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자는 물럿거라 왕자 나가신다

[태종 이방원 175] 노상에서 마주친 왕자와 세자

등록 2007.10.12 09:04수정 2007.10.12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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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연 궁중에서 쓰던 가마.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 이정근


양녕이 마산역(馬山驛)을 지날 무렵이었다. 마주오던 일단의 행차가 있었다. 30여명은 족히 됨직한 인원이었다. 시종과 시위 군사를 거느린 예사롭지 않은 행렬이었다.

"저하, 어찌하오리까?"


지나칠 것인지 수인사를 나눌 것인지 난감했다. 견마잡이로 등장한 인의로서는 판단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이쪽은 세자다. 이 나라의 임금에 이은 2인자다. 하지만 행색이 초라했다. 누구인지는 몰라도 저쪽은 요란하다. 시종과 시위군사가 있고 휘장이 있는 8인교다.

"인사를 못 받을 이유도 없지 않으냐?"

외면한다는 것은 군자의 도리가 아니라는 뜻이다. 길을 내주며 비켜선다는 것은 세자의 체통에 걸맞지 않다는 것이다. 인의가 말을 세웠다. 양녕은 마상에서 옷매무새를 고치고 위엄있게 수염을 쓰다듬었다. 비록 부왕의 노여움 때문에 한양으로 쫓겨가는 신세지만 양녕은 아직 이 나라의 세자다. 임금을 제외한 모든 신민들로부터 문안을 받을 권리가 있었다.

왕자님이라 했소, 썩 비켜나시오

"어느 놈이 감히 왕자님의 행차를 가로 막느냐? 썩 비키지 못할까?"


마주오던 행차를 맨 앞에서 인도하던 호위 군사가 깃발을 휘날리며 달려왔다. 눈알을 부라리며 고함을 쳤다. '세자는 물럿거라 왕자가 나가신다'가 된 꼴이다. 이 모습을 마상에서 지켜보던 양녕이 빙그레 웃었다. 세자전과 왕자전은 분리되어 있다. 오늘날처럼 권력상층부가 언론에 공개되지 않은 당시에는 수하들이 상대의 수장을 잘 알지 못했다.

"누구라 했느냐?"
"왕자님이라 했소. 썩 비켜나시오."
"왕자 누구냐?"
"왕자라면 왕자인지 알지. 무슨 군말이 그리 많소. 썩 비키시오."

시비를 벌이고 있는 동안 행차가 다가왔다. 뒤따라오던 가마도 멈췄다. 앞에서 4명 뒤에서 4명이 메는 8인교였다. 왕실에서 사용하는 소연(小鷰)이었다. 가마 문이 열리며 왕자가 내렸다. 가마에서 내린 왕자가 양녕이 타고 있는 말 앞에 다가와 머리를 조아리며 예를 갖췄다.

"형님께서 어인 일이시옵니까?"

고함을 치던 군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한양으로 돌아가는 길이다. 너는 무슨 일이냐?"
"대자암에서 불사(佛事)를 마치고 개성으로 돌아가는 길입니다."

가마에서 내린 왕자는 충녕대군(훗날 세종대왕)이었다. 효령 아래 동생이다. 뜻밖이었다. 아우 충녕을 노상에서 만난다는 것은 생각하지 못했다. 더구나 초라한 행색으로 충녕을 만난다는 것은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다.

부왕의 관심과 애정이 충녕에게 쏠리는 것을 예전부터 알았다

대자암(大慈庵)은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난 성녕을 위한 암자다. 넷째 왕자가 죽자 고양현 산리동에 성녕을 장사 지낸 태종은 분묘 곁에 암자를 짓도록 하고 노비 20구와 전지 50결을 내려 주었다. 개성에 머무르던 태종은 충녕에게 불사를 일으키도록 명하여 충녕이 다녀오는 길이었다.

야속했다. 성녕을 위한 불사라면 자신에게 맡겨야 순리에 합당할텐데 충녕에게 맡겼다니 뭔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것 같았다. 부왕의 관심과 애정이 효령을 넘어 충녕에게 쏠리고 있다는 것은 예전부터 감지했지만 이 정도라는 것은 생각하지 못했다. 충녕을 바라보던 양녕의 얼굴이 싸늘하게 식어가며 일그러졌다.

"어리의 일을 네가 아뢰었느냐?"

양녕의 눈빛은 분노에 이글거리고 있었다. 최근 부왕과 함께하는 시간이 많아진 충녕이 고해 바쳤을 것이라고 예단하고 있었다. 충녕 아니면 일러 바칠 사람이 없을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는 마음 한편에는 부왕의 총애에 대한 시기심이 자리 잡고 있었다.

