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일팩션 59] 청산리의 17세 광복군 소년 지용호

김갑수 역사소설 <제국과 인간> 상해의 영혼들 편

등록 2008.05.15 18:00수정 2008.05.15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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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리 어구에 들어서다

얼마 안 가 광복군은 마적의 습격을 받았다. 대규모 마적단이었다. 하지만 마적단은 단 한 번의 교전으로 전멸했다. 그만큼 광복군의 기세는 등등해 있었다. 마침 추석날이었다.

마침내 그들은 청산리 어구에 들어섰다. 청산리 외곽으로 두 갈래의 큰 길이 있었다. 한 갈래는 중국인 마을로 통했고 다른 한 갈래는 두만강으로 통해, 그 강을 건너면 조국 땅 함경북도 무산군이 있었다.

청산리는 가파른 산 속에 있는 계곡 분지였다. 서북으로는 수림이 적었지만 동남으로는 수목이 빼곡했다. 그곳의 숲은 20, 30미터가 넘는 소나무, 잣나무, 떡갈나무들로 뒤덮여 있었다. 숲으로 들어가면 대낮에도 어두워 앞으로 가기가 힘들었다. 숲의 바닥은 낙엽이 이불보다 두껍게 쌓여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청산리에는 곳곳마다 크고 작은 골짜기가 있었다. 유격전으로는 최적의 지형이었다.

골짜기의 높은 곳에 이르렀을 때, 그들은 볼 수 있었다. 10리 너머쯤 광야에서 수십 마리의 긴 뱀이 준동하고 있는 것 같은 일본군의 행렬을 본 것이었다. 일본군 제 37여단에, 기병부대와 야포부대가 합쳐진 대규모 병력이었다. 일본군 육군 소장이 지휘하는 정예부대였다.

광복군은 유리한 지형지물을 찾아 신속히 이동을 시작했다. 전위대에게 북쪽 고지를 확보하라는 명령이 하달되었다. 벌겋게 물들어 있는 황혼이 피의 전쟁을 예고하고 있는 듯했다. 어림잡아 일본군은 1만 명은 족히 될 것 같았다. 아직 지형을 익히지 않은 그들은 공격을 늦추고 있었다. 광복군은 깊은 골짜기라면 모두 찾아 들어갔다.

교포 마을에 사람을 보내 피신하게 하고, 남은 사람에게는 광복군이 투지와 무기를 잃어 무기력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지형에 익숙한 사냥꾼을 뽑아 적정을 살피고 오라고 했다. 적의 기병대가 이따금씩 출몰하면서 정찰을 하고 있다는 보고가 지휘부에 자주 들어왔다. 광복군 부대는 다시 백운평 골짜기로 전진했다. 적정을 살피고 온 보고를 종합하면 적은 삼면 포위로 압박해 오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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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리 전투가 벌어진 백운평 계곡 원경 ⓒ 박도


다시 정찰 보고가 들어왔다. 골짜기를 따라 10여 리를 더 들어가면 공터가 있는데 공터 가운데로 실개천이 흐르고 그 옆으로는 깎아 세운 듯한 산이 있으며 주위의 밀림은 사람 하나가 빠져 나갈 수 없을 정도로 비좁다고 했다. 김좌진은 예비군을 이끌고 전장에서 멀리 가기로 했다. 불필요한 희생자를 줄이겠다는 것이 그의 의도였다. 그들은 실제로는 절반 이상이 비전투원이었다.

마을에서 독립군이 무기력하다는 말을 들었는지 일본군은 기병부대를 앞세우고 대담하게 전진하고 있었다. 이범석이 지휘하는 광복군은 공터 부근에 매복한 채 일본군을 기다렸다. 그들은 긴장과 호기심에 휩싸여 있었다. 심지어는 첫날밤 신부를 기다리는 것처럼 황홀한 기분으로 적을 기다린다는 병사도 있었다.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얇은 홑 군복을 입은 그들은 금세 몸이 식고 있었다. 이범석은 불을 피워도 된다는 명령을 내렸다. 그들은 푹신한 낙엽에 몸을 넣은 채로 손과 얼굴을 모닥불에 녹였다. 가벼운 바람이 모닥불의 불씨를 흔들고 있었다.

