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부를 게 많아 계속 '노래를 찾는 사람들'

[탐방] '1987, 그 20년 후에' 콘서트 리허설 현장에서

등록 2007.05.24 16:17수정 2007.05.30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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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이 다 가고 있던 20일 오후. '내 마음이 무거워지는 소리'가 들릴 때쯤, 정말 오랜만에 인사다운 인사를 받았다. 일상의 '안녕하세요'에 어느덧 무덤덤해졌기 때문일까? "사람 사는 게 다 거기가 거기지만, 용케 안녕한 것처럼 보인다"는 '노래를 찾는 사람들(이하 '노찾사')'의 인사가 신선했다.

"안녕하세요. 그동안 잘 지내셨어요. 나도 그럭저럭 잘 지내고 있죠. 나라고 해서 별 다를 게 있나요. 사람 사는 게 다 거기가 거기지. 참, 반가워요. 많이 궁금했어요. 당신은 내가 궁금하지 않았나요. 매일 눈을 뜨면 가슴 철렁한 얘기뿐인 세상에서 용케 안녕하신 것처럼 보이네요.

'가슴 철렁'을 넘어 황당하기까지 한 재벌 회장 이야기도 판을 치는 세상. '용케' 노찾사도 안녕해 보였다. 아니, 그들의 씩씩함에 샘이 날 정도였다. 오는 25일부터 27일까지 동덕여대 공연예술센터에서 '1987, 그 20년 후에'를 주제로 콘서트를 여는 노찾사. 그들을 서울 양재동 음악 연습실에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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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정환


"우리도 어느새 아저씨·아줌마가 됐구나"

연습이 시작된 오후 3시경, 분위기가 다소 어수선하다. <오마이뉴스>에 KBS '생방송 시사투나잇'팀까지 카메라를 들고 왔다갔다하니 그럴 만도 하다.

하지만 "'그 날이 오면'으로 목을 풀겠습니다"란 가창 리더 신지아씨의 씩씩한 '선언'으로 노래가 시작되면서, '불청객'들에게 연습실은 곧바로 '공연장'이 돼 버린다.

"듣고 있으니까 마음이 울컥하더라"는 '생방송 시사투나잇' 이병용 PD의 말 그대로다. 노찾사의 '목풀기'에 압도된 관객(?)의 '마음'마저 풀어 버리던 노래가 어느덧 '사계'로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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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조성태·송숙환·유연이·최문정·신지아·김명식·문진오씨 ⓒ 이정환

절로 고개가 끄덕끄덕. 피아노(권오준), 기타(염주현) 연주자의 '끄덕끄덕'도 경쾌한 '초시계'로 변하고,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 발장단까지 의자 밑에서 '연주'를 시작한다. 오랜만에 'TV 왕국'을 벗어난 기분, '동물의 왕국'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문진오씨가 담담한 목소리로 '나의 바램'을 읊조리기 시작한다.

"나의 바램은 어느 짙은 숲 속 자그마한 오두막창으로 날 깨우는 햇살, 나의 바램은 반가운 친구가 찾아와 며칠 동안 그 햇살을 함께 나누며 얘기하는 것… 나의 바램은 사랑하는 사람과 별 탈 없이 지난 하루하루 일들에 감사하는 것…."

문씨의 '독백'에 멤버들이 각각 한 소절씩 화답하고 간주가 흐르는 동안. 살짝 새어 나온 "연이야, 너의 소원은 뭐니?"라는 질문. "밥을 조금 먹어 허리가 날씬해지는 것"이라는 대답에 멤버들 사이에 웃음이 번진다. '그래, 어느 새 우리도 아저씨, 아줌마가 됐네….'

"물 버리러" 가는 멤버 덕분에 감상에서 깨어났다. "잠깐 쉬었다 할까?"라는 제안이 나왔지만, "다섯 곡 마저 부르고 쉬자"고 한다. 1시간 45분이란 시간이 그렇게 '훌쩍' 지나가 버렸다. '훌쩍'은 20이란 숫자도 마찬가지다. 벌써 20년, 그 사이 '우리들'은 배 나온 아저씨, 아줌마가 됐다.

"만원 사례라고 천원 짜리 나눠 갖던 기억이 또렷"

노찾사라고 다를까. 송숙환(88년 2회 정기공연, 떠남이 아름다운 사람들이여)·신지아(3집, 그리운 이름)·유연이(모음 하나 앨범, 유월의 노래)·최문정(2집, 오월의 노래)씨는 모두 주부, 문진오(4집, 죽창가)씨는 이제 누가 봐도 아저씨다. 김명식(4집, 떠나는 그대를 위하여)·조성태(05년 송년 공연, 한잔)씨 그리고 노찾사에서 유일하게 노래를 부르지 않는 권오준씨(건반) 역시 '아저씨' 기색이 역력하다.

