들여다보니...

여성 출입을 금지하는 시온의 성 메리 옛 교회는 애초 4∼6세기 무렵에 처음 세워졌으나 1535년 이슬람세력에 의해 파괴되자 17세기 곤다르 왕궁을 건설한 파실라다스 왕이 바로 옆 터에다 다시 세운 것이다. 사각형으로 된 옛 교회 입구 벽에는 네 잎 클로버 모양의 십자가가 새겨져 있고, 교회 안으로 들어가자 역시 예수와 성모 마리아의 성화 등이 온 벽에 그려져 있었다.

정면 천장에 그려진 그림에는 이브가 에덴의 동산에서 발가벗은 채로 뱀의 유혹을 받아 선악과를 따먹는 모습과 혀를 내밀며 그녀를 유혹하는 뱀의 모습, 부끄러움을 알게 된 아담과 이브가 나뭇잎으로 자신들의 은밀한 부분을 덮은 채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는 모습 등이 실감나게 그려져 있다.

안내자는 오래된 양가죽 성경을 보여준 뒤 빨간 천으로 가려진 곳으로 나를 데려갔다. 바로 법궤가 놓여 있다는 지성소이다. 안내자가 천을 들어올리자 왼손에는 칼을, 오른손에는 창을 든 성 가브리엘과 라파엘이 지성소를 지키고 있는 그림이 대문에 그려져 있다. 안내자는 나에게 특별히 보여주겠다며 대문 틈 사이로 안을 들여다보면 법궤가 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대문 틈 사이로 안을 들여다봤으나 캄캄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내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고 하자, 안내자는 "일반인들에게는 보이지 않고 성직자들의 눈에만 보인다"고 말한다. "지금 사람을 놀리고 있나. 참 이상한 사람도 다 있네…"라고 속으로 되뇌었다.

에티오피아를 도우려다 참수당한 바스코 다 가마의 아들

시온의 성 메리 교회에는 기독교와 이슬람 사이의 종교적 갈등의 역사가 그대로 배여 있다. 이 교회는 애초 기독교가 국교로 지정된 이후 4세기에서 6세기 사이 에자나 왕과 칼렙 왕 시기에 세워졌으나, 1535년 '왼손잡이'라는 별명으로 불린 아흐마드 그란이라는 이슬람 지도자의 침략을 받아 파괴되었다. 악숨 고고학 박물관 옆의 빈터가 바로 처음 세워졌던 시온의 성 메리 교회의 터이다.

당시 에티오피아의 레브나 덴겔 황제는 시온의 성 메리 교회를 파괴한 이슬람 세력의 침략에 위험을 느껴 포르투갈에 긴급 군사지원을 요청했는데, 1541년 지금은 에리트레아에 속해 있는 홍해 마싸와 항구에 배를 타고 도착한 포르투갈군의 사령관이 바로 유명한 탐험가 바스코 다 가마의 아들인 돔 크리스토바오 다 가마. 포르투갈은 같은 기독교 국가인데다 인도양에 대한 이해관계 때문에 에티오피아에 지원병을 파견했던 것.

400명의 잘 훈련된 소총부대를 이끌고 온 아들 가마는 너무 어린데다 경험 없이 무모하게 진격하다 결국 타나 호수 근처에서 이슬람 세력에 체포돼 목이 잘라 처형되었다. 아들 가마는 아버지 바스코 다 가마(1469∼1524)가 이슬람 세력과 힌두 연합 함대의 공격을 격파하면서 개척한 인도항로를 수호하고 인도양의 패권을 지키기 위해 파견되었으나 아버지만큼 용맹하지는 못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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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교회 안에 보관되어 있는 오래된 양가죽 성경책. ⓒ 김성호

마르코 폴로와 이븐 바투타 여행기에는 어떤 내용이...

시온의 성 메리 교회를 파괴한 이슬람세력이 일어날 지역은 현재 홍해의 아덴만에 있는 소말리아 항구인 제일라(소말리아어로는 세일락). 1490년대 제일라에서 발흥한 이슬람세력은 에티오피아 내륙지역으로 급속히 세력을 뻗치면서 에티오피아 악숨까지 위협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예멘 및 소말리아 지역의 이슬람세력과 에티오피아 내륙지역의 기독교 국가 사이에는 종교적 갈등이 쌓여 있었다. 이탈리아 여행가인 마르코 폴로(1254∼1324)가 1295년 이탈리아 베네치아로 돌아온 뒤 쓴 <동방견문록>에도 "아덴의 술탄이 자신의 영토를 여행하던 에티오피아 주교를 붙잡아 강제로 이슬람으로 개종시키려 했을 뿐 아니라 이슬람 전통에 따라 할례를 시켰다. 이러한 모욕에 에티오피아 황제가 군대를 일으켜 술탄의 수도를 점령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모로코의 이슬람 여행가인 이븐 바투타(1304∼1368)는 1329년 홍해를 여행하면서 제일라 항구에 대한 인상을 여행기에 남겼다.

