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한국땅에 오지 않았다면

국제이주의 어두운 면을 보여준 오음리하리

등록 2008.04.14 16:16수정 2008.04.14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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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민 한국어 공부 모습 국내체류 이주민들의 국내 조기 적응을 위한 한국어 공부 모습 ⓒ 고기복

▲ 이주민 한국어 공부 모습 국내체류 이주민들의 국내 조기 적응을 위한 한국어 공부 모습 ⓒ 고기복

 

세상 어디에도 정든 고향 땅을 등지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5년말 발표된 유엔의 '이주의 새 시대를 위한 초기 로드맵'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자기 나라를 떠나 다른 나라에서 일하거나 살고 있는 사람은 1억 9100만여명이나 된다.

 

이처럼 국제 이주가 세계적인 현상이 된 이 시대를, 혹자는 '신유목민 시대'라고 칭하기도 한다. 많은 이들이 꿈을 위해 보금자리를 떠나 해외로 눈을 돌리지만, 보내는 나라나 받아들이는 나라는 물론 이주민에게도 기회와 고통이 수반되는 일들이 반복되고 있다.

 

한편 2억에 가까운 이주민들 중 이주노동자는 대략 5~6천만 명으로 전 세계 노동력의  4.3~5.2%를 차지할 만큼 규모면에서 상당하다. 분명한 것은 이들 이주노동자들이나 일반 이주자 모두 이주의 명암을 함께 갖고 있다는 것이다.

 

가령 얼마 전 캄보디아 정부에서 캄보디아 여성의 국제결혼을 금지하며 국제결혼 비자 발급 중지를 각국 정부 대사관에 요청한 사실은 국제 이주를 통해서 꿈을 이루려는 이들이 많음과 동시에 부정적인 면이 있다는 사실을 단적으로 말해준다.

 

이러한 부정적인 면면을 살피다 보면 차라리 해외 이주를 떠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경우들을 종종 만나게 된다. 그중 최근에 한국을 떠난 인도네시아인 오음리하리는 해외 이주가 꿈을 이뤄주기보단 청춘을 앗아간 최악의 선택이었던 경우다.

 

그는 외국인고용허가제로 입국했지만, 일하던 곳 공장장에게 구타를 당하여 앞니 세 개가 흔들리는 일을 당했다. 이후 근무처를 옮기는 기간에 쉼터에서 생활했고 그 인연으로 알게 되었던 사람이다.

 

그의 불운은 구타를 당하고 회사를 옮기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었다. 본의 아니게 살인사건에 연루되어 유치장 신세를 졌다가 강제출국 당한 것이다. 작년 11월 수원역 앞 베트남인 살인사건에 연루되어 유치장에 갇혀 있던 오음리하리는 한국을 떠나기 전까지 거의 매일이다시피 편지를 보내왔었다.

 

수인번호-고기복

3973!

 

차라리 지우려고 해봤어

 

이상한 건

지울수록 선명해지는 거야

 

지나가는 사람들이

너의 이름을 짓밟고

침이나 뱉을까 봐

너의 이름을 들어내려고도 해 봤어

 

이상한 건

들어낸 자리가

휑하니 흉했다는 거야

 

회색빛 시멘트벽을 비추던

잿빛 하늘이

검게 변하던 날

수인번호를 적어 보낸 너의 편지

 

이름으로 바뀔 거야

동판에 새겨진 이름처럼

누군가 정답게 부를

번호 아닌 이름으로

 

오음리하리

편지봉투 겉면에는 한글로 괴발개발 쓴, 철자가 틀린 수취인 이름과 발신인의 수인번호가 적혀 있었다. 내용은 "미안하다"는 말과 "그동안 고마웠다, 도와달라"는 말 외에는 달리 없었지만, 내용과 달리 편지지에 적힌 글자들은 꾸밈 글자체로 쓰여 있어서 읽기에 참 불편했다. 또한 자신이 죽이지는 않았지만, 자신과 어울려 다니던 한 친구의 손에 의해 누군가가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이 자신을 우울하게 만든다고 했다.  

 

그런 그가 얼마 전에 한국을 떠났다. 살인사건 현장에 우발적으로 있었다는 사실이 정상 참작돼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강제추방된 것이다. 그의 마지막 편지에는 고향집 전화번호가 있었고, 인도네시아에 오면 언제든지 들리라고 적혀있었다.

 

베트남인 살인 사건으로 인한 수감 기간과 이번 추방은 어쩌면 장밋빛 꿈을 찾아 떠났던 그에게 악몽이 되어 남은 인생을 괴롭힐지 모른다. 번호가 아닌 이름으로 자신을 불러 줄 이들에게 돌아간 그가 악몽을 털고 새로운 삶을 잘 살기를 바랄 뿐이다.

2008.04.14 16:16 ⓒ 2008 OhmyNews
#이주의 세계화 #이주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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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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