그럼 혹시 '1987, 그 20년 후에'를 통해 '향수'에만 젖게 되는 것은 아닐까? '광야에서'를 작곡한 문대현 총감독은 "영상 연출을 이용한 회상도 있지만, 새로운 음악을 통해 '좋아진 거냐, 잘 가고 있느냐'는 질문을 던지는 것이 핵심"이라고 말했다.

하종욱(전 EBS '스페이스 공감' 음악감독) 감독 역시 "1987년과 2007년을 '왔다갔다'하겠지만, 단순한 과거와 현재의 교차가 아닌, 그 시간 속에 살고 있는 '우리'를 계속 건드릴 수 있도록 연출과 편곡을 했다"면서 "그냥 앉아서 보는 과거 '배설'에 머무르지 않고, 여기로(가슴으로) 새로운 희망을 받아들이는 자리가 될 것"이라고 자신감을 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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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회 정기공연 티켓 ⓒ nochatsa.org

물론 노찾사가 "1987년과 2007년을 왔다갔다해야 하는" 뚜렷한 이유도 있다. 6월 항쟁과의 각별한 관계 때문이다. 한동헌 대표는 "이번 공연을 통해 '그 때 우리가 열망했던 것이 무엇인지, 지금 우리가 어디에 서 있는지 되새겨보자'는 것"이라며 "노찾사가 합법 공간에서 활동하게 된 계기가 87년 6월의 승리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올해를 절대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고 강조했다.

6월 항쟁이 음지(?)에 머물던 노찾사를 양지에 자리잡게 만든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이는 노찾사의 공식적인 정기 공연이 1987년 10월에 처음 열린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매력적인 저음이 인상적인 '떠남이 아름다운 사람들이여'를 통해 노찾사 팬들 사이에서 '떠남이'로 통하는 송숙환씨는 당시 '거스를 수 없는 역사의 흐름'에 몸을 맡겼던 '떨림'을 이렇게 전했다.

"무대에 오를 수 있을까 걱정했어요. 그리고 무사히 공연을 끝낼 수 있을까. 연행되지 않을까.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었죠. 그런데 너무 많은 분들이 와 주신 거예요. 얼마나 많이 박수를 받았는지…. 그리고 느꼈죠. 함부로 할 수 없는 노찾사가 됐구나. 뒷풀이 때 모두 함께 눈물을 흘렸어요. 만원 사례라고 멤버들끼리 천 원 짜리 한 장씩 나눠 갖던 기억이 아직도 또렷해요."

노찾사에게 묻다, 앞으로도 '안녕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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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루터기, 나무, 나의 노래 등을 작곡한 한동헌 대표 ⓒ 이정환

그리고 송씨는 "이번 공연이 새로운 출발점"이라고 강조했다. 한동헌 대표의 말처럼 "이제 중년을 바라보는 나이에 일터도 생각도 제각각인" 노찾사는 그동안 주말 시간을 쪼개 연습하고, 모임을 통해 '오늘의 6월'을 공부하는 등 '1987, 그 20년 후에' 어울리는 '출발'을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고 한다.

1987년에 고3 수험생으로 "독서실 총무를 통해 6월의 무용담을 접했다"는 조성태씨는 "우리끼리 다시 활동을 시작할 때만 해도 참 막막했고 헤매기도 했지만, 이제는 틀이 많이 잡혀 멤버들끼리도 굉장히 기분 좋게 활동하고 있는 상태"라고 자평했다.

1997년에 사실상 활동을 중단했다가 2005년 이화여대 창립 21주년 기념 콘서트를 통해 본격적으로 활동을 재개한 노찾사. '새로운 출발'을 언급할 수 있을 만큼, 이제는 노찾사의 근본적인 '해답'을 어느 정도 찾은 것일까.

- 노찾사가 앞으로 찾을 노래는 무엇입니까?
한동헌 "노래가 사회 변혁 무기라고 보지는 않아요. 하지만 개인의 희노애락을 규정짓는 요소를 바라보고, 현실에 대한 느낌을 녹여낼 수는 있어야 합니다. '부침'을 겪으며 살고 있는 성인들과 호흡할 수 있는 노래죠. 사회 현실에 대한 성찰을 담은 노래말 그리고 이를 세련되고 섬세하게 표현할 수 있는 형식에 있어서는 여러 시도가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재즈나 클래식 그리고 전통음악과의 결합도 고민 중입니다."

송숙환 "제 목소리가 굉장히 저음이거든요. 남편이 '그 시대 암울함과 지금 암울함은 다르니까, 이제 당신 시대도 간 것 아니냐'고 농담처럼 그래요. 물론 예전에 우리 노래가 정치색이 짙었죠. 그런데 지금 어느 정도 민주화됐다고 하지만, 해결할 문제가 너무 많잖아요. 다양하게 내재된 문제를 찾아야죠. 그래서 아직 부를 노래들이 많아요."

