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많은 땀 흘려보긴 처음이에요"

'폭염의 참깨밭'에서 아들과 함께 분석해 본 '땀의 성분'

등록 2007.08.19 15:10수정 2007.08.20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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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소금이나 참기름은 음식의 맛을 내는 데 꼭 필요한 천연 조미료다. 모든 농산물이 다 그렇듯 이것 또한 생산 되어 식탁에 오르는 일련의 과정을 아는 사람이라면 그 성분에 사람의 '땀'도 상당량이 배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내가 시골의 작은 밭다랭이에 올해엔 참깨도 심었다. 녹두, 옥수수, 고구마, 팥 등 마치 만물상과 같은 밭의 작물 중 가장 귀하게 여기는 작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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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승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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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깨 수확은 때가 있는 법. 잎이 푸를 때 베어 말려야 털 수가 있다. ⓒ 윤승원



익을 때까지 밭에 둬선 한 톨도 거두기 어려운 '참깨'

참깨 수확은 때가 있는 법이다. 푸를 때 베어 말려야 한다. 익어 벌어질 때까지 밭에 두어서는 한 톨도 거두기 어려운 것이 참깨의 특성이다. 그런데 바쁜 직장을 가진 내가 어찌 아내를 승용차에 태우고 시골 밭일을 이웃 마실 다니듯이 할 수 있는가.

그래서 휴일만 다가오면 아내는 조바심을 친다. 밭에 함께 가자는 것이다. 산과 바다 그리고 도처에 흔하디 흔한 유원지 등에 놀러 다니는 것도 좋지만, 시골 태생인 아내의 관심은 틈만 나면 밭일을 나가는 것이고 이젠 그게 취미가 됐다.

농작물이란 심어만 놓으면 자동으로 열매를 맺어주는 것도 아니다. 잡초도 매주어야 하고 비료도 주어야 하고 벌레도 잡아 주어야 결실을 본다. 그동안 자주는 못 갔지만 그래도 아내는 틈틈이 시골을 왕래하면서 정성들여 작물을 가꾸어 왔다. 내가 직장일로 함께 가 주지 못하면 아내는 혼자서 시외버스를 이용하여 그 먼 곳에 다녀오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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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승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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푹푹 찌는 '폭염의 참깨 밭'에서 흐르는 땀을 주체하지 못하고 일에 열중한 대학생 아들 ⓒ 윤승원


'운전기사 겸 일꾼'으로 동행한 대학생 아들

엊그제 주말에는 대학교에 다니는 아들이 동행해 주었다. 35℃가 넘는 폭염의 날씨에 모든 사람들이 그늘에 앉아 있어도 덥다고 하는 마당에, 아내와 나는 아들을 '운전기사 겸 일꾼'으로 데리고 참깨밭으로 향했다.

아들은 말수가 유독 적은 미술학도다. 그림으로 자신의 삶과 예술세계를 표현하는 아이라서 과묵한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아버지의 요구라면 무슨 일이든지 "네, 알았어요!"라고 긍정적인 대답을 하면서 순순히 따라 주는 기특함이 있다. 이미 힘든 군대 생활 체험도 했기에 인내력 면에서는 그 어느 젊은이 못지 않다고 자부한다.

힘들지 않으면 어찌 '노동'인가

그런데 폭염의 참깨 밭에서 낫질하던 아들이 입에서 이런 말이 절로 새나왔다.

"너무 힘들어요. 아버지!"

이마와 목을 타고 하염없이 흘러 내려온 땀방울은 아들의 회색 티셔츠를 흥건히 적시고도 남았다.

한 다발씩 안아서 자동차가 있는 데까지 날라야 하는 '푸른 깻단'은 또한 얼마나 무거운가. 아들의 얼굴을 바라보니 고통스럽게 일그러져 있었다.

"힘들지 않으면 어찌 '노동'이라 하겠느냐?"

아비의 입에서는 위로는커녕 이런 재미없는 대답만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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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승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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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깨단을 맨손으로 나르는 일도 쉽지 않았다. 한 손엔 참깨단, 한 손엔 옥수수 자루를 든 아들의 표정이 고통스럽게 일그러져 있다. ⓒ 윤승원

노동이라? 그렇다. 농사일에 굳이 '노동'이란 말을 쓰고 싶진 않지만, 힘든 일이면 무엇이든 노동의 범주에 넣고 싶은 것도 현장의 그 신성함 때문일 것이다.

'노동'이란 '몸을 움직여 일을 하는 것'이다. 또 '사람이 생활에 필요한 생활 자료를 얻기 위하여 체력이나 정신을 쏟는 행위'를 말한다. '노동'의 사전적 의미를 새삼 상기해 보는 것은 다름 아니다. 아들과 함께 폭염의 참깨밭에서 흘린 '땀'의 성분은 사우나나 살 빼기 운동 등으로 흘리는 땀과는 그 성분이 다르리라는 생각 때문이다.

땀의 성분에 추가하고 싶은 또 하나의 '소중한 것'

99%가 수분이라고 하는 땀에는 요소, 요산, 염분도 들어 있다고 한다. 쓸모없는 노폐물도 들어 있겠지. 그러나 아들과 함께 흘린 오늘의 우리 가족 땀방울에는 또 다른 값진 성분 하나를 추가하고 싶다. '아내의 가족사랑', '아들의 부모 사랑'이라는 귀한 '애정의 성분'도 분명 배어 있으리라는 확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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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승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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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상에 널어 말리는 참깨단. 아내는 이 깻단을 털면서 혼자서 '깨가 쏟아지는' 재미와 기쁨을 누렸을 것이다. ⓒ 윤승원

아내는 이렇게 베어온 참깨단을 가지런히 묶어 옥상에서 정성 들여 말리고 있다. 지난 주말에 한 고랑 정도 베어온 참깨단에선 벌써 두어 되 양의 참깨를 털었다고 아내는 자랑이 대단하다.

흔히 신혼부부의 사랑을 '깨가 쏟아진다'는 말로 비유한다. 비록 아내는 남편과의 '깨가 쏟아지는 시기'는 지나도 한참 지나, 이제 어느덧 늙어가는 시기에 속하지만 옥상에서 깻단을 털며 '깨 쏟아지는' 재미와 기쁨을 만끽했을 것이다.

앞으로 이 참깨를 볶아 깨소금을 해 먹거나 참기름을 짜 비빔밥에 넣어 먹을 때, 아들은 분명 "여기에는 내 땀방울이 얼마나 함유되어 줄 아세요?"라고 하면서 자문자답할 게 분명하다.

덧붙이는 글 | 필자는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일에 보람을 느끼는 현직 경찰관입니다. 틈틈이 글을 써 오면서 1990년 등단이후 <부자유친> <아들아, 대한민국 아들아> 등 다수의 문집을 펴낸 바 있습니다. 2001년 '경찰문화대전'에서 금상을 수상했습니다. 평범하지만 따뜻한 가슴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적인 이야기에 관심이 많습니다. 이 글은 sbs-u포터와 국정브리핑에도 소개합니다.

덧붙이는 글 필자는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일에 보람을 느끼는 현직 경찰관입니다. 틈틈이 글을 써 오면서 1990년 등단이후 <부자유친> <아들아, 대한민국 아들아> 등 다수의 문집을 펴낸 바 있습니다. 2001년 '경찰문화대전'에서 금상을 수상했습니다. 평범하지만 따뜻한 가슴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적인 이야기에 관심이 많습니다. 이 글은 sbs-u포터와 국정브리핑에도 소개합니다.
#참깨 #농사 #아들 #폭염 #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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