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슬로의 태극전사들

[무작정 떠난 러시아-유럽여행 37] 노르웨이 오슬로

등록 2007.06.13 15:55수정 2007.06.13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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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 도시의 완결판 오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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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슬로 중앙역 ⓒ 강병구

6월 1일 오전 6시. 아직 도시의 약동감을 느낄 수 없는 시간에 오슬로에 도착했다. 한국에서도 그렇겠지만, 하루를 더욱 천천히 시작하는 북유럽에서 오전 6시라는 시간은 지난밤이 아직 끝나지 않은 시간이었다. 아직 출근하는 사람도 찾기 힘들었고, 문을 연 가게도 없었다. 역 안에는 한국에서도 익숙한 편의점만 열려있었다.

간단한 요기를 하고, 저녁 경기시간까지 오슬로를 돌아볼 요량으로 기차역을 나섰다. 역 옆의 유명하고 오래 되었다는 음식점은 아직 문을 열 시간이 아니라 밖에서만 둘러보고 해변을 따라 오슬로 시청사로 향했다.

지형자체가 피오르드 형성과정에서 생긴 탓에 내륙에도 크고 작은 피오르드들이 있다. 기차역과 시청사 사이의 해변만 하더라도 복잡한 해안선과 해변의 다양한 지형을 볼 수 있다. 특히 시청사 근처의 아케르스후스 성에 올라 내려 보면 복잡한 오슬로 해변의 재미있는 지형을 살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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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 앞 광장에서 찍은 오슬로 시청 ⓒ 강병구

매년 노벨 평화상 수여식이 거행되는 오슬로 시청사는, 건물 앞 광장과 해안이 어울려 육중하면서도 잘 조화된 모습을 보여주었다. 북유럽의 엄격하고 딱딱해 보이는 건물 이미지와, 광장과 해안에서 보이는 여유로움이 이제껏 보아왔던 전형적인 북유럽 도시의 모습이었다.

아침 햇살을 받으며 한가롭게 오슬로 시청 앞을 돌아다니다, 다음으로 향한 곳은 비겔란 공원이었다. 노르웨이가 자랑하는 유명 조각가 구스타프 비겔란의 작품들로 이루어진 공원인 이곳은, 비겔란의 독특한 조각들과 잘 어울려 꾸며진 공원 모습으로 인해 오슬로에 온 사람이라면 한번 쯤 와볼 만한 곳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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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겔란 공원의 명물 심술쟁이 ⓒ 강병구

여행을 다니다 보면 종종 소문과 다른, 실망을 주는 여행지들이 있는데, 비겔란 공원은 오히려 기대 이상의 볼거리를 보여준 곳이었다. 많은 조각상들도 그랬지만, 아주 인상적인 몇몇 조각들은 특히 재미있게 감상했다.

그 중에서도 '심술쟁이'라는 어린 아이의 조각상은 특별히 인상적이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이곳의 여행객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조각상이라고 한다. 한적하면서도 아름다운 이곳 공원도 전형적인 북유럽 도시의 특징을 보여준다고 하겠다.

간단한 점심을 먹고 다시 시내로 돌아와 오슬로를 돌아다녔다. 박노자 교수가 근무한다는 국립오슬로대학교의 본부도 보고 이러저러한 시내 건물들을 살펴보며 향한 곳은, 오슬로의 최대 번화가라고 할 수 있는 카를 요한 거리였다.

오슬로 중앙역에서 왕궁에 이르는 한 2km정도의 큰 길이 카를 요한의 거리다. 폭 넓은 도로를, 차 없는 보행자천국의 거리로 꾸몄고, 예상할 수 있듯 오슬로에서 가장 번화하여 여러 상점들과 문화시설들부터 거리의 예술인들까지 다양한 오슬로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이다.

