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껍데기에 막걸리 한잔 합시다!"

외가에 온 듯 편안한 여수 공화동 '말집 해장국'

등록 2008.04.01 10:03수정 2008.04.01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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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집 허물없이 정이 오가고... 외갓집에 온 듯, 자기 집에 온 듯, 편안함이 묻어나는 말집 ⓒ 조찬현




“돼지껍데기에 막걸리 한 잔 합시다!”

지난 21일 지인에게서 전화가 왔다. 말집에 가서 돼지껍데기에 막걸리 한 잔 하자고. 우린 오래전부터 그곳에 한 번 가기로 약속을 했었다. 여차저차해서 서로의 시간이 어긋나 여태껏 함께 하질 못했다. 이번에는 모든 일 다 접어두고 일단 그곳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했다. 약속시간이 느긋하니 여유가 있어서 시내버스를 타고 갔다.

말집은 여수역에서 시내방향으로 5분 거리에 있다. 여수 공화동 상보르관광호텔 뒷골목의 두 블록 왼편에 있다. 오후 6시 30분경에 찾아갔었는데 자리가 없었다. 실내는 먼저 자리를 차지한 손님들로 왁자하다. 주변에서 한참을 서성이다 겨우 자리를 잡았다. 좀처럼 자리가 나질 않자 주모가 평소에는 잘 사용하지 않는 테이블에 의자를 붙여 자리를 만들어준 것이다.

돼지껍데기를 구우면서 요리조리 살피고 있자. 주모 왈 그냥 먹으라고 한다.

“그냥 잡숴!”
“아직 덜 익었는데요.”
“삶은 건께 괜찮아. 그리고 뒤집지 마, 뒤집으면 연기나부러.”


옆 테이블에서는 풋고추를 작년에 시켰는데 아직도 안 온다며 타박이다. 주모가 너무 바빠 주모에게 묻고 싶은 게 많았었는데 막걸리만 몇 잔 마시고 “다음에 오지 뭐!” 하며 아쉬움으로 발길을 돌려야만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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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껍데기와 새고막 새고막을 연탄불에 올려 구워먹는 맛도 제법이다. ⓒ 조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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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고막 익으면 알맹이가 벌어진다. ⓒ 조찬현



열흘 만에 다시 찾은 말집

3월의 마지막 날이다. 꼭 열흘 만에 작심을 하고 일찌감치 말집을 다시 찾아간 것이다. 우리 속담에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했던가? 오후 4시께 해가 중천에 떠있다. 아직 술시가 되려면 당당 멀었는데도 취재할 욕심에 일치감치 찾아온 것이다.

헌데! 이걸 어쩌나? 오늘도 역시나 그때와 별반 다를 게 없었다. 자릴 잡고 나서 30여분이 지나자 시끌벅적하다. 왔다가 자리가 없어서 헛걸음을 하는 이들도 있었다. 

“왜. 말집이라고 했나요?“
“옛날에는 여기서 말을 많이 키웠어. 그런 시절이 있었어.”
“말술을 먹고 간데서 말집이라고 한 건 아닐까요.”
“그거 말 되네.”

주모는 옛날 이 근처에서 말을 많이 키워서 말집이라는 상호가 붙었다고 한다. 함께 한 지인은 생뚱맞게도 여길 찾은 주당들이 하도 말술을 많이 먹고 가서 말집이라고 했지 않겠느냐며 그 나름대로의 생각을 이야기했다. 꿈보다 해몽이라더니. 좀 생뚱맞긴 해도 제법 설명이 그럴싸하다.

시커먼 연탄에서 가스냄새가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불구멍을 열고 석쇠에 돼지껍데기를 올려서 구워낸다. 돼지껍데기는 무한정이다. 먹고 싶은 대로 넉넉하니 갖다 준다.

“잡숴요. 이제 잡사.”

돼지껍데기에 상추와 양념장 강된장이 기본으로 나왔다. 양념장은 어떻게 만들었느냐고 묻는 기자에게 주모는 뭘 그런 걸 묻느냐며 소릴 내지른다.

“외장에다가 고추 양파 넣고 만들었어.”
“자~ 막걸리 한잔 하세요.”

막걸리를 조심스레 잔에 따랐다. 찌꺼기가 가라앉은 상태로 맑게 따랐다. 뭘 물어보기만 하면 주모는 그저 고함이다. 막걸리는 시큼하면서도 청량감이 좋다. 돼지껍데기를 노릇노릇 구워내니 아삭하고 쫀득한 맛이 기가 막히다.

“돼지껍데기 뭘 넣고 삶았어요?”
“누가 그런 걸 가르쳐준데. 몰라!“

미리 삶아서 내온 돼지껍데기는 연탄불에 쫀득쫀득해질 때까지 굽는다. 이렇게 구워내면 막걸리 안주로 제격이다. 곁에 있던 손님은 수년째 이집 단골이라며 “삶은 건께 살짝 뜨거워지면 기름기만 털고 먹어요”라며 한 수 알려준다. 처음 와봤다며 눈치만 살피던 지인은 “이거 전부 기름이잖아” 정색을 하더니 어느새 “맛이 꼬들꼬들 땡기네!” 하며 자꾸만 손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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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추지 맛이 독특하다. ⓒ 조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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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김치 깊은 맛이 담겨있다. ⓒ 조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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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추라기와 닭똥집구이 메추라기를 연탄불에 구워 먹으니 그 맛이 가히 일품이다. ⓒ 조찬현



외가에 온 듯 편안하고, 옛 정취가 있어 정말 좋은 곳

메추라기와 닭똥집 안주 한 접시에 1만원이다. 안주 한 접시면 두세 명이 먹기에 충분하다. 기본 찬과 돼지껍데기는 무한정이다. 메추라기를 연탄불에 구워 먹으니 그 맛이 가히 일품이다. 기름장에 찍어 먹어야 제 맛을 느낄 수 있다. 뼈 채로 아작아작 씹어 먹으면 고소함이 더하다.

피고막은 피가 발그레하니 감돌 때, 약간 덜 익은 상태라야 최고의 맛을 느낄 수 있다. 고막을 연탄불에 올려 구워먹는 맛도 제법이다. 철마다 안주는 바뀐다. 닭발, 메추라기, 갈치, 고등어, 닭똥집, 전어, 쭈꾸미 등등 대중적으로 많이 찾는 안주는 거의 대부분 다 갖춰놓고 있다. 안주는 먹고 싶은 걸 골라 주문하면 주머니 사정에 맞춰 내온다.

피고막을 이리 굴리고 저리 굴리고 있자 주모는 대뜸 손으로 집어 든다. 손을 살펴보니 이곳저곳 불에 데인 자국 투성이다.

“안 뜨거워요?”
“어쩌것소. 손님들 편하게 잡수라고 까줘야지.”

손님 층도 다양하다. 길을 지나가다 아는 체를 하고 합석하는가 하면 옆 좌석 간에 서로들 안부를 묻곤 한다. 주모와 손님도 격이 없다. 허물없이 대한다. 정이 오가는 모습이 참으로 보기 좋다. 외가에 온 듯, 자기 집에 온 듯, 편안함과 옛 정취가 살아 숨 쉬고 있어서 정말 좋은 곳이다. 

덧붙이는 글 | <우리 동네 맛집> 응모 글입니다.


덧붙이는 글 <우리 동네 맛집> 응모 글입니다.
#돼지껍데기 #말집 #연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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