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청소년 시청지도는 부모 책임?

[아줌마, TV를 말하다 ⑧] 프로그램 등급제와 시청지도

등록 2007.04.03 15:37수정 2007.04.04 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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찜질방에서 성인용 게임중계를 보고 있는 초등학생 ⓒ 김혜원

"우리애는 초등학교 6학년인데 TV를 너무 좋아해요. 음악프로그램은 물론이고 일일드라마나부터 미니시리즈까지 엄마인 나보다 더 잘 알고 있다니까요."
"드라마 대부분이 15세 등급이더라구요. 아이 때문에 온 집안 TV를 끌 수도 없고,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요?"
"가족시청시간대(평일 저녁7시~밤10시/토·공휴일 오후6시~밤10시) 프로에도 불륜이나 폭력장면이 자주 나오는데 그럴 땐 어떻게 해야 할지 참 난감하더라구요."


우리 생활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는 TV. 교육방송을 보고 대학입시에 성공했다고 자랑하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TV에서 본 장면을 그대로 모방해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도 있다. 벌이 마시면 꿀이 되고 뱀이 마시면 독이 되는 물처럼 때로는 독이 되기 때로는 꿀이 되기도 하는 TV.

TV의 부작용을 우려해 꺼버리거나 못 보게 하는 가정도 적지 않지만 집안 말고도 TV를 시청 할 수 있는 곳은 얼마든지 있으며, 인터넷 다시보기 서비스가 일반화 된 지금 자녀들의 시청을 막기 위해 TV를 끄거나 집안 TV수상기를 없애는 것은 더 이상 별의미가 없어 보인다. 그렇다고 무관심하게 내버려 두기에는 부모로서의 의무를 다하지 못한 것 같아 마음이 불편하다.

자의적이며 애매하기까지 한 '프로그램 등급제'

방송사들은 지난 2001년 1월1일부터 실시된 방송프로그램 등급제에 맞춰 프로그램을 시작하기 전 '본 프로그램은 OO세 미만의 청소년이 시청하기에 부적절하므로 보호자의 시청지도가 필요한 프로그램입니다'라는 자막을 내보내고 있다. 하지만 이는 방송사들이 부모에게 자녀의 '시청지도'를 강요하며 그 책임을 떠넘기는 것과 같다.

드라마, 연예, 오락, 영화 등 대부분의 프로그램 시작 전에 자막으로 처리되는 '프로그램 등급제'는 선정적이거나 폭력적인 내용을 담은 프로그램이 가치관이 형성되지 않은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가정에서 만들어진 제도이며 폭력성, 선정성, 언어사용 정도에 따라 등급을 정하고 있다. 등급은 '모든 연령 시청가'와 7세·12세·15세·19세 이상 시청가'로 구분되어 있다.

그러나 등급을 정하는 기준은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처럼 상당히 자의적이며 애매하기까지 하다.

예를 들어 프로그램 내용 중 상의를 입지 않은(토플리스) 무희가 등장해 성행위를 연상시키는 애로틱한 춤을 춘다. 이 장면에서 유두가 노출되면 방송 불가 판정이 내려지지만 젖가슴은 그대로 둔 채 유두만 가려주면 19세 이상 등급, 유두를 가린 무희의 모습이 전체 프로그램 내용과 적절 조화를 이루었다면 15세 이상 등급을 받고 좀 더 폭넓은 시간대에 방송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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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그램 시작 전 '등급표시'와 함께 고지되는 '시청지도' 안내 자막 ⓒ KBS

15세 이상 등급 드라마에서 불륜이나 외도, 진한 키스신과 폭력장면이 등장하는 것은 이런 이유다. '성적묘사가 건전한 남녀관계의 애정표현을 벗어나지 아니하고 신체의 부분 노출, 암시적인 성적 접촉 및 대화 내용이 선정성을 띠지 아니한 것'이라는 등급기준에 적합했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부모들은 15세 이상이라는 등급 표시만 믿고 자녀들과 함께 마음 편히 TV를 보기가 힘들다. 황급히 아이의 눈을 가리거나 채널을 돌린다고 이미 봐버린 영상이 사라질리 없고 별 반응 없이 함께 보기에는 아이가 너무 의식된다. 이렇기 때문에 어린이나 청소년 자녀를 둔 학부모들은 좀 더 보수적인 기준을 가지고 등급판정을 내려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크다.

