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칠고 날선 '저질'의 힘에 집중하라

[김종휘의 TV 안과 밖] '무릎 팍 도사'의 인기비결은 줄다리기

등록 2007.03.31 16:31수정 2007.03.31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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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어장> '무릎 팍 도사'(최민수편)의 한 장면. ⓒ iMBC

항우울제 먹는 것보다 TV 오락 보는 게 낫다

오락 프로그램을 바라볼 때 나는 다음 세 가지 축을 참고한다.

먼저, TV 오락 프로그램을 보고서 '품격'이 떨어진다거나 '저질'이라고 느끼는 감수성이다. 그 오락 프로그램이 시청률 고공행진을 기록하면 반응은 한층 격해지거나 싸늘해진다. 그런 엉터리 프로그램을 그렇게 많은 이들이 본다는 사실에 한탄이 뒤따른다.

진단은 복합적이다. 국가 검열이 내면화시킨 '국민정서' 작동에 의한 반발, 오랜 유교적 '미풍양속'과의 윤리적·문화적 갈등, '청소년 정서'에 끼치는 영향에 대한 우려, 그리고 특정 연예인들의 오락 프로그램 '독점'에 따른 품질 저하 등. 나는 주로 맨 마지막 경우만을 문제삼는 편이다.

다음은, TV 오락 프로그램을 지배체제의 '우민화' 기제로 바라보는 태도이다. 이런 입장은 스포츠 프로그램과 예능 프로그램을 모두 한 통속으로 보지만 대부분 만만한 오락 프로그램을 대표 표적으로 삼곤 한다.

나는 후기 자본주의 사회의 TV 오락 프로그램을 대중이 가장 손쉽게 구입할 수 있는 항우울제 약품 같다고 생각한다. '프로작(가장 많이 사용되는 우울증 치료제)'을 복용하는 대신 정원을 돌보거나 자연 속에서 사는 것이 적극적이고 근본적인 대안이나, 항우울제로 답답한 하루하루를 넘기는 이들을 '우민'으로 규정할 생각은 없기 때문이다. 물론 중독이 되면 곤란하므로 TV 오락의 단골 시청자가 되는 일은 피하라고 권하고 싶다.

끝으로, TV 오락 프로그램이 사회의 정치적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되는 특정한 국면이다. 지금은 거의 없어진 듯 보이는데, 과거에 사회정치적 격변이 일어날 때면 방송사는 전체 편성이나 황금 시간대에서 오락이 차지하는 과도한 비율이나 비중을 본보기로 삼곤 했다. 공영방송이든 상업방송이든 자신의 정체성과 전혀 무관하게 분위기를 보다가 오락 프로그램의 폐지나 축소 등으로 방송의 공공성이나 개혁에 대한 방송 외부의 요구를 면피하는 일이 잦았다.

이도 한철 지나면 어김없이 원상 복귀했던지라, 정치권이나 방송사나 시청자 중 누구도 그것을 개혁의 일환이라고 믿지 않는 동일한 면역성을 기른 것 같다.

비평 따로 제작 따로 시청 따로...

이상의 세 가지 축에 따른 이야기들은 TV 방송, 그 중에서도 특히 TV 오락 프로그램을 바라보는 나름의 역사적 근거나 사회문화적 쓸모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런 세 가지 관점은 문제의식의 바탕이 될지 언정(되어야 하나) 전면에 등장해 특정한 TV 오락 프로그램을 평가하는 잣대가 되는 일은 점점 더 줄어들 것 같다.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비평 따로 제작 따로 시청 따로' 돌아가는데 별다른 불편이 없었다는 것을. 이런 평행선 덕에 오락 프로그램을 대량 공급하고 소비하는 TV 방송사와 시청자에 대해 지식인 사회나 시민단체의 비판적 관계 맺기는 피드백 없이 계속 겉돌아 왔다는 것을.

질문이 바뀌지 않으면 답변도 바뀌지 않는 법이다. 해서 나는 TV 오락 프로그램에 대해 정보나 교양을 첨가해야 한다거나 또는 항우울제 이상의 또 다른 공익을 추가해야만 가치를 인정해줄 수 있다는 식의 접근법 대신에, 우리 사회의 대중적 오락 그 즉자적인 필요와 충족으로서 바라보는 인식과 대안 제시를 좀 더 앞세워야 한다고 믿는다.

물론 이렇게 다가서도 '오락이란 무엇인가?' 또는 '재미란 무엇인가?'와 같은 속 깊은 성찰이 뒤따르겠지만, 그와 동시에 좀더 직접적으로는 '오락의 수준과 방식'에 대해 다양성과 변별성(새로움) 등의 시선으로 평가하는 일이 좀 더 활성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점에서 나는 오락의 수준이 결국 오락의 방식에 좌우된다고 생각한다. 이를 세 가지로 나눠보면, 첫째는 오락의 '다원화', 둘째는 오락의 '민주화', 셋째는 오락의 '형식화'이다.