"대장님, 만약 제가 도망가는 걸 보시면 대장님이 권총으로 쏴 버리세요. 그리고 혹시 우리 어머님을 보시면 용감하게 싸웠다고 전해 주세요."

눈과 눈썹이 아름다운 지용호는 17세 소년이었다. 그는 광복군에 들어오고 싶어 나이를 속였다고 실토했다. 그는 이 밤이 이렇게 아름다울 줄 몰랐다고 말했다.

밤이 더 깊어갔다 젊은이들은 하나 둘씩 잠들기 시작했다.

이범석은 눈을 크게 뜨고 공터 너머를 바라보고 있었다. 달이 서편으로 성큼 옮겨져 있었다.

이정(李楨)은 46세의 노령이었다. 키가 크고 말수가 적은 그는 모닥불 앞에 앉아 망연히 달을 보고 있더니 즉흥으로 오언절구 하나를 읊었다.

나뭇잎 떨어져 산 속은 정밀한데
하늘은 높아 뵈고 달빛 더욱 환하다.
사나이 마음은 천 마리 말 같은데
날 새기 기다리니 밤이 이리 길구나.

태평스럽게 걸어오는 일본군

날이 밝아오고 있었다. 광복군은 한 사람의 예외 없이 나뭇가지로 위장했다. 그리고 미동도 없이 엎드려 있었다. 오전 8시 경 일본군 전위부대 1천여 명이 꾸불꾸불한 길을 따라 공터 쪽으로 전진하고 있었다.

그들 중의 많은 수가 건빵을 씹으며 태평스럽게 걸어오고 있었다. 그들은 자주 허리를 굽혀 땅에 떨어져 있는 말똥을 집었다. 말똥의 온기를 가지고 광복군이 언제쯤 이 길을 통과했는지를 알아보려는 것이었다. 물론 말똥이 차가우면 오래 전에 이 길을 갔다고 생각할 터이었다. 그런데 말똥은 차가울 수밖에 없었다. 광복군이 매복을 끝낸 지가 벌써 여러 시간이기 때문이었다.

맨 앞에 오고 있는 장교는 금 줄 견장 네 개를 단 소령이었다. 그는 말똥 만지던 손으로 건빵을 먹기도 하고 그러다가 손을 콧수염에 문지르기도 하면서 걷고 있었다. 이범석의 권총은 콧수염의 심장을 조준하고 있었다. 갑자기 콧수염은 오른 손을 군도에 대며 왼손으로는 망원경을 잡았다. 그러더니 아주 신중한 걸음으로 속도를 늦추었다.

이범석의 총알이 콧수염의 심장을 정통하는 것으로 일제히 600개의 총구에서 연기가 올랐다. 일본군은 어디에서 총알이 오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백운평 1차 전투에서 일본군은 2200명의 전사자를 냈다. 광복군 피해는 부상자 포함 20명이었다. 타격을 받은 일본군은 전열을 가다듬으며 장기전에 돌입했다. 광복군은 주력부대가 백운평에 남은 것처럼 위장하고 밤새 120리를 이동하여 일본군의 포위망을 완전히 벗어나 버렸다.

갑산촌에 진지를 구축한 광복군은 한국인 촌락 천수평에 와 있는 일본군 제 120 기병중대를 기습하여 4명의 도망병을 제외한 중대장 이하 전원을 사살하였다. 그들은 상부로 가는 일본군의 정보 문서를 읽어 19사단 2만의 주력부대가 어랑촌에 있음을 알고 전원 옥쇄의 각오로 어랑촌을 향했다.

그들은 어랑촌 전방의 마록구 고지를 점령하여 지리적 이점을 확보한 후, 김좌진의 지휘를 받으며 2주야에 걸친 혈전을 치른 끝에 90명의 전사자를 내면서 일본군 950명을 더 사살했다.

2200명의 병력이 5만의 제국주의 정예군과 맞서 3300명을 사살한 청산리 3차전 전투는 세계 식민지 항쟁 사상 전무후무한 독립전쟁이었다.

덧붙이는 글 | 식민지 역사를 온전히 청산하고자 하는 소설입니다.


덧붙이는 글 식민지 역사를 온전히 청산하고자 하는 소설입니다.
#청산리 #김좌진 #이범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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