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167)

― '미국과의 사귐', '낯선 것과의', '중국과의 마찰' 다듬기

등록 2008.07.02 21:16수정 2008.07.02 2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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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미국과의 사귐

 

.. 미국과의 사귐이 오래되었고, 친구나 아는 사람도 많은 나에게는, 지금까지 역사에서 ‘외적’으로부터 직접 공격을 받은 적이 없었던 미국은 지금 냉정을 잃고 일종의 패닉 상태, 다시 말하면 ‘광기’ 속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  <전쟁인가 평화인가>(오다 마코토/양현혜,이규태 옮김, 녹색평론사, 2003) 23쪽

 

보기글에 나오듯이 미국이라는 나라가 하는 짓은 여러모로 볼썽사납고 못났습니다. 그렇지만 이런 말을 당차게 펼치는 사람이 생각 밖으로 드물어요. “외적(外敵)으로부터 직접 공격을 받은”은 “외적한테 직접 공격을 받은”으로 다듬고, ‘패닉(panic)’은 ‘어수선’이나 ‘어지러움’으로 다듬어 줍니다.

 

 ┌ 미국과의 사귐이

 │

 │(1)→ 미국과 사귄 지

 │(2)→ 미국을 알게 된 지

 │(2)→ 미국을 가까이한 지

 └ …

 

“미국과 사귄 지”로 다듬어야 알맞는데, 이렇게 다듬어도 영 이상합니다. 누구를 사귄다고 할 때는 사람을 가리키지, 이렇게 나라나 겨레를 대지 않거든요. 그렇지만 한 나라와 다른 나라가 문화ㆍ정치ㆍ경제 들을 주고받거나 함께할 때 ‘사귄다’는 말을 넣어 볼 수 있어요. 꼭 ‘수교’나 ‘조약’ 같은 한자말로만 이야기를 해야 하지는 않습니다.

ㄴ. 낯선 것과의 접촉을 회피하려는

 

.. 인간은 낯선 것과의 접촉을 회피하려는 뚜렷한 심리적 경향성을 보여준다 ..  <마음이 소금밭인데 오랜만에 도서관에 갔다>(이명원, 새움, 2004) 41쪽

 

글 한 줄인데 말이 참 어렵습니다. 이렇게 어렵게 써야 평론이 될까요. 쉽게 쓰면 평론이 아닐까요. 아는 말이 이렇게 어려운 말뿐이기에 자기 생각을 이런 말로만 담아내는 셈인가요.

 

‘인간(人間)’은 ‘사람’으로, “접촉(接觸)을 회피(回避)하려는”은 “만나지 않으려는”이나 “보지 않으려는”으로 손봅니다. “뚜렷한 심리적(心理的) 경향성(傾向性)을 보여준다”는 “(어떠한) 모습을 뚜렷이 보여준다”로 손보고요.

 

 ┌ 낯선 것과의 접촉을 회피하려는

 │

 │→ 낯선 것과 만나지 않으려는

 │→ 낯선 것과 부딪히지 않으려는

 │→ 낯선 것과는 어울리지 않으려는

 └ …

 

“몸을 숨기고 만나지 않음”이 ‘회피(回避)’입니다. 그러니 말 그대로 ‘만나지 않다’로 다듬으면 좋아요. 이 자리에서는 “낯선 것과 만나지”로 풀 수도 있고, “낯선 것과 어울리지”라든지 “낯선 것과 섞이지”라든지 “낯선 것과 함께하지”쯤으로 풀어내도 괜찮습니다.

 

ㄷ. 중국과의 마찰을 우려

 

.. 외교통상부는 중국과의 마찰을 우려해서인지 아주 미온적이었다 ..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최광식, 살림, 2004) 53쪽

 

‘미온적(微溫的)이었다’는 ‘미지근했다’나 ‘한발 물러섰다’로 고쳐 줍니다. ‘우려(憂慮)해서’는 ‘걱정해서’로 다듬고, ‘마찰(摩擦)을’은 ‘부딪힐까’나 ‘부딪칠까’로 손봅니다.

 

 ┌ 중국과의 마찰을 우려해서인지

 │

 │→ 중국과 부딪칠까 걱정해서인지

 │→ 중국과 부딪치지 않으려고

 │→ 중국과 부딪치면 걱정스러운지

 └ …

 

우리 말이 아닌 말에 길들고, 우리 말법이 아닌 말법에 길들어 간다고 느낍니다. 낱말 하나, 글 한 줄 차근차근 살피어, 우리 삶과 문화를 담아내도록 애쓰면 좋겠습니다. 더디더라도 한 걸음씩.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http://hbooks.cyworld.com (우리 말과 헌책방)
http://cafe.naver.com/ingol (인천 골목길 사진)

2008.07.02 21:16 ⓒ 2008 OhmyNews
덧붙이는 글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http://hbooks.cyworld.com (우리 말과 헌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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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씨 ‘-의’ #우리말 #우리 말 #-의 #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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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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