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카이로 회담' 열렸던 그 건물이야?"

[룩소르에서 다마스커스까지 63] 이집트의 한국식당과 카이로 회담장

등록 2007.10.28 10:09수정 2007.10.28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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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로 시내에 있는 한국식당, 아리랑 ⓒ 이승철

카이로 시내에 있는 한국식당, 아리랑 ⓒ 이승철


신비경에 싸인 밤의 사막 길을 달리는 것도 멋진 관광이었다. 구름 한 점 없는 사막의 하늘은 또 왜 그렇게 맑은지, 어두운 하늘에 유리구슬을 뿌려 놓은 듯 총총히 빛나는 수많은 별들은 금방이라도 쏟아져 내릴 것처럼 영롱하기 짝이 없었다.

 

버스가 카이로 외곽지역에 당도하자 시가지의 불빛이 하늘로 뻗치고 있는 밤 풍경도 볼만 했다. 카이로 시내에 들어서 먼저 교민의 집에 잠깐 들렀다가 저녁식사를 하기 위해 식당으로 향했다.

 

카이로에서 만난 우리 음식의 맛


"기대하십시오, 오늘 저녁식사는 한식입니다."

 

교민 가이드 이 선생이 저녁메뉴가 한식이라고 하자 "와아!" 하는 탄성이 터져 나온다. 고국에서는 날마다 먹었던 우리 음식인데 머나먼 타국 땅에서 며칠 만에 다시 먹게 된 것이 그렇게 반가운 것이었다.

 

카이로의 밤, 큰 길은 밝고 아름다웠다. 그러나 뒷골목이나 이면도로는 가로등이 드물게 서있어서 음침한 모습이었다. 우리 교민이 운영하는 '아리랑 식당'은 큰 길에서 약간 안쪽으로 들어간 골목에 자리 잡고 있었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우리 식당이네."

 

누군가 우리 민요라도 부르듯 리드미컬한 목소리로 식당이름을 부른다. 저만큼 어둠 속에서 밝게 빛나고 있는 아리랑이라는 식당 간판이 우리 일행들에게 정말 정다운 느낌으로 다가오는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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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행들이 포식한 우리 음식 ⓒ 이승철

일행들이 포식한 우리 음식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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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랜드 피라밋 호텔 전경 ⓒ 이승철

그랜드 피라밋 호텔 전경 ⓒ 이승철


식당 안으로 들어서자 식탁마다 우리 음식들이 푸짐하게 차려져 있었다. 김치와 된장찌개, 그리고 불고기에 상추까지 준비되어 있었다.

 

"우와! 김치와 된장찌개, 역시 우리 음식이 최고야!"


누군가 음식 맛을 보기도 전에 탄성부터 지른다. 곧 식사가 시작되자 모두들 맛있게 먹는다. 이 식당은 벌써 몇 년째 이곳에서 우리 교민들을 상대로 음식을 만들어 팔고 있다고 했다. 몇 년간의 식당운영으로 얻은 솜씨 때문인지 음식 맛도 대체로 좋은 편이었다. 재료는 대부분 고국에서 수입한 것들이지만 현지에서 생산한 것들도 있다고 한다.

 

"여기 상추 좀 더 갖다 주세요."


일행이 일하는 사람에게 상추를 더 시켰지만 눈만 빤히 쳐다볼 뿐 반응이 없다. 이 식당에서 음식을 나르고 심부름을 하는 사람들은 모두 현지인들이었다. 그들 중에는 우리말을 조금씩이나마 알아듣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대부분 우리말을 전혀 할 줄 모르는 것 같았다.

 

"네, 곧 갖다드리겠습니다."

몇 번인가 큰 소리로 주문을 한 후에야 한국인 주인이 나타나 종업원에게 상추를 들려 보냈다.

 

"이 사람들에게 우리말을 좀 가르쳐주려고 해도 좀처럼 잘 배우지를 못하네요."


주문한 상추가 늦게 전달 된 것이 미안했던지 주인이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하는 말이었다. 주인의 말에 의하면 손님들이 대부분 한국인들이어서 우리말을 가르쳐주려고 해도 잘 배우지를 못한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말을 배우는 것뿐만 아니라 일하는 모습도 야무지지 못하고 서툴고 엉성한 모습이었다. 그들이 만지고 다루는 식기류나 음식도 자기네 것과는 너무 다르고, 먹는 방법까지 다른 문화의 차이 때문인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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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로비의 피아노 연주자 ⓒ 이승철

호텔 로비의 피아노 연주자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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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정원의 돌 조각품 버섯과 여성관광객 ⓒ 이승철

호텔 정원의 돌 조각품 버섯과 여성관광객 ⓒ 이승철


그래도 우리 일행들은 모처럼 입맛당기는 우리 음식으로 포식을 했다며 만족한 표정들이었다. 아리랑 식당에서 저녁식사를 마친 우리들은 곧장 숙소로 정해진 호텔로 향했다.

