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는 목마름으로 나눠먹던 그 맛
오늘 당신은 '민주주먹밥' 드셨나요?

[현장] 6월항쟁 20주년 기념 문화행사들, 시민축제로 날다

등록 2007.06.09 21:59수정 2007.06.11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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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민주항쟁 20주년을 앞두고 9일 오후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열린 이한열 열사 20주기 추모제에 참가한 한 시민이 '6월이다, 다시날자!'라고 적힌 펼침막을 펴보이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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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민주항쟁 20주년을 앞두고 9일 오후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열린 이한열 열사 20주기 추모제에 참가한 시민들이 문화공연을 보며 광장을 지키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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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년 6월 당시 이한열 열사 장례식 때 거리에서 춤을 춘 이애주씨가 20년만에 다시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상생과 평화의 춤'을 선보이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20년 전 이애주 춤을 봤는가. 87년 오늘(6월 9일) 이한열 열사의 장례식 때 연세대에서 서울시청 앞으로 가는 길에 이애주의 춤을 봤다. 그때와 지금, 나의 감정은 많은 차이가 있다. 그 때는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시민 김설이(52)씨의 6월 민주항쟁 20주년 맞이 기념사다. 김씨는 20년 전 매캐한 최루탄이 터질 때마다 눈물로 눈을 씻으며 "민주쟁취, 독재타도, 호헌철폐"를 외쳤던 시민이다. 그는 20년 전 그날을 기억해보면 오늘의 기념행사가 매우 흥겹다고 했다.

그러나 가슴 한켠에는 섭섭한 마음이 크다고 했다. 20년 전 오늘 온 국민이 한 목소리로 민주주의를 외치며 시청 앞 광장을 가득 메웠지만 지금은 별로 사람들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오늘 같은 '민주주의 축제'에는 좀더 많은 사람들이 거리에서 어울려야 한다는 주장이다. 혹시 국민들이 87년 6월 민주항쟁을 2002년 월드컵 응원전만도 못한 것으로 취급하는 것은 아닌지 야속한 마음이 든다고 했다.

9일 오후 서울시청 광장에는 약 2만여명(경찰 추산 연인원)의 시민들이 모였다. 대낮에는 300여명의 시민들이 모였지만 저녁시간으로 갈수록 인파는 점점 늘어났다.

20년 전 대학생이던 한 시민은 40대 주부가 되어 서울시청광장에 나섰고, 아들과 함께 가족마당극 <6월의 꽃이 피었습니다> 야외공연을 관람했다.

그가 기억하는 87년 6월의 거리는 그야말로 인산인해였다. 87년 6월 연일 계속되던 집회에 시민들이 우유와 김밥, 물을 나눠주던 기억이 잊혀지지 않는다고 했다. 그의 남편은 당시 시청 앞 분수대에 발을 담그고 머리를 감았던 것도 잊을 수 없는 일이라고 거들었다.

그들이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를 외쳤던 서울시청광장은 20년 뒤 오늘 '문화축제' 공간으로 탈바꿈됐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이사장 함세웅)가 주최한 '6월이다, 다시 날자' 행사가 열리는 서울시청광장에서는 다채로운 문화행사들이 열렸다. 민주주의를 테마로 한 사진전, 어린이들을 위한 난장도 진행됐다.

20년 전 명동성당 농성의 숨은 주인공이었던 계성여고 학생들이 '민주주먹밥'을 만들어 나눠주는 행사도 열렸으며, 이날 오후 3시경에는 이 주먹밥을 먹기 위해 시민들이 잔디광장 사이로 길게 줄을 서는 진풍경도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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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민주항쟁 20주년을 앞두고 9일 오후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열린 이한열 열사 20주기 추모제에 참가한 시민들이 바람개비를 달아 '6월이다, 다시날자!' 문구를 완성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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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민주항쟁 20주년을 앞두고 9일 오후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열린 이한열 열사 20주기 추모제에 고 박종철 열사의 모교 부산 혜광고 학생들도 참여해 자리를 함께 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이날 오후 4시부터는 같은 장소에서 '고 이한열 열사 20주기 추모제'가 열렸다. 이 행사에는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과 김근태 전 열린우리당 의장을 비롯 전대협 의장 출신 386 정치인들이 자리를 가득 메웠으며 임진각 '인간띠 잇기 행사'부터 함께 자리했던 추미애 전 민주당 의원도 눈에 띄었다.