이에 반해 어린이, 청소년 미디어 전문가들은 '등급' 보다는 '시청지도'에 더 많은 신경을 써야 한다는 의견이다.

'깨끗한 미디어를 위한 교사운동'에서는 지난해 12월 한 달간 수도권 초·중·고생 504명을 대상으로 등급제 준수 여부에 대한 설문조사를 벌인 바 있다.

조사에서 공영방송 및 케이블 TV 시청의 경우 '부모님과 함께 TV를 보느냐'란 질문에 '부모님과 늘 함께'라고 응답한 청소년은 25.2%에 불과했다. 반면 '부모님 계셔도 혼자 본다'는 응답자도 25.2%에 달했다.

TV 시청 시간대는 밤 10시~12시가 34.2%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초등학생의 경우 저녁 8시~밤 10시 사이, 중·고등학생은 밤 10~12시 사이가 압도적으로 많았고 방송등급을 지켜 시청한다는 학생은 19.8%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등급에 맞지 않는 미디어를 볼 때 부모나 주위의 제지를 당했다고 답변한 학생은 51%로 보호자의 '시청지도' 역시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전문가들, '등급' 보다 '시청지도'에 더 신경 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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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월화드라마 <히트>의 한 장면. 우측상단에 15라는 등급표시가 보인다 ⓒ mbc

이런 결과를 놓고 미디어관련 시민단체들은 같은 목소리를 내고 있다. 더 이상 실효성 없는 등급표시에만 의존할 것이 아니라 어린이, 청소년들에 대한 좀 더 적극적인 '시청지도교육'을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부모로서는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도대체 '시청지도'란 무엇인가? TV에서 말하듯 보호자는 자녀에 대한 '시청지도'의 책임이 있는 것인가? 그렇다면 모든 시간을 아이와 함께 할 수 없는 일하는 부모의 자녀의 '시청지도'는 누구 몫인가? 부모가 함께 하지 않는 시간에 대한 시청지도는 또 어떻게 되는 것인가?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민언련)의 미디어담당 관계자는 등급표시 의무 준수와 보호자의 시청지도를 바란다는 자막만으로 모든 책임을 다한 것처럼 착각하는 방송사들의 무책임을 지적했다. '보호자의 시청지도를 바란다'는 형식적인 자막표시로 방송사가 져야할 책임을 부모에게 떠넘기고 있다는 것이다.

또 다른 관계자는 "어린이와 청소년의 '시청지도'에 대한 1차적인 책임은 국가와 사회에 있다"고 못 박았다. 국가적인 미디어 정책으로 해결해야 할 일을 부모와 같은 개인의 책임으로 전가한 결과 청소년들에게 무분별하고 무비판적인 시청 습관만 심어준 셈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들 미디어 관련 단체들은 어린이와 청소년 보호 관련 몇 가지 주요 대안들을 내 놓고 있으며 이에 대한 조속한 관철을 요구하고 있다.

▲초·중·고 정규과목에 미디어 교육을 포함 시킬 것 ▲어린이 청소년들의 실제 시청시간대를 고려해 가족 시청 시간대와 청소년보호시간대를 현실에 맞게 변경 할 것 ▲형식적인 등급표시와 자막 고지에 머물지 말고 멘트를 통해 등급과 시청지도의 방법에 대한 안내방송을 할 것 ▲V-chip 장착을 의무화 할 것 등이 그것이다.

부모들이 먼저 시청의 솔선 보이는 것이 바람직

이런 외부적인 규제와 장치가 시행된다면 부모가 해야 할 역할은 조금 줄어들 수 있으니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토론과 논의를 통해 무작정 방송을 보거나 받아들이는 아이들에게 적당한 비판의식을 심어 줄 필요는 있다.

자녀들에게 올바른 시청지도를 하기 위해서는 부모들이 먼저 좋은 시청습관의 본보기를 보여야 한다. 부모들의 무분별한 시청습관을 자녀들이 그대로 따라하기 때문이다. 올바른 시청지도 방법을 묻는 부모들에게 전문가들은 다음과 같은 TV 시청 방법을 제시한다. 아이들에게 강요하기 전에 부모들이 먼저 이 방법에 따라 바른 시청의 솔선을 보이는 것이 바람직 할 듯하다.

