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분증 보관? 보관비 드려야겠네요?

이주노동자의 여권, 보관이 아니라 압류입니다

등록 2008.04.14 18:14수정 2008.04.14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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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들에게 여권을 왜 주지 않느냐고 회사에 물어보면 여권을 돌려주면 다 도망가기 때문에 그런다고 하는데, 그게 왜 강제근로입니까? 근로기준법 어디에 그런 조항이 있습니까?"

 

비록 전화지만 상대방은 상당히 귀찮다는 듯이 대답하였다. 문제는 여권 등의 신분증 압류가 뭐가 문제냐고 따지듯 물어오는 이가, 여권을 압류하고 있던 업체의 사람이 아닌 노동부 고용지원센터 직원이었다는데 있었다.

 

잘못된 문제를 지적하고 해법을 찾아야 할 담당직원이 오히려 역정을 내며 잘못을 저지른 업체를 두둔하는 모습이 한심스러웠지만, 한두 번 있는 일도 아니고 보니, 되레 그러려니 하면서도 일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분명히 확인해 보고 싶었다.

 

하지만 오전(14일)부터 천안 고용지원센터에서 자신의 문제를 하소연했던 루쁘스는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하고, 하루를 허비해야 했다.

 

이주노동자들이 이 땅에 들어오면서부터 지금까지 외국 인력을 고용하는 업체들의 공공연한 관행 중의 하나가, 여권과 외국인등록증과 같은 신분증을 압류하는 것이다. 그러나 '압류'라는 단어에 대해 강한 거부 반응을 갖고 항변하는 분들의 대답은 한결같이, "그게 어디 압류냐, 보관해 주는 거다"라고 말을 한다.

 

하지만 만일 대한민국 국적을 갖고 있는 사람이 어떠한 회사에 입사했는데, 하루 이틀도 아니고 일 년, 이 년, 삼 년 내내 주민등록증을 회사에 보관하라고 한다면 상식적으로 통할 것인지를 생각해 보면 이 문제가 어떠한 문제인지 쉽게 판단할 수 있다.

 

여권을 빼앗겼던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한결같이 "여권을 달라고 했지만, 돌려주지 않았다."라고 말한다. '압류'니 '보관'이니 하는 용어 갖고 말싸움하기에 앞서, 현실적으로 여권이 외국인 본인이 소지하고 있지 않을 경우 발생할 수 있는 문제가 뭔지를 살펴보면, 그런 논쟁이 필요 없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우선 출입국법에 의하면 외국인은 신분증을 늘 소지하고 다니게 돼 있다. 가령 여권이나 신분증을 갖고 있지 않다가 출입국 단속에 걸리면 과태료를 물게 돼 있고, 원인을 모르고 강제출국의 위험에 노출되기도 한다. 왜냐하면 여권은 외국 국적의 사람이 체류지에서 자신의 신분을 증명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실례로 합법체류자였던 인도네시아인 하난또(Hananto)는 여권과 외국인등록증을 갖고 있고 길을 가다가 출입국 단속에 걸려 외국인 보호소에서 한 달여를 보내야 했었고, 언론에 통해 잘 알려진 네팔 출신 이주노동자 찬드라씨의 경우처럼 신원 확인이 안 되어 6년 4개월 동안 정신병자로 오인 받고, 정신병원에 갇히기도 했었다.

 

이런 사실을 감안하면, ‘보관’이라는 말로 포장해서 임의로 외국인 신분증을 압류하는 현실에 대해 관계 기관이 명확한 입장을 취해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

 

게다가 여권을 압류당하면 송금 등의 문제도 발생하게 된다. 사측에서 송금을 대행해 준다고 하다가 발송사고가 나면 서로 나 몰라라 하는 경우도 생기기도 하고, 사측에서 임의로 통장을 개설하여 강제적립을 시키기도 한다. 다 큰 성인을 어린아이 취급하며 이주노동자들의 재산을 임의로 관리하다가, 미등록자가 발생하면 통장 잔고를 인출해 버리는 일도 발생하기도 한다.

 

여권을 압류하는 사람들이 주장대로 보관한다고 하면 보관비도 받고, 당사자가 돌려 달라고 할 땐 돌려줘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은 보관이 아니라 '압류'임을 스스로 입증하는 것임에도 그러한 관행은 시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관할부서인 노동부나 출입국에서 이러한 문제에 대해 전적으로 사측의 입장에서 이주노동자들을 타박한다는 데 있다.

 

어디 그뿐인가, 업체에서는 이주노동자의 이탈을 막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는 징표로, 관할 출입국관리사무소에 업체를 이탈한 이주노동자의 여권을 보내는 것을 당연할 줄 알고, 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는 아무렇지도 않게 이주노동자의 여권을 접수받는 수고를 아끼지 않는다.

 

분명한 것은 여권 등의 외국인 신분증을 압류하는 것은 출입국관리법 33조 2항(외국인등록증 등의 채무이행확보 수단 제공 등의 금지)과 근로기준법 제6조(강제근로의 금지)를 위반하고 있다는 점이다.

2008.04.14 18:14 ⓒ 2008 OhmyNews
#외국인등록증 #여권 #압류 #이주노동자 #고용지원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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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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