 

"호텔에 도착하시면 각자의 짐은 스스로 운반하시기 바랍니다. 짐꾼들이 우루루 몰려들겠지만 호텔종업원들이 날라다주지는 않습니다. 조금만 끌고 가면 되는데 짐꾼들에게 수고비 따로 줄 필요 없지 않겠어요?"

 

덤벼드는 짐꾼들에게 맡기면 공연히 귀찮기만 하다는 것이 가이드의 말이었다. 호텔 앞에서 버스가 정차하자 예상했던 대로 짐꾼들이 몰려들었다. 가이드가 그들에게 짐꾼이 필요 없다고 하는 것 같았지만 그들 중 몇 사람은 아쉬운 표정으로 주변을 서성거리고 있었다.

 

호텔 로비에서 감상한 아름다운 피아노 연주

 

이집트 여행 중, 짐꾼들에게 짐을 맡기지 않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짐을 끌고 로비에 들어서자 아름다운 피아노 선율이 잔잔하게 울려 퍼진다. 의자에 앉아 잠깐 쉬며 열쇠 가져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피아노 연주는 계속되고 있었는데 연주자는 머리가 희끗희끗한 중년 신사였다.

 

그런데 연주 솜씨가 정말 대단해서 열쇠를 받아든 후에도 선뜻 일어서지를 못하고 멈칫거리고 있었다. 다른 일행들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연주가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모두들 일어서서 힘찬 박수를 보내주었다. 연주자도 매우 기분이 좋은지 역시 일어서서 우리들에게 고개를 살짝 숙여 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호텔 내부 시설은 보통 수준이었다. 그러나 아침에 내려와 살펴본 호텔 밖 정원은 공연장으로 꾸며져 있어서 아주 특별한 모습이었다. 고운 잔디와 예쁜 돌 조각품들도 비치되어 있어서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카이로의 일정도 바쁘기는 마찬가지였다. 한 곳이라도 더 둘러보기 위해 빈틈없이 짜놓은 코스 때문이었다. 아침을 먹고 바로 출발하기 위해 호텔식당으로 들어섰지만 아침을 제대로 먹는 사람은 드물었다. 모두들 전날 저녁을 한식으로 정말 포식을 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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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을 출발하며, 등을 보이고 서있는 현지인 가이드 '얼빵' ⓒ 이승철

호텔을 출발하며, 등을 보이고 서있는 현지인 가이드 '얼빵'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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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로 시내의 또 다른 한국식당 하나 ⓒ 이승철

카이로 시내의 또 다른 한국식당 하나 ⓒ 이승철

 

전쟁의 승패를 좌우했던 유카리 나무


호텔입구로 나오자 건들건들 커다란 몸집을 흔들며 현지인 가이드 '얼빵'이 나타났다. 얼빵은 얼굴 가득 순진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었다.

 

"여러분 저 커다란 나무가 무슨 나무인지 아세요?"


호텔 문을 나서자 길거리 바깥쪽에 우리 미루나무와 비슷한 모양의 키도 크고 울창한 잎을 가진 나무들이 줄지어 서있었다.

 

"저 나무가 바로 유카리 나무인데 코알라가 저 나뭇잎을 잘 먹는다고 하지요. 그런데 저 나무 때문에 중동전쟁에서 이스라엘 군이 대승을 거두었다는 말도 있습니다."

 

나무와 전쟁이라니, 매우 흥미 있는 이야기의 내용은 이랬다. 중동전쟁이 일어나기 몇 년 전부터 이스라엘의 스파이가 전쟁에 대비하여 중동국가에 들어가 활동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는 중동국가 군부의 신임을 얻은 후 그늘이 없는 사막지역에서 군의 사기와 복지를 위하여 주요 군부대마다 잎이 울창한 유카리 나무를 심도록 권장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주요 군 시설에 유카리 나무가 많이 심었는데 스파이는 이런 사실을 이스라엘 군에게 알려줬다는 것이다. 그래서 전쟁이 터지자마자 이스라엘군 전폭기들이 유카리 나무 숲을 집중적으로 폭격함으로서 중동군은 하루아침에 거의 괴멸되어 버렸고, 이스라엘은 싱거울 정도로 손쉽게 전쟁에서 승리하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그럼 그 스파이는 나중에 어떻게 되었습니까? 이스라엘에서 영웅이 되었겠네요."