북유럽 도시들을 돌아보며 가장 부러운 부분이었던, 이런 보행자천국의 거리가 오슬로에도 당연히 있었던 것이다. 사실 생각해보면 거리라는 것이 사람이 돌아다니기 위한 것인 만큼 보행의 편이가 최우선이 되어야한다는 생각을 한다. 요즘에는 많이 바뀌고 있지만, 그런 점에서 우리의 거리들은 보행자를 불편하게 만들려고 작정한 듯 한 느낌을 많이 받는다.

지난 2002년 월드컵기간동안 가장 즐거웠던 기억이 광화문과 종로의 그 넓은 거리를 두발로 밟아보며 사람들과 함께하는 것이었다. 보행의 용의함을 좀 더 고려해준다면 이런 큰 즐거움을 충분히 만들어 줄 수 있을 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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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슬로의 최고 번화가 카를 요한 거리 ⓒ 강병구

이상의 무언가 딱딱하고 철저하면서도, 여유롭고 평화로운 느낌, 그리고 아름다운 공원과 보행자를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거리까지 오슬로는 지금껏 다녀온 북유럽 도시들의 특징을 모두 갖고 있었다. 한마디로 북유럽 도시의 완결판이라 할만 했다.

태극전사들 덕분에, 한국인으로 넘쳤던 오슬로의 오후

확실히 태극전사들의 경기가 벌어지는 날이라는 것을 눈으로 실감할 수 있는 날이었다. 점심쯤부터 오슬로 중심가에는 눈에 띄게 한국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축구협회유니폼을 입고 있는 대표팀 관계자들부터, 한눈에 보아도 예사로이 보이지 않는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기자들, 그리고 어디서 왔는지는 몰라도 빨간 티셔츠를 입고 '나 경기 기다리고 있어요'하고 말하는 듯 한 응원단까지, 아마도 오슬로에 이렇게 많은 한국 사람들이 모인 것은 처음 일 듯했다.

경기장에 가기엔 아직 이른 시간이고 해서 노르웨이가 자랑하는 예술가 뭉크의 작품을 보기위해 국립미술관에 들렸다. 한데 여기서도 뭉크의 작품보다 눈에 띄었던 건 다수의 한국 사람들이었다. 아마도 다들 경기 전에 나와 같은 생각으로 이곳을 찾은 듯했다. 특히 뭉크의 절규 앞에는 여러 명의 한국 사람들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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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장 앞에서 만난 사람들과 "파이팅!"을 외쳤다. ⓒ 강병구

서로 보는 순간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하고는 모두의 관심사인 오늘 저녁의 경기 이야기에 금방 정신이 팔렸다.

"오늘 경기 어떻게 생각들 하세요?"
"아무래도 박지성 선수가 부상이라 걱정이지만, 다들 잘할 것 같아요."

이야기를 한두 마디씩 나눠보니 이곳에 오게 된 것도 천차만별이었다. 인터넷 사이트와 신문사의 이벤트로 방문한 사람들부터, 휴가를 내고 오늘 경기를 위해 직접 찾아온 사람들, 인근의 영국 등에서 어학연수나 교환학생으로 있는 학생들 등 다들 다양한 사람들이었다.

신기한 것은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이 처음 만났음에도 불구하고 금방 친해지고 이야기를 하는 사이가 됐다는 점이다. 나 개인적으론 한국을 떠나온 후 이렇게 많은 한국 사람들을 이렇게 먼 곳에서 만난 점도 매우 흥분되었다.

사상 처음 북유럽에서 벌어진 태극전사들의 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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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장 입구에서 만난 조 본프레레 전 감독 ⓒ 강병구

경기 시간이 되어 경기장에 입장할 때까지 한국 사람들은 점점 더 늘어났다. 경기가 시작하기 30분 전이었지만, 경기장 앞에는 스칸디나비아 반도 전반에서 모인 교민들의 본격적인 응원이 시작되고 있었다. 한국에서 익히 들을 수 있었던 응원가와 교민들께서 준비해주신 가벼운 간식거리도 있는 것이, 현지인만 보이지 않는다면 이곳이 한국인지 노르웨인지가 헛갈릴 지경이었다.