"아니옵니다."

양녕은 믿지 않았다. 어리에 대한 모든 일을 충녕이 고자질 했을 것만 같았다.

"네가 아니라 해도 나는 믿지 못한다."

양녕이 말에 올랐다. 그리고 한양을 향하여 길을 재촉했다. 멀어져 가는 양녕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충녕이 가마에 올랐다. 가마에 오른 충녕은 개성을 향하여 출발했다. 노상에서 만난 형제는 이렇게 헤어졌다.

한양길에 나선 양녕을 돌려 세운 태종

마산역을 떠난 양녕이 벽제역 가까이 이르렀을 무렵 한필의 말이 흙먼지를 일으키며 질풍처럼 달려오고 있었다.

"세자 저하. 돌아오라는 어명입니다."

경덕궁 별감(別監)이 가져온 전갈은 중로 소환이었다. 청천벽력 같은 명이었다. 추방당하여 한양으로 돌아가던 양녕을 태종이 부른 것이다. 좋은 일은 아닐 것만 같았다.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뱃전에서 잠시 생각했던 발칙한 상상을 부왕이 알기라도 했을까?'

생각을 어떻게 알 수 있단 말인가? 그것은 아니었을 것 같았다.

'그렇다면 부왕이 부른 이유가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해 보았지만 도무지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양녕은 개성을 향하여 발길을 돌렸다. 개성에 도착한 양녕은 경덕궁에 들어가 부왕 앞에 부복했다. 그 자리에는 충녕도 있었다.

"네가 아우에게 심한 말을 한 것이 사실이냐?"

경덕궁에 도착하여 머리를 조아리고 있는 양녕에게 태종이 벽력같은 소리를 질렀다. 이제야 윤곽이 잡혔다. 양녕과 충녕의 노상 담화를 전해들은 태종은 진노했다. 한양으로 향하던 양녕을 즉각 소환하라는 명을 내린 것이었다.

"충녕에게 어리의 일을 고했느냐고 물어 보았습니다."
"네 죄를 네가 알아야지 아우를 추궁하는 것은 무슨 심사냐?"
"추궁이라 하시면 천부당만부당하옵니다. 그냥 물어보았을 뿐입니다."
"닥쳐라. 있지도 않은 일을 아우에게 얼굴을 붉히며 묻는 것이 추궁이 아니고 무엇이더냐? 형제 간에 우애하라고 그렇게 가르쳤거늘 맏이로서 네가 할 행동이 그것밖에 없더란 말이더냐? 한경에 돌아가거든 근신하도록 하라."

충녕은 소망의 눈물이었고 양녕은 절망의 눈물이었다

노기충천한 태종이 양녕을 외면했다. 보기 싫으니 나가라는 뜻이다. 양녕은 편전을 물러 나왔다. 물러나왔지만 분이 풀리지 않았다. 양녕이 다시 편전으로 들어가려 하자 충녕이 양녕의 소매를 붙잡으며 만류했다.

"형님, 고정하십시오."
"놓아라. 내가 너에게 물었을 뿐인데 추궁했다 하니 억울하다. 아바마마께 다시 말씀드려야겠다."
"형님, 이러시면 안 됩니다. 이러시면 형님과 제가 불효자가 됩니다."

편전으로  뛰어 들어가려는 양녕의 팔을 붙잡으며 충녕이 극력 만류했다. 충녕의 눈가에 이슬이 맺혀 있었다. 거친 호흡을 몰아쉬던 양녕이 튀어나가 말에 올랐다. 경덕궁을 물러난 양녕의 얼굴은 눈물에 젖어 있었다. 그러나 그 눈물의 의미는 충녕과 달랐다. 충녕은 소망의 눈물이었고 양녕은 절망의 눈물이었다.

양녕은 절망했다. 임금이 부왕이 아닌 것만 같았다. 아버지는 증발해버리고 임금만 있는 것 같았다. 이것이 부왕과의 마지막이라는 것을 양녕은 알지 못했다.

"세자 저하. 진정하십시오. 소인이 길동무 되어 드리겠습니다."

김인의가 위로했다. 낙망과 체념의 한양길에 길동무마저 없으면 너무나 외로울 것 같았다. 왔던 길을 되짚어 한양으로 향했다.
#충녕 #양녕 #왕자 #마산역 #벽제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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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事實)과 사실(史實)의 행간에서 진실(眞實)을 캐는 광원. 그동안 <이방원전> <수양대군> <신들의 정원 조선왕릉> <소현세자> <조선 건국지> <뜻밖의 조선역사> <간신의 민낯> <진령군> <하루> 대하역사소설<압록강>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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