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에는 '신'이 있었다

[로마인이야기] 로마인에게서 배우는 그들의 근대성

등록 2007.06.21 18:17수정 2007.06.22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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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오마이뉴스와 도서출판 한길사가 공동으로 주최하는 <로마인 이야기> 독후감 대회 응모작입니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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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로세움 ⓒ 한길사

앞서 쓴 기사의 제목을 '로마에는 신이 없었다'로 뽑았더니, 여러 독자들이 이게 무슨 소리냐고 질타를 하십니다. 어느 독자의 친절한 지적처럼 로마에는 30만이 넘는 신이 존재하였습니다. 신이 없기는커녕 너무 많은 신들이 수도 로마며 속주의 곳곳에 득실대었습니다.

그런데 신이 없다니요? 다만 오늘날처럼 사람을 내세의 볼모로 잡고 현실의 인간사회를 규율하고 제약하는 신보다는, 인간사회의 보조자로써 인간의 생활을 돕는 신들이 많았다는 의미를 강조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것이 로마인의 현실중시 가치관을 낳았다는 것은 이미 밝힌 바 있습니다.

어차피 우리의 텍스트가 되고 있는 <로마인이야기>가 역사적 사실을 기록한 역사서가 아닌 다음에야 필자의 이런 표현에 역사적 사실을 가지고 논증하려는 것은 올바른 독법이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터무니없는 주장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선언에 대한 해명은 있어야 할 것입니다.

역사를 대하는 우리의 자세

시오노 나나미는 "보통 사람들은 단지 보이는 것만 볼 뿐이고 보이지 않는 것도 볼 수 있는 것이 천재의 덕목"이라고 여러 번 말합니다. 필자는 우리가 역사를 대하는 태도가 이와 같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역사적 사실에서 그 시대가 오늘 우리에게 전하는 교훈을 깨닫고 진전된 세상으로 나아가는데 타산지석으로 삼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역사를 배우는 까닭이라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역사적 사건이나 사실을 복원해내는 역사는 죽은 역사에 지나지 않습니다. 또한 그 역사적 기록을 배우는 것에 그치는 것이 역사라면, 우리에게는 역사적 사실을 기록한 도표 하나면 충분합니다. 그런 점에서 로마인은 이미 근대인이었고 현대인이었습니다.

"쇠퇴기에 접어든 나라를 찾아가 거기에 나타난 결함을 타산지석으로 삼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절정기에 있는 나라를 시찰하고도 그 나라를 흉내 내지 않는 것은 보통 재주가 아니다."(제1권 157쪽)

그리스(아테네)의 황금기를 구가하던 페리클레스 시대에 성문법을 만들기 위해 파견된 로마시찰단은 눈에 보이는 그리스의 번영에 현혹당하지 않습니다. 역사가 투키디데스의 지적대로 "겉모습은 민주정치였지만, 실제로는 한 사람이 지배한" 페리클레스 시대의 암적 징후를 로마시찰단은 보았던 것입니다. 아테네 민주정치의 맹점에서 그들의 미래를 발견해내는 지혜, 이것이 로마인이 역사를 대하는 태도였습니다.

하물며 현대를 사는 우리들이야말로 해묵은 이념적 논쟁에 역사를 파묻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혹자는 시오노 나나미를 보수주의자, 아마추어 역사서술가라 폄하합니다. <로마인이야기>를 한 아마추어의 창작이라 냉소합니다. 필자는 그런 좁은 안목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역사를 저술한다는 것은 지나간 과거의 시간을 복원해내고 당시의 사실을 유추해낸다는 측면에서 어차피 보수적인 작업일 수밖에 없습니다. 과학의 실험처럼 명백한 결론을 이끌어낼 수 있는 역사가는 아무도 없습니다. 사료와 고고학적 유산들을 통해 당시의 시대상에 가장 가깝게 과거의 시간을 복원해내는 노력이 역사가의 몫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역사가는 누구나 보수주의자입니다. 그러나 진정한 역사가는 역사적 사실의 복원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복원해낸 역사에서 그 역사가 오늘의 우리에게 던져주는 메시지를 해독해주는 것 또한 역사가의 책무입니다. 온고이지신이 곧 역사가의 몫이고 우리가 역사를 대하는 태도여야 합니다.

