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무리의 새가 내려앉은 것일까

[섬이야기 80] 진도 조도

등록 2008.06.10 13:39수정 2008.06.10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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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는 떠나고 다시 전망대에 올랐다. 154개의 섬이 올망졸망 바다에 내려앉았다. 따뜻한 남쪽을 찾던 새들이 잠시 쉬는 모양이라던가. 이름도 새섬(鳥島)이다.

섬 무리 중심에 하조도가 있다. 다리가 놓였으니 상조도도 있다. 두 섬을 중심으로 조도군도, 가사군도, 독거군도, 거차군도, 맹골군도, 만재군도(1983년 신안군으로 편재)가 있다. 진도 여귀산에서 내려다보면 이들 섬은 새가 무리지어 앉아 있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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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섬이라 부르는 조도군도 ⓒ 진도군


울돌목이 사돈 맺자고? 어림없지!

진도 팽목항과 하조도 어류포를 잇는 여객선이 하루에 수차례 오가지만  몇 년 전까지 조도는 낙도 중에 낙도였다. 진도까지 오는 길도 만만찮은데 배를 타고 섬으로 들어간다. 육지 것들이 일부러 찾아 나서기에는 결코 쉽지 않은 길이다.

진도대교가 놓이기 전, 팽목항이 지금처럼 연안항으로써 역할을 하기 전, 조도 사람들은 목포가 생활권이었다. 거리상으로는 진도가 가깝지만 목숨을 걸고 거친 물길을 두 번 건너야 하는 길보다 멀지만 조류와 바람을 이용할 수 있는 길을 택했다.

무엇보다 목포가 미역, 톳, 조기 등 갯것들을 팔고 어구와 생필품을 쉽게 구입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당시 상·하조도는 물론 나배도, 관매도, 가사도, 멀리 독거도를 비롯한 조도 인근 20여개 유인도를 잇는 뱃길은 모두 목포로 연결되었다. 지금도 아침 일찍 목포를 출발해 20여 곳의 섬과 포구를 돌아 상조도 섬등포에 저녁 늦게 도착하는 여객선이 있다. 완행열차쯤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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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전마을 '경로잔치' ⓒ 김준




진도 몸섬과 하조도를 잇는 30리 길, 장죽수도라 부르는 이 길은 물길이 빠르고 거칠다. 노를 젓거나 돛을 이용하던 시절에는 감히 건널 생각도 못했다. 게다가 장죽수도를 건너면 다시 울돌목이 가로막았다. 지금은 하루에 다섯 차례, 여름철이면 관매도 해수욕장과 조도 신전해수욕장을 찾는 피서객들을 무시로 싣고 오간다.

하지만 날씨가 좋지 않으면 사람도 배도 꼼짝 못한다. 오죽하면 울돌목이 장죽수도에게 사돈 맺자고 하자 '당신네 물목도 물목이냐'며 거절했을까. 물길이 빠르다 보니 좋은 점은 다른 지역에서 발생한 적조들이 조도에는 얼씬도 못한다는 것이다. 사실 조도미역과 멸치가 유명한 것도, 조도 인근에서 잡힌 고기 육질이 좋은 것도 조류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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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도 대파는 겨울을 난다. 날씨가 따뜻해서다. 진짜 '맛객'은 겨울난 진도대파가 들어간 설렁탕을 찾는다. ⓒ 김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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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철에 수확하는 쑥은 늦봄까지 '효자' 노릇을 한다 ⓒ 김준


배보다 달콤한 조도 '겨울 무'

조도 특산품은 '멸치', '미역', '톳', '대파', '무', '쑥' 등이다. 멸치는 낭장망을 이용해 죽항도, 청등도 주민들이 잡는다. 미역은 자연산 돌미역으로 독거도, 관매도, 맹골도 등에서 생산하고 있다. 산모각으로 유명해 친정 어머니가 혼수품으로 준비한다는 진도각이 이곳 미역이다.

미역국을 끓이면 사골이 물러져도 조도미역은 뻣뻣해 양식미역에 길들여진 사람들은 그 맛을 모른다. 몇 번이고 우려먹어도 제 맛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조도에서 쌀 농사를 지을 만한 곳은 하조도 창리와 육동리, 상조도 동구마을과 율목마을 간척농지 정도다. 수지가 맞지 않는 벼농사는 언제라도 중단될 기세지만 현금을 만질 수 있는 대파, 쑥 무를 심는 밭은 주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조도가 자랑하는 '겨울 무'는 '나주 배'보다 달고 사각사각하다. 밭에서 그대로 겨울을 나는 조도 무는 겨울철 섬사람들의 소득원이다. 잘 갈무리하여 말린 조도 무말랭이를 찾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도시민들의 눈높이에 맞는 멋스러운 포장과 브랜드를 갖추지 못했지만 입소문으로 제법 알려져 있다.

쑥도 마찬가지다. 날씨가 따뜻해 1월부터 쑥을 생산한다. 해풍을 맞고 자란 쑥이 약효가 좋아 한약방과 가정식용은 물론 찜질방에 이르기까지 수요가 많다. 상조도 동구마을에서 율목마을로 넘어가는 고개에 노인 부부가 올해 마지막 쑥을 뜯고 있다. 세 벌째 뜯고 있다는 노인은 1000평의 밭에 쑥을 심어 500만 원 소득을 올렸다. 겨울에는 1kg에 수천 원, 5월에는 몇백 원에 거래되고 있다. 자루에 넣어두면 중간상이 수거해 가기 때문에 판로 걱정도 없다. 특별한 밑천이 들어가지 않고 얻는 소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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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죽수도의 거친 물살을 이겨낸 톳은 조도 특산물이다. ⓒ 김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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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 빛 물든 바다에 작은 조각배를 띄우고 전복에게 먹이를 주고 있다 ⓒ 김준



마지막 배가 떠났다. 손에 잡힐 듯한 육지를 눈앞에 두고 나그네는 꼼짝없이 섬에서 밤을 지내야 한다. 나가야겠다고 생각할 때 급한 마음이 막배까지 떠나고 나자 언제 그랬냐는 듯 여유롭다. 아직 해가 지려면 시간 반은 족히 기다려야 한다. 선창주차장에는 바닷물을 잔뜩 품은 톳을 말리고 있는 손길이 바쁘다.

바다가 빤히 보이는 조금나루 위 밭고랑에서는 열댓 명 아낙들이 앉아 대파를 심고 있다. 다리 밑 양식장 옆에서 부부를 태운 작은 배가 물결에 몸을 맡긴 채 이리 저리 출렁이고 있다. 작은 섬 너머로 작별인사를 하는 해 그림자가 기다랗게 끈을 만든다. 마음이 여유로우니 미처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바다 노을과 나그네가 섬 그림자에 묻혔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전남새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전남새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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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 년 동안 섬과 갯벌을 기웃거리다 바다의 시간에 빠졌다. 그는 매일 바다로 가는 꿈을 꾼다. 해양문화 전문가이자 그들의 삶을 기록하는 사진작가이기도 한 그는 갯사람들의 삶을 통해 ‘오래된 미래’와 대안을 찾고 있다. 현재 전남발전연구원 해양관광팀 연구위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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