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인들의 질기고 슬픈 '한'의 노래

강제이주 70주년을 맞아 낸 구전가요집 <재소고려인의 노래를 찾아서>

등록 2007.07.31 11:04수정 2007.07.31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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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소고려인의 노래를 찾아서> 표지(두 사람은 대표적 가수였다) ⓒ 정용국

일제강점기에 독립운동과 생계를 해결하기 위하여 불확실한 미래를 감수하고 수많은 동포들이 산을 넘고 강과 바다를 건너 조국을 떠나갔다.

그러나 한반도의 북쪽 블라디보스토크나 하바로프스크 등 연해주 일대에서 살던 20여만 명의 고려인들처럼 소련 공산당 서기장 스탈린의 강제이주정책에 의해 머나먼 중앙아시아로 내몰려 버려진 사례는 극히 드문 일이다.

말로 다할 수 없는 고통과 희생을 이겨내면서 사지에서 살아남은 우리 고려인들은 오늘날 그곳 '유형의 땅'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스탄, 타자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등 중앙아시아는 물론 러시아 전 지역에서 '고려인(까레이스키)'로 당당하게 살고 있다.

강제이주의 비극은 1937년에 일어났다. 만주사변과 중일전쟁으로 극동지역의 정세가 불안하기 때문에 일본 간첩침투를 차단한다는 이유로 소련 공산당 서기장 스탈린은 연해주 일대에 살고 있던 고려인들을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 시키기로 결의했다.

1937년 9월 25일부터 마소운반용 화물열차에 영문도 모른 채 실린 고려인들은 카자흐스탄이나 우즈베키스탄으로 이송되었다. 척박한 중앙아시아의 황무지에 내팽겨 쳐진 동포들은 풍토병과 추위와 기아로 많은 이가 목숨을 잃었다.

하지만 고려인 특유의 근면성과 지혜로 우리식 논농사를 활용하여 황무지를 개간하고 높은 교육열로 고급 두뇌를 양성하여 소수민족임에도 불구하고 현재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존경받는 민족이 됐다.

이러한 비참한 역사를 간직한 재소고려인들의 강제이주 70주년을 맞이하여 그동안 많은 역사의 현장을 찾아다니며 새로운 문학적 화두를 통해 문학의 힘을 보여준 바 있는 한국문학평화포럼이(회장 임헌영) <재소고려인의 노래를 찾아서>라는 기념비적인 책을 출간하였다.

이 책은 통한의 눈물을 삼키며 맨손으로 황무지를 일군 54만 재소 고려인 동포들의 파란과 신명의 삶의 기록으로 자칫 사라질 뻔한 소중한 해외민족문화유산을 발굴 복원했다는 점에서 주목과 눈길을 끌고 있다.

카자흐스탄에 거주하는 김병학 시인의 채록 및 편저, 고려인 음악가 한야꼬브의 채보 및 편곡, 고려인 한글문학평론가 정상진 선생의 증언, 고려인 창작문화단체 <오느늬람빠> 대표 최 따찌야나의 재정적 후원을 거쳐, 한국 문화관광부가 '재소고려인 강제이주 70주년 기념사업'으로 후원하여 한국문학평화포럼의 주도 아래 김준태 시인이 감수하고 이승철 시인이 편집자로 참가했다. 이 대 역사는 총 1000여 쪽 분량의 책 2권으로 나오게 되었다.

이번 재소고려인의 구전가요를 수집, 정리하는 작업은 실로 간단치 않고 대단한 인내와 집중을 요하는 일이었다. 2002년에 본 채보자 한야꼬브가 이를 처음 구상하였고 그로부터 2년 후 재원이 마련되어 실행에 들어 갈 수 있었다.

한편 흩어진 노래들을 수집하기 위하여 채보자는 카자흐스탄 전역과 우즈베키스탄 , 러시아에 있는 여러 고려인촌을 다녀왔으며 거기서 채보한 수백 곡의 구전가요를 정리, 편곡하느라 긴 시간과 재능과 정성을 바쳐야만 하였다.

또한 수집된 가사를 편저자인 김병학 시인이 정리하는 데에도 무수한 장애들이 뒤따랐다. 모국어가 사라져가는 환경 속에서 수집된 자료들이라서 가사 필시본의 표기수준이 현저하게 후퇴된 데다 단어와 문장들이 혼란스럽게 뒤섞여 있었기 때문. 뿐만 아니라, 노래가 녹음된 테이프의 발음도 판독하기 어려운 것이 많아 그것을 바로잡고 합리적인 편집기준을 마련하는데 긴 고민과 인내가 필요했다.

편저자인 김병학 시인은 '이 작업을 신이 자기에게 명령한 일이 아니었을까'라는 말로 대신하면서 척박한 속에서도 낙천적인 노래를 지어 부른 조상들의 지혜와 슬기에 감사하고 이 책의 출간을 계기로 젊은 층과 후세대들에게 우리 노래가 전승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였다는 점에서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아울러 이 책의 기획 감수자로 참여한 김준태 시인은 이 책이 해외민족문화유산의 발굴과 재생이라는 점에 큰 의미를 둔다고 하였다.

주제별로도 특징을 이루고 있어서 조국을 그리워 하는 노래, 애국가요, 항일가요, 노동요, 동요, 혁명가, 계몽가, 사랑가, 이별과 슬픔 등 추방자 즉 디아스포라(diaspora)의 운명을 노래한 것들로 구성되어 있다. 앞으로 이 기획이 완성되려면 음반과 영상으로 출간되어 직접 노래를 보고 듣게 되어야 할 것이다.

한편 이 책의 출판을 기념하기 위한 출판기념회 및 공연(이 책에 수록된 대표적 노래를 구소련 고려인 가수들과 중앙아시아 지역의 각 민족을 대표하는 정상급 가수들이 우리말로 노래하는 공연)이 한국문학평화포럼과 카자흐스탄의 공동주최로 10월 27일 카자흐스탄 알마틔 오페라극장에서 개최될 예정이다. 한국문학평화포럼은 고은 명예회장, 임헌영 회장 등 임원진 및 회원 30여 명이 참여할 계획이다.
#강제이주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까레이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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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한국작가회의, 한국시조시인협회 사무총장. 한국문학평화포럼 사무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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