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절에 머리 터진 이주노동자

노동절, 노동자 연대를 다시 생각하다

등록 2008.05.02 15:34수정 2008.05.02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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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별파티였어요. 같이 일하던 사람이 그만둔다고 차장님·과장님·노조 사람들·사출부 직원 모두가 함께 식사하는 자리였어요. 잔업한 사람도 있어서 밤늦게 시작해 자정 넘게 진행된 모임이었는데, 한국 사람들끼리 갑자기 다투면서 다 일어났어요. 그리고 뭔가 날아왔는데 머리가 띵하고 아픈 거예요. 그때 함께 있던 사람들이 내 머리에서 피가 난다고 하길래 손을 댔더니 피가 묻어나더라고요."

 

직장 동료의 송별파티에서 말다툼 중에 던진 소주병에 맞아 머리를 다친 또모(38)는 노동절 새벽에 머리 봉합술을 받아야 했다. 사고가 나자 곧바로 회사 직원들과 동료 인도네시아인들의 안내로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지만, 또모는 마음이 뒤숭숭해서 다른 외국인들이 특근하는 걸 뒤로 하고 쉼터를 찾았다.

 

"그 사람이 저에게 나쁜 마음이 없다는 건 알아요. 그런데 지금 머리가 너무 쑤시고 아파요. 병원에서 일반 엑스레이 찍고 봉합술을 했지만 머리잖아요. 그리고 유리에 다친 거라 CT라도 찍고 싶은데…"

 

병원에서 어련히 알아서 했겠거니 하면서도 또모의 불안해 하는 모습에 치료를 받았다던 병원으로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전화를 받은 병원 직원의 질문과 상관없는 엉뚱한 답변에 속이 상하고 말았다.

 

"새벽에 머리를 다쳤던 인도네시아 사람인데, 이름이 또모라고. 지금도 머리가 아프다며 CT를 찍었으면 하는데, 어떡하죠?"

"2주 진단이면 5만원이고요, 3주 진단이면 10만원이에요."

 

"병원 진료비 말고요. CT 촬영이 필요하냐고 묻는 건데요."

"아, 네. 그럼 진료받고 진단서 끊으세요."

 

전화를 받았던 병원 직원은 머리를 다친 사람이 보상이라도 요구하기 위해 진단서를 끊을 것으로 생각했던 것 같았다. 하지만 또모는 보상을 요구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유리로 다쳤고 시술받은 지 몇 시간이 지나도 통증이 사라지지 않아 혹시 잘못되지나 않을지 하는 불안감에 CT 촬영을 문의하고 있었다. 또모에게 병원 측과의 통화 내용을 다 말해주기가 민망해서 말을 돌렸다.

 

"회사에 물어볼까요? 병 던진 사람이나 회사 사람이 뭐라고 해요?"

"병 던진 사람은 미안하다고 했고, 회사에서는 치료비를 냈어요."

 

"혹시 같이 있었던 노조 사람들은 뭐라고 해요?"

"몰라요. 그 사람들은 외국 사람들 신경 안 써요. 자기들 보너스 받을 때, 우리는 그냥 선물 받고 끝나요."

 

평소 섭섭한 게 쌓여 있었는지 또모는 외국인들의 급여 계산 방법이나 보너스 문제 등에 대해 누구 하나 관심 없는데, 아픈 게 대수냐며 다소 냉소적으로 말을 이었다. 그런 그를 "머리는 조심하는 것이 좋으니까, 회사에 말해서 CT를 찍을 수 있도록 할게요"라고 달래자, 그나마 표정이 밝아졌다.

 

노동절에 머리가 깨지고도 보상받기 위해 진단서를 요구하는 것으로 엉뚱한 오해나 받고, 사고 후유증에 대한 불안감에 대해서는 누구하나 관심없는 신세인 이주노동자. 또모의 말을 들으며 '노동자는 하나다'라는 노동자 연대의 구호가 한낱 허구일 수 있음을 느껴야 했다. 노동절에.

2008.05.02 15:34 ⓒ 2008 OhmyNews
#노동절 #이주노동자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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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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