'다원화'란, 여러 가지 취향을 반영하고 고려하는 것인데, 이는 방송사 간에 차별화된 편성으로 나타나거나 같은 방송사의 오락 프로그램들 사이에서 다양한 실험으로 나타난다. '민주화'는, TV 오락이 시청자 대중의 오락이어야 한다는 점에서 시청자 참여를 조직하고 시청자와 소통하는 방식의 문제이다. '형식화'는, 오락의 미학적 형식에서 앞서 가거나 새로움을 창조하는, 순전히 오락의 형태 발전에 관한 방식의 차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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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어장> '무릎 팍 도사'(이경규편)의 한 장면 ⓒ iMBC

'무릎 팍 도사'가 신선해 보이는 까닭

<황금어장>의 한 코너로 출발했으나 <황금어장> 전체 시간을 이 코너로 바꿔도 될 만큼 색다른 오락을 실험하는 '무릎 팍 도사'는 그 세 가지에서 여타 오락 프로그램과 무엇이 다른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먼저 '다원화'의 기준에서 볼 때, 모든 방송사의 TV 오락 프로그램이 그만그만한 차이를 명분 삼아 동일한 연예인들의 상부상조 신변잡기와 수다로 도배하는 가운데에서 '무릎 팍 도사'는 늘 보는 스타를 꽤 다른 방식으로 다루고 있다. 스타가 걸어온 경력과 갖가지 의혹을 가지고 마치 열띤 공청회나 막무가내의 심문처럼 공략한다. 같은 연예인을 봐도 '무릎 팍 도사'에서 보면 신선해지는 이유다.

다음 '민주화'로 보면, 비유컨대 <야심만만>이 네티즌의 설문 조사를 통해 단지 궁금한 퀴즈를 낸다면 '무릎 팍 도사'는 스타가 피해가고 싶은 네티즌들의 뜨거운 질문 위주로 '추궁'한다. 비록 그 질문이 '저질'이고 '품격'이 떨어져도 상관없다. TV 오락 프로그램은 그럴수록 더욱 뜨거운 공방전으로 치닫게 된다. 이는 <야심만만>의 네티즌 1만명의 참여 기획보다 '민주화' 측면에서 한발 더 나간 경우다.

물론 '민주화' 기준은 <전파견문록>처럼 어린 아이들의 생각과 감성에 초점을 맞추거나 <가족오락관>처럼 방청객의 동참을 유발하거나 <상상플러스>처럼 화면으로 시청자를 참여시키는 여러 방식이 있다.

끝으로 '형식화'로 보면, 가장 단적으로 MC와 출연자의 역할이 큰 요인을 차지하는데, '무릎 팍 도사'는 세 사람의 MC가 출현한 스타 연예인과 친분 관계나 동질성을 앞세우기보다는, 서로 공격하고 방어해야 하는 긴장된 관계를 유지한다. 덕분에 수많은 오락 프로그램의 관성을 피해간다.

대부분의 오락 프로그램도 팀을 나눠 경쟁의 형식을 취하나, 실은 출연한 연예인들의 끈끈한 유대 관계를 넘어설만한 '진짜' 대립의 아젠다가 약한 탓에 김빠지는 일이 반복된다. 반면 '무릎 팍 도사'의 MC들은 개인기를 내세우더라도 네티즌들의 뜨거운 질문을 대행하는 기본 구도를 벗어나지 않아 보인다.

시청자들이 '무릎 팍 도사'에 바라는 것은

'무릎 팍 도사'에 대해 "건방지다" "몰아세운다" "위험하다" "까발린다" "대놓고 한다" 등으로 말하곤 한다. 이는 "얌전하다" "치켜세운다" "안전하다" "넘어간다" "은폐하고 간다" 등의 요소도 함께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무릎 팍 도사'는 그 줄다리기를 통해 인기를 높이고 있다. 앞의 기조를 유지했을 때(박진영, 신해철, 주영훈 출연시) 성공했고, 뒤의 기조로 기울었을 때(태진아, 차승원-유해진 등의 출연시) 실패했다. 애매한 경우(이경규 출연시)도 있다.

시청자들이 무엇 때문에 '무릎 팍 도사'를 좋아하는지 안다면, 무엇보다 네티즌의 '거칠고 단도직입적이며 날선' 질문에 집중해서 하는 게 좋다. 그것이 '저질'이든 '품격'이 낮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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