문명교류사분야의 저명한 학자인 정수일 전 단국대 사학과 교수가 번역한 <이븐 바투타 여행기1>(창작과비평사 : 370∼371쪽)에 따르면 "제일라 주민들은 피부가 검고 (이슬람 분파인) 라피뒤야파 추종자들이다. 도시는 크고 굉장한 시장도 있지만 세상에서 가장 지저분하고, 가장 황량하고, 가장 악취가 풍기는 곳이 바로 이 도시다. 악취는 물고기가 많고 거리에서 마구 잡는 낙타의 피 때문이다. 우리는 이곳에 도착해서는 시가지가 너무나 지저분하여 비록 위험하기는 하지만, 바닷가에 투숙하고 시내에서는 머물지 않았다"고 되어 있다.

이븐 바투타는 또 이 여행기에서(358쪽) 사우디아라비아 메카의 서쪽 홍해 연안도시인 짓다에서 수단의 다루르 항구로 배를 타고 건너가는 과정을 설명하면서 "선주는 예멘 출신의 라쉬둣 딘 알피인데, 그의 조상은 에티오피아인이다"고 말하고 있다.

예멘에서 에티오피아로의 이주뿐 아니라 거꾸로 에티오피아에서 예멘으로의 이주도 이루어지는 등 홍해를 사이에 두고 에티오피아와 아라비아 반도 사이에는 종교적 갈등과 함께 빈번한 인적 교류가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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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의 법궤를 보관하고 있다는 법궤의 예배당 건물. ⓒ 김성호

진짜 법궤를 보관하고 있다는 법궤의 예배당

옛 교회를 나오자 신교회 사이에 별도의 사각형 건물이 보이는데, 에티오피아인들이 메넬리크 1세 황제가 가져왔다는, 이른바 역사에서 찾고 있는 '잃어버린 법궤'가 진짜 보관되어 있다고 믿는 곳이다. 이름도 법궤의 예배당이다. 이 예배당은 사방이 철제 울타리가 쳐져 있어 일반인이 절대 들어갈 수 없는 곳이다.

평생 법궤를 지키는 한 명의 성직자만이 접근할 수 있으며, 이 성직자도 죽을 때까지 예배당에서 나올 수 없다는 이야기가 마치 전설처럼 전해지고 있다. 더구나 일반인이 이 법궤의 예배당에 너무 가까이 접근하면 불에 타 죽게 된다는 무시무시한 이야기까지 내려오니 여행객으로는 접근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곳이다.

역사적으로 솔로몬 왕이 죽은 후 잃어버린 것으로 알려진 모세의 법궤(또는 성궤)의 행방은 지난 2500여 년간 인류의 최대 관심사 중 하나였다.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지게 된 계기는 지난 1981년 미국의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 해리슨 포드 주연의 <인디아나 존스-잃어버린 성궤를 찾아서(Raiders of The Lost Ark)>라는 영화를 통해서이다. 이 영화는 바로 법궤의 행방을 쫓는 추적자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에티오피아에서는 이 법궤를 '타보트(Tabot)'라고 부르는데, 모든 교회에서는 이 타보트의 모형을 만들어 지성소라는 곳에 상징적으로 보관하고 있다. 팀카트 등 중요한 종교적 축제 때에만 타보트는 교회 지성소에서 꺼내 일반인들에게 공개되고 운반하는 행사를 하는데 축제의 신성함과 경건함을 높여주기 위한 것이다.

법궤의 예배당을 구경하고 있는데, 옛 교회에서 뒤따라 나온 안내자가 때가 묻은 철제 십자가를 보여주면서 "2백년이나 된 골동품 십자가"라며 100비르(1만2500원)만 달라고 한다. 지성소를 보면 법궤가 보인다고 거짓말을 했던 안내자의 말을 믿을 수는 없는 법.

돈이 없다고 거절하고 신교회로 오니 나를 기다리던 에티오피아 여대생과 운전사는 이미 차량에 탑승해 있었다. 두 여대생이 법궤를 봤느냐고 물어 "지성소 문틈을 통해 안쪽을 봤으나 어두워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고 말하자 깔깔대고 웃는다. 바보처럼 왜 속았느냐는 것.
#에티오피아 #악숨 #시온의 성 메리 교회 #법궤의 예배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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