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감나무를 자르다

[달내일기 112] 그동안 짊어진 삶의 무게를 덜어주다

등록 2007.07.20 16:13수정 2007.07.21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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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가 썩기 전 3년 전 가을, 감이 가장 많이 열렸을 때 찍은 모습 ⓒ 정판수

'[달내일기 102] 까치집을 철거하기로 결정하다'란 글에서 우리 집 감나무가 뿌리가 너무 썩어 태풍 같은 자연재해에 도저히 버틸 수 없을 것 같다는 내용을 적은 바 있다. 거기서 특히 감나무에 10년 넘게 집을 짓고 살아온 까치집을 부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얘기를 했다. 그 감나무를 드디어 오늘(20일) 잘랐다.

봄날부터 별러 온 일을 여태껏 미룬 건 내가 나무를 타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이에 우리 마을 나무타기의 고수인 양산 어른께 부탁했더니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올라가 자르는 건 문제가 아니나 아무리 하찮은 새집이라도 까치집도 집인데 어떻게 함부로 부숩니까? 나중에 새끼치고 다 나가면 그때 생각해 봅시다."

이런 말씀에 차일피일 미루다가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어 궁리하다가 한전에 전화를 했다. 바로 밑에 전선줄이 쫘악 깔려 만약 넘어지면 정전 사태는 물론 자칫하면 화재의 위험도 컸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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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전 직원들이 감나무를 자르다. 윗부분은 다 자르고 아랫부분을 작업하는 중. ⓒ 정판수

다음날 즉시 한전에서 나와 잘라주었다. 정말 거기(한전)서 보유한 사다리차가 큰 역할을 했다. 아마 그냥 나무에 올라가 톱으로 잘랐으면 한나절 이상 걸렸을 걸 한 시간쯤 지났을까, 까치집을 마지막으로 잘라낼 나무가 다 떨어졌다.

까치집이 떨어졌을 때 아래서 일을 도와주던 이에게 "저나 마을 어른들께서는 까치집도 집인데 하며 부수는 걸 많이 망설였는데…"하며 말끝을 흐렸더니, 한전 근무하는 이가 "우리에겐 천적입니다" 하며 웃었다.

태풍 때문에 잘랐지만 아쉬움은 컸다. 당장 올가을에 거둬들일 감은 10분의 1도 채 안 되는 건 물론이고, 잘라낸 모습이 마치 당뇨환자가 병이 깊어져 급기야 팔다리마저 썩어 어쩔 수 없이 잘라낸 흔적처럼 보기 흉했다.

그런데 오후에 우리 집을 지나치시던 하서 어른께서 물으셨다.

"어, 이 집 감나무 언제 잘랐어요?"
"오전에 한전에서 와 잘라주었습니다."
"아, 참 잘했어요. 진작에 그렇게 했어야지."
"그래도 마음이 아픕니다."
"정 선생, 그렇게 생각 마오. 그동안 아픈 몸으로 짊어진 삶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웠을까 하고 한 번 생각해 보시오. 이제 한 짐 덜어놓았으니 아마 내년에는 새 가지가 나와 감이 새로 맺힐 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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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나무와 함께 망가져 떨어진 까치집 ⓒ 정판수

아픈 몸으로 짊어진 삶의 무게?

우리 집 감나무는 참으로 크고 오래됐다. 높이가 10m에 둘레는 어른 둘이 손을 맞잡아야 할 정도이고, 마을 어른들의 말씀에 따르면 100년은 족히 됐다고 하신다. 그런 감나무가 재작년부터 뿌리 쪽이 썩어가기 시작하더니, 그게 점점 더 커져 그 빈 곳에 황토를 두 가마니 정도 넣었는데도 자꾸만 더 벌어져 결국 잘라내야만 했다. 그런데 만약 그대로 놔둔다면 어떻게 됐을까?

"그동안 아픈 몸으로 짊어진 삶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웠을까 하고 한 번 생각해 보라"고 하신 하서 어른의 말씀은 한 평생 농투사니로 살아오면서 짊어진 당신들의 고통스런 짊을 생각하면서 말씀하셨음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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썩은 뿌리 때문에 잘라낸 현재의 감나무 모습 ⓒ 정판수

달내마을로 이사 와 곁에서 3년째 지켜보고 있지만 내 눈에 비친 그분들의 모습은 다분히 관념적이다. 현실적이 되지 못한다. 아무리 이해하려고 해도 그냥 머릿속에서만 이해될 뿐 가슴으로는 안 되는 게 사실이다.

도시에서 나서 자라고 살다 온 내가 한평생 흙을 디디며 살아오면서 겪은 그 아픔을 어찌 다 알 수 있으랴. 안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건방진 표현인가.

어른의 말씀을 떠올리며 다시 감나무를 올려다보니 그리 흉한 모습만은 아닌 듯하여 마음이 좀 편했다. 다만 까치들에 대한 미안함은 여전히 남았지만.
#달내마을 #감나무 #까치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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