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추석 송편이 타 버렸어요

행복한 추석, 가족들과 함께 송편을 빚다

등록 2007.09.24 12:46수정 2007.09.25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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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연휴, 모두들 고향집에 내려간다 해서 귀성전쟁 중이라지만, 우리집은 이번에 사정상 고향에 내려가지 않게 되었다.


그래서 우리 가족은 집에서 쉬고 있는 중이다. 덕분에 이번 추석은 달콤하기 그지 없다. 5일간의 긴 추석연휴다 보니 특별히 할일도 없고 편한 마음만이 든다. 그래서인지 연휴 아침에 가족들은 저마다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누나는 TV, 나는 컴퓨터, 동생은 만화책, 그리고 아빠마저 낮잠에 빠져있었다.

하지만 이런 모습이 엄마에게 곱게 보였을리 만무하다. 가족들의 나른한(?) 모습을 본 엄마는 안되겠다 싶으셨는지 가족들을 불러모았다.

"아니, 추석인데 모두 뭐하는 거얏~ 모두 모여요. 송편 만들자!"

하지만 엄마의 갑작스런 제안에 우리들은 전부 싫어요 라고 말했다.

"싫어, 엄마 나 쉴래."
"송편은 무슨 송편, 안먹고 말거야."
"여보, 나 너무 피곤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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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들의 역할분담 속에 뚝딱뚝딱 만들어지는 송편 ⓒ 곽진성


나도 못들은 체 컴퓨터를 하고 있었다. 엄마는 다시 한번 말씀하셨다.

"여보, 너희들, 정말 이러기에요? 빨리와요."
"힝."


결국 엄마의 말씀 한방에, 대세는 가족들이 송편 빚는 걸로 기울고 있었다. 눈치가 빠른 나는 얼른 컴퓨터를 끄고 엄마한테 갔다.

"엄마, 얼른 송편 빚어요."

상황이 이렇게 되자 누나, 동생역시 송편 빚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슬금 슬금 모였다. 다만 아빠는 해야할 일(?)이 있다며 밖으로 나가셨다(와, 좋겠다).

"아빠,도피성 아니에요?"
"아니야, 얼른 갔다올게."


아빠의 도피했다는 의심이 들었지만, 증거가 없기에 뭐 어쩌랴, 결국 엄마랑 누나, 동생, 나 이렇게 3남매가 추석 송편 빚지 일을 시작했다. 엄마는 각자 해야 할 역할을 말해 주신다.

"자, 진성인 밀가루 반죽을 동그랗게 만들고, 서린인 밀가루 반죽을 평평하게 만들으렴, 제욱인 조금씩 반죽해 놓고,"

"윽, 알았어요."

결국 추석 연휴에 우리 가족의 송편 만들기 시작되었다. 엄마의 강요에 못 이긴 것이었지만 오랫만에 만들어보는 송편이라서 그런지 재미가 있다. 가족들이 무엇 하나를 만들기 위해 모인 것도 즐거운 느낌이다. 언제부턴가 바쁘다는 핑계로 서로 같이 이야기하고, 식사하는 시간이 부쩍 줄었는데 이번 추석 연휴는 가족끼리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것 같다. 이래서 명절이 있나보다. 오, 훌륭한 조상님들 덕분이랄까.

동생은 열심히 밀가루 반죽을 해놨고 나는 그것을 조금 떼어내 동그랗게 만들었다. 그것을 누나가 평평하게 만들었고 엄마는 그 반죽 속에 깨랑 콩을 집어넣었다. 이렇게 분담 속에 완벽한 추석 송편 완성이었다.

"와, 같이 만드니깐 시간이 확 줄었네."

우리들이 도와준 덕분에 송편 만드는 시간이 배는 줄었다며 즐거워하시는 엄마, 그 모습에 앞으로 집안일을 자주 도와드려야 겠다고 생각해 본다.

"자, 이제 송편을 찌는 일만 남았으니, 모두들 기대해 보세요"

우리들과 엄마는 송편 빚기가 끝나고 즐거운 마음으로 따뜻한 송편이 완성되는 것을 기다리고 있었다. 조금 피곤했던지 엄마는 잠시 눈을 붙이셨고 우리도 송편을 기다리며 각자의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한 20분 쯤, 지났을까? 세상에, 집에 연기가 그윽했다. 누군가 "불이야, 불" 해도 그대로 믿을 상황, 잠시 주무셨던 엄마가 놀라서 부엌으로 달려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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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스란히 냄비에 남아있는 탄 송편의 흔적. ⓒ 곽진성


"세상에,"

엄마의 소리에 우리들도 부엌으로 달려갔다. 온통 연기가 가득한 아래 냄비, 그 속에 타버린 송편들의 모습이 눈에 보였다. 우리는 연기에 콜록 거리며 말했다.

"이걸 어째, 아까워라, 송편이 다 타버렸네."
"다시 해야 되겠네."


엄마 말씀으로는 이렇게 타버린 송편으로 제사를 드릴 수 없다고 한다. 그래서 결국 결정했다. 가족들이 결국 다시 만들기로, 그래서 우리의 송편 만들기는 다시 시작되었다.

그런데 놀랐다. 좀 귀찮고 번거로운 상황이었지만 누나, 동생 누구 하나 불평하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내심, 아까 송편 함께 만들던 시간이 즐거웠던 모양이다. 나는 엄마와 누나와 동생과 평소에 못했던 이야기를 하며 즐겁게 송편을 빚었다. 오랫만에 느껴보는 행복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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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탄 송편이 어찌나 맛있던지, 가족들과 오순도순 모여앉아 먹은 송편은 별미중의 별미였다. ⓒ 곽진성


그런데 타버린 송편이 어찌나 맛있던지, 송편 빚으면서 먹은 타버린 송편은 별미였다. 그 별미를 함께 나눌 가족이 있었기에 그것은 별미중의 별미였다. 아마도 이번 추석은 내게 특별한 추억을 남길 것 같다. 바로 타버린 송편과의 추억 때문에 말이다. 그리고 가족과의 특별한 송편 만들기 때문에 말이다.

덧붙이는 글 | <우리 가족의 특별한 추석 풍경> 응모글

정열은 냇물의 흐름과 같다. 얕으면 소리를 내고 깊으면 소리가 없다.
곽진성 기자의 미니홈피 http://cyworld.nate.com/UsiaNO1 (일촌 신청해주세요^^)
행복한 추석되세요


덧붙이는 글 <우리 가족의 특별한 추석 풍경> 응모글

정열은 냇물의 흐름과 같다. 얕으면 소리를 내고 깊으면 소리가 없다.
곽진성 기자의 미니홈피 http://cyworld.nate.com/UsiaNO1 (일촌 신청해주세요^^)
행복한 추석되세요
#추석 #송편 #가족 #사랑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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