경기장 앞에서 만난 반가운 한국 사람들과 '파이팅!'을 외치며 사진도 한방 찍고 경기장으로 들어가는데, 카메라에 둘러싸인 사람이 보였다. 이전 축구대표팀 감독이었던 본프레레 감독이었다.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여기까지 보러온 것이 묘한 느낌을 주었다.

경기장에는, 한국에서보다는 확실히 작은 수였지만, 한국에서만큼이나 열정적으로 응원하는 응원단이 이미 자리를 잡고 있었다. 한국에서 하던 응원이 생소해서인지 선창하는 것과는 좀 차이가 있었지만 모두들 태극전사들의 플레이에 집중하며, 힘차게 외치며 응원하였다.

경기는, 아직 선수들의 컨디션이 정상이 아니어서인지, 조금은 지루한 무승부로 끝났다. 하지만 오슬로에서 한국인이라는 것만으로 뭉친 사람들의 열정은 대단하였다. 그리고 이 열정에는 이유가 있었다. 항상 한국에서만 살아온 나로서는 모르던 점을 경기가 끝나고 대표팀 선수들의 사인을 기다리던 팬들 사이에서 깨달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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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원하고 있는 현지 교민들과 응원단 ⓒ 강병구

다들 저조한 플레이와 인상적이지 못한 경기로 팬들을 신경쓰기보다는 버스로 이동하는 선수들을 향해 누군가가 이렇게 외쳤다.

"여러분을 보려고 1000km가 넘는 거리를 달려온 사람입니다. 북유럽에선 처음 열린 한국팀 경기라 아이들이 많은 기대를 하고 왔습니다. 언제 또 만날지 모르는 아이들입니다. 아이들한테 사인 좀 해주세요!"

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버스에 오르려던 이영표 선수가 종이를 내밀고 있는 아이들에 사인을 해주었다. 또 마지막으로 오르던 아드보카트 감독도 여러 장의 사인을 해주고는 웃는 얼굴을 보여주며 버스에 올랐다.

생각해보니 그랬다. 우리에겐 1년에 몇 번씩은 벌어지는 경기가, 북유럽에 사는 1000여명의 교민들에게는 현지에서 벌어지는 사상 처음인 것이었다. 그리고 이 경기의 주인공은, 이런 경기를 보러 멀리에서부터 와 준 교민 응원단이었다. 너무나 익숙하여 전혀 특별할 것 같지 않은 것이 이렇게 처지가 바뀌면 매우 소중한 것이라는 점을 다시 한 번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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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에게 사인을 해주는 아드보카트 전 국가대표 감독 ⓒ 강병구

덧붙이는 글 | 이번 회를 끝으로 북유럽 여행기를 마치고, 다음 회부터는 본격적인 중동부 유럽과 뜨거웠던 2006년 독일 월드컵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다만 좋은 여행기를 위해 관련자료를 정리하고, 재구성을 위해 다음 여행기는 2주 뒤인 6월 29일(금요일)에 올리는 점 양해부탁드립니다.

열광적인 독일 월드컵의 기억과 아쉬움, 그리고 누구나 한번쯤 가보고자 하는 본격적인 유럽여행기도 많은 기대 부탁드립니다.

덧붙이는 글 이번 회를 끝으로 북유럽 여행기를 마치고, 다음 회부터는 본격적인 중동부 유럽과 뜨거웠던 2006년 독일 월드컵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다만 좋은 여행기를 위해 관련자료를 정리하고, 재구성을 위해 다음 여행기는 2주 뒤인 6월 29일(금요일)에 올리는 점 양해부탁드립니다.

열광적인 독일 월드컵의 기억과 아쉬움, 그리고 누구나 한번쯤 가보고자 하는 본격적인 유럽여행기도 많은 기대 부탁드립니다.
#북유럽 #노르웨이 #오슬로 #축구대표팀 #이영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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