저자가 "역사란 목표는 같지만 그것을 실현하는 수단에서 서로 일치하지 못한 인류의 여러 가지 모습"이라고 말했듯이, 역사 너머의 것을 깨닫게 해주는 것이, 깨닫는 것이 역사를 대하는 올바른 자세입니다. 지난 시대의 유산을 통해 새롭고 진전된 세상으로 나갈 전망을 얻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역사입니다.

일본제국주의와 로마제국이 다른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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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피아 가도 ⓒ 한길사

E. H 카아(Carr)가 알려주었듯이 과거와 현재의 긴밀한 대화를 통해 내일의 세상으로 나아갈 방향과 동력을 얻는 것이 역사이고 이 때의 역사가는 누구나 진보주의자입니다. 우리가 오늘 <로마인이야기>를 읽고 저자가 15년에 걸쳐 그 지난한 작업을 멈추지 않은 것은 로마인들의 생활상을 짐작해보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오늘에 되살려 역사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함입니다.

대제국을 건설했던 고구려가 북방 이민족들을 로마인들처럼 우리에게 동화시킬 수 있었다면 어쩌면 현대의 중국은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중원의 마지막 패자는 우리가 북방의 오랑캐로 지배했던 여진족이었기 때문입니다. 나당 연합군에 의한 통일이 아니라 고구려에 의한 통일이었다면 오늘날의 동북공정도 없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가정에 불과하지요. 역사에서 가정이란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 가정을 통해 우리는 앞으로의 세상을 위한 교훈은 얻을 수 있습니다. 역사적 불행의 반복이나 실수를 예방할 수 있습니다. 위도 상으로도 거의 비슷한 반도인인 우리는 로마인이 지녔던 세계인으로서의 안목이 없었기에 섬나라 일본의 군홧발에 강토를 유린당했습니다.

제국주의 일본이 그저 영토의 점령에 머무르지 않고 로마인처럼 '패배자조차 동화'시키는 길로 이끌었다면, 내선일체 대동아공영을 입안하던 제국주의 일본에 카이사르가 아우구스투스가, 아니 로마인들 같은 사람들이 많았다면 그 결과는 섬뜩한 교훈으로 필자를 소름 돋게 합니다. 앞선 글에서 말했듯이 지리상의 발견 후의 식민 제국이나 일본제국주의와 로마제국이 다른 점입니다.

훌륭한 연구자들에 의해 복원된 보이는 사실로서의 역사에서 보이지 않는 역사의 목소리를 듣는 것, 이것이 역사를 대하는 우리의 자세여야 합니다. 로마인의 인프라 스트럭쳐에 대한 인식, '명예로운 공직'에 대한 헌신, 법치와 문민지배에 대한 확고한 신념 등을 오늘의 귀감으로 실현해내는 우리의 자세가 곧 역사입니다. 그렇다면 보수주의자니 아마추어니 하는 시비는 얼마나 한심한 부끄러움입니까.

근대의 의미와 그 극복으로서의 초인

"천재는 자신의 시대를 초월하기 때문에 천재다. 하지만 시대를 초월할 수 있다는 것도 충분히 시대의 자식이었기 때문이다."(제4권 115쪽)

필자는 이 문장을 읽으면서 전율과도 같은 감동에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졌습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니체의 초인이란 개념을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니체가 그리스도교가 지배해온 유럽 문명의 몰락에 대한 징후를 예민하게 알아차리고 그 근대의 극복을 주창하였다면, 그의 '초인'이란 바로 그 근대의 극복을 위해 끊임없이 도전한 인물이라 말해도 틀리지 않을 것입니다.