이날 오후 5시부터는 이애주 서울대 교수의 춤공연이 시작됐다. 87년 6월 당시 이한열 열사의 장례식 때 거리에서 춤공연을 한 뒤로 20년 만에 처음으로 다시 거리에 선 것이다. 서울 남대문에서 시청광장까지 이어지는 도로에서 이 교수는 시민들과 어울려 길놀이 춤을 췄다.

오후 5시 35분경 삼베 빛깔의 한복을 차려입은 이 교수가 양손에 같은 색깔의 천을 쥐고 춤사위를 놀리면 60여명의 춤패는 오른손에 같은 천을 쥐고 흥겨운 춤마당을 만들었다. 시민들도 2차선 도로로 나와 기차춤을 추면서 한데 어울렸다.

길놀이 말미에도 손뼉을 치고 몸치기를 하는 수박춤, 걸어오면서 팔을 좌우로 흔드는 너울춤을 추면서 '상생과 평화'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이애주 춤패의 공연이 끝난 뒤 시청광장 무대에서는 시민콘서트가 진행됐다. 가수 빅마마, 크라잉넛, 안치환과 자유, 노래패 우리나라 등이 출연해 공연무대를 마련했으며, 시민들이 함께 '아침이슬' '강강수월래' '우리 함께 포용해요' 등의 노래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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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민주항쟁 20주년을 앞두고 9일 오후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610명의 풍물패가 북소리를 울리며 민주터닦기와 지신밟기 등 시민들과 함께 하는 대동 축제의 마당을 펼치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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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민주항쟁 20주년을 앞두고 9일 오후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610명의 풍물패가 북소리를 울리며 민주터닦기와 지신밟기 등 시민들과 함께 하는 대동 축제의 마당을 펼치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도로에 널린 신발들은 주인을 찾았을까"
[거리인터뷰] 20년 전 6월 민주항쟁 속의 시민들

"시위가 끝나면 도로 여기저기에 널려 있던 신발들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87년 6월 민주항쟁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김익중(37·회사원)씨. 그의 머릿속에는 20년이 지나도 지워지지 않는 잔영이 있다. 최루탄 냄새와 도로에 널린 신발들이다.

신발의 주인들은 모두 경찰에 연행됐을 터이다. 87년 6월항쟁 이후에도 시위연행자들의 벗겨진 신발은 곧잘 도로 위를 활보하곤 했었다.

6월 민주항쟁의 세례를 받은 김씨는 "대학생이 되면 당연히 민주주의를 위해 데모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실제로 대학시절 열심히 데모를 했다.

그런데도 세상은 그가 꿈꾸는 만큼 변하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 이유는 근본적인 변혁의 과제를 달성하지 못했다고 보기 때문이란다.

정치권에 진출한 386 정치인에게도 아쉬움이 있다고 말했다. 기성세대의 잘못된 구태와 관습에 젖어들어 제발 그들과 비슷하게 살지 말기를 바란다고 했다.

대학시절 학생운동을 했다는 김근준(37·회사원)씨도 마찬가지다. 김씨는 "20년 전과 비교해볼 때 정치적 민주주의는 많이 달성됐다"면서도 "한국사회가 너무 급격하게 변화하다 보니까 6월 민주항쟁의 의미가 너무 희석되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고 말했다.

시민 김헌주(43)씨는 "오늘 행사에 참여하기에 앞서 딸에게 87년 6월항쟁에 대해 설명했다"면서 "한동안 잊고 살았는데 딸에게 그때의 일들을 얘기해주면서 감정이 울컥 했다"고 말했다.

그는 "나는 지금 딸아이에게 역사의 현장을 알려주고 있다"며 "20년 전 6월 민주항쟁의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지나가면 어린 아이들의 가슴에 남는 민주주의의 역사는 없을 것"이라고 전했다. 6월 민주항쟁이 국가기념일로 제정된 첫해인 만큼 더욱 그 의미는 크다고 피력했다.

송세연(46) 7080민주화학생운동연대 사무처장은 "87년 6월항쟁 이후 한국사회에 절차적 민주주의는 많이 실현됐지만 여전히 사회양극화 문제는 심각하다"면서 "민주화세력들이 사회경제적인 영역에서 실질적 민주주의를 내실화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87년 6월 민주항쟁 20주년 맞이 기념행사가 그래서 더욱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6월항쟁 #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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