<바람직한 TV시청 방법>
1. 몰입시청 안 하기 (가족과 대화하면서 시청하기)
2. 어린이 혼자 시청하지 않기(부모와 함께 시청하기)
3. 습관적으로 시청하지 않기 (정해진 프로그램만 시청하기)
4. 편식 시청하지 않기(다양한 장르의 프로그램 시청하기)
5. 나쁜자세로 시청하지 않기(바른자세로 시청하기)
6. 방송용 은어 ,속어, 비어 따라하지 않기(항상 바른언어만 사용하기)
7. 어린이에게 리모콘 주지 않기(항상 부모가 가지고 있기)
8. 항상 TV를 켜 놓고 있지 않기(정해진 시간외에 끄기)
9. TV 안 보는 날 정하기(일주일에 하루를 가족간에 상의해서 정하기)
10. TV 시청일기 작성하기(온 가족이 함께 작성하기)


방송프로그램의 등급분류 및 표시등에 관한 규칙

#12세 이상 시청가
주제 및 내용에 12세미만의 어린이에게 정신적·육체적으로 유해한 표현이 있어 보호자의 시청지도가 필요한 프로그램으로, 폭력을 갈등해결을 위한 긍정적 수단으로 인식하게 할 수 있는 묘사가 없으며, 각각의 폭력묘사는 청소년을 자극하거나 모방을 유발할 정도로 구체적이지 아니한 것, 입맞춤 또는 착의상태의 성적 접촉묘사가 있더라도 청소년의 성적 욕구를 자극할 정도로 구체적이거나 노골적이지 아니한 것, 청소년의 바른 언어습관 형성을 저해할 수 있는 은어, 속어, 저속한 유행어 등이 사용되지 아니한 프로그램.

<15세 이상 시청가>
폭력묘사가 현실적이고 구체적이라 하더라도 사회정의에 위배하여 정당화되거나 미화되지 아니한 것, 성적묘사가 건전한 남녀관계의 애정표현을 벗어나지 아니하고 신체의 부분 노출, 암시적인 성적 접촉 및 대화 내용이 선정성을 띠지 아니한 것, 일상생활에서 사용되는 악의 없는 욕설, 은어, 속어, 유행어 등이 건전한 언어습관을 저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사용된 것.

<19세 이상 시청가>
주제 및 내용이 성인을 대상으로 하고 있어 19세미만의 청소년이 시청하기에 부적절하며, 시청을 제한할 필요가 있는 것, 살생묘사 및 유혈장면 등 강도 높은 폭력장면이 현실적이거나 구체적으로 묘사된 것, 신체의 부분 노출, 직접적․암시적인 성적 접촉, 성행위 등 선정적인 표현이 구체적이거나 노골적으로 묘사된 것, 모욕적인 언어나 욕설, 저주, 저속한 동작 등이 사용된 것. / 방송법

덧붙이는 글 | V-chip(폭력 프로그램 등 미리 규정된 등급의 프로를 차단하는 기능을 목적으로 텔레비전(TV) 수신기의 내부에 장착되어 있는 반도체 칩. TV-Y(모든 어린이), TV-Y7(7세 이상), TV-G(일반인), TV-PG(부모 동행), TV-14(부모 주의), TV-MA(성인) 등의 구분이 있다. 봐도 되는 프로 등급과 봐서는 안 되는 프로의 등급을 미리 입력시켜 두면, V-칩이 프로에 입력되어 있는 등급을 식별해 봐서는 안 되는 프로를 차단한다. 미국은 13인치 화면 이상의 TV 수신기를 대상으로 V-칩의 설치를 의무화하고 있다)

덧붙이는 글 V-chip(폭력 프로그램 등 미리 규정된 등급의 프로를 차단하는 기능을 목적으로 텔레비전(TV) 수신기의 내부에 장착되어 있는 반도체 칩. TV-Y(모든 어린이), TV-Y7(7세 이상), TV-G(일반인), TV-PG(부모 동행), TV-14(부모 주의), TV-MA(성인) 등의 구분이 있다. 봐도 되는 프로 등급과 봐서는 안 되는 프로의 등급을 미리 입력시켜 두면, V-칩이 프로에 입력되어 있는 등급을 식별해 봐서는 안 되는 프로를 차단한다. 미국은 13인치 화면 이상의 TV 수신기를 대상으로 V-칩의 설치를 의무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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