니체의 근대가 그가 살았던 19세기의 시대적 구분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필자는 굳이 근대의 의미를 좁은 뜻으로 해석하지 않습니다. 제게 있어 근대란 근대 이전의 제도와 문물의 모순과 비능률, 불합리를 극복하고 새로운 전망으로 나아가는 세계가 근대입니다. 다시 말해 전근대의 동맥경화를 해소하고 새로운 기운이 움트는 전망의 신새벽이 곧 근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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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고비아의 수도교 ⓒ 한길사

카이사르는 원로원 체제에 의한 과두정이라 일컬어지는 공화정 로마의 관절염과 동맥경화, 스스로 변화할 동력을 상실하고 노쇠한 채 늙어가는 시대의 피로감을 누구보다 먼저 눈치 챈 천재였습니다. 역사에서 시대는 무르익어 한 '문제아'를 낳고 그 문제아는 다시 시대를 한 차원 높은 단계로 이끕니다. 문제아는 곧 시대의 초인입니다.

그라쿠스 형제의 실패는 시대가 무르익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카이사르는 놀라우리만큼 예민한 촉감으로 시대의 성숙을 감지합니다. '충분히 시대의 자식이었다'는 저자의 표현은 카이사르가 당대의 병적 징후를 누구보다 깊게 이해하고 있었던 근대인이었다는 지적입니다. (오늘의 이문열 같은) 키케로처럼 알았으나 그대로 머무르는 사람과 이를 극복하기 위해 자신의 전부를 던지는 사람, 이것이 범인과 초인의 차이입니다.

카이사르처럼 제국을 설계하고 아우구스투스처럼 골조를 세우고, 심지어는 형편없는 인기에도 굴하지 않고 제국건설을 완성한 티베리우스까지 그들은 이미 근대인이었고 초인이었습니다. 공화정에서 제정으로 거꾸로 돌아간 역사의 시계바늘을 근대라 부를 수 있는 것은 그 초인들이 사적 탐욕으로서 권력을 쟁취한 것이 아니라 전시대의 병증을 치료하기 위해 일생을 노심초사 고뇌하며 살았다는데 있습니다.

우리가 오늘 티베리우스의 긴축재정과 적재적소의 인재경영을 배울 수 있는 것도, 로마인들의 지방자치와 속주경영 위탁경영의 사례를 연구하는 것도, 그들의 사회 인프라를 비롯한 법률 등의 유지보수 정신에서 치세의 철학을 훔쳐볼 수 있는 것도 모두가 그들이 당대의 모순을 극복하기 위한 치열한 노력을 멈추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로마인, 그들의 정신이 바로 '신'

로마에는 '신'이 있었습니다. 그 신들의 이름은 카이사르를 비롯한 많은 황제의 이름이 아닙니다. 그 신들의 이름은 근대의 정신입니다. 전근대의 극복을 위해, 그러나 신성과 신탁에 기대기보다는 신념에 찬 인간행동의 모범을 보임으로서 후세 우리들에게 초인이란 어떤 모습인가를 일깨워준 그들의 정신이 신입니다.

로마 사회의 사치와 향락, 노예제 사회, 정복과 식민지배의 역사 등등 로마제국을 비난하는 목소리들이 곳곳에서 들려옵니다. 참으로 근시안적 사고입니다. 고대사회는 거의 전부가 노예제 신분질서를 가지고 있었고 인류의 역사란 정복과 지배의 역사 아닌 것이 없습니다. 오늘날의 평화개념으로 혹은 제국주의 사상으로 로마제국을 부정하는 것은 철없는 투정에 불과합니다.

<로마인이야기>에서 필자가 배우는 것은 그 시스템의 근대성입니다. 카이사르 같은 초인을 길러내고 티베리우스 같은 오만한 위정자까지 용인하며 제국의 기틀을 유지하고 보수하고 다시 새로운 기능성을 창출해내는 그들의 포용적 세계관 국가관입니다. 축구장에 모여 대한민국을 연호하는 유희적 애국심이 아니라 명예를 다해 국가에 헌신하는 시민정신입니다. 신은 있었고 초인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로마인이었습니다.

로마인 이야기 1 (1판 1쇄) -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시오노 나나미 지음, 김석희 옮김,
한길사, 1995


#로마인이야기 #초인 #신 #시오노나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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