조성태 "노찾사도 변해야죠. 이제까지 그래왔지만, 변하지 말아야 할 것 역시 있습니다. 이른바 '민중가요' 정신을 이어 가야죠. 하지만 또 거기에 너무 매몰되거나 머무르지 말아야겠죠. 사실 노찾사의 노래는 모든 사람들의 노래였어요. 노찾사만의 노래는 아니었죠. 우리가 불러서 많이 알려진 것뿐입니다. 이제는 이 시대를 건강하게 살아가는 사람들, 그런 우리 이웃의 희망과 아픔을 대신 불러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직 부를 노래가 너무 많아요"

아직 구체적인 답변들은 아니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노찾사가 존재하는 한, 그들에게는 영원한 '화두'가 될 테니까. 한 대표는 "사회를 보는 입장도 변했고, 멤버들 사이 견해도 통일된 것은 아니"라면서도 "단 하나 통일된 것은 '노래가 무엇인가', '노래를 통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라고 말했다. 여전히 노래를 찾고 있다는 것이다.

이제 궁금증이 하나 남았다. '1987, 그 20년 후에'도 20년 전의 질문을 여전히 던지는 "중년을 바라보는 나이들"이 씩씩한 이유는 무엇일까. "사실 노찾사의 노래는 모든 사람들의 노래였다"는 조성태 씨의 말이 힌트였다. '노찾사'란 줄임말에 숨어 있던 고민 하나를 해결한 것 아닐까. '노래를 찾는 사람들'에게는 혹 '노래가' 찾는 사람들이란 부담도 있지 않았을까. 뒤늦게 한 대표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제는 세월의 흐름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게 된 것 같아요. 예전처럼 세상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존재는 아니잖아요. 노래를 찾는 '길'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고 할까요. 진짜 우리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는 단계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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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인공위성' 프로듀서를 맡았던 권오준·조성태·문진오·송숙환·최문정·김창기 씨. 이날 리허설에는 '서른 즈음에' 강승원 작곡가와 동물원 출신 싱어송 라이터 김창기씨 등 객원 보컬도 함께 참여했다 ⓒ 이정환


너무 비싸요. 이제 노래'만' 찾는 건가요?
"오해다" 이러지도...저러지도..."난감"

"가족과 옛 생각을 하며 공연을 볼까 하고 예매 사이트에 갔더니 티켓이 4만4천원. 그냥 접었다. 운동과 정신은 사라지고 노래만 남은 공연에 들일 비용으로는 너무 컸다. 어쩌면 노래를 찾는 사람들은 사라지고 노래만 찾는 사람들만 남았는지도 모를 일이다… 보다 열린 공간에서 1/10 입장료로 10배의 대중을 불러모아 한바탕 공연을 펼치는 것이 의미 있지 않았을까."

4만4천원, '1987, 그 20년 후에' 티켓 가격이다. 어느 누리꾼의 지적처럼, 기꺼이 감수하기에 부담스런 금액이다. '노찾사'하면 흔히 떠오르는 이미지와 다소 거리가 있는 가격인 것도 사실이다.

이에 대해 노찾사 관계자는 "오해다. 돈을 벌기 위한 공연이 아니"라며 '난감함'을 호소했다. 그는 "대관료, 제작비, 조명이나 음향 등 설비비를 빼고 나면, 공연 기간 동안 모든 좌석을 판매해도 적자"라며 "무슨 떼돈을 버는 걸로 아시는 분들도 있는데, 사정이 이렇다 보니 노찾사 동문들에게도 초대권을 못 드리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관계자는 "결국 부족분을 소액 협찬이나 대표의 개인 지출로 충당하는 상황이라, 노찾사 멤버나 스탭들은 몸 바쳐 공연하는 형국"이라면서 "이런 문제를 조금이라도 해소하기 위해 보다 많은 협찬이 필요하지만, '난다 긴다'하는 가수들에게만 (협찬이) 집중되는 현실에서 이것도 쉽지 않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조금 시설이 떨어져도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가'라는 질문에 대해서도 관계자는 "고민중인 문제"지만, 마땅한 대안을 찾기가 쉽지 않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그는 "작고 아담한 공연을 펼칠만한 장소가 많지 않은 데다, 노찾사 공연에 대한 음악적 기대도 높은 것이 현실"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설비나 음향 시설이 떨어지는 곳에서 공연하면, 노찾사와 함께 했다는 의의 정도에 만족하고 집에 돌아가실 수밖에 없다. 또 협소한 장소에서 공연하는 경우에 막상 관객들이 많이 찾아오시지 않더라"고 말했다.

공연의 질과 양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란 주장이다. 관계자는 "대중 가수 콘서트 가격에 비교하면 비싸지 않지만, 또 한편으로 노찾사를 알고 있는 사람에게는 비싼 가격"이라며 "하지만 저희 애로 사항도 많다는 점을 이해해주시면 좋겠다"고 말했다.

끝으로 관계자는 "비단 노찾사만의 문제는 아니다"며 "갈수록 척박해지는 공연 문화와 가수가 노래로 돈을 벌지 못하는 전반적인 음악계 상황과 무관치 않다"는 말로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 이정환
#노찾사 #6월항쟁 #그루터기 #한동헌 #그날이 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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