"그러나 그렇게 되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유카리 나무 숲이 표적이 되어 이스라엘의 공군에 의해 자신들의 군대가 괴멸되어 버리자 뒤늦게 중동국가들의 군부가 사실을 알아차린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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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의 어린이들 ⓒ 이승철

현지의 어린이들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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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일가게가 있는 골목풍경 ⓒ 이승철

과일가게가 있는 골목풍경 ⓒ 이승철


그 스파이는 결국 중동국가의 군부에 붙잡혀 처형당했다는 것이다. 중동의 사막지역에서 보기 드물게 유난히 키도 크고 잎이 울창한 유카리 나무에는 사막의 전쟁에 얽힌 그런 전설도 갖고 있었던 것이다.

 

"저 앞쪽 오른편을 보십시오, 상당히 커다란 건물이 보이지요? 저 건물이 바로 카이로 회담장이었던 건물입니다."


전쟁이야기를 들으며 카이로 중심가 넓은 거리를 달리다가 왼쪽 길로 접어들려는 순간 가이드가 불쑥 던진 말이었다. 그런데 마침 앞에 달리고 있던 차들이 멈칫거리고 있어서, 우리들이 탄 버스도 속도가 느려져 건물을 확실히 바라볼 수 있었다.

 

머나먼 이국땅에서 만난 우리나라와 관련된 건물

 

"저 건물이 바로 옛날 카이로 선언이 채택된 그 건물이라고요?"


모두들 깊은 관심을 보이며 그쪽으로 시선을 돌린다. 우리들에게는 너무 멀게만 느껴졌던 아프리카 북단의 이 도시에 우리와 직접 관련이 있는 역사적인 사건이 있었던 유적이 있으리라고는 아무도 생각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카이로 회담이라면 제2차 세계대전 중인 1943년 말 연합국 중에서 미국의 루스벨트와 영국의 처칠, 그리고 중국의 장제스가 수뇌 회담을 개최한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던가. 특기할 것은 이 회담에서 일제의 압제 속에 있던 우리나라의 독립문제가 최초로 거론된 역사적인 장소라는 점인 것이다.

 

카이로 회담은 2차에 걸쳐서 열렸는데 1차는 1943년 11월 22일에서 26일까지, 2차 회담은 1943년 12월 2일에서 7일까지 열렸다. 제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로 치달으면서 추축국 측에 불리하게 진행되고, 연합군이 이탈리아에 상륙하여 드디어 1943년 9월 이탈리아가 항복했다. 그래서 연합국 수뇌들은 세계대전의 수행과 전후 처리 문제를 사전 협의하기 위해 두 차례의 회담을 갖게 된 것이었다.

 

1차 회담에서 미국의 루스벨트 대통령과 중국의 장제스 총통은 미국, 영국, 중국 3개국 군이 합동으로 버마에서 새로운 작전을 펴자는 제안을 했다. 그러나 영국의 처칠 수상은 영국군 상륙용 선박을 안다만 제도(Andaman Islands)에 파견하는 것에 반대하여 결정하지 못했다.

 

또 미국의 루스벨트 대통령은 북부 프랑스에 대한 반격을 절대적으로 우선하려 했던 것에 반해 영국의 처칠 수상은 이탈리아와 동부 지중해에도 병력의 4할을 투입하자고 제안하여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결국 일본에 대응하는 문제에 대해서만 합의한 회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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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로 회담이 열렸던 건물 ⓒ 이승철

카이로 회담이 열렸던 건물 ⓒ 이승철


회담이 끝나고 선언문으로 채택된 문건의 맨 마지막 '특별조항'에는 한국의 미래에 대하여 언급하고 독립을 보장하는 국제적 합의사항이 들어 있었는데 '현재 한국민이 노예상태 아래 놓여 있음을 유의하여 앞으로 적절한 절차에 따라 한국의 자유와 독립을 줄 것이다'라고 했던 것이다.

 

"새삼스럽게 감개무량한데요."


누군가 회담 장소로 쓰였던 건물을 바라보며 하는 말이었다. 머나먼 아프리카 여행 중에 만난 역사적인 건물 때문에 우리 민족에게는 너무나 억울하고 가슴 아팠던 일제 식민지배와, 아직도 완전히 청산되지 못한 역사의 아픔을 되돌아 볼 수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이집트 #한국음식 #한국식당 #카이로 회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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