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군대식 모포 털기, 외국인들에게 가르치다

오늘 쉼터 위생관리 군기 좀 잡았습니다!

등록 2008.05.03 18:14수정 2008.05.03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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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며칠 초여름 같은 날씨 덕택에 작정하고 쉼터의 담요와 베개, 카페트를 들고 건물 옥상에 올랐습니다. 쉼터의 방에 있던 담요들 중, 두텁지 않은 담요는 세탁을 한 반면, 두터운 담요는 우선 일광소독이라도 할 요량으로 들고 올라간 것이었습니다.


옥상에는 겨울 동안 사용하지 않아서 먼지가 앉은 빨랫줄이 얼키설키 옥상을 어지럽히고 있었는데, 우선 더러워진 빨랫줄을 새로 갈고 엉성해진 부분은 팽팽하게 당겨서 빨래를 잘 널 수 있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만든 빨랫줄에 쉼터에 있는 담요와 베개를 한꺼번에 다 말리기에는 무리가 있었지만 겹쳐 널기도 하고, 세탁을 한 담요와 번갈아 널기도 하면서 오후 내내 쉼터의 모든 담요를 일광 소독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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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상에 담요를 널다 옥상 사방을 빨랫줄로 두른 후, 바닥에는 카페트와 베개를 널었다. ⓒ 고기복



담요를 널고 말리면서 마침 쉼터에 있던 건장한 체격의 총각들을 상대로 요즘에도 하는지 모르지만, 과거 군 생활을 할 때 볕 좋은 날 종종했던 침구 일광 소독과 모포 털기를 가르쳤습니다.

"자, 이렇게 담요 끝을 말아서 손에 꽉 쥐고 빠른 속도로 힘껏 펼쳐요."
"하나 둘!"


구호에 맞춰 담요를 펼치자, 처음에는 '펄렁~, 퍽'하며 나던 소리가 점차 '팡, 팡'하는 경쾌한 소리로 바뀌며, 눈에 보일 정도의 먼지가 매캐한 냄새와 함께 하늘로 날아오르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

그렇게 같이 담요의 묵은 먼지를 털어내던 쉼터 식구들은 부드러운 섬유에서 '팡, 팡'하는 큰 소리가 날 때마다 총소리 같다며 신기해 하면서도 털 때마다 사방으로 날리는 먼지에는 눈을 질금 감고 혀를 내두르더군요. 그렇게 날리는 먼지를 보며, 좀 깔끔을 떠는 사람이라면 지난밤에 덮고 잤던 담요라고 믿기 싫었을 것입니다.

사실 여러 사람이 함께 생활하는 쉼터에선 위생관리를 수백 번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쉼터는 숟가락이나 젓가락 같은 식기는 매주 토요일마다 끓여 놓습니다. 그런 면에서 담요와 같은 침구 역시 위생관리가 절대 필요합니다. 겨울이라 해서 담요의 먼지를 털어내지 않았다거나 빨지 않았던 것은 아닙니다. 다른 점이 있다면 겨울에는 베란다에서 먼지를 털다보니 거의 터는 시늉 정도만 했고, 빨래도 뽀송뽀송할 정도로 말리지 못했었다는 점입니다.

그런 면에서 옥상 위에서 일광소독을 하고, 군대식 담요 털기를 한 것은 일종의 위생 관리를 위한 군기 교육인 셈이었습니다. 그렇게 군에서 모포를 털듯 담요 먼지를 털어내는 방법을 쉼터를 사용하는 이주노동자들에게 가르치는 동안 이마에는 송골송골 땀이 맺히기 시작했습니다. 그래도 군 경험이 전혀 없는 외국 국적의 젊은이들에게 대한민국 군대의 모포 털기를 가르치는 동안, 마음에도 알알이 기쁨이 맺혔습니다.

그런데 볕이 좋다고 먼저 드러눕고 보는 걸 보면 군기 제대로 잡히려면 아직 먼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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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놀음 햇볕에 뽀송뽀송해진 베개 위에 목침을 하고 누우니 기분이 마냥 좋은가 보다. ⓒ 고기복


#일광소독 #담요 #모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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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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